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69화 (69/325)

제69화 수학 올림피아드 1차 (1)

본부 대표와 눈을 마주친 강우는 어색해서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아니겠지?’

대표가 상패를 들고 호명했다.

“강우! 고려 과학영재고 학생 강우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 쏠렸다.

“강우야, 너 부르는데?”

“나? 나를 왜?”

윤수아가 등을 미는 바람에 강우는 쫓기듯 앞으로 나갔다.

본부 대표가 인자한 얼굴로 설명했다.

“처음에 학생이 강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걱정했어요. 지금까지 사이언스 페스타 강연은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나 대학교수님이 주로 맡았었거든요. 학생이 강연한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주변 학생들의 반응을 쭉 살펴본 대표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기우였습니다. 이번에 단연 인기가 많았던 강연이 바로 강우 군의 시간이었어요. 전시회 후기에서 가장 뜻깊었던 강연으로 모두 강우 군의 강연을 언급했으니까요. 이는 주최 측에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성과였습니다. 그래서 특별상을 수여하기로 했습니다.”

강연이 끝났을 때 환호했던 청중의 반응을 되새겨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맞아요! 정말 감동 그 자체였어요!”

윤수아가 먼저 맞장구를 쳤다. 주변에 모인 학생 가운데 어제 강연을 들었던 학생들 역시 동의했다.

“재밌었어요.”

“대단히 유익했어요!”

강우는 특별상 상패를 받았다. 상패에 적인 강우라는 이름이 눈길을 끌었다. 오래전에는 저 이름 앞에 ‘손’이 적혀 있었었다.

“강우 군의 강연을 듣고 많은 학생이 과학도의 꿈을 품었을 겁니다. 이것이 국가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거예요. 그래서 감사의 뜻으로 상패를 마련했습니다.”

대표의 치사가 이어졌다.

강우는 꾸벅 인사했다. 예상치 못한 상에 기분이 흡족했다. 역시 손강우의 강연 실력은 강우가 되어서도 녹슬지 않았다.

“강우야, 한턱 내!”

최대우는 재빨리 먹을 것을 찾았다.

“어휴,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친구들의 환호성과 축하 속에 사이언스 페스타의 막이 내렸다.

* * *

중간고사 이후 정신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사이언스 페스타가 끝나고 강우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수업이 끝난 후 고곽천재는 세미나실에 모여 자습을 했다. 한동안 비틀거리던 손차희도 예전으로 돌아가서 자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에 과거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강우를 포함한 세 사람은 페스타 덕분에 과제연구를 모두 끝냈기에 홀가분하게 학교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다. 이제는 기말고사를 열심히 대비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우야! 서류 통과했어?”

“무슨 서류?”

뜬금없는 윤수아의 말뜻을 강우는 이해하지 못했다.

“KMO! 한국 수학 올림피아드!”

“아!”

중간고사 치기 직전이었던가? 그때 실랑이를 벌이다가 KMO 경시대회를 신청했던 기억이 났다.

대회 신청이라 하여 단순히 참가비만 내는 수준은 아니다. 고등부는 수학 공부와 관련된 자소서를 써내야 했으니까. 그때 낸 자소서로 서류 통과 면접을 본다. 물론 과학고에서 떨어지는 학생은 거의 없다.

“난 통과했다고 통지가 왔어. KMO 1차 시험을 치라던데?”

“나도.”

윤수아를 비롯하여 세 사람 모두가 서류를 통과했다고 했다.

정작 강우는 그런 이메일을 받은 기억이 없었다.

“어? 난 왜 기억이 없지?”

서류 면접에서부터 탈락했나? 인상을 확 구기며 강우는 이메일을 확인했다.

KMO에서 발송한 이메일이 휴지통에 들어가 있었다. 광고 메일로 착각해서 휴지통에 버린 모양이다.

“으이구! 누가 강우 아니랄까 봐…….”

“시험 일자가…….”

윤수아의 놀림을 무시하고 메일을 복원하여 내용을 확인하던 강우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다음 주 일요일이야. 기말고사 2주일 전. 모두 시험 치러 갈 거지?”

윤수아의 주장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강우는 금방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너희들 기말고사 공부는 언제 해?”

