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31화 (131/325)

제131화 축제 준비 (2)

당연히 강우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만화창작부? 재미있겠다.”

“그렇지? 우린 학교 유명인사를 그려서 축제 때 전시할 예정이거든.”

강우는 지금 이 사태를 모두 이해했다. 차도도와 신새벽은 학교에서도 워낙 잘 나가는 선생님이다. 두 사람의 외모와 인지도는 단연 투탑이니 유명인사에 빠질 수가 없다.

“오, 뭐야 잘 그렸네. 팔아도 되겠는데?”

“우리 애들이 실력이 좋거든.”

도화지에 드러나는 두 선생님의 얼굴이 흥미로웠다.

차도도는 그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가 살아있었고 신새벽은…… 동화 속의 마녀처럼 그려졌다. 물론 그녀가 평소 버럭하는 표정을 풍자한 것으로 마녀라도 늙은, 코 큰 마녀가 아닌 귀여운 어린 마녀였다.

강우는 고정된 듯 자세를 잡은 두 사람과 도화지의 그림을 번갈아 살피면서 웃음을 머금었다.

“어쭈? 강우! 웃는다?”

그를 발견한 신새벽이 강우를 향해 소리쳤다.

“쌤, 표정 바꾸면 안 돼요. 입 열지 마세요!”

학생들의 다그침에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어야 했지만. 옆에 있는 차도도도 웃음을 참느라 난리였다.

열심히 캐리커처 그림을 쳐다보던 강우는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도 아니고 학생인 그에게 만화창작부 학생이 세세하게 설명해줄 일이 전혀 없지 않은가.

이상한 기분에 강우가 옆의 학생을 돌아보자 그 학생이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눈치챘어?”

“뭘?”

“다음 타자는 너거든.”

생각지도 못한 말에 강우는 말을 잇지 못하고 버벅댔다.

“내, 내가 왜?”

“유명인사잖아?”

“내가 무슨 유명인사야!”

“고중전 수학 퀴즈 올킬! OX 퀴즈의 황제! 이런 사람이 유명인사 아니면 누가 유명인사인데?”

강우는 바로 반박할 수 없었다.

자신의 캐리커처가 축제 때 걸린다고 생각하니 왠지 엄청 쪽팔리는 느낌이다.

“하, 학생도 해당이야?”

“유명한 학생들.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는 다 들어가고…… 지난 고중전에서 활약한 사람도 들어가고…….”

“그럼 최대우도 들어가겠네?”

“대우? 아! 천체관측대회 1등이었지? 당연히 들어가지. 안 그래도 곧 찾아가려고 했어.”

흐음, 최대우의 외모적인 특징이야 두드러지니까 그리기 어렵지 않다. 최대우의 캐리커처가 저절로 연상되어 강우는 손으로 입을 막고 웃었다.

최대우 캐리커처까지 걸린다면 그도 거절할 명분이 없다.

그러는 사이에 두 선생님 캐리커처가 완성됐다.

“야! 너희들 나 놀리려고 마녀처럼 그렸지?”

완성된 그림을 본 신새벽이 방방 뛰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평소 이미지인데…….”

“뭐야?”

신새벽이 그림 도화지를 확 낚아챘다. 그녀가 눈을 부라리자 만화창작부 학생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눈치만 봤다.

보다 못한 강우가 나섰다.

“쌤, 그래도 잘 보면…… 예쁜 마녀처럼 생겼잖아요?”

“어…… 예뻐?”

갑자기 신새벽이 양처럼 순해졌다.

만화창작부 부장이 얼른 사태를 수습했다.

“쌤, 감사합니다! 다음 강우 학생! 앉아요.”

학생 한 명이 강우를 의자에 앉혔다. 바라보는 시선과 얼굴 방향을 딱 고정한 다음 움직이지 말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어? 강우도 그려?”

신새벽의 당황한 질문에 한 학생이 열심히 설명했다.

“아하! 저 자식은 마녀처럼…… 아니 마귀처럼 그려줘. 저 녀석 절대 안 착하거든.”

신새벽의 주문에 모두가 폭소를 터트렸다.

순식간에 강우의 캐리커처도 완성됐다.

