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50화 (150/325)

제150화 실마리 (4)

열심히 떠들던 한 무리의 녀석들이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충 보니 중앙고 학생은 아니고 다른 과학고 학생으로 보였다. 아니면 어떤 학원 출신 모임이거나.

여유롭게 피식 웃어주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는 순간 뒤에서 한 녀석이 시비를 걸어왔다.

“뭐? 우리말이 틀렸어? 너 수업 시간에 매일 졸았잖아?”

“맞아, 맞아. 눈 뜬 걸 못 봤지.”

옆에 있는 학생이 바로 동조했다.

강우는 여유롭게 한 소리 해줬다.

“내가 자는 데 보태 준 것 있어?”

“어쨌든 실력도 없으면서 겨울학교 온 게 사실이잖아?”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실력도 없으면서 낙하산 타고 뒷문으로 입학한 것이 기정사실로 둔갑해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신경 쓰이겠지만 정작 강우는 태연했다.

“그래, 실력이 없으면 다니지 말아야지.”

“그게 너라고!”

녀석이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강우는 여전히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너보다 나을걸?”

“뭐야? 지난 시험에서 24점 받았다며? 난 42점이야!”

42점이면 대충 중간 정도 되는 학생이다. 강우는 살짝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42점이면 나보다 아래겠네.”

“뭔 소리야! 오늘 시험 성적 발표 나면 낙하산 자르자고 적극적으로 건의할 거다!”

녀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 성적이나 확인하고 건의하지?”

“보나 마나…….”

말이 통하지 않자 강우는 무시하고 수업을 들을 준비를 했다. 안찬엽이 헛소리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마무리는 잘하려고 했었다.

뒤에서 여전히 녀석들의 험담이 들려왔으나 강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에 한쪽에서 그에게 손으로 인사를 보내는 안찬엽이 보였다. 강우는 인상을 팍 쓰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는 사이 담당 이성철 교수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방금 치른 시험을 채점한 답지가 들려 있었다.

“자, 채점지를 나눠드리겠습니다. 모두 자신이 어디에서 틀렸는지 복습하기 바랍니다. 참고로 평균은 43점이고 대략적인 분포는 지난 시험과 비슷합니다.”

학생들의 탄식과 안도가 새어 나왔다.

그때 강우의 뒤에서 한 녀석이 손을 들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오늘 시험 꼴찌는 누굽니까? 그 학생은 최종시험 자격을 박탈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성철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꼴찌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장 잘 친 학생은 압니다.”

“누군데요?”

“지난 1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던 두 학생이 오늘도 잘 쳤습니다. 안찬엽, 박일현 학생! 작년에 금메달리스트였는데 역시 올해도 잘하는군요. 두 학생 모두 71점입니다.”

“우와!”

학생들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박수로 환영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이성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학생이 있어요. 강우 군? 강우 학생은 무려 다 맞췄습니다.”

“어?”

“허억! 그, 그걸 뭔 재주로 다 맞춰?”

뒤에서 노골적인 험담을 던졌던 학생의 신음이 들렸다. 그 옆 친구들도 웅성거리며 녀석을 타박했다.

이성철이 강우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우 학생의 점수는 200점입니다. 마지막 문제에서 요구하지 않았던 답안까지 전부 완벽하게 풀어서 만점인 100점에 추가점 100점을 더했습니다.

“와아!”

고려 과학고 학생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응원했다.

정작 강우는 밥을 먹은 식곤증 탓에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 * *

겨울학교가 끝났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강우에게 안찬엽이 다가왔다. 녀석이 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과연 짐작대로 대단했어.”

강우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손을 잡아주었다.

녀석이 다시 감탄사를 터트렸다.

“너! 정말 귀신이네! 수학 귀신!”

오늘 강우의 성적은 압도적이었다.

강우의 200점은 물론 공식적인 시험이 아니기에 상징적인 결과였지만 학생들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낙하산이라던 학생들의 비난도 쑥 들어갔다.

“지난번에 대충 시험 친 이유는 중앙고를 무시해서가 아니었다고요.”

차마 밝힐 수 없지만, 너무 압도적으로 눌러버리면 사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나도 알아.”

안찬엽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런데 왜?”

“박일현이 너를 너무 칭찬해서…… 네 재주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과연 듣던 것 이상이었어.”

어쨌든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뜻이다.

강우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여름에 같이 외국에 나가겠네. 설마 국가대표 선발을 피할 건 아니지?”

강우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현재는 그럴 생각이 없어도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안찬엽이 그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강우가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왔을 때 밖에서 하은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 무사해요?”

“응? 뭔 소리야?”

“그…… 중앙고 선배가…….”

“별소리 안 하던데?”

“험악하게 생겼던데……. 우리 엄마가 험악한 사람 건들지 말랬는데…….”

이 녀석도 어린애인가? 하긴 안찬엽이 조금 거칠 게 생기긴 했지. 엄밀하게 말하면 사내다운 외모와 체격이라 해야 하나? 게다가 성격도 약간 대장 기질이 풍부한 사람이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쫄 일이 뭐 있어?”

“에이, 아침에 말 나왔던 낙하산이 선배라는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으그, 내가 비록 뒷문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낙하산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는 아니야.”

“그렇긴 한데…….”

강우가 시답잖은 질문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자 하은찬이 후다닥 뒤따라왔다.

“형! 형!”

“왜?”

“근데 오늘 어떻게 200점을 맞았어요? 평소 형 실력이라면…… 30점이 정상이잖아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강우는 녀석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농담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믿는 얼굴이었다.

굳이 바로 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강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숙제에 다 나온 문제거든?”

“예? 난 하나도 안 보이던데…….”

