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74화 (74/325)

제74화 물리 수행평가 (1)

- 신새벽 쌤 : 강우! 요즘 왜 공부한 것 보고 안 해?

지난 중간고사 이후로 차도도와 신새벽은 여전히 강우가 매일 보고하기를 바랐다. 페스타 때는 바쁘다고 생략했고 KMO 시험 때도 며칠 빼먹긴 했었다.

이제 기말고사 시즌이 되자 또 난리였다.

강우는 조원들에게 톡을 보여주며 불평을 터트렸다.

“강우는 좋겠네. 매일 선톡 기다리는 사람이 둘이나 있고.”

윤수아가 비웃음을 날렸고 손차희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최대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난 왜 계속 톡 보내란 소리가 없지?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넌 신 선생님이 포기했거든.”

윤수아가 명확한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진정한 의미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강우는 재빨리 책상 위에 펴둔 화학 교과서를 찍어 톡을 보냈다.

- 강우 : 지금 화학 공부 중.

- 신새벽 쌤 : 자기 전까지 공부한 부분을 마저 적어서 보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톡을 바라보는 강우에게 모두가 심심한 조의를 표했다.

“안 보내면 되지 않아?”

“안 보내면 다음 날 죽지.”

“어떻게? 패는 건 아닐 테고.”

“상담실 불려가서 말로 죽여. 끔찍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윤수아와 손차희는 바로 이해했지만, 최대우는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다.

강우는 재빨리 화학책을 치우고 물리책을 꺼냈다.

“그래도 담임이 우선이지. 그리고 공부하다가 모르면 마음껏 물어봐. 아는 범위에서라면 수학과 물리만큼은 확실하게 설명해줄게. 어차피 난 성적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통 큰 강우의 장담을 모두가 반겼다.

즉시 최대우에게서 질문이 날아왔다.

“강우야, 이것 풀어봐.”

대충 종이에 끄적인 문제였다. 문제를 보는 순간 강우는 안면을 찌푸렸다.

“이거 시험 범위 아니잖아? 아니, 고등학교 과정이 아닌데? 어디에서 났어?”

“그때 블로그에 이상한 문제를 질문했던 사람, 그 사람이 답변 고맙다며 또 물어왔어.”

강우는 재빨리 블로그를 열고 답변과 질문을 살폈다.

역시 그의 짐작이 맞았다. 상대는 열 번 생각해도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만일 고등학생이라면 진정한 물리 천재일 것이다. 게다가 지난번 질문과 마찬가지로 이번 질문도 다분히 블로그 운영자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제로 보였다.

“다른 건 다 답했어?”

“당연히 했지. 덕분에 내 물리 실력이 엄청 좋아진 것 같아.”

단원별로 대표적인 물리 문제를 소개하고 표준 해답을 만들어 올리는 작업은 손차희가 대부분 했고 방문객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최대우가 담당했다.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중학교 문제나 고등학교 과정이어도 너무 쉬운 질문도 있었으나 때로는 핵심을 찌르는 문제가 있어서 최대우는 물리 공부의 빈 구멍을 메울 수 있었다.

강우는 블로그를 개설한 일차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그 질문은 내가 처리할게.”

이번 질문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물리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

강우는 찬찬히 문제를 읽고 난 후 답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에서 손차희를 비롯한 조원들은 강우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천재가 아니라면 저런 문제를 보자마자 바로 해결할 수 없으니까.

강우가 있기에 고곽천재가 더욱 빛이 났다.

* * *

물리 수업시간에 들어온 차도도는 학생들을 쭉 둘러봤다.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다. 그녀가 기대하던 분위기다.

“자, 예고한 대로 오늘은 수행평가 시간이에요. 수행평가는 조별 대항전으로 실시하고 조원들은 같은 점수를 받게 됩니다.”

학생들은 집중해서 차도도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내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평가이기에 조금도 흐트러질 수 없었다.

모두가 잘 치르겠다는 의욕에 불탔다.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강우! 넌 왜 맨 앞에서 졸고 있어?”

조별로 앉았기에 가장 앞 테이블에 강우네 조가 앉아 있다. 열심히 듣는 손차희와 윤수아는 평소와 마찬가지고 오늘은 최대우마저 집중하고 있건만 강우는 뒤에 앉았을 때와 차이가 없다.

