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43화 (143/325)

제143화 겨울학교 (1)

- 하은찬, 수학 S, 물리 B, 화학 A, 생물 B, 지구과학 B.

“수학이 S?”

“네?”

“아, 아니야.”

강우는 재빨리 손을 저으며 하은찬의 재능을 다시 확인했다.

수학이 S이고 화학이 A라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이다. 이 정도면 최대우나 권유성과 비슷했다. 기타과목조차 나쁘지 않으니 어쩌면 그 두 사람 이상일 가능성도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난 학생이 수학 S라니!

생각해 보니 당연할 수도 있었다. 겨울학교는 국내에서 수학 좀 한다는 천재들만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속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을 만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고려 과학고는 평균적으로 일반고보다 우수할지 모르지만, 숫자가 많지 않아서 인재 풀이 좁은 느낌이 있었다.

강우는 하은찬의 학교를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어차피 겨울학교 수강생이면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복잡한 생각에 잡혀 있을 때 최대우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강우야, 점심 때 보자. 같이 밥 먹게. 연락해.”

최대우는 물리 겨울학교가 열리는 건물로 들어갔다.

강우는 옆에서 따라오는 하은찬을 힐끔힐끔 살피면서 수리과학관 문을 열었다.

* * *

강의실에 모인 학생은 대략 60명. 겨울학교 입학자는 전체가 100명 정도이고 온라인 수강자가 40명가량이라고 했다.

학생들 학년은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물론 개학하면 한 학년씩 올라가니 실질적으로 중학생은 없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 중에 고려 과학고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같은 학년으로는 이민찬과 손차희가 있었고 위 학년에는 박일현과 권유성이 있었다. 거기에 그가 이름을 모르는, 수학연구반 학생이 곳곳에 보였다.

다른 학교 학생 가운데는 중앙 과학고의 안찬엽이 눈에 띄었다. 그가 수학 올킬을 달성할 때 제물이 되었던 학생이다. 이곳에서 다시 만나리라 예상했던 인물이다.

이때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민찬 형! 차희 누나!”

함께 들어온 하은찬이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했다.

아는 사이란 점이 놀라웠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같은 학원 출신이다.

거기에 더 놀랍게도…….

“은찬이 왔어?”

“유성이 안녕? 이야! 얼마 만이야! 내가 너를 만나려고 개고생을 해서…….”

하은찬과 권유성이 서로 말을 놓고 있었다. 새삼 권유성이 일찍 학교에 입학했음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후배네? 형이라 불러!”

“웃기지 마! 나보다 생일 빨라? 너 생일이…….”

어린애처럼 툭탁거리는 둘을 보며 웃다가 강우는 하은찬을 가리켰다.

“고려 과학고?”

“올해 신입생.”

손차희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강우는 자신이 선배가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했다. 강우로 빙의한 이후 그보다 아래 학년이 없어서 미처 인식하지 못하던 문제였다.

강우와 시선을 마주친 하은찬이 다시 꾸벅 인사했다.

“형? 알고 보니 제가 직속 후배네요. 이런 인연이 있다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제가 말이에요, 이래 봬도…….”

“그, 그래.”

녀석의 수다를 강우가 후다닥 만류했을 때 권유성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은찬아, 강우랑 친해지면 안 돼.”

“왜?”

“울 학교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이라고.”

권유성은 아직도 강우에게는 형이란 호칭을 절대 붙이지 않았다.

강우가 눈을 찌푸리며 권유성을 눈빛으로 위협하는 사이 하은찬이 물었다.

“어떻게? 눈 두 개, 코 하나…… 멀쩡한데? 자고로 외계인은 눈썹이 없고…….”

“답지에 예술작품 그리지.”

“아하! 공부 못하는구나. 나도 초딩 때 그림을 잘 그린다고…….”

녀석의 두서없는 말투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고 강우는 허탈해졌다.

강우를 쓰윽 살핀 하은찬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사람은 열심히 하면 발전하는 법이니까. 잘 가르치면 나아지겠지. 정보 알려줘서 고마워. 친구는 돕는다니까 내가 앞으로 잘 가르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마침 담당 교수가 들어오는 바람에 모두 흩어졌다.

