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45화 (145/325)

제145화 겨울학교 (3)

천재라는 어휘가 묘하게 강우를 자극했다.

이 녀석도 S급이니 부정할 수 없는 천재일 것이다. 적어도 수학에서는. 그런데 저렇게까지 나온다면……. 강우도 한 번 대적해서 녀석의 잠재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물론 그가 국가대표에 뽑힌다면 한솥밥을 먹게 될 테니 앞으로도 시간이 많긴 했지만.

계속 피하면 예의가 아닐 터. 강우는 상대를 노려봤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요?”

“겨울학교 기간에 우리는 매주 금요일 두 차례 평가를 치른다.”

어? 시험이라니! 강우는 금시초문이었다. 하긴 시험이 없을 리 없다. 이들은 천재이기 이전에 시험을 치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는 대한민국 고등학생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요?”

“오는 금요일 첫 시험으로 대결하는 건 어때? 적어도 한 문제 스피드 게임보다 훨씬 공정하잖아?”

귀찮게도 녀석의 얼굴에 진심으로 겨뤄보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물론 시험에서 한 방에 녀석을 제압할 수도 있지만…… 문득 하은찬이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죠, 그날 선배가 그런 전략을 사용하는 바람에 다른 학생들의 기회가 날아갔다는 건 아세요?”

그날 보통의 전략대로였다면 모든 학생이 서로 겨루면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우의 날카로운 지적에 안찬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니까 꼭 승부를 내고 싶다면 아예 이참에 그때처럼 학교 대항전을 벌여보죠.”

예상외의 제안이었던 듯 안찬엽이 생각에 잠겼다.

무심코 옆을 둘러보던 강우는 그를 보며 웃고 있는 박일현을 발견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한 강우는 안찬엽의 답변을 기다렸다.

“어떻게 하자는 거지?”

“각 학교 학생들의 성적을 모두 합산해서 학교 대항전을 벌여보죠. 어느 학교가 더 잘하는지.”

고곽전체가 옆 조인 전상철 조와 자주 써먹는 방법이다. 모두가 소속감을 품고 열심히 대결에 임하니 좋은 점이 있다.

“우린 신입생 포함해서 6명인데…… 너희는 몇 명이냐?”

“우리도 6명인데요?”

“딱 맞군.”

중앙 과학고에도 겨울학교에 참가한 신입생이 한 명 있나 보다.

“그럼 6명으로…….”

“아뇨, 5명. 그중에 가장 성적 나쁜 학생은 제외하죠.”

신입생 한 명이 있으니 일견 강우의 제안이 타당한 것처럼 보였다.

“좋아. 어때?”

안찬엽이 옆에서 지켜보는 박일현의 의견을 물었다.

“난 찬성이다. 우리가 무조건 이길 거니까.”

“헛소리! 대 중앙고를 뭐로 보고…….”

“물로 보지. 크크.”

툭탁대는 두 선배를 내버려 두고 강우는 자리로 돌아갔다. 이번 겨울학교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 * *

“어? 어디 가는 건데요?”

“떡볶이 먹으러. 내가 생각해보니까 떡볶이를 먹으면서 우리가 숙제까지 같이할 수 있는 곳이 있더라고.”

강우는 하은찬을 끌고 지하철을 탔다.

손차희가 따라오면서 인상을 팍 썼다. 무슨 꿍꿍이인지 계속 그에게 눈으로 묻고 있었다.

손차희가 끼어들면서 그의 몫까지 합쳐 떡볶이가 3인분이 되었으니 혼자 덮어쓸 수는 없다. 생각해보니 떡볶이를 부담 없이 살 사람이 따로 있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갑자기 성사된 중앙 과학고와의 대결에서 이기려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비밀병기인 하은찬 이 녀석을 단련시켜야 한다. 그렇기에 그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다.

“나만 따라와. 거기 가면 떡볶이 먹으면서 열심히 숙제도 할 수 있어.”

“형네 집에 가는 거예요? 초면에 집 방문은 예의가 아니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울 엄마가 예의 차리라고…….”

“어…… 우리 집? ……은 아니고, 아는 누나네 집.”

“?”

모호한 답변으로 둘러댄 강우는 지하철에서 내린 후 고층 아파트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 강우니?

