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72화 (72/325)

제72화 수학 올림피아드 1차 (4)

차도도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나도 학원 교육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 꼭 학원에 다녀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차희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스스로 공부해 보렴. 사실 과학고 시험 출제 경향과 난이도를 고려하면 어쩌면 학원은 무의미할 수 있어. 반복 연습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까.”

강우도 동의했다. 천재에게는 천재만의 영역이 있다. 과학고는 천재들의 역량을 키워야 하고 학교 측에서도 부족하나마 이를 위해 애쓰고 있다.

“대신에……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해. 이번에는 잘할 수 있지?”

“당연하죠. 다시 제 자리를 찾을 거예요.”

손차희가 의욕을 드러냈다.

“네 자리가 어딘데?”

“이번 기말고사에서는 반드시 이민찬을 이기겠습니다.”

특정 학생을 앞지르겠다는 욕심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목표이긴 하다. 다만 교육적으로는 바람직한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차도도는 지난 중간고사를 망친 손차희에게 이보다 더 명확한 결심이 없다고 인정했다.

“이민찬은 이번에도 잘할 것 같지? 꾸준하니까.”

“알아요. 꾸준함이라면 원래 저였거든요. 어쨌든 기말고사에서 이민찬을 이겨보겠습니다.”

“그래, 나도 응원할게. 네가 목표를 달성하면…… 흠, 중간고사 때 강우에게는 데이트를 해줬는데…… 여자끼리 데이트하는 건 조금 이상하고…….”

무심코 중얼거리는 차도도의 말에 손차희와 최대우가 강우를 노려봤다.

“뭐야? 쌤이랑 데이트하려고 중간고사 일등한 거였어?”

“으으, 쌤! 저도 어떻게 안 될까요?”

강우는 도끼눈을 뜬 손차희의 시선을 피하며 손을 저었다. 딱히 데이트 때문에 열심히 공부한 건 아닌데? 손차희의 시선에서 단단한 오해가 느껴졌다. 물론 오해한다고 딱히 문제 될 일은 없었지만.

그런 것 아니라며 손을 젓던 차도도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손차희에게 제안했다.

“차희야, 너도 소원 있으면 말해봐. 네가 이민찬 이기면 들어줄게.”

“흐으, 데이트…….”

“아, 그게 아니라니까. 그럼 시험 잘 치면 맛있는 거 사줄게. 어때?”

차도도의 제안에 강우가 바로 딴지를 걸었다.

“얘는 맛난 거라곤 떡볶이밖에 없어요.”

“내가 언제!”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말린 차도도가 다른 제안을 꺼냈다.

“좋아, 그럼 차희가 시험 잘 치면 우리 집에 초대할게. 어때?”

“그건 좋아요!”

신이 난 손차희가 바로 찬성했다.

옆에서 최대우가 볼멘소리로 구시렁거렸다.

“선생님, 저는 데이트가 더 좋은데요?”

“데이트? 그래서 넌 목표가 어떻게 되는데?”

“으…… 이번에는 중간을 꼭 넘어볼게요.”

“그래, 중간 넘으면 내가 데이트해줄게.”

최대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쩐지 차도도를 뺏긴 느낌이라 강우는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찾아올 방법은 많다. 그가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즐거워하는 차도도와 최대우, 손차희를 번갈아 보고 있자니 다가올 기말고사가 기다려졌다.

* * *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 강우는 노트북을 켰다.

그는 재빠르게 작업을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자료 분류를 끝냈다. 이제 그의 노트북에는 손강우가 연구했던 모든 연구 자료가 담겼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확보했다. 지금 바로 연구를 시작해도 문제없을 정도였다. 이 자료는 과거 손강우의 한설대학교 계정과 연구실 피씨에서 가져왔다.

