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38화 (138/325)

제138화 과학 축제 (4)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은 축제를 맞아 뜨거웠다.

신문반에서 순간순간 축제의 주요 소식과 이슈를 게시판에 올리고 학생들의 반응이 댓글을 장식했다.

고현성과 손차희의 발라드 합창은 단연 화제였다.

- 3반 파이팅 : 역시 고현성과 손차희다! 차희는 천사야 천사!

- 연애박사 : 둘이 사귀나?

- 수학좋아 : 현성이가 차희한테 차였다던데? ㅋㅋㅋ.

- 여신만세 : 손차희 끝내주더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이유가 있어. 오늘 드레스 입었으면 완전 연예인이었음.

- 고곽찌질이 : 눈 누가 내린 거임?

- dreamer : 인공눈? 강우랑 고현성이 고생했지.

- 고곽찌질이 : 이제는 눈도 만들어? 어이가 없네

- 상남자 : 차희 내꺼.

- Newton : 선 넘네. 그러다 차이면 눈물 나지.

손차희와 고현성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윤수아의 다그침에 강우도 휴대폰에서 댓글을 확인했다.

둘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이상한 소문이 날 것 같지는 않다. 평소 손차희가 남학생들과 알게 모르게 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손차희와 친한 남자 사람은 같은 조인 강우와 최대우가 전부였으니까.

“이렇게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건가?”

“그렇겠지?”

강우는 맑은 하늘에 뜬 몇 개의 별을 올려다보며 일 년을 되새겼다.

오늘 같은 날 정말 눈이 내리면 더 좋았으려나?

어쨌든 축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못 했으나 연극반과 고현성의 부탁을 들어주며 나름 좋은 추억을 쌓았다.

“난 친구들 배웅하러 갈게.”

윤수아가 먼저 사라지고 최대우도 할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축제가 파하는 분위기다.

홀로 남은 강우는 캐리커처 작품을 떠올렸다.

“캐리커처를 본인에게 준다고 했었는데…….”

마다할 그가 아닌지라 얼른 전시장으로 뛰어갔다.

예상대로 전시장에는 만화창작부 학생들이 전시 판넬을 정리하고 있었다.

“강우? 이거 가져갈 거야?”

만화창작부 학생이 강우의 판넬을 가리켰다.

“응, 가져가야지. 고마워.”

모델이 된 보답으로 캐리커처를 공짜로 얻으면 많이 남는 장사다.

자신의 캐리커처를 받아든 강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차도도 캐리커처가 있었는데…….

역시 저쪽에서 차도도와 신새벽이 각자의 캐리커처 판넬을 받고 있었다.

강우는 얼른 그쪽으로 뛰어갔다.

“강우야! 인공눈 멋지더라.”

“너! 글리세린 오일 얼마나 썼어?”

차도도와 신새벽이 그를 환영했다.

“급조해서 만들었는데 괜찮았죠?”

강우는 어깨를 으쓱대며 두 사람에게 감사했다. 그에게 실험실을 내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을 마술로 바꾸는 녀석은 처음 봤어.”

신새벽이 툴툴대며 웃었다.

“오일은 다시 채워 놓을게요.”

“됐다. 차라리 벼룩 간을 빼먹지.”

무대 효과 장치를 만드느라 강우가 사비를 많이 썼다는 사실을 알기에 두 사람은 닦달하지 않았다.

“쌤, 그 캐리커처 저 주시면 안 돼요?”

“왜?”

“기념으로 간직하려고요.”

머뭇거리는 차도도와 달리 신새벽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차 선생님, 그거 주면 큰일 나요. 강우라면 벽에 걸어놓고 다트 던지기 연습할 게 뻔해.”

“컥!”

아무리 그래도 감히 스승의 얼굴에 다트를 던질까. 강우는 신새벽에게 눈으로 경고하고는 다시 간청했다.

“어디에 둘 건데?”

“기숙사에 걸어야죠.”

“그 좁은 곳에?”

기숙사는 공간이 좁은 데다 방학하면 비워야 하기에 결국은 집에 가져가야 했다. 그런데 집에 두면 다시 가져오기 쉽지 않고 사실상 두고 보기 어려웠다.

강우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도도의 캐리커처를 꼭 간직하고 싶었다.

