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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70화 (70/325)

제70화 수학 올림피아드 1차 (2)

1주일 전이었다면 이 문제지를 보는 순간 막막했을 것이다.

정수론 다섯 문제를 보았을 때 이게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기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문제를 보는 순간 참고도서에서 공부한 내용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부분을 공부했던가?’

물론 공부는 했다. 가장 기본 개념을 책에서 봤으니까.

다만 지금 강우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다. 강우는 지금 그 속담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체험했다. 기본 개념을 증명한 문제를 참고도서에서 봤는데 그 개념을 응용한 심화 문제를 주저하지 않고 풀 수 있었다.

과거 손강우 시절에도 그는 천재였다. 적어도 평범한 학생이 보기에는 그러했다. 무려 한국대에서 학부 과정부터 박사까지 쭉 공부한 그가 평범한 둔재일 수는 없었다.

그때도 그는 남들에게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이 천재라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 남들보다 똑똑하긴 했으나 탁월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노력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다른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학업에 집중했다. 성적은 그 결과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수학과 물리가 아닌 다른 과목을 공부하면서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끼긴 했다. 예전보다 이해력과 응용력이 탁월하게 좋아졌다.

고교 과정이, 그것도 1학년 첫 중간고사 범위는 그리 어렵지 않아서 확실하게 확인하기 어려웠다. 예전보다 공부가 더 잘된다고 짐작했고 천재에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수학 올림피아드를 공부하다 보니 달라진 점이 확실히 드러났다. 예전이라면 절대로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손강우에서 강우로 빙의하면서 천재성이 대폭 향상됐다. 기본 개념을 공부한 분야라면 탁월한 이해력, 응용력 때문에 고난도 문제도 가능해졌다.

모르는 문제가 풀리는 희열을 아는가? 머리를 굴리며 고심하다가 난제가 풀리는 그 희열은 다른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강우는 실시간으로 그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지금 수학 문제를 풀면서 강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대감에 설렜다.

이 천재성이라면 예전에 그가 매진했던 상온 핵융합에서 더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벽에 부딪혔던 난제들을 드디어 풀 수 있지 않을까.

강우는 필생의 숙제로 남은 핵융합 연구를 떠올리자 가슴이 뛰었다. 이 삶에서는 정말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 손강우의 업적을 답습하는 과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리라.

‘할 수 있다……!’

강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우야? 어려워?”

문제를 풀던 강우의 몸짓이 심상치 않자 윤수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응? 아, 아니.”

어렵긴! 너무 쉬워서 미칠 지경이다.

강우는 시계를 슬쩍 봤다. 시험 시간이 3시간이라는데 1시간을 조금 넘긴 지금 시점에서 벌써 풀 문제가…… 풀 문제가 남은 게 없다. 이렇게 쉬운 문제로 시험을 치르면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모독이다.

“어려워도 찬찬히 풀어. 차희도 40점 받았다잖아. 3문제 중 1문제 맞추면 잘한 거야.”

강우는 문제 난이도를 다시 쭉 살폈다.

‘차희는 역시 수학 천재는 아니었어.’

이런 수준의 문제에서 그 점수를 받는다면 앞날이 밝지 않았다. 올림피아드 문제는 막연히 공부만 한다고 점수가 올라가는 수준이 아니니까. 다만 손차희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라 본격적으로 고등부 올림피아드를 준비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더 나아질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놀랍게도 윤수아의 말을 손차희가 반박했다.

“뭔 소리야! 유성이는 그 문제로 80점 맞았거든.”

“유성이는 작년에 2차 시험까지 합격했잖아?”

“강우가 유성이를 넘으려면 그 정도 점수는 받아야 한다고!”

어째 손차희의 목소리가 살짝 날카롭다. 권유성보다 점수가 못한 자신을 질책하는 것인지 아니면 강우 때문인지 원인이 불분명하다.

“강우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어떻게 그런 점수를 받겠어?”

“또 모르지. 근데…… 수아야, 넌 강우만 나오면 어째 목소리가 조금 올라간다?”

손차희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윤수아를 쳐다봤다.

“에이, 난 강우가 유성이를 이겼으면 해서 그러는 거야.”

“유성이가 섭섭하겠다?”

“유성이가 이기면 족보가 꼬이니까. 내가 유성이한테 오빠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면…… 으으…….”

무슨 말인지 분간이 어려운 대화를 들으며 강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손차희가 40점인데 권유성은 80점이라고? 이미 작년에 2차 시험까지 합격한 수학 천재라고?

권유성의 잠재력은…… 물리는 확실하게 S급이었지만 수학은 A급이었다.

문득 수학 동아리에서 본 박일현이 떠올랐다. 수학 천재라고 주변에서 칭송하던 그 학생은 수학에서 S급이었다. 현재에서도 미래에서도 박일현이 수학에서만큼은 권유성을 압도한다는 뜻이었다.

박일현의 수학 실력이 궁금했으나 지금 당장에는 확인할 접점이 없다.

강우는 마지막 문제의 답을 쓴 후 허리를 세웠다.

“다했다.”

“정말? 이제 절반 지났는데?”

“모르는 건 찍었어.”

주관식 객관식이 절반씩이니 찍을 수도 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찍은 문제는 없었다.

“내가 채점해줄게.”

잽싸게 답지를 들고 간 윤수아가 정답을 펴놓고 채점을 시작했다.

점차 윤수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옆에서 손차희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그래? 채점하다 말고…….”

“트…… 틀린 게…….”

“너무 많아? 원래 올림피아드 문제는 다 그래.”

“응? 아니, 틀린 게 없어.”

