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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78화 (78/325)

제78화 기말고사 (3)

문제를 풀다 보면 딱 떨어지는 숫자를 만난다. 어쩐지 완벽하게 푼 기분이 든다. 이런 현상은 출제자도 일맥상통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숫자가 예쁘면 정답일 가능성이 크다.

“아이씨! 5.6이라니까.”

“8.0이야, 8.0.”

고현성과 이민찬의 표정을 훑은 강우는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 문제 말이야, 함정이 있는데? 낙하하는 물체가 종단속도에 이르면 속도가 증가하지 않거든.”

강우는 간략하게 설명했다.

“무슨 소리야? 여기에서 종단속도가 왜 나와?”

“엄연한 물리적 현상인데 시험 문제라고 빼먹으면 안 되지. 무시하라는 가정도 없잖아?”

당황한 고현성이 문제지를 다시 살폈다. 녀석의 안색에 점점 먹구름이 덮였다.

“그…… 그래도…….”

“다시 잘 계산해봐. 종단속도를 무시해서 거기부터 어긋나면 밑으로 내려가면서 줄줄이 틀리는데…….”

“으아악!”

고현성이 갑자기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심각한 표정은 고현성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학생이 얼어붙었다.

이민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재빨리 시험지를 다시 검토했다. 역시 강우가 설명한 내용이 옳았다. 그는 보기 좋게 출제자가 놓은 함정에 빠져 있었다.

“으으으.”

“그 바로 위 문제에도 함정 있거든? 답이 정수가 아니야.”

이민찬의 시선이 그 위 문제를 살폈다.

“젠장!”

욕이 새어 나온다. 치사하게 함정을 곳곳에 파놓다니! 과학고 문제치고는 너무 치사하지 않은가. 시험 시간에 흥분해서 문제를 푸는 바람에 함정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이런 결과를 얻은 이유는 순전히 강우 때문이다. 저 자식을 이겼다는 흥분에…….

신음을 삼키면서 이민찬은 강우를 노려봤다. 어느새 강우는 시끄럽다는 듯 귀를 막고 엎어져 자고 있었다.

저 녀석은 이런 함정을 다 피하면서 그 짧은 시간에 문제를 모두 풀고 잤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신나게 푼 자신도 간신히 시간에 맞추었는데 저 녀석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이민찬은 자신도 모르게 시험지를 콱 구겼다.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제야 이민찬은 실수를 깨달았다. 이렇게 흥분해서는 안 된다. 특히 다른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라면.

“아, 그…… 그게…….”

뒤늦게 변명한 이민찬은 책상을 내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이미 그의 안색이 붉게 타올랐을 테니 변명의 여지는 없다.

지금은 빨리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음 시험에 집중해야 한다. 다음 과목은 화학. 그가 좋아하는 과목이다.

그런데 도무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 * *

종이 울리고 감독 선생님이 들어왔다.

“야! 강우! 넌 또 퍼 자냐? 어젯밤에 뭐 했어?”

“고, 공부했죠.”

강우는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눈앞에 신새벽이 보였다.

어째 감독 선생님 운이 최악이다. 아는 선생님이라 부담스러운데 하필이면 시험 과목 담당 선생님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툭탁대는 선생님이니 부담 백배였다.

“거짓말 마! 또 걸그룹 영상 봤잖아?”

학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노트북 사건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니! 뒤끝 작렬이다. 강우는 주섬주섬 시험 칠 준비를 했다.

문제지와 답지가 배포됐다.

강우는 신새벽의 눈치를 보며 문제를 들여다봤다. 빨리 풀고 잠자기는 다 틀렸다. 하긴 빨리 풀 재간도 없다. 이번에는 화학을 거의 공부하지 않아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이 사실상 전부였다.

일단 아는 것부터 먼저. 계산이 빠르다 보니 그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신새벽이 학생들을 살피면서 슬금슬금 그의 곁으로 왔다. 후딱 풀면서 정답을 찍은 그의 답지를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지만…… 강우는 금방 벽을 만났다.

대체 누가 낸 건지 문제를 볼수록 욕이 절로 나왔다. 모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찍을 수밖에.

답지를 살펴보던 강우는 선택을 고민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큰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은 모든 문제를 각각 다르게 찍어 전부를 맞출 가능성을 노릴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모두 틀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최악의 재앙을 피하려고 강우는 하나의 숫자로 객관식을 찍기로 했다.

