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수학 올림피아드 1차 (3)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강우는 벌떡 일어나 윤수아에게 달려갔다.
“수아야?”
그를 돌아보는 윤수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무기력해 보였다.
“왜 그래?”
강우는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주며 표정을 읽었다.
“어, 엄마가…….”
힘없이 중얼거리던 윤수아가 벌떡 일어났다.
“어, 어디가?”
“……엄마가 병원에 있대. 병원에 가봐야 해.”
시험 시작까지 불과 5분도 안 남은 상황. 지금 나가면 시험을 포기해야 한다.
걸음을 내딛는 윤수아의 몸이 휘청거렸다.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방금 걸려온 전화 때문에 윤수아가 정신이 하나도 없고 힘들어 보였다.
“강우야, 너는 들어가야지……. 붙을 건데…….”
“시험보다 네가 우선이지.”
강우는 윤수아를 부축해서 시험장을 나왔다.
교문 앞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고 늦었다고 뛰어들어가는 학생도 다수였다.
학교 앞까지 택시를 타고 온 학생이 있어서 그들은 쉽게 택시를 잡았다.
“정말 시험 안 쳐도 돼?”
“시험이야 내년에 치면 되지.”
물론 내년에도 시험이 있다. 다만 이 시험은 국가대표를 뽑는 성격이라 2학년까지밖에 응시할 수 없다. 그래야 3학년인 다음 해 여름에 국제 올림피아드에 출전 가능하니까. 올해가 지나면 내년 한 번의 기회만 남는다.
어쩌면 중요한 기회가 한 번 날아가 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강우는 윤수아를 혼자 보낼 수 없었다.
“미안해, 강우야.”
“괜찮아.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
휴일이라 막히지 않은 택시는 빠르게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강우는 윤수아와 함께 응급실로 직행했다.
“어머니께서 평소에도 아프셨어?”
“심장이 조금 안 좋아서 계속 약을 드셨는데…….”
“다른 가족은?”
“한국에는 엄마랑 나랑 둘밖에 없어.”
새삼 윤수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집안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의 궁금증을 눈치챈 윤수아가 덧붙였다.
“아버진 미국에 계셔. 오빠도.”
따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으니 그녀 외에는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는 상황. 윤수아는 오늘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다행히 구급대에서 응급처치를 잘해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윤수아는 잠이 든 어머니의 침대 옆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평소 해맑았던 그녀이기에 괜히 가슴이 짠했다.
강우는 윤수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병실 밖으로 나왔다. 병실의 탁한 분위기가 답답해서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주변을 서성이던 강우는 핸드폰을 들었다. 그도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지금 이 시각에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고 있을 것이고.
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
* * *
연락을 받은 차도도가 병원으로 순식간에 달려왔다.
강우가 병원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다급하게 달려온 차도도가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수아네 어머니께서 입원하셨어요. 평소 심장이 안 좋으셨다고 하던데요.”
강우는 보고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윤수아의 가정환경을 전혀 알지 못한 강우와 달리 차도도는 학생부나 학생과의 면담을 통해 대충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던 듯했다.
“수아가 힘들겠구나.”
“지금 병실에서 간호하고 있어요.”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강우는 차도도를 데리고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이제는 마음이 안정된 듯 윤수아가 두 사람을 차분하게 맞이했다.
차도도가 윤수아를 달래는 동안 강우는 옆에서 조용히 대화를 들었다. 오늘 차도도는 평소와 달랐다. 수업시간에는 이지적이고 차가운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매우 따뜻한 가족 같았다.
차도도와 대화를 나눈 윤수아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런데 어떡하죠? 오늘 저 때문에 강우가 시험을 못 쳐서요.”
정작 강우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윤수아는 거듭 미안해했다.
차도도가 대신 윤수아를 위로했다.
“운명인가 봐. 올림피아드는 강우랑 인연이 없나 보다.”
“강우가 시험을 쳤으면 분명히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미 끝난 일을 뒤집을 수 없는 법. 강우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년에 다시 도전해보죠. 한 번에 붙어 볼게요.”
목표를 국내 대학이 아닌 외국 대학으로 정했기에 진학에 도움이 되는 국제 올림피아드 수상은 꼭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그래, 나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줄게.”
차도도의 응원이 강우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윤수아가 한결 안정된 듯하여 강우는 작별을 고하고 병실을 나섰다.
“선생님께선 집으로 들어가실 거죠?”
“넌 기숙사로 갈 거야?”
“시험장에 차희랑 대우가 있으니까 들렀다가 같이 가려고요.”
차도도가 고민 없이 강우의 팔을 잡았다.
“그럼 같이 가자. 나도 애들이 시험 잘 봤는지 궁금하네.”
함께 간다니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다. 강우는 크게 환영하면서 택시를 잡았다.
* * *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의 표정이 다양했다. 어떤 학생은 울상이었고 어떤 학생은 자신만만했다. 그동안 노력했을 학생들을 강우는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무리 지어 나오는 학생 중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어? 강우? 시험 잘 쳤어?”
권유성이 강우를 발견하고 으스대며 물었다.
“아니. 넌?”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강우는 단순히 고개를 저었다.
“나? 당연히 잘 쳤지! 그런데 그거 아냐? 넌 1차 시험이었지만 난 최종 시험이야. 이 시험 성적이 좋으면 바로 국가대표라고!”
대충 올림피아드 선발 과정을 들었기에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했다.