그녀가 경고했음에도 강우는 잠을 깰 줄 모른다.

그녀의 눈썹이 다시 마녀처럼 올라갔을 때 손차희가 강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으악!”

옆으로 휘청한 강우가 놀라 잠을 깨면서 소리를 질렀다.

“푸하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긴장했던 분위기를 일거에 깼다.

“이 녀석은 시험을 쳐도 긴장감이 하나도 없어! 그러다가 수행 빵점 맞으면 어쩔 거야?”

“설마 선생님께서 저한테 빵점을 주실까요?”

강우가 뚱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항의했다.

“네 녀석이 어디가 예쁘다고!”

“이만하면 꽃미남이죠.”

“어휴, 말을 말지.”

학생들의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차도도는 설명을 계속했다.

“문항 수는 모두 10문제. 각 조에서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문제를 풀어요. 당연히 같은 문제고요. 문제를 풀면 10점, 절반 풀면 5점, 못 풀면 0점이에요. 단 같은 학생이 연속으로 문제를 풀 수 없어요. 또, 최소한 모두가 한 문제 이상 풀어야 해요. 알겠죠?”

한 사람이 계속 풀 수 없기에 순서를 잘 배치하여 어려운 문제가 나올 타이밍에 조원 가운데 가장 잘하는 사람이 나가서 풀어야 한다.

조별로 작전을 짜느라 웅성댔다.

“자, 준비됐으면 시작합니다. 조별로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요.”

차도도의 외침에 4개 조에서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왔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가장 유리한 조는 강우가 속한 손차희네 조와 전상철네 조였다. 이 두 조에 잘하는 학생이 많고 평균 성적도 가장 좋다.

손차희네 조에서는 최대우가, 전상철네 조는 오동섭이 나왔다. 두 사람 모두 그 조에서 가장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이다. 다른 두 조에서 출전한 선수도 비슷했다.

‘흠, 첫 문제는 쉽다고 생각한 거지?’

실제로 첫 문제를 쉽게 냈다. 일단 이 수행평가 룰에 학생들이 익숙해지기를 바라서다.

차도도는 교실 앞 티비 모니터에 문제를 띄웠다.

가장 기본적인 역학 문제. 문제를 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칠판에 풀이과정을 적기 시작했다.

“자! 다 풀었어요?”

차도도는 칠판에 적힌 답을 쭉 살폈다. 풀이과정과 답이 대동소이하다.

“자, 잘 풀었어요. 모두 10점 드릴게요. 다음 문제 풀 사람 앞으로.”

한 사람이 계속 풀 수 없기에 학생이 교체됐다. 윤수아와 조영제를 비롯한 네 학생이 나왔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차도도는 다음 문제를 모니터에 띄웠다.

“어? 어렵다…….”

첫 문제는 점수를 주는 문제였고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당황하는 학생들의 표정에 차도도는 미소를 지었다. 시험이란 변별력이 있어야 하니까. 물론 과학고 수행평가 문제는 단순하게 변별력이란 말로 극악의 난이도를 설명할 수 없지만.

첫 문제처럼 금방 푸는 학생들은 없었다.

가장 먼저 문제를 푼 학생은 조영제. 그다음이 윤수아였다. 그리고 다른 두 학생도 문제를 풀고 뒤로 물러났다.

계산이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일까. 놀랍게도 마지막 해답이 다 달랐다.

“으으.”

칠판을 보던 손차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윤수아의 풀이과정에서 계산오류를 발견한 탓이다.

“한 조는 맞고 남은 세 조는 틀렸어요. 하지만 중간까진 맞았으니까 5점 드리죠.”

손차희네 조는 합계 15점이 됐고 전상철네 조는 20점이 됐다. 양쪽 조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 다음 학생.”

이번에는 손차희가 출전했다.

이런 식으로 조별 대항전을 해보면 각 조의 에이스는 가장 나중에 출전한다. 지금 손차희가 나왔다는 것은 마지막 남은 강우가 에이스란 뜻이다. 지난 중간고사 결과로 따진다면 이상하지 않다.

전상철네 조에서는 고현성이 출전했다.

다시 문제가 제시되고 학생들이 풀기 시작했다. 난이도는 앞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두 조가 풀었고 두 조는 절반만 풀었다. 손차희와 고현성은 사이좋게 10점씩을 가져갔다.

