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천체관측 대회 (1)
마감 점호가 다 되어서야 강우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평소와 달리 기숙사가 조용한 이유는 시험이 임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험 때가 되면 학생들 스스로가 예민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덕분에 기숙사 복도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강우는 침대에 누워 최대우를 힐끔 살폈다. 열심히 화학책을 넘기고 있었다.
“대우야, 화학 공부해?”
“하아!”
“갑자기 화학은 왜?”
“신 선생님이…… 이번에도 평균 못 넘기면 가만 안 둘 거라 하셔서…….”
“어? 갑자기 왜 너한테 화풀이가 갔지?”
“나도 몰라. 하여튼 죽겠다.”
신새벽이 최대우에게 화학 공부를 시켰나 보다. 최대우가 워낙 물리에만 매달려 있으니 화학 공부도 바람직한데 녀석의 표정을 보니 영 아니다.
물리를 공부할 때와 달리 녀석의 얼굴이 반쪽이 됐다.
“대우야! 너 지금 엄청 힘들어 보인다?”
“하아! 하아! 나도 몰라. 숨이 막혀.”
그러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녀석의 결심이 대단하다. 그럴 녀석이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
“신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 있어? 시험 잘 치면 뭘 해준다거나?”
우물쭈물하던 녀석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없을 리가 없다.
“뭔데?”
“사, 사진 보내주겠데. 내 노트북 바탕화면 사진이 뭐냐고 물으시길래…….”
“그래서?”
“걸그룹 사진이라 했더니 그런 건 공부에 방해되니까 자기 사진으로 바꾸라고……, 저절로 공부가 팍팍 될 거라고, 이번에 시험 잘 치면 사진 보내주시겠다던데.”
어째 그에게 한 작업이랑 비슷하다. 과연 신새벽답다.
어쨌든 그 말에 속아 열심히 공부하는 최대우가 조금 불쌍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공부하다가 죽은 놈은 없으니까.
강우는 신경을 끄고 노트북을 켰다.
요셉 교수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는지 확인했다. 주말이었으니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실제로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아마 요셉 교수도 충격을 받아서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겠지.
대신에 기대하지 않았던 메일이 눈에 띄었다.
차도도에게서 온 메일이다.
메일 내용은 간단했다. 오늘 와줘서 고마웠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격려 편지다. 놀랍게도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차도도의 사진 석 장. 대략 대학교 졸업할 무렵에 찍은 사진으로 보였다. 두툼한 겨울옷을 입은 사진과 여름옷을 입은 사진 두 장이다.
강우는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사진을 쳐다봤다.
“어딜 봐도 여신이네.”
차도도 사진을 휴대폰에도 담았다.
* * *
오늘따라 최대우가 영 집중을 못 하고 꼼지락거린다. 녀석의 안색도 창백하고 책장을 넘기는 행동도 평소보다 훨씬 느리다. 한 마디로 효율이 떨어졌다는 증거다.
강우는 노트북을 덮고 최대우를 유심히 관찰했다.
“대우야, 배고파?”
이 녀석은 혈당이 떨어지면 가끔 저렇게 변한다.
최대우가 고개를 저었다.
“근데 왜? 공부가 어려워?”
마찬가지로 계속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화학?”
“아니 영어.”
영어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야 강우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과학고랍시고 수학과 과학만 관심을 가졌다.
“안색이 좀 창백한데?”
“하아! 나도 좀 답답해.”
최대우가 몸을 이리저리 놀리면서 기분을 전환했다.
지금 최대우는 이 나라 보통 학생들이 시험 전에 겪는 답답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어떻게 녀석의 기분을 풀어줄까 고민하던 강우에게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우야, 별 볼래?”
“별? 좋지! 근데 기숙사에서 어떻게 봐?”
별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화색이 돌았다.
“나만 따라와라.”
