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천체관측 대회 (2)
과학고 대전, 고중전 하루 전, 수업을 마친 3반 학생들은 물리실험실에 모여 최종 출전 리스트를 작성했다.
회의를 끌어가는 인물은 고현성. 그는 예전부터 이런 회의에서 나서기를 좋아했다.
“브라더, 씨스더! 그동안 받은 자발적인 지원 및 추천 내용을 종합해보면…….”
고현성이 칠판에 분야별로 종목을 나열했다.
축구, 농구, 배구, 피구에 중거리, 단거리 달리기와 계주 등 분야가 다양했다.
고현성은 각 종목에 추천받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유일하게 모두가 출전해야 하는 종목은 줄다리기이고 여학생이 빠지면 안 되는 종목은 피구였다.
강우는 운동에 소질이 없었기에 출전할 종목이 없었다. 사실 출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정신연령이 다소 큰 장애가 된다.
어쨌든 선수를 고르며 신나게 떠드는 학생들을 보니 마음이 젊어진 기분이다.
“자자! 얼른 하나씩 골라! 열심히 뛰어야지!”
고현성에게 귀를 기울이던 강우는 금방 흥미를 잃고 시선을 돌렸다. 창가에서 학생들의 회의를 조용히 지켜보는 차도도가 보였다.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강우는 얼른 시선을 홱 돌렸다. 잠시 후 슬그머니 그녀를 흘겨보니 빙그레 미소 짓는 차도도의 얼굴이 보였다.
수학 퀴즈 출전 선수는 수학연구반에서 주도해서 선정했다. 물리 퀴즈는 물리실험반에서 뽑았다. 천체관측 분야는 천체관측반이다. 각 동아리에서 대표선수 5명을 선정해서 중앙 과학고와 대결하는 방식이다.
강우는 천체관측반이고 천체관측반에는 그보다 천체관측에 능통한 학생이 널려 있다. 그렇기에 강우는 학교 대표로 뛸 일이 없었다. 그가 나가는 종목은 모두가 참여하는 줄다리기와 OX 퀴즈가 전부다.
강우는 옆에 앉은 최대우를 쿡 찔렀다.
“대우야, 천체관측대회에 출전하지?”
“응, 내가 나가게 됐어. 유성이도 함께.”
천체관측반에서도 천체관측 도사라 불리는 최대우가 빠질 리가 없다. 최대우가 출전하면 분명히 중앙 과학고에 압승을 거둘 것이다.
“그럼 오늘 밤에 시합하겠네?”
“응. 김선호 선생님이 저녁에 천문대로 모두 모이라고 하더라.”
천체관측 대회는 특성상 밤이라야 가능하다. 그래서 과학고 대전 전날 밤에 시합을 벌인다. 그 말은 오늘 밤에 중앙 과학고 학생들이 방문한다는 뜻이다. 천체관측반인 강우는 출전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가서 응원해야 한다. 윤수아와 함께.
“강우야! 넌 출전 종목 있어?”
“난 없는데?”
“좋겠다. 차희는 수학 퀴즈 나간대. 수아는 해커 대회.”
저마다 한 분야씩 출전하는데 이상하게도 강우만은 없다. 물론 강우는 그 점을 전혀 섭섭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했다.
“둘이 잘하겠지.”
“넌 수학 경시 때 상을 받았으니까 수학 퀴즈에 나가야 하지 않아?”
“일없다. 난 그냥 응원만 할래.”
강우는 바로 거절했다.
그는 미래의 과학자가 될 학생들이 지혜를 겨루는 현장을 구경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괜히 출전해서 자라나는 학생들의 기를 꺾을 필요는 없다.
하다못해 바둑도 있어 반 학생의 절반 이상이 한 가지 이상 종목에 출전했다. 강우처럼 전체 참가 종목에만 출전하는 학생은 몇 되지 않았다.
자율적인 출전 명단 작성이 끝나자 차도도가 마무리를 했다.
“자, 모두 열심히 하기 바라요. 대우는 오늘 저녁에 반드시 기선을 제압해서 고곽의 명예를 높이고.”
차도도가 최대우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내일 OX 퀴즈는 답이 모호하면 잘하는 학생을 따라다니면 돼요. 정 모르겠으면 강우나 차희의 움직임을 잘 보고 따라다니도록 해요.”
