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26화 (126/325)

제126화 연구 프로젝트 (1)

예전처럼 문제를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싸매던 강우는 문득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지금이라면 최대우도 풀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최대우가 풀지 못한 이유는 이와 비슷한 수준의 문제를 다룬 적이 없어서다. 일반물리학 책에서 관련 단원을 공부한 후 고민하다 보면 풀릴 가능성이 컸다. 그에게는 S급 재능이 있으니까.

그가 이 문제를 풀면 물리 이해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대우야, 이 문제 풀어볼래?”

“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최대우가 눈을 껌벅였다.

강우의 의도를 눈치챈 듯 윤수아가 옆에서 거들었다.

“대우야, 풀면 내가 빵 사줄게.”

“흐으, 갑자기 도전 의욕이 막 생기는데…….”

최대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한번 도전하겠다는 욕심이 가득했다.

“할리데이 책 있지?”

강우의 말에 손차희가 가방에서 물리 일반서를 꺼냈다.

강우는 관련 단원을 펴놓고 간략하게 기본 문제를 설명했다.

“……대충 이렇게 된 거니까 감이 오지? 이 문제는 이 원리를 조금 비틀어서 복잡하게 표현했을 뿐이야.”

실상은 중요한 핵심이 빠져있어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 갭을 메우려면 심화 전공서를 뒤져야 한다. 다만 그 전공서는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갖고 있을 수준이라 여기에 없다.

이곳에서 물리학 전공한 사람이라면…… 차도도 선생님이 있다.

“대우야, 풀고 있어 봐. 책 빌려 올 테니까.”

“담임 쌤이 학교에 있어?”

모두 눈이 동그래졌다. 오늘이 주말이니 선생님들이 학교에 있을 때가 아니다.

“오늘 오셨지. 담임 쌤도 프로젝트 때문에 바쁘시거든.”

강우는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났다.

* * *

B동의 상담실에는 차도도와 신새벽이 마주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차도도는 프로젝트 때문에, 신새벽은 논문을 연구하느라 주말에 학교에 왔다.

프로젝트를 고곽천재가 맡아서 수행한다지만 그렇다고 연구 책임자인 그녀가 학생들에게 모두 맡겨 놓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행정상으로는 그녀의 이름으로 제출하는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은 집에서 연구해도 된다. 하지만 학교에 오면 강우가 있으니 막힐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제는 강우와 엮여버린 상황이기에 학교에서 몰두하는 것이 더 편했다. 두 사람이 주말에도 학교에 나온 이유다.

강우가 상담실에 들어서자 두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했다.

“강우 왔어?”

“쌤이 열심히 하는지 감시하러 온 건 아니지?”

차도도와 신새벽의 반응이 미묘하게 다르다. 당연히 반가운 인사는 차도도다.

강우는 씨익 웃으며 노트북을 펼쳤다.

“담임 쌤에게 용건이 있어서요.”

차도도가 고민하던 자료를 덮어놓고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뭔데?”

“일단…… 열역학책 있어요?”

“교무실 내 자리에 있어. 왜?”

“그거 좀 빌려주세요.”

“가져가렴.”

“그리고…….”

최대우 블로그 참고도서를 손쉽게 확보한 강우는 노트북에 이 메일을 띄워 차도도에게 보여줬다.

“일전에…… 그 MIT의 요셉 교수에게 이 메일을 보냈다고 했잖아요?”

“응, 그랬지.”

그 이메일 내용을 차도도에게 설명해준 적도 있다. 차도도의 아파트에서 핵심내용을 설명하다가 강우는 얼떨결에 막힌 문제를 풀 열쇠를 찾아냈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뿌듯한 기분이 온몸을 달궜다.

“어제 답신이 도착했는데요…….”

차도도도 요셉 교수의 반응이 궁금했다. 과연 그 요셉 교수는 강우를 어떻게 평가하는 걸까? 고등학생이 제안한 연구 방향과 핵융합의 핵심 아이디어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물론 이런 의문은 순전히 그녀가 강우를 평가할 지식이 부족해서이기도 했다. 핵융합에서 차도도는 이제 막 초보적인 발걸음을 뗀 수준이니까.

