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75화 (75/325)

제75화 물리 수행평가 (2)

차도도가 안면을 찌푸리며 반대로 물었다.

“뭐가 이상한데?”

다른 사람도 아닌 강우가 의문을 제기했으니 무시할 수도 없다.

강우는 문제의 한 구절을 가리켰다.

“물체의 운동을 구속하는 조건이 하나 빠졌어요. 현재 상태로는 미지수 개수 대비 조건이 하나 부족하거든요. 이대로 이 문제를 풀려면 임의의 가정을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풀어요?”

차도도는 머릿속으로 문제의 풀이과정을 검토했다. 과연 강우의 말이 옳았다. 그녀가 무심코 넘어갔던 부분이었다.

“어? 그러네. 그럼 조건을 조금 추가해서…….”

차도도는 재빨리 문제를 변경했다.

이제 문제가 완벽해졌다. 강우는 곧바로 풀이과정을 쓰기 시작했고 다른 세 녀석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지 문제만 째려보고 있다. 정작 지금까지 잘 쓰던 고현성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자신이 푼 답을 열심히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도도는 강우가 쓴 풀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이 물리를 어떻게 공부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다. 적어도 물리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어 보였다. 교사인 자신보다 훨씬 많이 또 깊이 알고 있다. 저렇게 뛰어난 제자를 두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어쨌든 그녀는 강우의 천재성을 열심히 키워볼 생각이다. 강우가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정답을 적은 강우가 뒤로 물러났고 고현성은 연신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중간에서 포기했다. 다른 두 학생은 전혀 문제에 손을 대지 못했다.

차도도는 문제를 설명하고 강우가 푼 답이 옳다고 확인했다.

이제 손차희네 조는 65점이고 전상철 네 조는 70점이었다.

“마지막 문제! 다음 선수 나오세요.”

차도도는 손차희네 조에서는 손차희가 나오리라 예상했다. 마지막 문제인 만큼 가장 뛰어난 학생이 나와야 하는데 강우는 나올 수 없다. 반면 전상철네 조는 전상철이 나올 수 있다.

손차희와 전상철의 실력이 비슷하니까 딱히 어느 조가 유리하다고 할 수 없지만 최근의 기세로 보면…….

역시 전상철이 앞으로 나왔다.

다만 손차희네 조에서는 조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토론 중이다.

잠시 후 출전한 학생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대우가?’

최대우가 포동포동한 몸매를 자랑하며 앞으로 나섰다.

차도도가 보는 최대우는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학생이었다. 물리와 수학을 그럭저럭 잘하는 학생이기도 하고. 다만 물리에서 특출나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선행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난 중간고사도 그저 그런 성적이었다.

가장 어려운 마지막 문제를 맡기엔 조금 부족해 보였다.

차도도는 모니터에 마지막 문제를 띄웠다. 이 문제를 고안하느라 며칠을 고민했었다. 기존의 문제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문제를 심혈을 기울여 창작했다. 기본 법칙을 잘 응용하면 풀 수 있으나 단순히 문제풀이 학습만 반복했다면 당황할 문제이기도 하다.

역시 예상대로 네 학생이 멈칫하면서 쉽게 풀이를 시작하지 못했다.

이윽고 최대우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칠판에 잔뜩 풀이과정을 적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문제답게 수식이 난해하고 양도 많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풀이를 시작한 최대우는 중간중간 멈칫하면서도 쭉쭉 써 내려갔다.

차도도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수행평가가 끝났다.

“자, 마지막 문제는 대우 학생이 풀었어요. 이 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법칙을 적용해서…….”

풀이를 설명하자 몇몇 학생들이 탄식을 터트렸다. 지금 반응한 학생들은 이 문제의 핵심을 이해했고 여전히 반응이 없는 학생은 아직도 헤매고 있었다.

이제 조별 최종 점수를 발표할 시각.

“마지막 문제를 푼 손차희네 조가 75점, 전상철네 조는 70점…….”

고곽천재 학생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강우를 비롯한 네 명이 수행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차도도는 수업을 마무리했다.