윤수아뿐만 아니라 손차희도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쏠렸다.

정작 강우는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수아야, 시험 쳤더니 목이 마르다…… 콜라 한 캔 어떻게 안 될까?”

* * *

한국 올림피아드 1차 시험 고사장이 인근 학교로 정해졌다.

주말이라 한산해야 할 학교는 응시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시험에 응시하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따라온 부모들이 무척 많았다. 교문 앞은 때아닌 주차장이 되어 야단법석이었다.

기숙사를 출발한 강우는 최대우와 함께 걸어서 고사장에 도착했다.

“무슨 학생들이 이리 많아? 오늘 학교 가는 날인 줄.”

“다 중학생들이야. 중학생 때는 꿈에 부풀어서 경시대회에 많이 나가잖아?”

강우의 불평에 최대우가 설명을 덧붙였다.

교육열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이 나라에서는 자식이 어릴 때는 모두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릴 때 별별 사교육을 모두 시키다가 나이가 들수록 현실을 깨닫고 그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중학생 때는 학원의 부추김도 있어서 수학을 웬만큼 하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 경시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학원의 상술이고 실제로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배우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천재라는 소신을 가진 강우는 이렇게 학원에서 만들어진 천재들을 진정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고등학생은 별로 없네.”

중학생에 비하면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었다.

어쨌든 강우는 신이 났다. 보통 시험을 앞둔 학생은 긴장하기 마련인데 강우에게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어?”

“교문에서.”

주말이라 집으로 돌아간 윤수아와 손차희를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행히 네 사람은 같은 고사장을 지원했기에 같은 학교에서 시험을 쳤다.

씩씩하게 학교로 들어가는 학생과 이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학부모 얼굴이 서로 엉켰다. 저 가운데 1차 시험을 통과하는 학생이 대략 10%라고 들었다. 그 10%는 이 시험으로 자신감을 얻고 더욱 수학에 매진할 것이다. 중학생들이 경시대회에 참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탈락한 90%는?

물론 고등부는 다르다. 고등학생 경시대회는 학생부에 기재가 되지 않아서 대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올림피아드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일부 학생과 자신의 수학 실력을 검증할 목적이거나 정말 수학이 좋아서 응시하는 학생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고등부는 응시자가 확 줄어든다.

강우는 흥미로운 눈으로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인간 군상들을 관찰했다.

“강우야, 강우야아!”

멀리서 두 사람이 뛰어왔다. 윤수아와 손차희다.

“왔네. 둘 다.”

강우는 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거 먹어.”

윤수아가 오징어 다리를 그에게 건넸다. 최대우가 가져온 마른오징어가 아직도 남았나 보다.

“컨디션은 괜찮아?”

손차희의 질문에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징어 다리를 씹었다.

“난 컨디션 별로 신경 안 써. 넌?”

“나도. 이번 시험은 부담이 없거든.”

내신과 무관한 시험이기도 했고, 손차희는 합격을 자신하고 있었다. 그녀의 평소 실력이라면 고등부 1차 시험 통과는 어렵지 않다. 실제로 그녀 수준의 실력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난 통과하면 더 이상하겠지?”

윤수아의 너스레에 최대우도 맞장구를 쳤다.

교문 앞에서 모여 떠들고 있을 때 익숙한 인물이 등장했다.

고현성과 전상철이었다.

“어이 브라더! 너도 시험 치냐?”

“넌 여기 웬일이야?”

“으하하! 난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 따려고 왔지. 내가 보기에 넌 동메달도 힘들어. 아니, 국가대표에 뽑힐 수준이 아니야. 하하하!”

고현성이 열심히 강우를 놀렸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격려차 몇 번 쳐줬다. 이제는 이 녀석이 그를 비웃으려고 이러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 녀석은 그냥 성격 자체가 이런 거다.

“내기 안 하냐?”

“내가 1차 통과할 건 뻔한 이야기고…… 흠, 강우 넌 조금 불안해 보이긴 한 데…… 그러면 무승부 아니냐? 굳이 할 필요 없는 거지.”

“겁먹었나 보네.”

“겁은 무슨! 2차 때 승부를 가리자!”

고현성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고는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손차희는 이민찬과 인사하고 있었다. 이민찬은 평소처럼 오늘도 일회용 음료 컵을 들고 빨대로 쭉쭉 빨면서 나타났다.

“우리도 가자, 얼른 들어가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윤수아가 모두를 떠밀었다.

고등부 1차 시험은 가우스부와 오일러부로 나뉜다. 가우스부는 과학고 또는 과학영재고 재학생 대상이고 오일러부는 일반고 학생 대상이다.

강우를 비롯한 친구들은 당연히 가우스부였다.

시험장 배치표를 보니 강우는 윤수아와 같은 반이었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다.

손차희와 최대우를 보낸 강우는 윤수아와 함께 해당 교실로 들어갔다.

널찍하게 배치한 책상 위에 수험 번호가 붙어 있었다. 강우와 윤수아의 자리 배치는 가깝지 않았으나 같은 교실이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시험 시작이 10여 분 남았다.

강우는 두 손을 꽉 잡고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신청한 시험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의 천재성을 판가름해볼 수 있는 시험이기도 했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내신 성적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목표를 세운 그에게 수학 올림피아드 성적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이 시험은 그의 긴 목표를 향한 첫 발걸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국가대표까지는 간다!”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치르고 최종 시험마저 통과하면 국가대표 자격을 얻게 된다. 지금부터 그때까지는 무려 1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하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전의를 다진 강우는 윤수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윤수아의 안색이 이상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손에서 핸드폰이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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