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11화 (111/325)

제111화 이론물리부 (3)

강우는 마카를 들고 학생들을 쭉 살폈다.

모두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1학년들은 수학여행 때 강우의 강연 실력을 이미 봤었다. 하지만 2학년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1학년 중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됐다.

강우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학생들을 향해 강연을 시작했다.

“페르마의 원리라고 들어보셨나요?”

“페르마의 정리? 그거 수학에서 마지막 남은 난제라고…… 유명한 문제잖아?”

“수학이 여기에서 왜 나와?”

“어…… 들어보긴 했는데…….”

반응이 둘로 엇갈렸다.

수학이나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페르마를 모를 수 없다.

17세기 수학자 페르마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몇 가지 유명한 정리를 남겼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페르마 소정리, 페르마 두 제곱수 정리, 페르마 다각수 정리, 마지막으로 페르마 원리.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고 처음 제시된 후 약 350년이 지난 후에 증명되었다.

페르마 원리는 다른 정리와 달리 물리와 연관된 것으로 빛의 직진성을 설명하는 원리다.

“자연은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진화해왔습니다. 자연에서 쓸모없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죠. 빛이 왜 직진하는가? 그 이유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원리 때문입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죠. 낮에는 소리가 위로 휘어지죠. 그 이유는 소리는 공기의 밀도가 높을수록 더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가장 빨리 도달하는 길을 따라 움직이죠.”

강우는 지표면과 건물을 그리고 낮과 밤에 소리가 흘러가는 경로를 그렸다.

“빛도 비슷해요. 빛은 소한 매질과 밀한 매질이 있을 때…….”

강우는 사막을 그렸고 사막에서 신기루가 맺히는 현상을 페르마 원리로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공기 중의 빛이 물속으로 진입할 때 굴절이 발생하는 원리로 이어졌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를 수식으로 표현했을 뿐이죠. 시간은 거리를 속도로 나눈 것이니까 이것을 식으로 표시하고 경과 시간이 최소가 되는 점, 즉 최대 최소는 미분이죠.”

강우의 설명은 모든 학생의 이해력을 높였다.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완벽한 설명이었다. 덧붙인 적절한 예시는 물리학 이론의 응용을 도왔다. 학생들은 눈을 깜박이지 않고 집중했고 설명에 몰입했다. 모두 강우의 강의에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수식이 변형되고 함수의 최소를 구하는 문제로 바뀌었다. 수식을 쭉 나열한 강우는 식을 미분했다. 미적분을 배운 학생이라면 어렵지 않다.

미분 함수가 0이 되는 지점이 바로 주어진 빛의 최단 시간 경로를 의미하며 이는 빛이 물의 표면에서 꺾이는 길을 보여주었다.

이를 속도와 입사각, 반사각으로 다시 정리하면 유명한 빛의 굴절법칙, 즉 스넬의 법칙이 유도된다.

강우의 증명이 끝났다. 그리고 강우는 주어진 문제의 해답, 즉 스넬의 법칙을 응용하여 해답을 썼다.

“우와! 여기에서 이렇게 풀리다니!”

“리스팩!”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의 눈빛은 호기심을 충족한 과학도의 그것이었다. 그들의 환호는 강우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오늘 물리의 천재를 보았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꼭 그런 학생만 있지 않다.

김창식과 박호재는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아주 조금이었다. 수식 전개에서 막히지 않았다면, 그것도 모르는 내용이 아니라 잠시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저 문제를 끝까지 풀었을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분했고 상대를 인정할 수 없었다.

김창식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나도 풀 수 있었어!”

모두가 안다. 김창식도 풀 수 있었다고. 하지만 승부는 짧은 순간, 미묘한 지점에서 갈리는 법이다.

강우는 김창식에게 시선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이제는 여기 있는 학생이 다 풀 수 있을걸요?”

“으으.”

김창식이 분을 참지 못하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강우는 담담한 미소로 차도도에게 눈짓했다. 계속 진행하라는 뜻이다. 인정하지 못하는 녀석에게는 더 강한 패배감을 안겨주면 된다.

김창식이 그와 최대우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기에 굳이 연민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블로그에서 어려운 문제만 질문하던 사람이 김창식일까? 아냐, 그러기엔 질문 수준이 너무 높았어.’

강우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의문을 잠재웠다.

“자, 강우 팀이 2승, 김창식 팀이 1승입니다. 모두 5문제니까 아직 2문제가 더 남았어요. 다음 문제는…….”

네 번째 문제는 은하의 회전과 관련된 문제였다. 은하 회전 구심력과 만유인력, 이로 인해 나타나는 빛의 도플러효과가 복잡하게 엮인 문제다.

학생들이 막 문제를 읽고 풀이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강우는 바로 손을 들었다.

“제가 풀까요?”

“벌써 다 풀었어요?”

“그냥 풀려요. 딱히 어려운 문제는 아닌데요, 적색편이, 청색편이 수식과 관련된 기초적인 물리학이죠.”

강우의 장담에 학생들이 혀를 내둘렀다.

지금까지 강우는 상대팀에게 먼저 기회를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이려면 시작부터 기를 꺾는 게 더 낫다.

마침 네 번째 문제는 앞의 문제에 비하면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김창식이 이 문제를 정확하게 풀려면 적어도 30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문제를 지금 강우는 보자마자 풀겠다고 덤볐다.

다른 학생들은 감히 비빌 수 없는 압도적인 차이였다.

“버, 벌써 풀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김창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난 머릿속으로 보자마자 다 풀었어. 천재란 그런 거야. 물리의 기본 원리가 살짝 응용된 문제니까 굳이 다 풀어볼 필요도 없어. 바로 답을 쓸 수 있는 문제지.”