답답할 때는 바깥바람을 쐬는 게 최상이다. 특히 최대우라면 별빛을 보는는 순간 컨디션을 바로 회복할 것이다.
최대우와 함께 강우는 기숙사 문 앞에 섰다. 당연히 자정을 넘긴 이 시간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하지만 그건 일반 학생에게 해당하고 그에게는…….
출입증을 대자 문이 열렸다.
“어?”
놀라는 최대우의 입을 막았다.
일전에 새벽에 관측한다고 출입허가를 받아두었던 게 아직도 유효했다. 나중에 조사하면 걸리겠지만 그건 그때의 문제고. 설마 퇴학이야 하겠어? 관측 때문이었다고 우기면 김선호가 어떻게든 방어해줄 것이다.
공부에 찌든 친구를 위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최대우를 끌고 B동 천문대로 올라갔다. 당연히 B동 건물과 천문대도 잠금이 풀렸다.
천문대에 서서 하늘을 눈에 담았다. 별빛이 초롱초롱했다. 저녁에 누리를 비추던 반달이 지평선 아래로 지고 없었다. 일거에 눈이 시원해진다.
“하아! 살 것 같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최대우의 안색이 활짝 폈다. 조금 전까지 공부하느라 다 죽어가던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저 모습을 보면 역시 저 녀석은 별과 떨어지긴 틀렸나보다.
깊은숨을 들이마시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지던 최대우가 하늘을 가리켰다.
“강우야, 온 김에 우리 별 보고 갈래?”
시간이 다소 지체되겠지만 마다할 강우도 아니었다. 이 녀석에게 필요하다면 기꺼이 같이 있어 줘야 한다.
그그긍-
육중한 천문대 돔이 열리고 천체망원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우가 자신 있게 천체망원경을 하늘 한 지점으로 겨눴다.
“저기 카시오페아자리 있지?”
지금은 초가을이라 여름을 밝히던 별자리는 대부분 서쪽으로 졌다.
“응, W자 보이네.”
“그 아래 별이 뭉친 거 보여?”
어느 별을 말하는지 강우가 알 도리가 없다.
망원경에 눈을 대고 한동안 열심히 탐색하던 최대우가 강우에게 넘겼다.
“이거…… 플레아데스야. 성단인데 파란빛이 예쁘지.”
강우의 눈에 푸른빛을 머금은 수십 개의 별이 우수수 들어왔다.
“아!”
절로 탄성이 인다. 눈을 강하게 찌르는 파란 빛은 공해에 찌든 하늘의 별빛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전했다. 망원경이 부른 마법이다. 그의 인생에서 하늘에서 접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기도 했다.
최대우가 왜 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넋이 나간 듯 강우는 미동하지 않고 별을 바라봤다.
시야에 보이는 별무리는 아름다웠고 강우는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았다. 지금 저 별무리 속에서 무한한 수소 원자핵이 헬륨으로 융합하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가 탐구하는 자연현상이 바로 저기에 있다. 언젠가 그가 열어젖힐 새로운 과학의 지평은 인류를 에너지 문제로부터 영원히 해방할 것이다.
과학자의 사명을 떠올린 강우는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한층 의지를 다졌다.
플레아데스의 푸른 빛이 그의 눈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 * *
별빛 때문이었을까. 그날 이후 최대우는 한층 활기에 넘쳤다.
그 기세를 타고 최대우는 맹렬하게 중간고사를 맞이했다.
강우는 여느 때보다 편하게 시험을 쳤다. 향후 진로를 명확하게 정립하면서 내신 성적은 그에게 큰 변수가 아니었다. 덕분에 마음의 부담감을 훨훨 털었다.
수학과 물리는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거의 완벽하게 풀었다. 화학은 그나마 신새벽이 난리 친 덕분에 성적이 조금 올랐다. 나머지 다른 과목은 고만고만한 결과를 거뒀다. 남들이 보기에 너무 과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1학기와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적응을 제대로 못 해서 크게 떨어진 과목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생물은 평균을 넘지 못했으나 꼴찌에서 벗어났고 국어와 영어도 비슷하게 올랐다.