“아! KMO 1차 시험은 적당히 치면 돼. 과학고 학생이라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붙으니까. 만일 떨어지면 수학에 재능이 없는 거지.”

윤수아가 자신만만하게 설명했다. 물론 평소에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과학고 학생일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해가 되긴 했다. 시험을 적당히 친다는 말은 대충 준비한다는 뜻이고 기말고사 공부에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1차는 안 중요한가 보네.”

“그렇지. 1차 통과 후 여름학교, 2차 시험, 겨울학교 성적과 내년 봄 최종 시험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출전할 한국 대표를 뽑기 위해 모두 세 번 시험을 치른다. 1차 때는 많이 뽑기에 커트라인이 그리 높지 않다.

사실 강우는 이 시험이 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만 분위기에 휩쓸려서 신청해뒀을 뿐이다.

“그럼 나도 신경 끄고 기말고사 공부하면 되겠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강우를 윤수아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비웃었다.

“강우야, 내 생각에 너랑 기말고사 공부는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응? 뭔 말이야?”

“넌 수학 올림피아드 준비해야 해. 열심히 해서 천재임을 증명해야지.”

“나? 난 천재가 아니야.”

곧바로 손사래 치는 강우를 보며 윤수아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유성이랑 한판 붙기로 했잖아?”

“페스타에서 이겼으면 됐지.”

“올림피아드가 더 중요할걸?”

윤수아는 강우가 천재란 사실을 꼭 증명하고 싶었다. 사실 그녀와 최대우는 강우 때문에 심심풀이로 시험에 응시했다. 올림피아드 대표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강우와 손차희다.

물론 손차희의 실력으로 보면 1차 시험을 무난하게 붙을 것이다. 하지만 강우는…….

“나도 기말고사 공부해야 하는데? 1차야 무난하게 붙겠지?”

물론 강우는 기말고사에 열심히 매진할 생각이 없었지만 친구들이 1차 시험을 대충 본다고 하니 그도 그렇게 볼 생각이었다.

윤수아가 곧바로 손을 저었다.

“강우야, 그게 아니야. KMO 시험이 학교 교과 과정이랑 매우 다르거든. 시험이 대수, 정수, 조합, 기하에서 나와. 강우 네가 잘하는 미적분은 출제 안 되거나 되더라도 일부이거든?”

“어? 그, 그래?”

강우는 수학 전공이 아니기에 손강우 시절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한 수학은 대부분 미적분학이었다. 시험 범위를 듣는 순간 바로 당황했다.

“고교 과정과 연관되는 대수와 조합은 그럭저럭하겠지만 기하는 중학교 때 배운 게 전부이고 정수론은 학교 수학 과정에서 배운 적이 없으니 강우 너라 해도 쉽지 않을걸?”

윤수아의 자신만만한 의견에 강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정수론? 당연히 기억이 없다.

“그,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잖아?”

“무슨 섭섭한 소리를. 나랑 차희는 학원에서 다 배웠거든! 넌 학원 안 다녔다며?”

윤수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론은 다른 학생은 기말고사를 대비하더라도 강우는 올림피아드를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강우도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려는 윤수아의 목적을 눈치채긴 했다.

혼자 공부해야 한다니 뭔가 좀 억울하다.

“아냐, 나도 잘하거든!”

“그래? 그럼 테스트 한번 해볼래?”

윤수아가 문제집을 꺼냈다. 학원에서 받아온 올림피아드 대비용 모의고사 문제집이다.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은 강우를 향해 윤수아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자, 정수론 다섯 문제를 뽑아서 우리 넷이 모두 시험을 치는 거야. 가장 점수가 나쁜 사람이 편의점에 뛰어가서 빵 사 오기! 어때?”

“오 좋아!”

빵이란 말에 최대우가 바로 찬성했다.

안 배웠다고 해도 풀 수 있지 않을까? 강우도 전의를 불태웠다.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윤수아가 손차희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둘이서 문제집을 펼쳐 정수론 다섯 문제를 책상 위에 놓았다.

“자! 시간은 15분! 지금부터 각자 풀어서 누가 이기나 해봐!”

“당연히 내가 이기지!”