당시 상온 핵융합 연구는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미국 국방부를 비롯한 군수 산업체와 구체적인 연구 방향 및 지원을 논의하고 있었다. 손강우가 죽으면서 그 계획은 모두 무산되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과학기술 연구는 자본과 시간의 싸움이다. 그가 연구에서 손을 뗀 지 벌써 몇 달이 흘렀다. 아직은 이 분야에서 그를 능가할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여유가 있다지만 쉬는 기간이 일 년 이상 길어진다면 자칫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렇기에 강우는 학술 논문부터 검색했다. 관련 분야의 최근 연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그가 학교에 있을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일이었다. 첨단 학술연구 논문을 서비스하는 플랫폼사이트는 유료다. 일반 대학교에서는 대학교 자체에서 여러 플랫폼과 계약을 맺어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한다. 적어도 학교 IP라면 논문을 찾고 다운받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과학고의 환경은 달랐다. 과학고도 일부 플랫폼과 계약되어 있다지만 매우 한정적이었고. 강우가 원하는 논문을 확인하려니 절차도 복잡하고 가격도 만만찮았다. 그런 논문이 한두 편이 아니기에 강우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인데…….”

이 문제는 그가 대학교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힘들었다. 한국대학교에서 친했던 후배를 통해 논문 자료를 받는 방법이 떠올랐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리학에 관심 있는 과학고 학생? 그것도 한두 편이지 그런 정도로는 앞으로 필요한 자료를 해결할 수 없었다.

대학교를 벗어나니 골치 아픈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 강우는 노트북을 덮었다. 어쨌든 기말고사가 끝난 후부터는 과거의 연구를 재개할 생각이다.

“하아!”

옆에서 긴 한숨이 들렸다.

힐끔 눈치를 보니 최대우가 노트북을 보면서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대우야, 왜 그래?”

“문제가 어려워서.”

공부하다 보면 그럴 때도 있으니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 강우는 최대우의 노트북을 들여다봤다.

익숙한 화면이다.

물리 문제풀이 센터. 최대우의 블로그다.

최근 들어 강우는 사이언스 페스타와 수학 경시에 신경을 쏟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뭔데?”

“어떤 사람이 질문을 올렸는데…… 해결이 만만찮아. 내용도 모르겠고.”

강우는 그동안 올라왔던 방문자들의 질문을 쭉 살폈다. 꽤 많은 질문을 최대우가 바로바로 답해주고 있었다. 가끔 손차희와 윤수아가 대신 답한 내용도 눈에 들어왔다. 정작 자신은 도와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그동안 많이 했네?”

“이거 한다고 죽는 줄 알았어. 난 수학 경시는 거의 포기 상태라 여기에 매달렸지.”

의도한 대로였다. 최대우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더욱 폭넓은 문제를 다루었을 것이다. 아마도 물리학에 접근하는 시각도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예상됐다.

“고생했어. 그런데 어떤 문제가 어려운데?”

이제 최대우를 괴롭힐 고교 수준의 문제는 없다. 그런데 저리 고민한다면…….

최대우가 노트북 화면을 그에게 내밀었다.

강우의 눈썹이 확 일그러졌다.

양자역학 문제. 고등학교에서 주로 다루는 고전 물리가 아닌 현대 물리 쪽이다. 풀려면 상당한 수학적 배경이 필요한.

“강우, 너도 어렵지? 나도 어지간한 물리 문제를 다루어보긴 했는데…… 이런 문제는…….”

“이거 풀려면 고유벡터의 직교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해. 즉 선형대수를 마스터해야 풀 수 있는 문제야.”

강우의 대답에 최대우가 눈을 껌벅였다.

선형대수. 고등학교 수학을 벗어난 내용이지만 최대우도 들어본 적이 있다. 현대 물리나 통계 및 열역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필요한 기본 수학이다. 물론 최대우도 행렬을 비롯한 기본적인 내용을 어쩌다 보니 공부하긴 했다. 하지만 수박 겉핥기였다.

강우는 문제를 찬찬히 읽었다.

“이 질문은 다분히 의도적인데. 고등학생 수준에서 질문할 문제가 아니지. 물론 우리가 그동안 대학생 리포트 문제도 일부 다루긴 했지만 이건 완전히 세부 전공으로 넘어간 문제라서…….”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대답을 올리면 된다. 그런데 어쩐지 상대가 그 점을 노린 기분이다.

“어떡하지? 그냥 무시할까?”