담당 교수는 희끗희끗한 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는, 나이 들어 보이는 교수였다.

“학생 여러분 겨울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한국대 수학과 교수인 주한얼입니다. 오늘부터 2주간…….”

주한얼 교수의 장황한 연설이 계속됐다.

겨울학교의 취지와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하는 자리로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어제 기숙사로 들어가서 최대우와 함께 짐을 나르고 한국대로 온 강우는 잠이 쏟아진다.

‘대우가 있어야 하는데.’

그의 바로 앞자리에서 선생님의 시선을 가려주던 최대우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에…… 그래서 겨울학교 소개는 이쯤으로 마치고 수업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수업은 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역시 고등학생 대상 강의에 교수가 직접 나설 리 없다. 마침 교수를 따라 들어온 대학원생이 그들에게 인사했다. 물론 교수가 대학원생보다 잘 가르친다는 보장은 없었다. 문제풀이는 오히려 현역인 대학원생이 나을 때도 많으니까.

강우가 눈을 몇 번 깜박이는 사이 교수가 사라지고 대학원생이 칠판 앞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얇게 제본한 교재가 모두에게 배포됐다.

오늘 수업 분야는 정수론.

칠판에 아라비아 숫자 1, 2를 나열하며 숫자의 수학적 기본 원리를 설명했다. 저런 내용을 듣다 보면 수학은 정말 이상한 학문이 된다.

급기야 ‘1+1=2’라는 수식을 적은 대학원생이 말했다.

“이 수식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한두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의외로 당연하고 익숙한 저 등식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제대로 증명하려면 칠판 한가득 온갖 이론을 붙인 수식을 나열해야 한다.

당연히 강우는 하품하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겨울학교 추천서를 써준 사람이 봤다면 분명히 노발대발할 장면이었다.

학교와 달리 강우는 흡족했다. 강사인 대학원생이 강우를 깨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점심시간에는 대충 학교별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 분위기였다. 고려 과학고 학생들도 함께 움직였다.

강우는 최대우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홀로 빠져나왔다.

“강우야!”

그의 뒤로 손차희가 따라붙었다.

“어? 차희! 넌 같이 안 먹어?”

“넌 어디로 가는데?”

“난 대우랑…….”

“아하! 그럼 나도 같이 가.”

지금 윤수아가 없더라도 고곽천재끼리 모이자는 손차희의 말에 강우는 감격했다. 겨울학교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얼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재밌었어?”

손차희의 물음에 강우는 바로 손을 저었다.

“그게 재밌겠냐? 1 더하기 1 증명하는 게 뭐가 재밌다고…….”

순수 수학도가 아닌 강우는 증명 문제보다 복잡한 미적분 풀이가 훨씬 재미있었다. 손차희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봐서는 역시 그녀도 순수 수학을 전공할 학생은 아니었다.

“근데…… 은찬이는 어때? 공부 잘해?”

하은찬의 S를 떠올린 강우가 물었다.

“겨울학교에 나온 학생이 공부를 못할 리 있겠어?”

우문현답이다. 수학은 S이니 거의 넘사벽일 테고 다른 과목도 최상이겠지. 그 정도면 중학교 때 천재로 소문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유성이보다 더?”

“흠, 그건 의견이 좀 엇갈리는데…… 유성이보다 학교 성적이 훨씬 안정적이지. 유성이는 월반하느라 수학과 물리만 신경 썼고 은찬이는 모든 과목에서 착실하게 기초를 다졌으니까. 유성이가 일찍 진학하는 바람에 더 유명하지만, 누가 더 천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

손차희의 평을 듣고 있자니 대충 하은찬에 대해 감이 잡힌다.

“수학을 꽤 잘하나 보던데?”

“수학만 따지면 유성이보다 나을걸? 일현 선배랑 같은 급이야.”

박일현은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과 금메달을 딴 천재다. 그런 천재와 맞먹는다고 평가하니 하은찬의 실력이 대단한 모양이다.

“은찬이는 이제 고등학교 입학이잖아? 그런데 벌써 겨울학교에 왔으니까…….”

