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과학 축제 (2)
연극반의 공연 ‘뉴턴 일대기’는 이날 두 차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연극반 학생에게 공연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했었기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학교가 붐비는 정도로 보아 관객이 몰릴 오후 공연이 아닌 오전 공연을 택했다.
윤수아가 친구들을 공연장인 강당으로 데려갔고 강우도 그녀와 함께 객석에 자리 잡았다.
평소와 달리 강당의 단상에는 커다란 암막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연극 자주 봤어?”
옆에 앉은 윤수아가 물었다.
“연극?”
본 적이 있을 리가. 손강우 시절에도 연극은커녕 영화도 보러 가기 힘든 생활을 했다.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니까.
강우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윤수아가 미안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
“아! 시골이었지.”
“거의 본 적 없어. 티비에서 연극은 이렇게 한다고 본 정도?”
그런 실력으로 수학여행 때와 오늘 연극의 극본을 썼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였으나 윤수아는 강우니까 이해하기로 했다. 새삼 강우의 재능이 수학이나 과학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이해했다.
“보면 재밌어. 애들이 의외로 연기 잘하거든. 물론 네가 극본을 썼으니 당연히 재밌겠지만.”
수학여행 때 강우는 직접 배우로 뛰느라 정신없었다. 그 바람에 연극 감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은 관객석에서 편히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대를 부풀렸다.
시간이 되자 막이 오르고 연극반의 반장으로 보이는 학생이 혼자 앞으로 나와서 간략하게 연극 내용을 설명했다.
“오늘 연극 제목은 ‘뉴턴 일대기’입니다. 천재였던 뉴턴의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로 맹활약했던 중년, 유명인사의 삶을 살았던 말년에 이르기까지 위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해보겠습니다. 연극 대본은 1학년 3반 강우 군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강우의 이름이 호명됐다.
주변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갑자기 쏟아져 강우는 잠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저렇게 이름 넣지 않아도 되는데…….”
“네가 힘써준 덕분에 연극이 훨씬 재밌어졌다고 하더라. 그러니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극본을 넘기고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배우들이 제대로 소화했을지 염려되었는데 윤수아의 말을 들으니 별문제 없는 모양이다.
조명이 나간 후 배경 음악 소리가 들리고 서치라이트가 무대의 한 부분을 비췄다.
연극이 시작됐다.
흔히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를 꼽으라면 세 사람을 지목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뉴턴, 아인슈타인.
이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번영을 이룩했다. 이 세 사람 가운데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뉴턴이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근대와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물리 법칙을 정립했다. 비록 이 법칙들이 현대에 들어 미시 세계나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는 맞지 않는다지만 지금도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과학자보다 뉴턴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연극의 시작은 뉴턴의 탄생부터.
캐럴이 흐르는 크리스마스이브. 뉴턴이 태어났다. 무대에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어린아이 인형을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뉴턴 생일이 크리스마스야?”
“이브 밤이야.”
신기하다는 듯 묻는 윤수아에게 강우는 조용히 대답해주었다.
비록 홀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난 날만 보더라도 뉴턴은 특별한 인물이 될 조짐이 있었다.
뉴턴의 어린 시절이 잠시 나오더니 사과나무 아래에 누운 뉴턴이 등장했다.
소품으로 만든 나무에 사과가 하나 달려있고 뉴턴으로 분장한 녀석이 그 아래에서 사색에 잠겨 있다.
“하아! 학교는 언제 돌아가지?”
18세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했던 뉴턴은 페스트가 퍼지자 고향에 돌아왔다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잠을 즐겼다.
무대 위에서는 잠을 자던 녀석의 머리 위로 사과가 떨어졌다.
“커윽! 어느 놈이야?”
비명을 지르고 깨어나서 굴러가는 사과를 손에 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뉴턴이 사과와 사과나무를 한참 번갈아 보며 사색에 잠겼다. 바로 만유인력을 깨닫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인류의 3대 사과가 뭔지 알아?”
윤수아가 그에게 질문했다.
강우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거야……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아냐, 빌헬름 텔의 사과, 비틀즈의 사과, 애플사의 사과!”
윤수아의 재치 있는 대답에 강우는 한바탕 웃었다.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는 사과가 자주 나온다.
어쨌든 진위를 알 수 없으나 뉴턴의 사과는 인류를 과학의 혁명으로 이끌었다.
이어서 뉴턴의 3대 업적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씩 등장했다.
그 장면을 감상하면서 강우는 천재란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뉴턴의 3대 업적은 중력, 미적분, 빛의 분산이다.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에 소개된 운동 3 법칙은 갈릴레이와 케플러를 거쳐 뉴턴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다. 가장 유명한, ‘F=ma’라는 수식을 창안한 사람이 바로 뉴턴이다.
‘지금의 나는 과연 뉴턴에 필적할 천재인가?’
강우는 이전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과감한 생각에 잠겼다. 손강우 시절이라면 대천재 뉴턴과 비교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 지금도 그의 천재성은 기껏해야 학교 내신 시험에서 조금 특출한 성과를 드러내는 정도다. 수학 문제를 잘 푼다고 천재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현재까지의 성과만으로 그를 역사 속의 천재 과학자들과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우는 최근 들어 자신의 천재성이 공부의 영역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연구의 영역에 진입하고 있으며 응용력, 이해력 외에 창의력까지 확연하게 증가했음을 깨닫고 있었다.
아마 이러한 천재성 발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화하고 상온핵융합 연구에서 그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상온핵융합이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해방할 궁극적인 기술인 만큼 정말 이 기술을 현실화한다면 그때는 역사상의 천재과학자와 나란히 놓아도 되지 않을까.
가슴이 뛴다. 눈 앞에 펼쳐진 연극, 뉴턴의 일대기가 동류의 천재로서 감동을 준다.