작전명령이 내려졌다.
학생들은 내일을 기대하며 해산했다.
* * *
저녁을 먹은 후 강우는 고곽천재와 함께 천문대로 올라갔다.
오늘 밤에는 고중전의 첫 경기인 천체관측대회가 열린다. 천체관측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손차희처럼 응원차 들린 학생도 있었다.
옥상의 천문대 앞에는 학생들로 인산인해였다.
그중에 같은 교복을 입은, 처음 보는 학생 무리가 한쪽 공간에 모여 시끌벅적했다. 중앙 과학고 천체관측반으로 전체 인원이 거의 스무 명이나 됐다.
중앙고 학생들은 천체망원경 한 대를 직접 가져와서 다시 조립했다. 오늘 대회에서 사용할 천체망원경이다.
고려고에서도 같은 크기의 이동식 천체망원경을 꺼내어 옥상에서 조립했다. 두 학교에서 같은 종류의 망원경으로 실력을 겨루는 방식이다.
김선호 선생님 옆에 처음 보는 낯선 남자 선생님이 등장했다. 중앙 과학고의 지구과학 선생님이다.
옥상에 천체망원경 두 대를 설치한 후 김선호가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지금부터 고중전 첫 경기, 천체관측대회를 시작합니다! 박수!”
“와아!”
양쪽 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다.
상기된 목소리로 김선호가 대회 세부 규칙을 알렸다.
“마침 오늘 날씨가 좋아 대회를 치르기 아주 좋습니다. 방식은 예전과 동일! 각 학교 출전 선수는 5명! 주어진 10개의 관측대상을 가장 빨리 찾는 사람이 우승합니다. 또 5명의 기록을 합산하여 학교 승자도 가리니까 모두 열심히 하기 바랍니다.”
세부 규칙은 어렵지 않다. 천체망원경의 자동도입장치는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손으로 직접 망원경을 조작해야 한다. 평소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도입에 맛 들인 관측자라면 어려울 수 있다.
강우는 출전 선수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천체관측반 학생들과 친하지 않아서 단지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 그 다섯 중에 최대우와 권유성이 끼어있었다. 오늘따라 최대우의 듬직한 몸집이 무척 안정되어 보인다.
“대우가 아마 제일 잘할걸?”
족집게 도사가 된 윤수아가 경기를 예측했다.
당연히 강우도 최대우의 실력을 알기에 부정하지 않았다.
손차희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유성이도 잘해?”
“잘하니 선수로 뽑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권유성은 천체관측대회보다 수학 퀴즈에 출전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학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으니까.
“한 사람당 한 경기만 나갈 수 있어?”
“아니, 제한은 없어. 단지 수학 퀴즈는 수학연구반에서 챙기니까 유성이에게 기회가 오지 않은 거겠지.”
손차희와 윤수아의 대화를 들으며 강우는 대회 시작을 기다렸다.
잠시 후 양쪽 학교에서 한 사람씩 나와서 천체망원경에 붙었다. 대회가 시작됐다.
“그럼 시작합니다. 첫 번째 대상은 플레아데스성단. 두 번째 대상은 안드로메다은하…….”
김선호의 개시 선언과 함께 두 학생이 바쁘게 천체망원경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강우는 본능적으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플레아데스성단은 최대우와 야밤에 기숙사를 빠져나왔던 날, 천문대 주 망원경으로 봤던 천체다. 하늘에서 뿌연 점으로 보여 강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떤 건지 알아?”
손차희가 옆에서 물었다.
강우는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켰다.
“저기.”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 대충 알아들은 듯 손차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으로 접하던 화려한 천체가 저 어두운 밤하늘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그 천체를 찾아내는 학생들의 실력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고! 첫 번째 대상 성공!”
심판의 판정이 내려지자 해당 학생은 얼른 두 번째 대상을 향해 천체망원경을 겨눴다.
이어서 다시 심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앙고! 첫 번째 대상 성공!”
조금이지만 강우네 학교가 빨랐다. 학생들의 함성과 응원으로 천문대가 시끌시끌했다.
두 번째 대상도 강우네 학교가 앞섰다. 이어진 세 번째 대상.
이번에는 여의치 않은 듯 시간이 조금 지체됐고 그러는 동안 중앙고에서 먼저 성공했다.
“중앙고! 세 번째 대상 성공!”
