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32화 (132/325)

제132화 축제 준비 (3)

이미 경험적으로 알려진 부분은 많다. 예를 들어 손가락이 길어야 포크볼을 던지기 유리하다는 식이다.

강우도 고개를 갸웃했다. 현실적으로 그 부분은 과학의 영역이라기보다 스포츠 경험의 영역이다. 그것을 경험이 일천한 강우가 해낼 방법은 없다. 하지만…….

“물론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비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 공정혁 선수의 경우를 보면…….”

“그건 과학을 적용해서 적당한 구질을 만들어본 건데요?”

강우의 반문에 홍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여러분께선 새로운 구질에 관심을 두셨지만, 저희는 조금 시각이 다릅니다. 새로운 구종을 개발하기도 어렵지만 실제로 그 구종을 익히기는 더 어렵거든요. 즉, 이른 시간에 공정혁 선수가 그 구종을 익혔다는 점에 무척 놀랐어요.”

“그건 선수의 자질이…….”

“물론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구단으로서는 한두 선수에게만이라도 적합한 새로운 구종을 장착할 수 있으면 만족합니다. 그 시도를 해보자는 거지요.”

강우는 홍 감독의 의사를 정확히 이해했다. 구단에 속한 투수 가운데 적당한 사람에게 새로운 구종, 혹은 기존 있는 구종을 적당히 골라서 장착할 수 있도록 구상해달라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한두 투수만 성공적으로 발전해도 대만족이다.

사실 대부분 투수는 이미 알려진 구종을 한 번쯤은 익히려고 시도해봤을 테니까 현실적으로 본다면 기존 구종을 약간 변형해야 한다. 여기에 과학이 필요하다.

“아, 당연히 그냥 해달라는 뜻은 아닙니다. 1년 정도 프로젝트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 카이스트 고속전철 프로젝트와 비슷한 방식이다.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우와 차도도의 눈치를 보던 홍 감독이 재차 권유했다.

“솔직히 실패해도 상관없습니다. 프로젝트 금액은 구단 측에서 보면 크지 않거든요. 선수 한 명에 수십억을 투자하는 곳이 프로구단입니다. 우승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지요. 저희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공정혁 선수를 보면…… 성공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요구사항을 모두 들었다. 이제 강우가 결정해야 할 때다.

백두섭을 비롯하여 차도도와 홍 감독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 모였다.

강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희 선생님께서 함께하신다면 해보고 싶습니다.”

강우는 당연하다는 듯 차도도를 끌어넣었다.

차도도는 강우의 내심을 바로 이해했다.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시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아시다시피 학생이 프로구단과 프로젝트 계약을 맺기는 어렵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학생이 공부 외의 일에 과다하게 참여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다만…….”

“필요하다면 프로젝트 금액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선생님께서도 같이 참여하시니 올려야겠군요.”

홍 감독에게서 더 좋은 조건이 나왔다.

언급된 구체적인 금액은 학생인 강우에게 상당히 큰 금액이었고 교사인 차도도에게도 부업으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차도도는 백두섭에게 눈짓으로 가능성을 타진했고 백두섭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문서화해서 계약서와 함께 보내주시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차도도의 결정으로 회의가 끝났다.

분위기가 자유로워지자 강우는 바로 공정혁에게 물었다.

“서클 커브 쓸만하던가요?”

“그거 무척 위력적이야. 내가 입단 테스트에서 무려 삼진만 7개를 잡았는데…… 1군 선수들도 꼼짝 못 하더라고.”

“그건 처음 보는 구질이라 그렇겠죠.”

“그렇긴 해. 하지만 실전에서도 꽤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서클 커브 덕분에 직구와 커브 구질이 같이 살아났거든. 난 내년을 무척 기대하고 있어.”

예전에 풀이 죽었던 표정과 달리 웃음이 가득한 공정혁의 얼굴은 보기 좋았다.

프로젝트 계약이 성사되면 비시즌 기간에 구단을 방문해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로 약속했다.