‘천재로서의 삶에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이다!’
이 연극이 그에게 주는 교훈이었다.
마도환을 향한 복수에 집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더 큰 시각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어느덧 연극은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논쟁, 훅과의 힘의 논쟁으로 이어졌고 뉴턴이 훅에게 쓴 편지의 구절이 소개되고 있었다.
-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은 선대 과학자들의 영향력을 거인으로 표현했다. 어쩌면 지금 강우도 뉴턴, 아인슈타인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진리라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당에 울려 퍼지는 저 한 마디에 강우는 과학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이어서 1년간 정치인으로 생활했던 에피소드와 주식 거품으로 인한 파산, 연금술에 집착한 뉴턴의 가려진 일화가 소개됐다.
연극의 마지막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뉴턴의 장례식으로 끝났다.
-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잠겨 있었는데, 신이 ‘뉴턴이 있으라!’고 하자 세상이 밝아졌다.
장례식에서 알렉산더 포프가 인용했던 이 구절이 강우의 마음을 거세게 울렸다.
연극반의 ‘뉴턴 일대기’는 강우만이 아니라 다른 관중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과학고 학생들은 뉴턴이라는 천재를 다시 보게 됐다. 막연히 알던 뉴턴을 더욱 인간적으로 보게 됐고 인류사에 기여한 뉴턴의 업적을 통해 자신도 해야 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것은 강우가 평소 존경하던 뉴턴의 일대기에 과학자로서의 사명과 감동을 교묘하게 집어넣어 대본을 작성한 결과였다. 그의 의도는 대성공이었고 연극이 끝났을 때 모두가 감동의 박수로 환호했다.
“아! 대단하다!”
윤수아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우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연극반 애들 연극 잘하네.”
“그 말이 아니라…… 내용이 끝내준다고. 어떻게 과학 연극이 이렇게 감동을 줄 수가 있지?”
“응?”
“이건 강우 네가 쓰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결과가 그렇게 되나? 물론 그도 조금은 이 연극의 마지막을 이런 감동으로 유도하긴 했다.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강우와 달리 윤수아는 불만 있는 표정으로 무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런데…… 무대 효과가 너무 단조롭지 않아?”
그럭저럭 소품을 준비했지만 연극 전용 무대가 아니고 강당이다 보니 조명을 비롯하여 효과에 한계가 많았다.
“좋은 내용을 무대 효과가 망친 느낌이야.”
“뭐, 그렇게까지는…….”
윤수아가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를 노려봤다.
“강우야, 오늘 저녁 축제 무대에 사용할 기자재를 제작했다며?”
“그거? 고현성을 좀 도와주려고…….”
“차희한테 다 들었어. 그거 이 연극에서 쓸 수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의견이었다. 딱히 못 쓸 것까진 아니지만 그러다 괜히 연극을 망치면…….
“아직 오후에 공연 한 번 더 있거든? 그때는 방금보다 더 잘해야지. 이왕 대본을 도와준 김에 끝까지 도와주자, 응?”
윤수아의 간곡한 부탁에 강우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려면 점심때 손 좀 봐야 하는데…….”
“내가 할게. 차희도 종종 도왔다며?”
윤수아가 자기 일도 아니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면 해줄 수밖에 없다. 평소 윤수아에게 받은 이런저런 도움을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수아가 벌떡 일어섰다.
“그럼 내가 미리 연극반에 말해 둘게. 밥 빨리 먹고 물리실험실로 가면 되지?”
“그래, 바쁠 것 같아.”
강우는 실험실에서 만든 장비로 어떤 효과를 넣을지 머리를 굴렸다.
* * *
오후 공연은 오전 대비 훨씬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다.
관람객 비율도 변화가 일었다. 학교 내 학생보다 외부인의 수가 더 늘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강우는 윤수아와 그 친구들과 함께 물리실험실에서 준비했던 여러 장비를 옮겼다.
이상한 장비에 눈이 동그래진 연극반 학생들에게 윤수아가 맡겨두라며 호언장담했다.
“너도 모르잖아?”
강우가 이상하다고 묻자 윤수아가 당당하게 말했다.
“난 강우를 믿거든.”
믿을 놈이 따로 있지. 강우는 혀를 차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그럭저럭 친구에게 믿을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니까.
막이 올랐다.
연극 내용은 첫 공연 때와 같았다. 다행히 극본을 쓴 탓에 모든 순서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어 강우는 어느 순간에 어떤 효과를 넣을지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먼저 뉴턴이 태어나는 크리스마스이브 밤.
“눈! 크리스마스엔 눈이 내려야 제맛이지!”
물론 이곳은 실내라 그가 만든 상온 제설기를 사용할 수 없다. 실내 온도가 높아 효과가 제한적이기도 하고 눈이 내리면 무대를 물바다로 만들 위험도 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썼다.
“서큘레이터 준비! 종이 눈은?”
무대 구석에서 강우와 윤수아가 손을 맞췄다. 실제 눈 대신에 흰 종이를 자른 조각으로 대신했다. 이 조각은 학교에 놀러 온 윤수아의 친구들이 작업해준 덕분에 순식간에 준비할 수 있었다.
강우가 서큘레이터 스위치를 올리고 윤수아가 손으로 종이 눈을 집어 한 움큼씩 뿌렸다.
무대 위에 눈이 내리는 듯 수많은 종잇조각이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그럴듯하네.”
확실히 오전 공연에 비하면 분위기가 살았다.
“드라이아이스!”
뉴턴이 사과를 잡고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무대 바닥으로 드라이아이스 연기를 뿜어냈다. 드라이아이스는 물과 만나면 기화하면서 연기로 바뀌기에 무대 효과를 내기 가장 쉬운 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