강우의 얼굴은 별다른 특징이 없다. 다만 무난하게 잘생겼을 뿐이다. 얼굴만으로는 그가 괴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림도 비슷한 이미지로 완성됐다.

“푸히히히!”

완성된 캐리커처를 본 신새벽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반면 차도도는 그림을 칭찬했다.

“강우 얼굴 잘 나왔네.”

정작 본인인 강우보다 차도도가 만족을 표했다.

임무를 완수하고 거기에 강우 덕분에 한 작품 더 완성한 만화창작부 학생들이 주섬주섬 물건을 챙겼다.

“근데 이거 당사자에게 주는 거야?”

차도도가 캐리커처를 욕심냈다.

“축제 끝나면 드릴게요.”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나중에 캐리커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차도도와 신새벽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강우는 줘봐야 보관할 장소도 마땅찮았기에 주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 * *

“흐음, 그래서 눈 만드는 기구를 만들겠단 말이지?”

차도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실험실의 고장 난 장비를 조금 손보면…….”

스키장에서 인공눈을 만드는 제설기는 물 입자를 잘게 부수어 허공에 분사하는 원리다. 극도로 잘게 부수어진 물 분자가 영하의 날씨와 만나면 손쉽게 눈으로 바뀐다.

다만 이런 제설기는 날씨가 반드시 영하여야 하고 증발열을 이용하기에 습도도 낮아야 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반면 상온에서도 눈을 만드는 상온 제설기의 원리는 냉장고와 비슷하다.

기체의 단열팽창 원리를 이용한다. 외부와의 에너지 출입이 없는 상태에서 기체를 갑자기 팽창시키면 온도가 하강한다. 이 기체에 물 분자를 섞으면 순식간에 눈이 만들어져 외부로 뿜어지게 된다.

다만 냉장고와 상온 제설기의 가장 큰 차이라면 냉장고는 냉매를 이용하여 효율이 높지만 상온 제설기는 냉매를 사용할 수 없고 압축공기를 이용하므로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가능할까?”

“가능해요. 압축공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팽창하느냐와 여기에 물 분자를 어떻게 쪼개어 섞어주느냐가 핵심이니까요.”

“시간이 많지 않은 데다 기말고사가 걸려 있는데?”

“기말고사야 뭐…….”

무심코 대답하던 강우는 차도도와 신새벽의 싸늘한 눈빛과 만나야 했다.

곧바로 신새벽의 태클이 날아왔다.

“강우! 이번 시험에도 답지에 기둥 세우면 내가 그 답지 확 찢어버린다?”

정말 답지를 찢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 저 사람의 화를 돋우면 위험하니 고분고분 머리를 수그리는 강우였다.

“알았어요.”

“그래, 이번에 물리는 뭐…… 보나 마나 만점일 테고 화학도 만점이지?”

“그럴 리가요.”

부정하는 강우를 신새벽이 노려보더니 피식 웃었다.

열심히 갈굼을 당한 강우는 반격의 실마리를 찾았다.

“쌤, 그래서 이 저녁에도 퇴근하지 않은 이유가…….”

“공부하느라 그렇지. 네가 낸 숙제가 한둘이야?”

신새벽이 숙제가 많다고 투덜댔다.

선생과 제자가 역전된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2년 이내에 충분한 실적을 만들어내려면 그도 이 두 선생님을 다그칠 수밖에 없으니까.

차도도 또한 격하게 공감하는 표정이다.

“잘 안 풀리는 부분 있어요?”

“이 논문에서 말이야…….”

신새벽이 읽던 논문을 펼치고 질문을 퍼부었다. 플라스마 상태의 수소 화학반응을 연구한 논문으로 핵융합 연구에 필수적인 내용이다.

“아, 이건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담임 쌤도 같이 들으세요. 앞으로 필요하거든요.”

강우는 상담실 화이트보드에 수식을 쭉 전개했다.

동시에 핵심을 찌르는 강의를 시작했다.

차도도와 신새벽은 눈을 떼지 못했다. 강우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항상 놀란다. 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정확히 찍어 설명하기 때문이다.