고심하던 차도도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강우야, 네 캐리커처를 나한테 주면 어떨까? 둘이 나란히 걸어두면 멋있을 것 같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타협안이다. 엄밀하게는 타협안이라기보다 캐리커처를 빼앗기는 것이긴 한데……. 왠지 두 캐리커처가 나란히 걸린 장면을 보고 싶기도 했다.

“쌤은 어디에 두시려고요?”

“벽에 나란히 걸어두게.”

차도도가 강우의 판넬 옆에 자신의 판넬을 나란히 놓았다. 두 캐리커처 얼굴이 서로를 쳐다보는 정겨운 장면이 그려졌다.

“이야! 어울린다.”

신새벽이 깔깔대며 놀렸다.

차도도의 집은 넓으니까, 벽에 여분도 많으니까 판넬 두 개를 거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그럼 저는 못 보잖아요?”

“가끔 우리 집 놀러 오잖아?”

차도도의 집에 자주 놀러 갈 생각이긴 하다. 겨울방학이 되면 이런저런 핑계로 들를 일이 있을 것 같다. 캐리커처를 두면 그 핑계로 한 번 더 들를 수 있고.

생각할수록 나쁘지 않았다.

“그럴게요. 양보하죠. 대신에…….”

“대신에?”

“다음에 쌤도 양보해요.”

“알았어. 뭔지 모르겠지만.”

차도도가 흔쾌히 웃으며 판넬을 받았다. 좋아하는 그녀를 보니 강우도 마음이 뿌듯해졌다.

옆에서 신새벽이 강우를 쿡 찔렀다.

“강우야! 내 캐리커처는 안 필요해?”

신새벽 캐리커처도 꽤 멋있게 나왔지만 아쉽게도 걸어둘 공간이 부족하다.

“안 필요한데요?”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강우를 향해 신새벽이 벌컥 소리를 높였다.

“뭐야? 필요 없어? 너! 사람 차별하니?”

“원래 사람마다 다른 거예요.”

“으윽! 안 되겠다. 오일값 청구해야지.”

“그럼 나는 막 굴려야지. 어이, 대학원생 신새벽!”

졌다고 웃으며 신새벽이 한발 물러섰다.

“두고 보자! 강우!”

신새벽이 그에게 손을 흔들고는 저쪽으로 사라졌다.

차도도와 단둘이 남은 강우는 교정을 걸었다. 주변에 분주하게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나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방학 중 기숙사 사용을 허락하셨어.”

한국대 겨울학교 기간 동안 서울에서 지낼 곳이 마땅찮았는데 다행이었다. 여차하면 고시원이라도 들어갈 판이었으니까.

“방학 내내요?”

“아니, 겨울학교 기간만.”

그렇다면 2주간이다. 긴 방학에 비하면 짧지만 그래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신입생 예비입학기간에도 가능해. 그때는 식당에서 밥도 먹을 수 있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최대한으로 배려하려는 교장 선생님의 의지가 엿보였다.

그렇다면 방학 기간의 거의 절반이 대충 해결된다. 나머지 기간에는 집에 내려가 있을 테니 실질적으로 잘 곳이 필요한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그때는 또 수가 있겠지.

“쌤, 혹시 짐을 물리실험실에 가져다 두어도 괜찮을까요?”

이불을 포함한 모든 짐을 집으로 보냈다가 가져왔다가 하려니 앞이 깜깜하다. 그 고충을 알기에 차도도도 승낙했다.

“그러렴. 어쩔 수 없지. 단 이건 너에게만 몰래 허락하는 거야.”

“대우도 있는데요?”

“그래, 대우까지.”

다행히 겨울방학 준비가 대충 됐다. 지난 여름방학과는 달리 이번 겨울방학은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판넬은 제가 들어드릴게요. 일단 물리실험실로 가져가실 거죠?”

강우는 차도도의 손에서 판넬을 빼앗았다.

무거운 짐을 자진해서 들겠다는 강우의 제안을 기껍게 받아들이던 차도도는 돌연 미간을 찌푸렸다.

“강우야, 그런데 제설기랑 포그머신은 치웠어?”

“으악!”

그제야 강우는 무대 주변에 버려둔 각종 장비가 생각났다.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이 흩어질 때 그도 무심코 이곳으로 와버렸다.

“어휴, 알았다. 내가 도와줄게. 그거 하나 못 도와주겠니.”