홍 감독과 공정혁이 떠나고 학교 측 관계자만 남게 되자 백두섭이 허허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강우 학생이 또 한 건 했군요.”

“재학 중에 프로젝트를 두 건이나 하는 경우는 처음이죠?”

차도도의 자랑에 백두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강우 학생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에 개입한 선생님도 차 선생이 처음입니다.”

“저야…… 강우 덕분에…….”

백두섭의 시선이 머뭇거리는 강우에게 옮겨졌다.

“강우 학생은……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있어 보이는데?”

강우는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프로젝트 연구를 계속할 거예요. 제 목표는 미국에서도 프로젝트를 따오는 겁니다.”

“하하.”

상식적으로 가능할 리 없는 강우의 대답에 백두섭은 할 말을 잃었다.

“프로젝트 두 개로 받는 월급이…… 이젠 웬만한 직장인 수준 아닌가요?”

“저희 집이 좀…… 가난하거든요.”

이럴 때는 가난한 집이 변명거리가 된다. 사실 지금부터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프로젝트 실적이 문제다. 특히 핵융합 쪽 프로젝트는 꼭 필요하다. 훗날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그렇기에 강우는 당분간 프로젝트 사냥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국내든, 국외든.

어리둥절한 백두섭에게 차도도가 간략하게 설명했다.

“강우가 사회 배려대상자 전형으로 들어왔어요. 홀어머니에, 집도 시골이고…… 물론 편견인 건 압니다만…….”

백두섭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강우 학생에게는 달리 제약을 걸지 않도록 하지요. 하지만 강우 학생, 프로젝트에 치중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하면 오히려 소탐대실의 위험이 있습니다. 알죠?”

“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물론 빈말은 아니었다. 연구도 공부니까. 단지 내신과는 점점 멀어질 듯하지만.

회의가 끝나자 강우는 차도도와 함께 교장실을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차도도가 속삭였다.

“교장 선생님께서 무척 잘해주시는 거야. 사실 금지해도 항의할 수 없는 문제거든.”

“알아요.”

“강우만 믿으면 되는 거지? 난 야구 잘 모르는데.”

“당연하죠.”

“조만간 야구단 구경해보게 생겼네. 잘생긴 야구선수들도 많으려나?”

강우는 차도도의 옆구리를 강하게 쿡 찔렀다.

차도도가 빙그레 웃었다.

“농담이야.”

B동 앞까지 함께 온 차도도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수업 들어가렴.”

차도도가 물리 강의실로 사라졌다.

강우는 그 자리에 서서 차도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옆구리를 찌른 것은 충동적이었다. 왜 찔렀는지 그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가 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차도도를 엮고 싶다. 그녀와 많은 부분에서 엉켜있을수록 그녀와의 인연이 쉽게 깨지지 않을 테니까.

올해가 지나면 차도도의 담임 역할도 끝이다. 내년에도 수업에 들어올지 알 수 없으나 올해만큼 가깝게 지내긴 어렵겠지. 2년이 지나 졸업하게 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계속 고려 과학고에 선생님으로 남을 테고 그는 미국으로 유학 갈 확률이 높으니까. 길어도 불과 3년짜리 인연인가.

괜히 마음이 심란해진 강우는 발길을 돌렸다.

“수업은…… 째 버려야지.”

이런 기회도 흔치 않으니까.

* * *

기말고사가 다가올 때쯤 강우는 한국 수학 올림피아드 주최 측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다수의 수학 관계자 추천으로 KMO 1차 및 2차 시험 통과 자격을 수여하므로 내년 초에 한국대에서 준비한 수학 올림피아드 겨울학교에 입학하라는 통지였다.

교내 경시에서 1등을 차지하며 우여곡절 끝에 받은 통지서였다. 사실상 겨울학교를 무난하게 통과하면 최종시험을 볼 자격을 주겠다는 의미다.

내년에 국가대표를 뽑는 최종시험을 통과하면 여름에 개최될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를 대비한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된다.