그렇게 모두 열 번째 대상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아홉 번째와 열 번째 천체는 어두운 데다 찾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지막에는 모든 학생이 집중적으로 각 학교를 응원했다.
마침내 심판의 판정이 나왔다.
“고려고! 열 번째 대상 성공! 총 시간 12분 23초!”
“중앙고! 열 번째 대상 성공! 총 시간 13분 46초!”
첫 대결은 고려 과학고의 승리였다.
“예상외로 스릴 넘치네.”
강우의 평에 윤수아가 맞장구를 쳤다.
“출전한 애들은 더 긴장했을걸?”
첫 대결이 끝나고 두 번째 선수가 망원경을 잡았다. 같은 대결이 반복됐다.
이번에도 총 시간은 비슷했다. 하지만 전과 달리 중앙고 선수가 더 빨랐다.
“합산 시간은 고려고 23분 11초!, 중앙고 23분 25초로 고려고가 앞서 있습니다!”
여전히 고려고가 앞섰다는 설명에 학생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세 번째 선수는 권유성이었다.
“유성이 실력은 어때?”
손차희가 윤수아에게 물었고 윤수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잘은 몰라. 밤에 개인 관측을 거의 안 하는 것 같던데…….”
생각해보니 강우도 주 망원경을 이용한 합동 관측 외에 권유성이 혼자서 별도로 관측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권유성이 주먹을 쥐고 높이 흔들며 응원을 유도했다. 활기찬 녀석이란 생각에 강우는 환호성으로 호응했다.
“유성이 파이팅!”
윤수아도 소리높여 응원했다. 권유성도 윤수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강우는 내심 웃으며 혀를 찼다. 저 둘의 관계는 보면 볼수록 모르겠다.
시합이 시작되고 엎치락뒤치락 순위가 바뀌었다. 앞에 출전한 학생들보다 더 빠른 듯했다.
“유성이도 꽤 하는데? 작년에는 누가 이겼어?”
윤수아가 상세히 대답했다.
“내가 듣기로는 작년에는 중앙 과학고가 이겼대. 저쪽 학교에 엄청난 녀석이 있었나 봐. 다른 학생은 상대가 되지 않는. 작년에 1학년이었다니까 2학년인 올해도 나오지 않을까?”
어쩐지 중앙고 학생들에게 여유가 보이더라니. 믿는 구석이 있나 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숨은 다크호스가 있다. 최대우라고. 비록 덩치는 미련해 보이지만 망원경을 손에 잡으면 누구보다도 빠르니까.
이런저런 생각 속에 관전하는 사이 세 번째 대결이 끝났다.
“중앙고! 열 번째 대상 성공! 총 시간 9분 13초!”
“고려고! 열 번째 대상 성공! 총 시간 9분 42초!”
아쉽게도 권유성의 패배였다. 하지만 처음으로 10분대 내로 들어섰다. 양쪽 선수 모두 이전보다 월등한 기량이었다. 권유성이 못했다기보다 상대가 너무 잘했다.
“으아! 아깝다.”
윤수아가 아쉬움을 연발하며 권유성을 위로했다.
“합산 시간은 고려고 32분 53초! 중앙고 32분 38초로 중앙고가 앞섰습니다!”
학교 순위도 뒤집혔다. 학생들의 실망과 환호가 교차했다.
“힘내! 할 수 있다!”
고곽의 출전 선수 다섯 명이 모여서 파이팅을 외쳤다.
네 번째 선수가 출전했다. 이들은 각 학교의 사실상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선수였다. 2개 학년에서 가장 천체관측을 열심히 하는 두 학생에 들어가니까.
요란한 응원 속에 두 사람이 나왔다.
강우는 모르는 학생이다. 그의 시선은 마지막 자리를 지키고 있는 최대우에게 머물렀다. 최대우가 천체관측반 최고수였던가? 울릉도에서 실력을 쌓은 녀석의 경력을 떠올려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최대우는 별다른 긴장 없이 대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네 번째 대결도 끝났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중앙고의 승리였다.
“합산 시간은 고려고 40분 46초! 중앙고 39분 57초로 중앙고가 앞섰습니다!”
마지막 선수를 남겨놓고 거의 1분이나 벌어졌다. 고려고 진영에 패색이 짙어졌다. 반대로 중앙고 진영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마지막 주자, 최대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