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천체관측 대회 (3)
오랜 세월 별을 봤어도 최대우가 대회에 출전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항상 울릉도의 작은 언덕에서 혼자서 별을 관측했다.
동해 한가운데 있는 섬은 날씨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날씨가 맑아도 바다에는 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았다. 하지만 안개마저 없는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별만이 영롱하게 빛났다.
별빛을 방해하는 것은 수평선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뿐이었다.
그렇게 수년간 천체관측에 숙달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쿵!
최대우는 마주 선 중앙 과학고 학생을 힐끔 쳐다봤다. 녀석이 그를 향해 가소롭다는 웃음을 던졌다.
처음 보는 녀석이지만 소문은 많이 들었다. 작년 이 대회 우승자이자 중앙 과학고 최고 실력파! 작년에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했다고 들었다.
현재 중앙 과학고가 총합산 시간에서 앞서있고 작년 우승자이자 최고 에이스가 등장했으니 저쪽은 축제 분위기였다. 모두가 이겼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반면 고려 과학고 측은 분위기가 상반됐다. 작년 대회를 경험했던 2학년들은 낙담한 상태였고 1학년들은 반대로 기대를 뿜어냈다.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내 실력을 그대로 발휘하면 된다.’
괜히 상대를 의식해서 스스로 자멸할 필요는 없다.
최대우의 눈에 응원하는 윤수아, 손차희, 강우가 보였다. 강우가 손을 불끈 쥐고 그에게 용기를 보내고 있었다.
최대우는 가슴을 채우는 기운을 갈무리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시작이다!’
망원경에 손을 댔다. 시원한 감촉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감이 나쁘지 않다.
“시작!”
첫 대상이 플레아데스성단이었던가?
관측대상 리스트를 확인한 그는 재빨리 망원경을 조준했다. 곧바로 대상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고! 첫 번째 대상 성공!”
“중앙고! 첫 번째 대상 성공!”
거의 동시에 심판의 판정이 울렸다. 미세하게나마 빨랐음을 직감한 최대우는 재빨리 두 번째 대상을 잡아나갔다.
안드로메다은하. 서울 하늘에서는 맨눈으로 절대 보이지 않는 천체다. 하지만 이미 수십 번 이상을 찾아봤던 최대우는 눈을 감고도 목표를 겨눌 수 있다.
“고려고! 두 번째 대상 성공!”
“중앙고! 두 번째 대상 성공!”
이번에도 거의 동시에 심판의 판정이 울렸다.
막상막하! 관전하는 구경꾼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최대우는 세 번째 대상으로 옮겨갔다. 페르세우스 이중성단. 안드로메다은하에서 그리 멀지 않다.
재빨리 목표 대상을 향해 최대우는 망원경을 겨눴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이런 식이라면 역전은 쉽지 않다. 최대우는 이를 악물었다.
네 번째 대상부터는 진정한 실력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이전까지는 유명하고 밝은 대상이었으나 지금부터는 어둡고 찾기도 어려웠다. 시간을 잡아먹는 대상이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일까. 망원경을 목표지점에 겨누고 접안부를 들여다봤으나 목표한 천체가 보이지 않았다.
“어?”
당황한 순간 옆에서 심판의 목소리가 울렸다.
“중앙고! 네 번째 대상 성공!”
한쪽에서는 함성이 한쪽에서는 탄식이 돌아왔다.
당황한 마음을 재빨리 추스르고 최대우는 망원경을 꽉 거머쥐었다. 이렇게 밀릴 수는 없다.
다시 차분하게 천체망원경을 조작하여 네 번째 대상을 겨눴다.
“고려고! 네 번째 대상 성공!”
차이가 다소 벌어졌으나 최대우는 실망하지 않고 곧바로 다음 목표물을 향했다.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고 진정한 승부는 후반이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다섯 번째 대상도 상대가 빨랐다. 하지만 격차를 조금 좁혔다.
그리고 일곱 번째 목표물을 끝냈을 때 최대우는 다시 우위를 확보했다.
그를 응원하는 학생들의 외침이 천문대를 울렸다.
단지 저 녀석을 앞서기만 해서는 승리할 수 없다. 학교별 합산 시간에서 거의 1분가량 뒤져있기에 이를 만회하려면 대폭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최대우의 손이 움직이고 망원경이 정확하게 하늘을 향했다.