논문은 교과서와 달리 완벽하게 정리된 이론이 아니다. 강우는 앞으로 더 연구할 부분, 논란이 있는 부분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 강의를 듣고 있으면 그다음을 연구해서 바로 논문 한 편을 쓸 수 있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몇 차례 이런 시간을 거치다 보니 차도도와 신새벽은 강우의 능력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덩달아 두 사람의 이해도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강우의 판단으로는 차도도는 핵융합 연구에서 석사 수준의 능력에 도달할 것으로 보였다. 신새벽도 수소 핵자의 반응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논문을 읽고 연구할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 볼 때까지 이 부분을 다시 풀어보시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해보세요.”

다시 숙제가 떨어졌고 차도도와 신새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핏 수업시간에 숙제를 받은 학생과 똑같은 표정이라 우습지만, 항상 저러다가도 숙제를 제대로 하기에 두 사람은 강우와 달리 성실한 학생이 확실하다.

아마 학창 시절에도 무척 착실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강우야, 고생했어.”

상담실을 나오는 강우를 향해 차도도와 신새벽이 고마움을 표했다.

* * *

이틀 후 오후 수업 시간에 강우는 난데없는 교장실 호출을 받았다.

수업을 쨀 수 있었기에 반 학생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교실을 나왔다.

대충 강우는 무슨 일인지 짐작했다. 아마 야구선수 공정혁의 방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교장실까지 불려갈 일이었던가?

쉬는 시간에 잠시 공정혁을 만날 생각이었던 그는 자신의 예상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침 졸린 사회 수업 시간이었으므로 어쨌든 수업을 빠질 수 있어 대만족이다.

교장실에 들어갔을 때 강우는 소파에 앉아있는 차도도를 발견하고 몸이 굳었다.

차도도가 왜 여기에 있지? 다른 문제 때문인가?

인자한 교장 선생님과 차도도 외에 낯선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한 사람은 그때 보았던 야구선수 공정혁이었고 한 사람은 대략 오십 대의 나이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DD 파이터즈를 상징하는 야구복을 입고 있었다.

“저 왔습니다.”

강우는 먼저 교장 선생님에게 머리를 숙였다.

백두섭이 차도도의 옆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강우는 두말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강우는 살짝 고개를 숙여 공정혁과 중년인에게 인사했다.

“강우야, 너 또 사고 쳤더구나?”

차도도가 질책인지 격려인지 모를 질문을 했다.

분위기를 보니 그동안 전후 사정을 파악한 모양이다.

그가 사고 친 일이라면 공정혁에게 새로운 변화구를 개발해서 전수한 것밖에 없었다.

“그럼 계속 말씀하시지요.”

백두섭의 신호에 공정혁과 함께 온 3군 홍 감독이 운을 뗐다.

“그래서 저희 DD 파이터즈에서는 공정혁 선수가 구사하는 새로운 변화구를 신중하게 접근했습니다. 우리는 두 부분에서 주목했지요. 하나는 과학적 이론을 이용해서 새로운 구종을 개발한 것과 다른 하나는 그 구종을 공정혁 선수가 예상외로 쉽게 익힌 부분입니다.”

강우가 들어보니 홍 감독은 그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투수가 새로운 구종을 장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몇 년이 걸려도 실패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투 피치 투수가 존재할 리가 없다.

공정혁의 자질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정혁이 기존에 익힌 변화구를 잘 파악해서 쉽게 익힐 수 있는 구종을 강우가 골라주었기 때문이다.

“야구선수가 아닌 사람이 이런 식으로 야구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스탯캐스트, 세이버메트릭스 같은 과학적인 접근이 야구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우와 같은 방식은 아직 없었다. 이런 새로운 현상을 받아들기는 야구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베르누이의 양력 이론을 적용한 것뿐입니다.”

강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홍 감독이 바로 손을 저었다.

“그런 과학적인 내용은 우리는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DD 파이터즈 구단에서 제안하고자 합니다. 일 년 정도의 기간에 현재 존재하는 구종의 과학적인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한 차도도가 질문을 던졌다.

“최종 목표가 뭔가요?”

“예를 들어 직구와 커브를 잘 던지는 어떤 투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 선수가 가장 쉽게 새롭게 장착할 수 있는 구종이 뭔지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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