작년에 국가대표 문턱까지 갔었던 권유성이니까 올해는 1차 시험을 면제받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권유성은 오늘 급이 다른 최종 시험을 쳤다고 자랑했다.
“그렇구나. 그래서 시험은 잘 쳤어?”
“최종이 1차랑 같은 줄 알아? 허벌나게 어렵다고! 난 1차는 발로 풀어서 다 맞췄거든?”
“그래, 꼭 국가대표가 되길 바랄게.”
“말하면 잔소리지.”
강우의 힘없는 대답에 점수를 짐작한다는 듯 권유성이 피식 웃고는 저쪽으로 사라졌다.
허세가 대단한 녀석이다. 언제쯤 저 유치한 티를 벗을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걸까. 차도도가 실소를 머금은 채로 말했다.
“쟤는 권유성이지? 그런데 어째…… 너에게 감정이 있어 보인다?”
“아, 그게요. 내가 형이라 부르라고 했더니 심술이 나서 그래요.”
“하하, 유성이가 조금 어린 면이 있어. 지기 싫어하고.”
차도도도 작년에 권유성을 가르쳤었기에 녀석의 유별난 성격을 알았다.
강우는 권유성과 과제연구를 두고 내기를 벌인 일을 털어놓았다.
“유성이도 만만찮을 텐데…… 그래도 페스타에서 네가 이겼으니 거의 끝난 거나 마찬가지겠네.”
“학교 과제평가가 남았어요.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죠.”
“그래도 페스타 실적을 무시하긴 어렵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손차희와 최대우가 시험을 마치고 나왔다.
두 사람은 차도도를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했다.
“시험 어떻게 봤어?”
“그럭저럭 봤어요. 1차는 통과할 것 같아요.”
“엄청 어려웠는데요? 무슨 시험이 이 모양인지…….”
손차희와 달리 최대우는 불만이 많은 모습이다.
푼 문제가 거의 없다는 최대우의 소감으로 미루어 보아 1차 시험 통과가 어려울 듯했다.
“수아는 아직 안 나왔어요?”
열심히 시험 감평을 주절대던 손차희가 윤수아를 떠올렸다.
강우는 고사장에 들어가자마자 벌어졌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아!”
윤수아를 안타까워하던 손차희가 일순간 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강우야 너도 시험 안 쳤어?”
“그렇게 됐어.”
정작 당사자인 강우보다 손차희가 더 안타까워했다.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내년에 다시 쳐야지.”
“아깝다. 대표가 날아갔네.”
두 사람이 강우를 위로하는 사이 차도도가 분위기를 이끌었다.
“시험 치느라 배고프겠다. 선생님이 밥 사줄게. 어때?”
“우와! 선생님 최고!”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아하는 최대우는 엄지를 척 올려 환영했다.
“맛있는 거 사주세요.”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주변 식당을 둘러봤다.
“그래, 강우야, 오늘 고생했으니까…… 뭐 먹을래?”
차도도의 물음에 강우는 생각 없이 대답했다.
“콩나물국밥!”
“너 혼자 따로 먹어라.”
손차희의 핀찬에 강우는 씩씩 화를 냈다. 떡볶이보다는 낫지 않나? 그런데 차도도의 표정도 조금 이상하다. 물주의 의사를 사전에 파악했어야 하는 건데.
차도도가 옥신각신하는 그들을 돈가스 전문점으로 데려갔다.
* * *
“선생님, 전 학원 그만둘 거예요.”
“왜?”
“중간고사 치고 내내 생각해봤는데 학원이 별로 도움 되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동안 수학 경시 때문에 바로 그만둘 수 없었는데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됐어요.”
“학원이 별로야?”
손차희는 한참 고민하여 조리 있게 의사를 밝혔다.
강우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지켜봤다.
“중학교 때는 선행을 나가니까…… 즉 모르는 것을 배우니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면 전 미리 배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고등학교 과정을 사실상 끝내서 계속 반복 학습이잖아요? 반복 학습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제는 학원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으니까요.”
손차희는 부지런한 학생이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 그런 그녀이기에 굳이 학원에서 구속하여 공부시킬 필요가 없다.
“그래도 모르면 물을 곳이 있어야 하잖아?”
“아뇨, 질문이야 선생님들도 있고…… 강우한테 하면 돼요.”
손차희가 강우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 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우는 화들짝 놀랐다.
“나?”
“웬만한 건 강우가 다 가르쳐줘요.”
과학고는 다른 학교에 비해 질문할 분위기가 조성되어있고 선생님들도 질문을 잘 받아주는 편이다. 다만 학생들이 자존심이 강하여 잘 묻지 않아서 문제지.
그런데 고곽천재팀은 다소 특이했다. 강우 덕분에 그들은 자유로운 토론과 질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제는 손차희도 굳이 자신과 강우를 비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는 강우가 더 잘 알고 어떤 분야는 자신이 더 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손차희는 적어도 수학과 물리 분야에서 강우가 학원 선생님 이상이라고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요즘은 학원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손차희의 얼굴에 어린 자신감을 확인한 차도도가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학원에 다닐 이유가 없지. 다만……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영향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지난 중간고사보다야 잘 나올 거 같은데요.”
“차희야, 네 실력이라면 그보다 훨씬 잘 쳐야 해.”
“자신 있어요.”
손차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우는 손차희가 중간고사 때 겪었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때로는 무모할지라도 자신감을 가져야 할 때가 있다. 지금 손차희는 무모함이 아니라 확실한 자신감을 보인다. 이제는 강우에게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페이스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강우도 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