“기말고사도 조금 어렵게 나올 거예요. 모두 준비 잘하길 바라요.”

최대우를 새롭게 평가한 차도도는 최대우에게 방긋 미소를 짓더니 강의실을 나섰다.

뒤에서 윤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대우가 쓰러졌다!”

* * *

점심시간에도 고곽천재는 물리 수행평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난 대우가 해낼 줄 알았어.”

“대우는 요즘 못 푸는 물리 문제가 없더라.”

윤수아와 손차희가 연신 최대우를 칭찬했다.

강우는 그런 친구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최대우는 한껏 고양된 표정이다. 선행 없이 이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에는 정신을 못 차리는 듯하더니 최근에는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요즘 블로그에서 답변을 맡아 문제를 푸는 실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만 다른 과목은 아직…….

“대우야, 이것도 마저 먹어.”

손차희가 자기 몫의 돈가스를 절반 뚝 떼서 넘겼다.

최대우의 입이 활짝 벌어졌다.

“내 것도 조금 줄게.”

윤수아마저 동참했다. 평소 윤수아가 먹을 것을 양보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이상한 분위기였다.

강우는 손차희의 얼굴에서 진심을 읽었다.

내신 성적을 신경 쓰는 손차희에게 수행평가의 막판 역전은 엄청난 성과다. 애초에 마지막 문제에서 손차희와 최대우는 서로 나가겠다고 다퉜었다.

지금까지의 물리 성적으로 보자면 손차희의 출전이 합당했다. 아무래도 손차희가 더 안정감이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물리 블로그에서 여러 문제를 풀어본 최대우의 최근 발전을 높이 샀다. 최대우라면 오히려 마지막 문제에 더 잘 적응하리라 예상했다. 문제집에 있는 교과서적인 문제를 고집한 손차희가 불리하다고 봤다.

그래서 강우는 최대우의 손을 들어줬다. 손차희는 강우의 전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최대우는 자신의 몫을 완벽하게 해냈다.

수행평가에서 조원들이 좋은 성적을 받았으니 강우도 기분이 좋았다.

툭-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쳤다.

“뭐야?”

“어이! 브라더! 수행 잘 봐서 좋겠어?”

이렇게 시비를 거는 녀석은 오직 하나다.

뒤를 돌아보니 저쪽 테이블에는 얼굴이 죽상이 된 인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바로 전상철네 조였다.

“왜? 수행으로 내기 안 해서 억울하냐?”

“뭔 소리야! 져서 분하다는 뜻이지.”

“그게 실력 차야, 실력 차!”

“실력이 뒤진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고현성의 주장에 전상철을 비롯한 모두가 전의를 불태웠다.

“그럼 기말로 붙어 보든가!”

요즘 고곽천재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적어도 전상철네 조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흐음, 그럴까?”

고민하던 고현성이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들의 시선이 손차희에게 모였다. 전상철과 고현성도 이 내기의 승패가 손차희에게 달렸음을 알았다. 손차희가 중간고사 때처럼 망가지면 전상철네 조가 이긴다. 반면 손차희가 제 궤도에 복귀하면 진다.

강우도 그들의 속셈을 꿰뚫어 봤다. 그는 손차희의 부활을 자신하기에 이 내기는 당연히 질 수가 없다.

“……차희가 학원을 그만뒀다고 했지?”

“학원 다니다 안 다니면 타격이 있지 않을까?”

“차희가 그만두면 수아도 영향을 받을 건데?”

“강우도 요즘 설렁설렁한대.”

전상철네 조의 토론 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잠시 후 고현성이 다시 강우를 쿡 찔렀다.

“좋다! 승부다! 조원들 기말고사 점수 합산! 어때?”

“오케이!”

당연히 마다할 강우가 아니었다.

“내기는 밥!”

“떡볶이 아니고?”

“그건 너네들 마음이지.”

고현성이 손차희를 향해 눈웃음을 보냈다. 정작 손차희는 찝찝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기가 성립됐다. 당연히 강우는 이기려고 내기를 한다. 아니, 이길 수 있기에 내기를 한다.

최대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자! 저쪽 조를 박살 내자! 고곽천재 파이팅!”