본의 아니게 차도도에게 일을 시키게 됐다.

* * *

마지막 마무리는 항상 바쁘다.

손차희는 그간 행한 고속전철 연구를 정리하여 과제연구 보고서를 꾸몄다. 강우는 이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검토한 다음 제출했다.

카이스트에 보고할 중간보고서의 원본이었다.

강우는 고곽천재와 함께 수행한 이 보고서 외에 별도의 논문을 하나 마련했다.

그와 차도도의 이름으로 작성하는 이 논문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그가 노리던 핵심이다. 메일로 카이스트에 보낸 이 논문 초안은 한태규의 승인을 받으면 추가 작업을 거쳐 물리학회에 제출될 것이다.

이 논문은 그와 차도도의 이름을 학계에 드러내는 첫 번째 작업이다.

이로써 아직도 고생하고 있는 다른 조에 비하면 수월하게 과제연구 보고서를 끝낼 수 있었다.

다만 강우에게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바로…….

“독후감은 어떻게 쓰는 거야?”

헤매고 있는 강우에게 윤수아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으이그, 지난 학기처럼 써내면 되지.”

“그때 걸렸는데? 또 베끼면 퇴학당할지도 몰라.”

강우는 1학기 때 독후감상문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베껴 써냈다. 당연히 바로 걸렸고 경고를 받았다.

“그럼 직접 써야지.”

“책을 읽었어야…….”

첩첩산중을 걷는 기분에 강우는 도움을 요청했다.

보다 못한 윤수아가 나섰다.

“그럼 내꺼 보고 적당히 짜깁기해. 그대로 복붙하면 또 걸리니까 조심하고.”

윤수아가 메일로 독후감을 보냈다.

윤수아는 천사다. 이럴 때는 손차희보다 훨씬 예쁘다.

“살았다! 고마워!”

강우는 고마움을 표할 틈도 없이 재빨리 작업을 시작했다.

손차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여유로운 편이야. 다른 조는 과제연구가 걸린 데다 빠진 실험 리포트가 많아서 죽겠다던데?”

고곽천재는 손차희의 닦달로 그때그때 실험 리포트를 제출했다. 덕분에 급히 리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 학기의 마무리는 힘들다.

어쨌든 고곽천재의 2학기는 1학기보다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 무엇보다 강우를 제외하고는 1학기보다 성적이 나아졌다.

강우에게도 2학기는 새로운 전환점을 이룬 시기였다.

고등학교에서 해야 할 계획을 세웠고 그 기반을 닦았다. 무엇보다 프로젝트로 매달 벌어들이는 돈이 생겼다는 점이 무척 컸다.

혼자서 그를 뒷바라지하느라 힘든 어머니의 손을 거들어드릴 여지가 생겼다. 아울러 큰돈은 아니지만, 이 돈 덕분에 그가 움직일 기반도 마련됐다.

돈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던 손강우 시절과 비교하면 아직도 많이 모자랐지만, 그나마 급한 불은 끈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겨울방학을 시작했다.

* * *

연말연시를 고향 집에서 보내는 동안 강우는 MIT의 요셉 교수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일전에 핵융합에 관한 의견을 보냈고 요셉 교수는 앞으로 공동연구를 추진해보자는 의견을 전해왔었다. 강우는 차도도에게 설명하다가 깨달은 내용을 중심으로 요셉 교수에게 보낼 논문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최근 발표된 따끈따끈한 논문 자료에 붙어서 날아온 메일의 내용은 간략했다.

- 한국시각 1월 3일 밤 11시에 전화하겠네. 요셉.

갑자기 이메일도 아니고 전화라니? 무슨 용건인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았다.

어쨌든 마다할 처지가 아니기에 강우는 전화를 기다렸다. 손강우 시절 영어로 대화한 경험이 많았기에 딱히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

11시가 되자 휴대폰이 울리고 요셉 교수의 목소리가 영어로 들려왔다.

- 미스터 강우?

“예 강우입니다.”

강우도 영어로 답했다.

- 전화 괜찮나?

“괜찮습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 자네가 보낸 핵융합 연구 요약본을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네.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 모르겠지만 강우가 기대하던 반응이었다. 일개 고등학생이 이해할 수준의 요약본이 아니었을 테니까. 아마 그는 강우의 천재성에 놀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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