“원래 아는 만큼 보이는 거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하은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어지는 강우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흐음, 평소 내게 질문을 일삼던 저 형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니까…… 분명히 교수님과 연줄이 있거나 아니면 문제를 빼냈거나…… 그게 확실해. 그래, 그 정도는 해야 낙하산이지.”

불과 몇 초 만에 하은찬은 나름대로 가장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멀어지는 강우에게 소리쳤다.

“형! 예비입학기간에 볼 수 있어요?”

“나도 그때 기숙사에 있을 거야!”

강우는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어 작별을 고했다.

* * *

고려 과학고 교무실에서는 반 배정이 한창이었다.

선생님들 일부는 학년을 옮겼고 일부는 그대로였다. 부담이 많은 고3 담임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있었다.

차도도는 아직 경력이 부족하여 고3과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강우를 따라 2학년으로 올라가기를 바랐고 더 바란다면 이번에도 강우 담임을 맡기를 원했다. 고곽천재 4인방을 모두 맡으면 더욱 좋고.

물론 원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정도는 안다. 특히 그녀처럼 이제 3년 차에 접어드는 교사들은 보통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1학년 주임이었던 김윤택은 자연스럽게 2학년 주임 보직을 맡게 됐다. 덕분에 2학년 담임 배정에서 그의 입김이 커졌다.

“자, 2학년 담임 맡으신 선생님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김윤택이 해당 선생님들을 한곳에 모았다.

고려 과학고에서 한 학년은 모두 8반이다. 그 8명에 차도도도 끼어있었다.

“각 반의 성적을 고르게 배정해야 하니까…….”

이 학교에서는 최상위권 학생들만 고르게 배정한 후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적당히 나누었다. 일반고처럼 특별하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2학년들은 입학 때 총원 124명이었고 그 가운데 4명이 전학을 가서 지금은 전교생이 120명이었다. 즉 한 반에 15명씩이다.

차도도는 시드를 배정받은 8명 학생의 면면을 살폈다. 이민찬, 손차희, 주영식……. 입학 때 장학금을 받았던 3인방이 그대로 살아남았다.

어찌 보면 우수학생을 받아서 잘 키웠다고 볼 수 있고 어찌 보면 고등학교, 그것도 과학고에서는 학생들의 성적 변동이 정말 힘들다는 증거라 할 수도 있었다.

약간은 씁쓸함을 느끼면서 차도도는 8명 학생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강우는 없네.’

성적순으로 8명을 추렸으니 1학년 중간고사 성적 외에는 그저 그런 강우가 시드 배정에 들어갈 틈이 없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고속전철과 프로야구단 프로젝트가 체결된 이후 김윤택이 유독 강우에게 집착했으니까. 만일 강우가 저 시드에 들어있었다면 김윤택이 가장 먼저 선택해버렸을지도. 아니, 어쩌면 나중이라 더 쉽게 데려갈 수 있으려나?

“자, 시드 학생 중에서 골라보세요.”

김윤택의 제안에 선생님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차도도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마음 같아서는 시드에 오른 학생 가운데 손차희를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대충 시간을 준 다음 김윤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1학년 통산 성적을 보면 손차희가 1등, 주영식이 2등, 이민찬이 3등이었습니다. 학년주임인 제가 먼저 고르도록 하지요. 저는 손차희 학생을 고르고 싶습니다만…… 이민찬으로 하겠습니다.”

이민찬은 2학년 1반으로 결정되었다.

다소 의외였으나 차도도는 김윤택의 내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에 김윤택은 손차희를 지명하기 어려웠다.

과학고는 여학생 숫자가 매우 적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항상 2명을 한 반에 엮는다. 자칫 혼자서 왕따가 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거기에 될 수 있으면 여학생이 있는 반의 담임은 여선생님을 우선한다.

이런 이유로 애초에 손차희를 김윤택이 데려가기는 쉽지 않다. 다만 주영식 대신에 이민찬을 선택한 점은 의외였다. 이민찬의 가능성을 더 높이 보았나? 따지고 보면 이민찬은 지금 수학 겨울학교에 다니고 있으나 주영식은 내신파다.

차도도의 고민이 깊어지자 옆에서 신새벽이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차 선생님은 작년이랑 같이 손차희?”

신새벽도 그녀처럼 올해는 2학년을 맡게 됐다.

열심히 이름을 주시하며 숨을 고르던 차도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강우 학생으로 하겠습니다.”

모두에게 충격을 가하는 발언이었다. 강우는 시드에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수한 시드 학생을 포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차 선생님, 강우는 나중에 골라도 될 텐데요?”

김윤택이 완곡하게 반대했다.

차도도는 그 목소리 톤에서 김윤택이 강우를 노리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아챘다. 그렇다면 더 물러설 수 없다.

“그렇더라도 강우로 결정하겠습니다.”

그 순간 신새벽이 끼어들었다.

“그러면 저희 반에 손차희를 넣겠습니다. 물론 손차희는 윤수아와 함께.”

순식간에 여학생 두 명이 신새벽에게로 넘어갔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김윤택이 차도도를 노려보는 사이 계속 시드 선택이 진행되어 상위 학생 8명의 운명이 정해졌다. 차도도는 강우를 선택하는 바람에 8명 중 마지막 남은 1명을 넘겨받았다. 그 학생의 이름은 전상철이었다.

이후의 반배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차도도는 강우를 위해 최대우를 같이 엮었다.

결과적으로 고곽천재는 두 개의 반으로 쪼개졌다. 강우와 최대우는 차도도의 반으로, 손차희와 윤수아는 신새벽의 반으로. 차도도 반은 3반이었고 신새벽 반은 5반이었다.

1학년 때 신새벽 반에 있던 두 여학생은 자연스럽게 차도도 반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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