돈가스를 많이 먹은 덕분인지 평소보다 최대우의 힘이 넘친다.

손차희와 윤수아도 웃으며 손을 잡았다. 강우는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 * *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험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시험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내신에 목을 매는 고등학생에게 시험의 부담은 엄청나다.

고려 과학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경쟁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시험 날짜가 하루씩 다가올 때마다 그들은 점점 피폐해졌다. 모두가 눈이 퀭해지고 눈빛은 동태처럼 변했다.

평소 깔끔 떨던 학생들의 외모도 추레하게 바뀌었다.

내일은 기말고사 첫날인 수학시험일. 시험 순서는 중간고사와 비슷했다.

자정 무렵이 되자 학생들은 기숙사 일층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모두 손에는 책을 들고 야식을 먹으러 왔다.

강우도 최대우와 함께 식당으로 내려왔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시험 기간을 버틸 수 있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책을 보던 윤수아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강우는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시켰어?”

“응, 특이한 거로.”

이 시간에 배달되는 메뉴는 치킨 아니면 피자뿐이다. 몰래 들여오는 데다 요리 시설이 없으니 다른 메뉴는 감당하기 어렵다.

“뭔데?”

“햄버거 세트!”

“이 시간에 그게 돼?”

“12시까지 영업한대. 안 된다는 걸 내가 우는 소리를 좀 했지.”

과연 먹는 일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의지의 윤수아다.

손차희는 그들에게 고개를 까닥인 후 여전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강우가 말을 걸었다.

“뭐가 잘 안돼?”

“이게 잘 안 풀려서.”

손차희가 풀던 문제를 내밀었다.

별것 아닌 문제다. 곧바로 강우는 설명하면서 문제를 풀었다.

손차희가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의 손차희는 이렇지 않았다. 그때는 강우에게 묻기를 조심스러워했고 자신이 모르는 문제를 강우가 풀면 자존심이 상해 기분 나빠 했었다.

이제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순순히 질문하는 것을 보면 강우와 경쟁하겠다는 생각을 버린 듯했다. 덕분에 강우도 편해졌다.

강우가 손차희의 질문에 답했을 때 옆에서 다른 학생이 그에게 문제지를 내밀었다.

“강우야, 나도 좀 가르쳐줄래?”

눈을 돌려보니 같은 반인데 존재감이 없던 녀석이다. 거의 말을 나누지 않고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 하지만 매몰차게 내칠 수는 없었다.

“으응? 이건 말이지…….”

강우는 복잡한 수식을 차근차근 적으며 설명했다.

“아, 그렇구나. 강우 넌 설명을 참 잘해.”

교수였던 손강우 시절의 영향일까. 그런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최근 들어 설명하는 능력이 더 강화된 기분도 들었고.

“이 문제는 여기부터가 어려워. 여기에서는 생각 패턴을 조금 바꿔야 쉬워.”

강우는 열심히 문제를 끝까지 풀어줬다.

“와아! 이게 이렇게 풀리는구나!”

녀석이 감탄하고 물러났고 그 자리를 이번에는 다른 학생이 메웠다.

어쩔 수 없이 강우는 문제를 설명했다.

“강우, 최고다!”

“강우 너무 잘해!”

“고마워!”

맞은편에서 윤수아가 햄버거 세트를 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질문에 답하다 보니 강우는 햄버거를 먹을 시간도 없었다.

식당에 모여 야식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하다가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서다. 사실 배고프다는 말은 핑계이고 시험을 앞둔 불안감을 서로 공감하며 배를 채우면서 위안을 얻었다. 시험 기간의 가장 큰 재미이자 행사이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강우는 이곳에서도 시달리고 있으니…… 윤수아의 눈썹이 쓱 올라갔다.

강우의 뒤로 질문하겠다는 학생들이 줄을 서 있었다.

보다 못한 윤수아가 탁자를 세게 쳤다.

“야! 너희들 적당히 좀 인할래? 애가 햄버거도 못 먹고 있잖아?”

이미 절반을 먹은 최대우와 달리 강우는 아직 포장지도 뜯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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