사태를 파악한 최대우는 답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었지만 강우는 달랐다. 질문을 보면 질문자의 수준이 보인다. 이 질문자는 적어도 물리를 전공한 대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이라면 물리에 대단한 조예를 가진 녀석이다. 질 수 없다.

“내가 풀게.”

“이런 문제도 풀 줄 알아?”

최대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물론 꽤 까다로운 문제이긴 하지만 강우 정도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한국대 대학원을 다녔다고 할 수 없고, 물리 교수를 할 수도 없었다.

“물론 여기저기 참고하면.”

강우는 의심을 피하려고 적당히 둘러댔다. 마침 최대우의 책상에 일반 대학 물리 교재가 보였다.

강우는 그 책을 펼치며 말했다.

“내가 오늘 중으로 답을 줄 테니까 넌 다른 문제 답변이나 써.”

블로그 운영자로서 답을 달지 못해 찜찜했던 최대우는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서던 강우는 식당 한쪽 구석에서 학생들이 모여 웅성대는 장면을 목격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려는 그를 윤수아가 붙잡았다.

“구경해보자, 응?”

강우는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틀었고 자연스럽게 손차희와 최대우도 두 사람을 따라왔다.

학생들이 둘러싸고 웅성대는 탁자에서 눈에 익은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민찬과 권유성이다. 이 두 사람은 꽤 유명인사였기에 다른 학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심지어 지나가던 몇몇 선생님마저 무슨 일인지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2차 시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고!”

“1차보다 어렵지만 어차피 마찬가지야. 어렵게 느낀 건 네가 못해서겠지. 수학에 재능이 있으면 2차나 최종도 쉬웠어. 일현 선배는 쉽게 풀었다더라.”

“넌 못 푼다고!”

“내가 너냐? 못 풀게.”

권유성이 씩씩대며 화를 내고 있었고 이민찬은 평소처럼 커피 컵에 꽂은 빨대를 쪽쪽 빨며 상대를 놀리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이번에 친 KMO 수학 올림피아드 이야기인 듯했다. 그때 권유성은 최종 시험을 쳤고 이민찬은 1차 시험을 쳤다. 권유성이 최종 시험이 훨씬 어렵다고 으스댄 것이 싸움의 발단이었다.

이민찬, 권유성, 손차희, 윤수아는 모두 같은 학원 출신이고 중학교 시절부터 다년간 서로 알고 지낸 사이다. 그렇기에 이민찬과 권유성은 학원 시절부터 본인이 더 천재라고 치열하게 다투던 사이이기도 했다.

“그럼 이거 풀어봐!”

화가 난 권유성이 이민찬 앞에 문제가 적인 종이를 툭 밀었다. 그 종이엔 이번 2차 시험에서 비교적 어려웠던 문제 하나가 적혀 있었다.

당연히 보자마자 풀 리가 없다. 하지만 이민찬도 지기 싫었기에 문제지를 가져와서 열심히 끙끙대며 풀기 시작했다.

둘러싼 학생들은 이민찬과 권유성을 제각각 응원했다. 2학년은 권유성을, 1학년은 이민찬을 주로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고곽천재도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런 식의 수학 문제 다툼은 일반고에서는 볼 수 없는 과학고만의 진풍경이다.

“강우야, 네가 보긴 어때?”

문제를 흘낏 살핀 손차희가 강우의 의견을 물었다. 그녀도 이민찬과 권유성의 다툼이라면 자기 일처럼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두 사람 모두 그녀의 잠재적인 경쟁자이니까.

“흠, 별것 아니긴 한데…… 유성이가 이기겠네.”

그 말은 이민찬이 풀지 못한다는 추정이다.

이민찬의 눈썹이 확 올라갔다. 강우를 노려본 이민찬의 시선이 손차희를 향했다.

“차희! 너도 한번 도전해보지?”

자신과 권유성의 싸움에 손차희까지 끼워 넣겠다는 심산이다. 자신이 못 풀었을 때 손차희도 못 풀면 한결 민망함이 덜어지니까.

그런 계책에 걸려들 손차희가 아니었다. 강우의 대답으로 유추해보면 이민찬이 풀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대신에 그녀는 강우를 끌어들였다.

“강우야. 넌 쉽게 풀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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