“네. 친구 데려가도 되죠? 오늘 같이 숙제하기로 했는데…….”

아마도 착한 차도도는 분명히 허락할 것이다.

- 어제는 놀고 싶지 않다더니…… 알았어. 데려와. 내가 아는 사람이야?

“차희도 있고요. 거기에 신입생 한 명.”

- 신입생? 알았어.

약간은 탐탁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강우는 밀어붙였다.

강우가 아파트로 두 사람을 끌고 들어가자 손차희의 안면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담임 선생님의 집임을 눈치채서다.

문이 열리고 차도도가 그들을 반겼을 때 강우가 재빨리 먼저 소개했다.

“나랑 친한 누나야.”

“누나?”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차도도와 한숨을 내쉬는 손차희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정작 하은찬은 밝은 음성으로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우 형 후배입니다!”

과연 신입생은 씩씩했다.

금방 당황한 기색을 수습한 차도도가 그들을 집안으로 이끌었다.

“어서 오렴.”

거실에서 통창을 본 하은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우와! 집 좋다! 우리 집에 비하면 여긴 궁궐이네, 궁궐. 방이 몇 개인지…….”

“인마! 시끄러! 우린 공부하러 왔다니까.”

강우는 얼른 그들을 위층 서재로 끌고 갔다.

손차희도 이 서재에 앉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신기한 듯 책장에 꽂힌 책을 살폈다. 절반이 물리학책이다. 그 옆에는 복잡한 수식이 잔뜩 적힌 투명칠판이 위압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풍경을 보며 손차희는 요즘 차도도가 얼마나 열심히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한쪽 벽에 걸린 판넬을 향했다.

축제 때 전시했던 차도도와 강우의 캐리커처였다. 의도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하필이면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도록 판넬을 부착해두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하은찬도 한참을 쳐다봤다.

“형! 누구예요?”

“누나라니까.”

“음, 친누나는 아니고…… 아! 과외하는 누나인가보다!”

역시 학생이라 저런 쪽으로 머리가 돌아간다.

굳이 부정하지 않는 강우의 표정을 확인한 하은찬이 한 차례 더 수다스러운 의문을 쏟아냈다.

“근데 저 그림 보니까…… 사귀는 사이 같기도 하고…… 이야! 형! 내 꿈이 예쁜 과외 선생님 만나서 열심히 공부하는 건데 저도 형을 본받을래요! 예쁜 과외 선생님을 만나려면…….”

“으이구, 미친놈들.”

손차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는 하은찬과 낄낄대면서 캐리커처를 평했다. 물론 대부분 차도도가 무척 예쁘다는 소감이었다.

차도도가 과일과 음료수를 들고 올라왔다.

“그래서 여기에서 뭐 할 건데?”

“공부요.”

“공부?”

“수학 숙제. 게다가 하필이면 중앙 과학고랑 수학으로 한판 붙기로 했거든요.”

학생이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선생님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차도도는 두말하지 않고 허락했다.

“알았어. 떠들지 말고. 나도 공부해야 하니까.”

강우를 비롯하여 모두가 주섬주섬 책을 꺼냈다.

다행히 탁자는 상당히 넓어서 그들 넷이 동시에 사용하기에 충분했다.

차도도는 한쪽 구석에 앉아 평소처럼 논문을 펼쳤다. 하지만 모든 신경이 강우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쏠렸다.

잠시 홀로 공부하는가 싶더니 강우가 하은찬을 건드린다.

“은찬아? 숙제 중?”

“복습부터요. 어렸을 때 초등학교 선생님이 복습을 엄청 강조하셨는데 그때 제가…….”

아주 바람직한 태도다.

강우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수업 때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던데 설명해줄래?”

“어떤 거요?”

“강우! 넌 오늘 계속 잠만 퍼질러 잤잖아?”

손차희가 바로 태클을 걸었고 옆에서 차도도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 문제인데.”

“아, 형! 그건 말이에요.”

하은찬이 설명하려 하자 강우는 바로 투명칠판을 가리켰다.

강우의 의도를 이해한 하은찬이 투명칠판을 닦고 마카로 수식을 쓰면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와! 이 칠판 죽여요! 끝내주는데…… 나도 이런 칠판 있으면 공부를 팍팍 잘할 것 같아요! 이거 유린가 아크릴인가…….”

