제67화 페스타 강연 (3)
차도도가 강연장에 도착했을 때는 강연이 절반 이상 진행되고 있었다.
강우를 믿는다지만 실상은 미숙한 고등학생이었기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달리 부탁할 사람이 있었다면 무리해서 강우에게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숨이 콱 막혔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을 확인하면서 재빨리 연단 위의 강우를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강우는 문제없이 강연을 진행하는 듯했다. 그녀는 가장 뒤에 서서 강우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내용을 강우가 이해하고 있으리라 예상했었다.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강우는 능숙하게 강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긴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녀는 청중의 반응을 살폈다.
“아!”
뒤에 있었기에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으나 강우의 강연에 집중한 청중의 열기가 느껴졌다. 그들은 강우의 손짓과 말 한마디에 반응하고 있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발표를 시키면서 강우에게 강연 재능이 있다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지금 연단의 강우는 재능 정도가 아니라 청중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었다.
개그 프로도 아니고 딱딱한 과학 주제 강연에서 청중을 이처럼 몰입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했던가.
차도도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강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연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마이어와 해리슨의 법정투쟁, 지식인 그룹과 비지식인 그룹의 승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학자들의 편견과 아집, 겉으로는 1만 달러를 더 얻기 위한 싸움이었으나 진실은 자신의 발명품을 폄하하는 지식인을 향한 고독한 투쟁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승리한 해리슨은 시계의 대중화에 성공했고 궁극적으로 안전한 항해를 가능하게 하여 대영제국의 깃발을 나부꼈다.
이 모든 내용은 해리슨의 회고록에 정리되었다. 해리슨은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덕분에 한 문장의 길이가 무려 25페이지나 되는 난해한 문장이 가득한 회고록을 출판했다.
청중들의 감탄이 이어졌고 차도도도 그들과 함께 강우를 환호성으로 응원했다.
강연이 끝났을 때 차도도는 감동에 빠져 있었다. 평생 그녀를 이토록 감동에 빠지게 한 강연은…… 딱 한 번 있었다.
거의 십 년 전, 그녀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그녀는 친구에게 끌려 사이언스 페스타에 구경 왔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공부만 잘했던 고만고만한 학생이었다. 과학에 특출난 관심을 두고 있진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강연을 듣게 됐다. 그때의 주제가 바로 이 시계에 얽힌 과학 이야기였다.
그때의 강사는 한국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잘 생겼었다.
그 사람의 강연이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다. 과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과학이 어떻게 이 사회를 바꾸고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과학자의 노력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날의 감동이 그녀를 과학으로 이끌었다. 그 영향으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날 그 강연자처럼 학생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고 싶어서 그녀는 과학교사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다.
사이언스 페스타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을 때 과거의 그때가 생각났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수락했다. 강연도 그날 들었던 그 내용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그때 들었던 그 강연과 유사한 강연을 오늘 듣게 될 줄이야. 내용뿐 아니라 강연자의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것도 자신의 제자인 강우에게서. 그것은 큰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그 우연의 일치가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마치 그날의 감동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아 차도도는 한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느새 관중의 환호성이 잦아들고 강연을 마친 강우가 연단을 내려왔다.
차도도는 복잡한 관중의 틈을 뚫고 강우에게 달려갔다.
* * *
손차희는 청중석 중간쯤에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갑자기 강우가 강연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무척 걱정했다. 강우의 실력이야 잘 알지만 실제로 강연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것도 본인이 선택한 주제가 아닌 차도도가 일방적으로 내려준 주제였다. 제대로 강연이 가능할 리 없었다.
게다가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한 강우가 강연해본 경험이 있을까. 그렇기에 그녀는 강우가 어떻게든 수습하고 욕먹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강연이 진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강연에 몰입한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평소에도 그녀의 수업 태도는 엄청 좋았다. 하지만 그것이 수업에 몰입한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해하지 못해서 졸음이 쏟아지는 수업일지라도 남이 보기에 집중한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나름대로 자신 있는 그녀였으니까.
강우의 강연은 달랐다. 그녀에게는 낯선 분야인데도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구의 위도와 경도를 천문학적으로 어떻게 구하는지, 시계의 원리는 어떠한지. 평소 그녀가 접하던, 딱딱한 수식만이 존재하던 물리와는 달랐다.
“강우가…… 이렇게 강연을 잘했었나?”
그렇게 그녀는 강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강연이 끝날 때쯤 그녀는 과학자의 사명을 알게 됐다. 해리슨의 시계가 대영제국을 건설했듯이 그녀도 노력하면 전 세계로 웅비할 우리나라를 건설할 수 있지 않을까.
긴 역사를 보면 나라의 흥망 열쇠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좌우된다. 특히 근대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신무기를 개발한 나라가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했고 새로운 과학기술을 연구한 나라가 산업에서도 패권을 차지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강연이 끝났을 때 그녀는 이 나라의 과학을 이끄는 과학자가 된 자신을 떠올렸다. 적어도 지금은 과학자의 삶이 이 나라와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 생각했다.
과학고에 진학한 이유는 단순히 과학이 다른 과목보다 재미있어서였다. 그런데 강우의 강연을 듣고 나니 사명감이 생겼다.