“고려고! 여덟 번째 대상 성공!”
마지막 두 천체는 상당히 고난도다. 평소 거의 관측하지 않는 작고 어두운 대상이다. 어두운 시골에서도 쉽지 않은 천체를 밝은 서울 하늘에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하지만 최대우가 누군가. 진정한 실력자라면 어려운 문제에서 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천체망원경을 휙 돌렸다.
운이 좋았다. 목표한 대상이 망원경에, 한 방에 정확히 들어왔다.
“고려고! 아홉 번째 대상 성공!”
“와우!”
예상외의 엄청난 속도에 감탄이 들려오는 순간 이미 최대우는 마지막 목표물 사냥에 뛰어들고 있었다.
가장 어려운 놈이라지만 울릉도에서 즐겨 봤던 대상이다. 남에겐 어려울지라도 그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순간 그의 손이 천체망원경에서 떨어지고 심판이 확인했다.
“고려고! 열 번째 대상 성공!”
상대는 아직 아홉 번째 목표물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패배 때문일까. 녀석은 평소라면 쉽게 성공했을 목표물을 버벅대며 헤매고 있었다.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중앙고 마지막 선수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 번째까지 성공했다고 심판이 알렸다.
이어서 종합 판정.
“합산 시간은 고려고 48분 36초! 중앙고 48분 39초로 고려고가 3초 앞섰습니다!”
“우와아아아!”
고려 과학고의 승리였다.
함성이 하늘을 흔들었고 출전 선수 다섯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대우야! 수고했다!”
윤수아마저 그들에게 뛰어들었다.
강우는 멀리서 얼싸안은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좋네.”
무덤덤한 혼잣말에 손차희가 옆에서 툭 쳤다.
“뭐가?”
“젊음이.”
“뭐야? 애늙은이 같이.”
핀잔을 주는 손차희를 무시하고 출전자들의 성적이 적힌 보드를 확인했다.
역시 가장 빨랐던 선수는 6분 11초를 기록한 최대우였다.
“대우가 천체관측대회 최우수선수가 되겠네.”
“실력이 압도적이니까. 별 보는 실력 하나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걸?”
“차희야, 넌 내일 수학 퀴즈 출전하지?”
고개를 끄덕이던 손차희가 반대로 물어왔다.
“너는 안 나갈 거야?”
“부르는 데가 없어.”
“나가기만 하면 올킬인데 왜지?”
아마 이 학교 모든 학생이 강우의 미출전을 아쉬워할 것이다. 오직 한 사람 강우만 빼고.
기쁨에 겨워 환호하는 최대우를 바라보다 강우는 천천히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띄엄띄엄 별들이 하늘에 흩어져 있었다.
인간에게 영감을 주며 수많은 과학자를 길러냈던 저 별이 지금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오늘 저 별을 관측한 학생은 앞으로 과학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아마 최대우는 그들 가운데 가장 뚜렷하고 넓은 길을 개척하겠지. 그리고 강우는 최대우를 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자신도 그 길을 개척하면서.
* * *
고중전 축제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운동장에는 두 학교 학생들이 모여 시끄러웠다.
양쪽의 체육복 덕분에 쉽게 진영이 구분됐다. 고려고는 연하늘색 체육복이었고 중앙고는 남빛 체육복이었다. 중간에 드문드문 섞인 흰색 체육복은 오늘의 심판관이자 학교 선생님이다.
어젯밤 벌어진 천체관측 대회에서 고려고가 이겼다는 소식에 고려고 학생들의 사기가 충만했다.
강우는 고곽천재와 함께 1학년 3반 자리에 서서 몸을 풀었다. 몸이 찌뿌둥했다. 어째 육체 나이가 정신 나이를 따라가는 기분이다.
“강우! 이리로 올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얀 체육복을 산뜻하게 입은 신새벽이 그를 불렀다.
“저요?”
“그래,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누가 있긴. 옆에 고곽천재를 비롯하여 학생들이 무수히 많은데. 저 선생님은 왜 자기네 반 학생을 부르지 않고 엉뚱한 반에 와서 자신을 찾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나도 같이 가줄까?”