일단 연필을 굴리고…… 2번을 선택했다.

답지에 2번을 쭉 찍는 순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하필이면 그가 푼 문제의 답에서도 2번이 가장 많았다. 덕분에 그의 답지는 2번 천지로 바뀌었다.

“하아!”

싸한 기분이 들어도 이미 써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강우는 신새벽의 눈치를 보면서 잠이 들 타이밍만 찾았다. 그를 확인한 신새벽의 표정이 점차 나빠졌다.

이민찬은 화학 시험에서 고전했다.

쉬는 시간에 답을 확인해 본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기분이 엉망이 된 상태여서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강우가 신경 쓰인다. 하필 신새벽이 강우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장면을 목격했다. 신새벽이 화학 선생님이니 이 표정은 강우가 정답을 고르고 있다는 뜻이다. 마음이 더욱 불안해졌다.

몇 번 감정의 동요가 일고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듯했다. 그 와중에 몇몇 문제는 계산량이 많아서 금방 답이 구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시선이 자꾸 강우를 향했고 그때 강우의 답지가 흘낏 보였다.

‘어? 저 자식 2번이 왜 이리 많아?’

제대로는 볼 수 없으나 답지에는 얼핏 2번에 막대를 세운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민찬은 자신의 답지를 살폈다. 2번이 거의 없었다. 하필 다음 문제는 정답이 2번인지 4번인지 혼동된다. 다시 생각해봐도 4번이었지만…… 그는 어느새 2번을 찍고 있었다.

* * *

기말고사가 끝났다.

중간고사 때처럼 시험이 끝나는 날은 항상 금요일이다. 시험을 마친 후 주말에 집으로 돌아갈 학생들을 위한 배려였다.

물론 강우나 최대우처럼 집이 먼 학생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어쨌든 시험이 끝난 다음 날 수업 부담이 없으니 좋았다.

점심을 먹은 후 강우는 세미나실에 들어갔다.

시험이 끝났는데도 이곳에 들린 이유는 최대우와 함께 블로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세미나실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집에 안 갔어?”

“저녁에 늦게 가려고.”

시험 기간이라 피곤에 찌든 모습의 두 여학생이 그를 웃으며 반겼다.

책상에 간식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윤수아와 최대우가 벌써 편의점을 털어왔나 보다. 강적이다. 강우는 자신의 자리에 놓인 콜라 캔을 보고 모든 것을 용서해주기로 했다.

“일찍 가지?”

“혼자서 고생하는 대우를 모른 척할 수 없지.”

최대우가 운영하는, 아니 엄밀히 말하면 고곽천재가 운영하는 물리 문제풀이 센터가 문제였다.

시험 기간에는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큰소리쳤던 강우는 그날 밤에 바로 공지를 올렸었다.

- 블로그 주인은 기말고사가 끝나는 주말에 다시 돌아옵니다. 해답이 늦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이렇게 한 줄 써놓고 블로그는 잠시 문을 닫았다. 실망한 방문객의 항의와 아우성이 넘쳤지만 강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블로그보다 기말고사가 먼저였으니까.

- 주인 어디 감? 버려 놓기 있음? 없음?

- 니만 시험이냐? 나도 시험이다!

- 흑흑, 급해요! 금요일에는 꼭 풀어주세요!

- ㅋㅋㅋ, 이 자식 꼬리 말았네.

- 배신자!!!!

시험 기간에도 급히 풀이를 요구하는 질문이 여럿 올라왔다. 대부분 다음 주에 물리 시험을 친다는 중고등학생들이다.

시험이 끝났으니 오늘부터 블로그를 관리해야 했다.

온종일 최대우와 함께 질문에 대한 답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손차희와 윤수아가 도와준다니 손을 덜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질문을 최대우가 적당히 배분했다.

“하아, 이 정도만 해주면 충분해. 나머지는 내가 할게.”

최대우가 주인장의 사명감에 불타 절반을 맡았다.

문득 강우는 블로그 운영이 과연 최대우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대우야, 물리 시험은 잘 봤어?”

지난 중간고사 때는 손차희가 시험을 망치는 바람에 감히 이런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오늘은 모두의 표정이 나쁘지 않아서 강우는 과감히 말을 꺼냈다.

“강우, 넌?”

최대우가 답하기도 전에 손차희가 반대로 물었다.

강우는 손차희의 입가에 감도는 미소를 발견했다.