강우는 노트북에 요셉 교수의 답신을 띄웠다.

- 강우 군, 강우 군의 메일을 받고 잠을 이루지 못했네. 강우 군이 보낸 내용과 아이디어는 최근에 내가 고민하던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주제였네. 그 문제는 일전에 작고한 한 핵융합 과학자가 연구하던 주제와 무척 유사하네.

- 나는 그 자료를 찾고자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었다네. 그런데 그분과 비슷한 수준의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니 무척 놀랐네. 그것도 고등학생이라니! 이게 가능한 일인지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네.

요셉 교수의 서신은 길었지만 핵심은 몇 가지로 요약 가능했다.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핵융합 연구를 해보자는 것.

어쩌면 미국 방산업체에 제안해서 연구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

현재 강우가 뚜렷한 실적이 없기에 논문 제출 또는 프로젝트 수행은 본인이 도와줄 수 있다는 것.

모두 강우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요셉 교수가 널 인정해준 거네?”

“그렇죠. 예전에 만났던 게 결정적이었어요. 그게 아니었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걸요?”

손강우의 죽음으로 요셉 교수가 국내로 들어와 하필이면 고려 과학고에서 강연했던 일이 강우에게 결정적인 도움으로 작용했다. 물론 강우가 그 기회를 잘 잡은 덕분이지만.

“본인이 도와준다는 것은…….”

“그건 제가 아직 실적이 없어서예요. 고등학생이 논문을 제출해봐야 받아줄 학술지는 없거든요. 우리도 요셉 교수를 끼는 게 편해요. 적어도 요셉 교수 이름이라면 학술지에 거의 프리패스이니까요.”

얼핏 요셉 교수가 강우의 논문에 무임승차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강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요셉 교수에게서 얻어낼 것도 많으니까.

“그럼 논문의 1저자가 요셉 교수가 되는 거야?”

“아뇨, 요셉 교수 이름은 논문의 마지막 3저자, 교신저자로 들어갈 거예요. 1저자는 선생님이고, 저는 2저자. 요셉 교수가 3저자이자 교신저자.”

강우의 설명에 차도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쨌든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1저자이다. 거기에 그녀의 이름이 아닌 강우의 이름이 들어가야 정상 아닌가.

“왜 내가?”

“그게 다 뜻이 있거든요? 고등학생이 1저자면 누가 그 논문을 제대로 보겠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잖아?”

“그래도 쌤은 좀 낫죠. 과학고 교사라 하면 학생보다야…….”

물론 학술지에서는 과학고 교사라도 연구자인 대학교수가 아니긴 마찬가지이지만 학교 선생님이면서 연구원인 사람도 있기에 낯설지는 않다.

차도도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난번에 보여드린 핵융합 기본자료 있죠? 우리가 앞으로 할 내용…… 그거 공부해보셨어요?”

“하긴 했는데…….”

강우는 차도도의 옆에 앉아서 이것저것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맞은편에 앉은 신새벽의 눈이 점점 동그래졌다.

지금 강우와 차도도를 보면 어째 두 사람의 신분이 완전히 바뀐 것 같다. 오히려 강우가 선생님이고 차도도가 학생인 분위기다.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이 장면이 어울린다.

‘그럼 나도 그런가?’

미처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강우가 그녀에게 논문을 골라주고 방향을 잡아주던 그때 다른 사람이 보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새삼 대학교수 강우가 낯설지 않다. 대학원생 신새벽도.

신새벽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한참 엿들었다.

열심히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차도도가 신새벽의 시선을 감지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어이, 차도도 학생, 열심히 설명 들어야지, 한눈팔면 쓰나?”

신새벽이 웃으며 핀잔을 줬다.

“무슨 소리야?”

“크, 안 되겠네, 학생이 산만해. 강우 교수님? 거기 한눈파는 학생 혼내줘야겠는데요?”

“푸하하!”

강우는 신새벽의 농담에 폭소를 터트렸다.