최대우가 옆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어휴, 착한 녀석. 친구가 선생님께 끌려가는 고통을 같이한다니. 세상에 이렇게 착한 녀석은 없다. 실상은 신 선생님에게 반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강우는 손짓으로 승낙을 표시하고는 재빨리 신새벽에게 뛰어갔다.
신새벽이 최대우에게 미소를 날렸다.
“잘됐네. 대우도 오렴.”
신새벽을 따라간 곳은 식당이었다. 그녀는 식당 한쪽에 놓인 식수대 물통을 가리켰다.
“저 식수통 둘이 들어봐.”
“예?”
“학생들이 뛰다 보면 목이 마를 것 아냐?”
“허억!”
신새벽은 노가다 일꾼이 필요했던 거다.
그나마 힘 좋은 최대우와 함께 와서 다행이라 여기며 강우는 식수통을 들었다.
끙끙대면서 신새벽을 따라가던 강우는 문득 최대우의 화학 중간고사 성적이 궁금해졌다.
“대우야, 화학 점수 내기 이겼어?”
“어? 아니. 중간 못 넘었어.”
평균을 넘으면 신새벽이 사진을 준다고 했던가? 그 내기에서 이기려고 최대우는 정말 코피 터지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했나 보다.
“그래서 선생님이 입 싹 닦았어?”
“응. 점수 나쁘다고 안 주던데.”
“나쁜 선생님이잖아!”
둘이서 험담을 하고 있자니 앞서가던 신새벽이 홱 고개를 돌렸다.
“야! 내기 규칙이 그러면 안 주는 게 당연하지!”
갑자기 뻘쭘해진 최대우와 달리 강우는 떳떳하게 날을 세웠다.
“그래도 너무 하잖아요? 대우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약속은 약속이지. 정말 열심히 했는데 평균을 못 넘었어?”
싸늘한 신새벽의 말투에 강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봤다.
“응? 너 표정이 왜 그래? 좀 아니꼽다는 표정이다?”
“쌤! 그럼 저랑 내기해요. 똑같이.”
강우가 자신 있게 내기를 제안했다.
“너랑은 안 해!”
“예? 저랑은 왜 안 해요?”
“넌 진짜로 만점 받아버릴 거잖아?”
왜 그렇게 생각이 돌아가는지 모를 일이지만 만점을 의심하지 않는다니.
“너랑 내기하면 다른 걸로 하지, 그렇게는 안 해.”
딱 거절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신새벽의 뒷모습에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물통이 엄청 무겁게 느껴졌다.
* * *
강우와 최대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운동장에서는 체육대회 개막 선언이 있었다.
양쪽 교장 선생님이 번갈아 가며 훈화 말씀을 전달했다. 당연히 제대로 듣는 학생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당부가 이어졌다.
“모두 열심히 운동과 퀴즈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자이기 이전에 과학을 공부하는 동료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은 특별 퀴즈를 준비했습니다. 지금부터 문제를 알려드릴 테니 오늘 과학 대전이 끝날 때까지 답을 적어 제출하면 됩니다. 가장 근접한 답을 제출한 학생에게는 특별한 상품을 드립니다.”
“와아!”
학생들이 웅성댔다. 초등학교에서 종종 보는 보물찾기 같은 놀이였다. 과학고라 보물찾기가 퀴즈풀이로 대체됐다.
“고려 과학고에서 가장 높은 지점의 높이를 적어내세요. 피뢰침, 안테나는 제외이고, 운동장에서부터 높이입니다. 필요한 도구는 무엇이든 이용해도 됩니다. 과학실에 가면 기압계, 자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문제가 떨어졌다.
고려 과학고에서 높은 건물은 A동과 B동이다. 모두 5층이고 일반 건물보다 층고가 높다. 둘 중에 천문대 돔이 자리한 B동이 조금 더 높다. 옥상의 천문대 때문이다.
B동 옥상에는 두 개의 하얀 반구형 돔이 있다. 플라네타리움 돔이 더 크지만, 망원경의 시야 확보 때문에 천문대 돔이 더 높은 지점에 세워졌다.
즉 이 문제는 ‘운동장에서 천문대 돔 꼭대기까지의 높이를 구하라’로 바꿀 수 있다.
학생들의 머리가 재빨리 굴러갔다. 어차피 오늘 마칠 때까지이니 바쁘지 않다.
학생들은 이 특별 퀴즈의 의도를 의심하면서 높이를 잴 방법을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