“중학교 때 고등부 시험을 쳤다는 뜻이네?”

“그렇지. 박일현 선배도 그랬었거든. 이변이 없다면 은찬이도 국가대표로 뽑힐걸?”

손차희의 말을 들어보면 하은찬은 학원에서 길러진 유형의 천재다.

물론 그렇다고 폄하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천재였는데 학원에서 더 갈고 닦았을 수도 있으니까.

S라고 뜬 재능을 보면 설사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결국은 비슷한 성과를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유성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네.”

강우의 최종 평가에 손차희가 바로 손을 저었다.

“아냐, 은찬이는 유성이보다 훨씬 착해. 말이 많아서 문제지.”

손차희가 권유성을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 평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리 건물에서 최대우가 튀어나왔다.

강우와 손차희를 향해 달려온 최대우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어후! 졸려 죽는 줄 알았어.”

“난 수다쟁이 때문에 졸 일이 없었다.”

“고생했겠네.”

서로 맞장구치는 둘을 내버려 두고 손차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먼저 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오후 수업이 끝나자 강우는 기지개를 켰다.

잠을 푹 자서 그런지 온몸이 나른하다. 학생들은 주섬주섬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강우가 가방을 챙기고 있자니 하은찬이 말을 걸어왔다.

“형! 오늘 재밌었어?”

“네 눈엔 내가 재밌어하는 것처럼 보였냐?”

어이없다는 듯 반박하는 강우에게 하은찬이 씨익 웃었다.

“아니. 어려웠어요? 계속 자고 있던데? 자고로 밤에 잠을 안 자면…….”

순간 강우는 이 녀석이 스토커가 아닌지 의심해야 했다.

“넌 재밌었니?”

“응.”

무심코 물었던 질문에 예상과 다른 답이 나오자 강우는 녀석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하긴 수학에 특화된 녀석이라면 1+1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마트 아르바이트 특화라도 1+1이 재밌을 수 있긴 하다.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키는 강우를 하은찬이 잡았다.

“형! 숙제 어떻게 할 거야? 난 숙제가 제일 재밌어.”

“미친놈. 근데 숙제도 있었어?”

금시초문이다. 수업시간에 잠을 잤기에 숙제가 있는지 강우는 알지 못했다.

“그거 안 하면 큰일 나는데…….”

큰일이야 나겠냐만 숙제를 제출하지 않아 쫓겨나면 추천서를 써준 사람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강우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숙제? 그럼 베껴서라도 내야지.”

하은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강우를 살피던 하은찬이 자신의 교재를 꺼냈다.

“형! 내가 숙제가 뭔지 가르쳐줄게. 어려운 친구는 돕는 법이라고 했거든, 숙제가 뭐냐면…….”

이 녀석 좀 과잉친절 같은데? 그렇다고 마다할 수도 없어 강우는 잠자코 있었다.

하은찬이 교재의 연습문제를 짚었다.

“숙제는 홀수 번이야.”

대학교수들이 리포트 문제를 내기 싫을 때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홀수 번 전부라거나 짝수 번 전부라거나. 딱히 중요한 문제를 찍어준 건 아니다.

얼핏 보니 엄청 풀기 귀찮은 증명 문제만 모여 있다. 하필이면 정수론이라 더 심했다.

강우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진 것을 발견한 하은찬이 샤프를 꺼냈다.

“아마, 형은 수업시간에 졸아서…… 거의 풀 수 없을 거야. 그렇다고 남의 것을 베끼면 안 돼. 실력이 늘지 않거든. 내가 대충 가르쳐 줄 테니까 듣고 연구해 봐. 그래야 늘어.”

상상하지 못한 제안에 강우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르쳐 주다니! 얼른 차도도 집에 가서 할 일이 태산인데 여기에서 잡혀서 이러고 있다간…….

“집에서 혼자 하기보다 나랑 고민하는 게 시간이 절약될 거야. 시간은 금이니까. 첫 번째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하면…….”

그래도 하은찬의 실력이 궁금하던 참이긴 했다.

강우는 집에 가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조용히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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