“이 자식! 설명이나 해.”

강우는 웃으며 하은찬의 설명을 요구했다.

이 모든 행위는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다. 하은찬을 단련하기 위해서다.

강우는 족집게처럼 그 부분을 지적했고 덕분에 하은찬은 다시 고민에 잠기면서 확실하게 그 문제를 이해했다.

설명을 듣는 손차희도 적잖게 득을 봤다. 이 모든 것이 강우가 의도한 효과였다.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차도도는 강우의 내심을 알아챘다. 저런 문제를 강우가 실제로 모를 리 없으니까. 강우가 하은찬과 손차희의 실력 향상을 유도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정작 하은찬은 강우가 정말 모른다고 생각해서 성심성의껏 설명했다.

강우는 중앙 과학고의 면면을 떠올렸다. 그 학교 학생들은 고중전 때 봤었기에 낯이 익었다. 안찬엽 외에는 그리 특출난 학생이 없다.

그에 비하면 고중전 때와 달리 고려 과학고에서는 국가대표 상비군인 권유성이 가담했다. 게다가 손차희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하물며 S급 능력자인 하은찬마저 끼어들었으니 절대 질 수 없는 게임이다.

강우가 모두를 승부에 참여시킨 이유였다.

문제를 풀이하는 하은찬의 손이 매끄럽게 움직인다. 수식 전개에 거침이 없다.

‘역시 S급이란 뜻인가?’

지금까지 강우가 가장 오랜 시간을 살핀 S급 능력자는 최대우다. 다만 최대우는 물리였고 아직 제대로 개화하지 않은 경우였다.

수학 S급인 박일현은 그가 만났을 때 이미 완성된 학생인데다 만날 시간도 적어 별달리 감흥을 얻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하은찬은 신선했다. 설명 곳곳에서 S급 능력자의 재지가 톡톡 튄다.

뛰어난 천재를 보니 그의 마음도 푸근해진다. 마치 스승이 뛰어난 제자를 대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차도도도 그를 보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을까.

새삼스러운 의문에 강우는 차도도에게 시선을 돌렸다.

차도도 역시 하은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형! 이해돼요?”

“응! 네가 설명을 잘 해줘서 귀에 쏙쏙 들어와. 그럼 그 아래 문제는…….”

“아! 그건요! 이렇게 접근해서…….”

하은찬이 신이 나서 계속 설명했다. 지금 시간은 적어도 하은찬과 손차희에게는 무척 유용했다.

* * *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차도도가 일어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강우는 열심히 풀던 펜을 놓았다.

“강우야! 내가 왔다!”

신새벽의 손에는 포장된 떡볶이가 한가득했다.

서재의 풍경을 확인한 신새벽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떡볶이를 중앙에 내려놨다.

강우는 마치 자신이 산 것처럼 하은찬에게 권했다.

“이 형이 떡볶이 사준다고 했잖아? 이 형은 절대 빈말하지 않아!”

역시 떡볶이 귀신인 손차희가 가장 먼저 손을 뻗어 포장을 풀었다.

정작 하은찬의 시선은 신새벽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얘는 누구니?”

신새벽의 질문이 떨어지자 하은찬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강우 형 후배요. 올해 고려 과학고에 입학해요. 이름은 하은찬이고 나이는…….”

“아하! 신입생이구나.”

“누나는요?”

“누나?”

눈이 휘둥그레진 신새벽을 강우가 바로 소개했다.

“우리 누나 친구. 마찬가지로 동네 누나지.”

“아하! 다른 과목 과외 선생님인가 보다. 우와! 형! 형네 누나는 하나같이 모두 미인인데요? 동네 물이 좋아서인가?”

“이 자식이 벌써부터 밝히고 있네!”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진 신새벽이 손차희에게 눈빛으로 해답을 구했다.

하지만 손차희와 차도도는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손차희가 떡볶이를 우물거리면서 하은찬에게 두 선생님을 소개했다.

“이쪽은 물리, 이쪽은 화학.”

“그럼 수학은요?”

“수학은 없어.”

이해했다는 듯 하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강우 형이 수학을 못 하더라니. 예쁜 수학 과외 선생님이 없어서 그런 거였어.”

“컥!”

그 말에 손차희는 떡을 삼켜 숨이 막힐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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