고곽천재의 성적도 큰 변화는 없었다.
손차희와 윤수아는 지난 기말과 비슷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손차희는 이전처럼 전교권을 다툴 성적을 달성했다. 이번에는 이민찬도 만만찮게 잘 쳐서 저력을 드러냈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잘했을지는 공식적인 결과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1학기 종합 1위였던 주영식은 성적이 대폭 떨어졌다. 그 이유로 여러 소문이 돌았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원인으로 강우가 지목됐다. 강우를 이겨보겠다고 수학과 물리에 치중하다가 다른 과목도 동시에 망쳤다는 허망한 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강우는 피식 웃고 넘어갔다.
그렇게 중간고사가 끝난 후 첫 조회 시간에 차도도가 교탁에 섰다.
“자!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왔어요! 이번 전교 1등은…….”
차도도는 복도에 게시할 중간고사 석차표를 들고 있었다.
“손차희이고, 이민찬을 아슬아슬하게 이겼어요.”
가장 앞에 앉은 고곽천재의 함성이 일었다.
손차희는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친구들은 진심으로 축하했다.
손차희가 이민찬을 얼마나 의식하는지 아는 윤수아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손차희의 성적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바쁜 와중에 얻어낸 것이라 그 의미가 더욱 컸다.
전교 1등이니 당연히 반에서도 1등이었고 반에서 2등은 전상철의 몫이었다. 윤수아는 기말 때처럼 전교 20등 안에 이름을 올렸다.
강우는 그 안에 없었다. 비록 타인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20등 밖이 목표였기에 강우도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성적과 관련하여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차도도가 향후 일정을 고지했다.
“오는 금요일에 과학고 대항전이 열립니다. ‘고중전’이라고 들어봤죠? 알다시피 중앙 과학고와 우리는 서로 라이벌 관계죠? 올해는 꼭 승리합시다!”
과학고 대항전!
1학년인 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2학년에게는 피가 끓는 체육대회이자 축제다.
원래 1년에 한 번 있는 체육대회를 두 학교에서 합의하여 친교 및 대결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때 가장 논란이 된 문제는 뜻밖에도 체육대회 명칭이었다. 양쪽 학교 이름을 따서 고중전 또는 중고전이라고 명명했다. 다만 고려 과학고에서는 고중전을 희망했고 중앙 과학고에서는 중고전을 원했다. 신품도 아니고 중고냐는 논란 속에 고려 과학고에서는 고중전을 고집했다.
고중전!
3학년을 제외한 1, 2학년 학생들이 참가하며 경쟁 종목은 다양했다.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인 축구와 농구부터 시작하여 달리기 계주도 있었다.
물론 운동부가 존재하지 않는 과학고이고 학생들도 운동에 특출난 재주가 없어 화려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학교의 명예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밋밋한 체육대회가 두 학교에 경쟁을 붙이면서 활기찬 축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연히 운동 경기가 전부는 아니다.
천재들의 경연장!
과학고답게 학생들의 관심을 집중하는 대결의 장도 열린다.
바로 동아리가 주축이 된 수학 과학 대결이다. 전교생이 참가하는 OX 퀴즈에서 천재들의 경연장이 되는 부문 심화 대결까지. 심지어 천체관측반의 천체관측 대결마저 벌어진다.
수학 과학 대결의 핵심은 역시 각 부문 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이날만은 이들은 국가가 아닌 학교의 명예를 위해 머리를 굴렸다.
고려 과학고에서 대표로 뛰는 선수들은 중앙 과학고에서 출전할 선수를 대충 알고 있었다. 함께 국제 올림피아드에 출전했거나 학원에서 만났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이름 없던 천재가 갑자기 등장하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는 고려 과학고에 비밀병기가 존재했다. 바로 강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