“그다음!”

차도도의 외침에 새로운 학생들이 앞으로 나갔다. 다른 조는 마지막 남은 학생이 나갔건만 놀랍게도 강우만은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최대우가 등장했다.

이제 반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학생은 오직 강우뿐이었다.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후반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 집중하는 작전도 나쁘지 않다.

최대우는 문제를 풀었고 다른 조도 한 조를 제외하고는 답이 같았다. 가장 앞선 조는 40점의 전상철네 조이고 손차희네 조는 한발 뒤진 35점이었다.

“연습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어려워요.”

경고한 차도도는 다음 학생을 불렀다.

윤수아와 고현성이 등장했다.

문제가 떴고 학생들은 열심히 풀었다.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푼 학생은 없었다. 한 조는 손도 대지 못했고 세 조는 풀려고 노력했으나 답을 끌어내진 못했다.

“세 조는 5점씩 한 조는 0점이에요. 자, 다음 문제.”

이번에도 강우는 나오지 않았다.

차도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우의 작전이 뭘까? 언젠가는 한 번 나와야 한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가장 잘하는 학생이 최대한 자주 출전하는 게 유리하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뒤로 갈수록 문제는 어려워진다. 차도도는 가장 어려운 두 문제를 끝에 배치했다. 작전이 필요한 이유는 가장 잘하는 학생이 마지막 두 문제를 연속으로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손차희를 믿는 걸까?’

손차희가 잘하기는 하지만 지난 중간고사 성적을 보면 다소 불안하다. 게다가 원래 손차희는 물리를 썩 잘하는 타입이 아니다.

차도도는 슬쩍 강우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은 여유만만한 표정이다.

그렇게 일곱 문제가 지나갔다.

손차희네 조는 55점이고 전상철네 조는 65점이었다. 다른 두 조는 이보다 점수가 낮았다.

“자, 다음 선수!”

여덟 번째 문제에 다시 손차희와 전상철이 나왔다.

전상철네 조는 이해할 수 있다. 에이스인 전상철이 여덟 번째 문제와 마지막 열 번째 문제를 전담하겠다는 뜻이다. 강우가 한번은 나와야 하니까 손차희, 강우, 손차희 순인가? 그보다 강우, 손차희, 강우가 더 낫지 않나?

차도도가 생각한 작전과 달랐다. 지금까지 강우가 출전하지 않은 점에서 이 수행평가에 소극적으로 임하겠다는 강우의 의지가 보였다. 물론 잘하는 학생이 홀로 독주하기보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지만…….

여덟 번째 문제가 어려웠던 탓일까. 제대로 푼 학생이 없었다.

“5점이라도 주고 싶었는데 문제를 이해한 학생이 없네요.”

차도도의 선언에 실망한 학생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벌써 이렇게 어려우면 남은 두 문제는 극악이잖아요!”

“쉽게 내요! 쉽게!”

“아, 물리 싫어!”

학생들이 투덜댔다.

차도도도 예상과 다른 결과에 말문이 막혔다. 여덟 번째 문제가 어렵긴 했다. 하지만 그녀 생각에는 남은 두 문제보다 분명히 쉬웠다. 벌써 학생들이 헤매고 있으니 남은 두 문제의 결과는 어떠려나.

“다음 선수 나오세요.”

이번에 강우가 나왔다. 강우가 그녀에게 씨익 미소를 보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차도도는 눈을 부릅뜨고 강우를 한 차례 쏘아 본 후 모니터에 문제를 띄웠다.

“자, 똑바로 풀어요.”

강우가 물리를 잘한다지만 과연 이 문제를 풀까? 차도도는 내심 기대했다. 앞 문제처럼 손대는 학생이 없는 것보다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푸는 게 낫다.

정작 강우는 문제를 풀지 않고 마카를 든 채 칠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나머지 셋도 다르지 않다. 다만 전상철네 조의 고현성이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차도도가 보기에는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풀고 있으니 다행이다.

“다 풀었나요?”

“아뇨.”

강우가 고개를 젓고 차도도를 유심히 쳐다봤다.

차도도가 눈을 찡그리며 조금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

“넌 왜 안 풀어? 시간 다 됐어.”

“문제가 조금 이상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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