‘다행이네. 시험을 잘 봤구나.’

“난…… 물리는 다 맞췄어.”

“와우!”

만점이라는 강우의 대답에 세미나실이 떠들썩해졌다.

“과연 강우는 다르구나.”

손차희도 웃으며 축하했다.

“넌?”

“나는…… 두 개 틀렸어. 그런데 주변에 나보다 잘 본 학생이 안 보이더라.”

이번 시험의 난이도를 고려할 때 두 개 틀렸다면 거의 최상의 성적이다. 지난 중간고사 때 손차희가 받았던 성적과 비교하면 천지개벽한 점수였다.

“차희가 나보다 잘 쳤네. 나는 다섯 개 틀렸는데.”

“하아, 나는 세 개.”

윤수아와 최대우가 자신의 점수를 말했다.

모두 평균 점수와 비교해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었다. 물리 시험 문제에 함정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실력이 엄청 늘었다. 특히 블로그 때문에 시간을 뺏긴 최대우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최대우가 시험 소감을 말했다.

“지난 중간고사 때는 문제가 안 풀렸는데 이번에는 예상외로 잘 풀렸어. 아깝게 계산 실수 때문에 틀리긴 했지만. 사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아는 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점수는 올랐어. 이게 블로그 운영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나도 블로그가 도움이 됐어.”

윤수아도 동조했다.

의도가 맞아떨어졌다. 확실히 최대우는 다양한 문제를 풀면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했다. 아마 다음 학기부터는 물리의 강자로 부상할 것이다.

“근데…… 강우야, 너 화학은 어떻게 쳤어? 신새벽 선생님이 이를 갈고 계시던데?”

“화학? 간신히 60점 나왔는데…….”

중간고사 100점이 60점으로 내려갔으니 혼날 일만 남았다. 강우는 화학 평균이 대략 자신의 점수 부근이라 추정했다.

“난 화학 다 맞췄는데?”

과연 손차희였다. 애초에 손차희는 물리보다 화학을 훨씬 잘했다. 이번 기말고사에서 완벽하게 제 위치를 찾아갔다.

“난 네 개 틀렸어…… 점수는 나쁘지 않아.”

윤수아가 거들었고 최대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난 50점은 넘기려나? 화학은 나랑 안 맞아. 신새벽 선생님만 아니었어도 화학이랑 담쌓았어.”

강우와 최대우가 나란히 화학을 못 쳤으니 펄쩍 뛸 신새벽이 눈에 보인다.

그들은 생물과 지구과학 성적도 비교했다. 역시 손차희는 엄청 잘 쳤고 강우와 최대우는 바닥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평균에서 많이 뒤처질 정도는 아니다.

강우는 의도했던 대로 점수를 얻었다. 그야말로 적당히 시험을 쳤고 상위권에 피해를 주지 않을 성적을 받았다.

“수학은?”

가장 중요한, 손차희의 수학 성적이 궁금했다. 수학에서도 손차희가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면 그녀는 지난 중간고사의 악몽을 성공적으로 털어버린 셈이다. 심지어 전교권 성적을 노려도 된다.

손차희가 손가락을 두 개 폈다. 두 문제 틀렸다는 뜻이다.

“와우! 그 어려운 문제를!”

윤수아가 감탄을 터트렸다. 손꼽히는 성적이라며 윤수아는 손차희와 짝짜꿍을 맞췄다. 그녀가 염탐한 바에 따르면 지난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2등이었던 전상철이 무려 6개를 틀렸다고 했다. 그만큼 문제가 어려웠다. 수학 평균은 지하실 바닥이라 더 말할 필요도 없었고.

“난 7개 틀렸는데.”

최대우가 자신의 점수를 말했고 윤수아도 어쩔 수 없이 8개를 틀렸다고 자백했다.

난이도를 고려하면 전체적으로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정도면 상당히 좋았다.

“강우야, 넌 어떻게 봤어?”

강우는 지난 중간고사에서 수학과 물리에서 만점을 받았다. 이번 기말고사에서도 물리는 동일하게 만점이다. 그렇다면 수학은?

강우는 책상 위의 과자를 집어 입에 넣은 다음 콜라 캔을 땄다. 그는 여유롭게 콜라를 한잔 마시고 친구들을 둘러봤다.

“에이 뭐해?”

“큭큭, 폼 잡는 거지.”

강우는 조용히 자신의 수학 점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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