강우의 입에서 자신이 천재란 말이 나왔다. 이는 강우를 아는 학생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강우는 스스로 천재라 밝힌 적이 없었으니까.

“아, 아냐! 미리 풀어봤던 거지?”

“그럴 리가. 정 못 믿겠으면 다른 문제도 상관없어. 문제가 뜨는 순간 바로 풀어줄 테니까.”

강우의 장담에 김창식은 버벅대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가 강우를 외계인 보듯 했다.

두 사람의 다툼을 차도도가 중지시켰다.

“그럼 일단 강우의 풀이를 들어보죠.”

강우는 앞으로 나가서 마카를 들고 나선은하 형상을 그렸다.

“나선은하는 나선팔이 중앙의 핵을 중심으로 도는 형태를 띠고 있어요. 이 중심부에는 질량이 밀집되어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는데, 이 힘이 바로 은하 회전의 기본 힘이죠. 이 구심력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강우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수식이 칠판을 메웠다.

조금도 주저 없이 전개되는 수식을 바라보면서 김창식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저런 천재를 본 적이 없었다. 같은 2학년에는 당연히 없었고 올여름에 발탁된 물리 올림피아드 국가대표에도 저런 녀석은 없었다. 심지어 세계대회에 출전했을 때도 저렇게 무자비하게 문제를 해체하는 녀석을 본 적이 없다.

수식을 전개하는 저 모습을 보면 마치 우주의 법칙을 내려다보는 고고한 창조신처럼 느껴진다. 자연의 모든 법칙을 꿰뚫고 있는 모습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던가.

조금 전까지는 실력 차가 별로 안 난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강연 실력, 즉 말빨 차이라고 위안했다.

그런데 이 문제와 맞닥트리는 순간 김창식은 그 차이를 알게 됐다. 이 문제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지라도 자신은 풀지 못했으리라고. 아마 절반가량 풀다가 또 막혔을 것이다.

그런데 강우는 지금 조금의 흔들림도,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마치 고등학생이 초등학생 문제를 풀고 있는 그런 분위기다.

“이렇게 구해진 적색편이량은 실측된 우리 은하의 수치와 비슷합니다. 이 사실은 별의 고유운동과 함께 은하가 회전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강우의 긴 설명이 끝을 맺었다.

상당히 난해한 문제였으나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거의 완벽하게 이 문제를 이해하게 됐다.

강우가 이 문제의 핵심을 명확하게 고등학생 수준에서 설명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한층 높은 수준에서 내려다보면서 분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풀이가 끝났음에도 실험실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모두가 기가 질린 듯 정면의 화이트보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차도도는 따뜻한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마구 뛰었다. 역시 강우는…… 천재였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지 못했던 유형의 천재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힌 차도도가 마침내 입을 뗐다.

“창식 학생? 어때?”

일순간 김창식이 대답을 못 했다.

“마지막 5번째 문제, 또 해볼까요?”

“으……, 패, 패배를 인정합니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이곳은 이론물리부의 홈그라운드이고 김창식은 이론물리부에서 대단한 카리스마를 보였었다. 물리 국가대표에 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다. 지금까지 김창식의 권위에 누구도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실 물리 선생님들도 김창식을 인정하고 한 수 접어줬었다.

그랬던 김창식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것도 후배에게, 물리에서 특별한 실적도 없는 녀석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강우는 차도도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전 그만 가도 될까요?”

“그래, 끝나고 교무실로 와.”

강우는 차도도에게 꾸벅 인사하고 물리실험실을 나왔다.

그가 사라진 공간이 학생들의 수군거림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 * *

본의 아니게 이론물리부를 박살 냈다. 지난번에 수학연구반을 깬 후 두 번째다.

두 곳 모두 그가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다. 상대편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

강우는 오늘 행동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너무 과다하게 학생들의 의욕을 망가트리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그가 학생들의 목표가 되어 동기부여를 유발할 수도 있었다.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내신 시험에서도 조심하는 그이기에 오늘의 행동은 다소 염려가 됐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랐다. 특히 김창식이나 박호재에게는.

이 두 사람은 내년 3학년 여름에 국가를 대표해서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에 나가야 할 인재다. 이번 일로 좌절하지 않고 더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랄 뿐이다.

“강우야, 같이 가.”

뒤에서 최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너무 혼자만의 감정에 몰입해서 이 녀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먹었다.

강우는 걸음을 늦추고 최대우를 기다렸다. 따라오느라 힘들었던 듯 녀석이 헉헉대며 숨을 골랐다.

“강우야, 오늘 정말 잘 풀더라. 어떻게 그렇게 풀어?”

“너도 두 번째 문제를 잘 풀었잖아?”

최대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난 오늘 논술 문제를 처음 접했는데…… 그래서 첫 번째 문제는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어. 그 선배들이 블로그를 험담해서 화가 잔뜩 나는 바람에 차분하게 풀 기분도 아니었고. 그런데 두 번째 문제부터는…….”

두 번째 문제부터는 풀만 했단다. 역시 최대우 이 녀석은 물리에 특화된 천재가 확실하다. 세 번째 문제도 비록 속도가 뒤처지긴 했지만, 시간이 주어졌다면 풀 수 있었던 문제였다나.

“근데 강우 넌 정말 잘 풀더라.”

“난 얼마 전에 논술 문제를 풀어봤거든. 내신보다 논술이나 그런 쪽이 내 성미에 맞고.”

“어…… 그랬구나.”

최대우가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공부를 하면 문제 유형이 어떻든 다 풀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녹록지 않다.

강우가 최대우에게 오늘 접한 논술 문제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시 설명해주고 있을 때였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쌤?”

“강우야, 잠깐 상담실로 올래?”

화학 선생님 신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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