민망해진 차도도가 신새벽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거야.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 스승이지, 나이 많다고 스승 아니야.”

“누가 뭐라고 했나?”

차도도와 신새벽의 기 싸움이 벌어졌다.

강우는 두 사람의 어린애 같은 설전을 지켜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인지 학생인지, 아니 어른인지 애인지 다시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이해하셨죠?”

장황하게 설명한 강우에게 차도도가 알았다고 대답했다.

“요셉 교수가 우리 의견을 받아주었으니 지금부터 계획을 밀어붙여야 해요. 그날 제가 설명한 내용 있잖아요? 그게 우리의 첫 번째 핵융합 논문이 될 거예요. 일단 그것부터 먼저 정리해서…….”

강우의 지시에 다시 신새벽이 딴지를 걸었다.

“그날?”

“아, 제가 얼마 전에 선생님 댁에서 연구과제를 설명했거든요.”

“이야! 청춘남녀가 단둘이서 집에? 뭔가 수상한데…….”

“신새벽!”

차도도가 신새벽을 노려보며 급히 경고했다.

“킥킥, 뭔가 찔리는 게 있나 봐?”

“말을 말자, 말을.”

차도도가 그녀를 무시하고 다시 강우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강우는 핵융합 연구와 고속전철 과제연구에서 앞으로 할 일을 짚어준 다음 신새벽에게 자리를 옮겼다.

“자, 이제 신새벽 학생은 얼마나 했는지 볼까요?”

“킥킥, 저야 엄청 열심히 했어요. 강우 교수님.”

신새벽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강우가 앉을 의자를 빼주었다.

신새벽은 논문 초기라 차도도처럼 할 일이 많지 않다.

“지도교수님께서 논문 주제를 허락하신 거죠?”

“당연히 승인받았어. 다만 교수님께서 만만찮은 주제라고…… 자칫 졸업 때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시던데…….”

이미 강우가 짐작했던 바였다. 신새벽이 쓰려는 논문 주제는 핵융합과 관련되어 지도할 연구자가 없는 실정이다. 지도교수는 신새벽이 너무 거창한 주제를 잡았다고 걱정했을 것이다.

“언제까지 논문을 쓰실 건데요?”

“빠르면 1년 반, 늦어도 2년?”

신새벽이 희망 사항을 피력했다.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2년이면 강우가 이 학교를 졸업할 시점이다. 그때까지 끝내지 못하면 영원히 끝낼 수 없다.

강우는 신새벽에게도 지금 무엇을 중점으로 봐야 할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그 장면을 본 차도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신새벽이 왜 그런 농담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 지금 신새벽과 강우는 마치 학생과 교수 같았으니까. 아마 조금 전 그녀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강우 덕분에 그녀는 논문을 쓰게 됐고 신새벽도 마찬가지다.

지금 강우는 두 사람에게 제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도교수와 비슷한 존재로 탈바꿈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관계 아닌가. 이 변화의 결말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강우가 졸업할 때가 되면 이 관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신새벽은 논문을 끝내고 학위를 받은 후에도 계속 과학고 선생님으로 남아있을까?

그리고 자신은?

유명학술지에 논문을 몇 편 쓴 이후에도 계속 과학고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칠까?

그녀의 진정한 꿈은 학교 선생님이 아닌 과학자였지 않던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보면서 자신도 새로운 학문을 탐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지우지 못했었다.

슬금슬금 예전에 눌러놓았던 과학자의 꿈이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어쩌면 2년 후에는 지금과 많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도, 강우도, 신새벽도……. 고곽천재 제자들도.

강우와 고곽천재가 이 학교를 떠나고 나면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복잡한 감성이 머리를 채우자 차도도는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시계를 보니 밥 먹을 시간이다.

강우의 설명을 들으며 재밌어하는 신새벽을 보니 괜히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밥 먹으러 가자!”

“밥?”

그제야 생각난 듯 신새벽과 강우가 일을 멈췄다.

“흐음, 밥은 먹어야지. 좋아, 오늘 밥은 내가 산다.”

신새벽이 호기롭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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