입학 초기부터 이런 내기에서 져본 적이 없는 강우였다. 특히 저번 중간고사가 직전에는 항상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해왔다. 그가 풀지 못하는 문제는 거의 없었으니까.

자신만만하게 문제를 살피던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젠장! 문제 뜻도 모르겠네.’

평소 그가 접하던 수학이 아니었다.

그의 내심을 눈치챘을까. 윤수아가 웃음을 터트리며 놀렸다.

“강우야, 빵점 맞을 것 같지? 빵 사 와라! 넌 공부 안 하면 1차에서도 떨어질걸?”

“아냐, 내가 풀고 만다! 편의점 갔다 오긴 싫어!”

문제를 펴놓고 강우는 머리를 쥐어짰다.

‘루카스 정리? 이게 대체 뭐야?’

강우는 연필을 돌리다가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살폈다. 손차희는 막힘없이 문제를 풀고 있었고 윤수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답을 쓰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나마 그가 믿고 있던 최대우도 문제를 뚫어지라 노려보더니 뭔가를 쓱쓱 적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난감하기도 오랜만이었다. 어쨌든 전혀 지식이 없는 그로서는 정수론 문제를 풀기 어려웠다.

“강우야, 풀었어?”

윤수아의 놀리는 목소리에 강우는 연필을 놓고 벌떡 일어났다.

“에라이! 내가 편의점 갔다온다.”

씩씩대면서 강우가 세미나실을 나갔다.

윤수아와 최대우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손차희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쟤를 이겨본 건…… 참 오랜만이네.”

* * *

그날부터 강우는 한국 수학 올림피아드 시험을 대비하여 공부했다.

교재는 손차희에게서 빌린 학원 문제집. 강우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교재다.

“이 책은 너무 단편적인데…….”

대부분 학원 교재는 문제 나열식이다. 교과서처럼 이론이 제대로 정리된 교재가 필요했다. 1차 시험 대비라 하지만 고등학교 교과 내용만으로는 올림피아드가 전혀 대비되지 않았다.

고민하던 강우는 정명욱 수학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수학 여러 분야의 전문 서적을 빌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강우는 세미나실에서 각 분야 전문 서적을 쌓아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강우야, 지금 제대로 읽고 있어?”

윤수아가 책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영어책이야, 수학책이야? 영어로 된 원서는 그녀에게 끔찍했다. 하물며 시골 출신 강우라면…….

정작 강우는 대수롭지 않았다. 손강우 시절 수많은 물리 원서를 봤었다. 적어도 물리학에서는 한글판보다 원서가 훨씬 이해하기 편했다. 그 기본기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었다.

수학이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다. 원서가 익숙해지자 강우는 놀랍도록 빨리 책의 내용을 이해했다. 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책을 휙휙 넘겼다.

윤수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수학책을, 그것도 원서로 된 수학책을 저렇게 넘기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이해하면서 저러고 있는 거라면, 저건 그냥 괴물이었다. 그녀는 강우가 든 책이 원서가 맞는지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다.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라.”

능수능란하게 받아치며 강우는 누구보다도 손차희의 눈치를 봤다. 그의 이런 공부 모습에 예전처럼 손차희가 동요하면 큰일이니까.

다행히 이제는 손차희도 익숙해졌나 보다. 어차피 1차 시험 통과를 걱정하지 않는 손차희는 경시대회 준비보다 기말고사를 대비한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달리 보자면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건 점검해봐야 해. 믿을 수가 없어.”

윤수아가 투덜대며 학원에서 친 모의고사 문제지를 꺼냈다.

“차희야! 넌 이 시험 몇 점 받았어?”

“40점.”

“난 25점 받았는데. 자, 강우는 몇 점이나 받을까?”

고등부 올림피아드 1차 시험 난이도에 맞춘 모의고사 문제지를 강우 앞에 펼쳤다.

강우는 당황하지 않고 문제지를 받았다.

다섯 문제 가운데 한 문제도 풀지 못해서 개쪽을 당한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관련 분야 참고도서를 열심히 공부한 지금은 어떨까?

“스무 문제, 3시간. 지금부터 할까?”

강우가 수락하기도 전에 윤수아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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