그리고 강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됐다. 방금 강연을 마친 사람이 자신과 같은 학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단순히 공식을 몇 개 더 외우고 문제를 몇 개 더 푸는 그런 학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강연을 들어보니 그는 차원이 다른 위치에 있었다.
그녀가 감히 견줄 수 없는 천재가 강우였다.
“강우야! 대단해!”
손차희는 환호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연단에서 내려오는 강우를 맞이하러 갔다.
그녀의 앞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윤수아와 최대우였다. 그들도 강우의 강연에 감동하여 강우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 깜짝 놀라면서도 질 수 없었다. 손차희는 윤수아를 붙잡고 그 감동을 나눴다. 둘이서 함께 강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강연장을 메웠던 청중들이 빠져나가고 그 열기가 가라앉을 때쯤 강우는 강연 자료를 담은 노트북을 정리했다.
여전히 머릿속에서 울리는 청중의 환호성을 잠재우며 강우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행이야.”
어쨌든 강연을 무사히 마쳐 차도도나 페스타 주최 측에 폐를 끼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강연을 마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논문을 발표하는 딱딱한 발표장과 달리 이런 행사 강연장에서는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을 만날 수 있으니까.
감동을 되새기며 정리하고 있자니 가장 먼저 윤수아와 손차희가 그를 거들었다.
“잘하더라.”
“강우야, 강우야아! 대단했어!”
손차희와 윤수아가 엄지손가락을 쭉 내밀었다.
“내용이 어렵거나…… 어색하지 않았어?”
“아니, 무지무지 쉽고 재밌었어. 확실히 넌 강연 체질인 거 같더라.”
윤수아의 칭찬이 이어졌다.
하긴 그의 강연 이력이 절대 짧지 않다. 그렇기에 그 많은 청중 앞에서도 떨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은 많이 안다고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야.”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방금 선생님께 자료를 받지 않았어?”
윤수아와 같은 궁금증을 모두가 드러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우연히 어젯밤에 책에서 본 내용이라고? 벌써 몇 번째 이런 식의 답을 써먹었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았다. 간신히 생각해낸 답은…….
“아! 얼마 전에 강연회 자료를 준비하는 선생님을 도와드렸거든. 그때 선생님께 설명 들었던 거야.”
“아, 그렇구나.”
이해한다는 듯 윤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곤란한 상황을 피했다고 생각한 강우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윤수아와 손차희의 뒤에서 펑퍼짐한 최대우가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런데 최대우의 몸에 반쯤 가린 한 사람이 보였다. 차도도였다.
‘헉!’
괜히 찔리는 구석이 있어 움찔하는 순간 차도도가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다독였다.
“강우야, 수고했어. 너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방금 변명을 차도도는 못 들었겠지? 강우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말을 걸었다.
“괜찮았어요?”
“예상보다 훨씬. 예전에도 강연해봤었니?”
역시 차도도도 강우의 강연 기술이 보통이 아님을 눈치챘나 보다.
“에이, 제가 해봤을 리 있나요? 기껏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발표한 게 전부죠.”
강우는 너스레를 떨며 어색함을 뭉갰다.
“그렇구나.”
차도도는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강우는 노트북을 챙겨 윤수아에게 돌려줬다. 이것으로 완전히 마무리했다.
강연회장을 벗어나는 친구들을 따라 문을 나서고 있자니 차도도가 그의 팔을 잡았다.
“강우야, 시간 있지? 나랑 잠시 걸을래?”
“그럴까요?”
강연하느라 몸과 머리를 썼으니 이제는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차도도와 함께하는 산책이라면 나쁘지 않다.
* * *
강우의 강연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이 또 있었다.
바로 권유성이었다.
애초에 그는 강우를 좋게 보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엿보이는 불성실한 태도가 거슬렸고, 윤수아와 항상 붙어 다니는 장면이 속을 쓰리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 년 늦게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야 했다고 후회까지 했다.
몇 번 강우와 티격태격하면서 강우의 천재성을 눈치채긴 했다. 다른 학생과 달리 어딘지 모르지만 비범한 구석이 있었다. 특히 수학과 물리 분야에서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부터 달랐다.
그래서 경계했었다. 비록 그 경계가 그를 미워하는 감정에 한정되었지만.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강우가 강연하는 모습을 봤다. 고등학생이 서 있을 수 없는 자리에 녀석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강연은 충격이었다.
독특한 내용이어도 사전에 연구하고 조사하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청중을 앞에 두고 조금도 떨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전달하는 강연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게다가 청중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은 어떤가.
“후우, 완전 괴물이네.”
인정해야만 했다.
남들은 조기 진학한 그를 보고 괴물이자 천재라 하지만 진짜 천재는 따로 있었다. 그가 보기에 강우야말로 그가 따라잡을 수 없는 진정한 천재이자 괴물이었다. 천재가 널려 있다는 이 과학영재고에서도 강우 같은 녀석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질 수는 없어…….”
문득 과제연구로 내기를 걸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 1차 결과가 바로 이 페스타에서 드러난다. 2차 결과는 학교 과제연구 점수에서.
그는 부스에 걸린 양쪽의 전시물을 머릿속으로 비교해봤다. 아무래도 이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적어도 윤수아 앞에서는 이기고 싶은데. 천재라는 타이틀을 남에게 뺏기고 싶지 않은데……. 권유성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