지난 1차 시험을 놓쳤던 강우로서는 최선이었기에 만족했다.

“강우야, 축하해!”

윤수아를 비롯해 모두가 그를 축하해줬다.

새삼 축하받을 일인지 의문이었으나 감사히 받았다.

“차희야, 너도 겨울학교?”

“가야지. 난 2차 시험까지 통과했으니까.”

얼마 전에 손차희는 KMO 수학 올림피아드 2차 시험을 통과해서 겨울학교 입학자격을 취득했다. 손차희의 실력이라면 당연한 결과였다.

“유성이도?”

“유성이는 올해 국가대표 상비군이라 겨울학교는 자동으로 입학 자격이 있어. 1학년 중에는 이민찬도 합격했어.”

손차희가 그간 올림피아드 상황을 쭉 설명했다.

강우는 1차에서 떨어졌기에 정작 관심이 없어 손차희가 2차 시험을 친 것조차 몰랐다.

고곽천재에서 지난 여름학교에 다닌 사람은 손차희 혼자였는데 이번 겨울학교는 두 사람이 다니게 됐다.

이때 최대우가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나도 물리 겨울학교에 가기로 했어.”

물리는 별도의 시험 대신 온라인 교육과 평가로 겨울학교 입학 대상자를 뽑았다. 최대우는 성실하게 숙제를 해냈기에 당당하게 통과했다.

“그럼 대우도 겨울방학 때 한국대에 다니겠네.”

홀로 갈 곳을 잃은 윤수아가 한껏 부러워했다.

그런데 정작 최대우의 표정은 기쁘다기보다 울상이다.

강우의 물음에 최대우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게 말이야, 겨울방학이 되면 학교가 문을 닫잖아? 당연히 기숙사도 폐쇄되고. 갈 곳이 없어.”

“아!”

강우도 그제야 사태를 깨달았다.

예상치 못한 문제였다. 서울 집값이 비싸다 보니 달리 머물 하숙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데다 부모님들도 고등학생 혼자서 서울에 머무른다면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우리 둘이 고시원이라도…….”

그나마 고시원이 싸긴 하지만 아무래도 어린 학생이 지내기에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학교에 말하면 기숙사 쓰게 해주려나?”

그렇다고 해도 식사가 문제였다. 학교 주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운다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 세끼를 그런 식으로 버티기는 어려웠다.

“아마 안된다고 할걸……?”

“하아!”

한숨을 푹푹 쉬던 강우의 시선이 두 여학생을 향했다.

“혹시……?”

손차희와 윤수아가 후다닥 손을 저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담임 쌤한테 부탁해볼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강우는 교장 선생님께 일단 기숙사에서 지내는 걸 부탁해보기로 했다. 한국대 겨울학교는 2주간이라 기간이 길지 않으니 어쩌면 허락해줄지도 몰랐다.

* * *

수요일 오후는 과제연구의 날이다.

강우는 과제연구에 매진하는 대신에 담임의 허락을 얻어 기계 가공 업체에 들렀다가 학교로 돌아왔다. 제작 의뢰한 제설기 부품을 찾아온 것이다.

이런 일은 손강우 시절 석사과정을 겪으면서 무수히 많이 해 봤었다.

이론 물리학 쪽인 그와 달리 실험실에는 실험 물리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도 많았다. 석사과정 말단일 때는 그가 업체를 오가며 부품 제작을 의뢰하고 찾아오기도 했다.

당시에 알아둔 여러 업체가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부품 제작을 완수할 수 있었다. 다만 부품 수가 많고 무거워서 들고 오는 과정이 꽤 험난했다.

강우는 부품이 든 꾸러미를 교문 앞에 놓아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침 저쪽에서 바쁘게 오가는 고현성이 보였다.

“어이! 브라더!”

강우는 고현성의 평소 말투를 흉내 내어 그를 불렀다.

본인을 부른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는지 고현성이 그를 발견하고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이리로 와봐! 이거 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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