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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52화 (152/325)

제152화 그리고 일주일 (2)

아침에 눈을 뜬 강우는 덮인 이불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이불을 덮어줄 사람은 차도도밖에 없다.

차도도가 누워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쌤?”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전에 코로 맛있는 빵 냄새가 스며들었다.

“강우야? 일어났어?”

“네?”

“토스트 다 만들었다. 얼른 먹으렴.”

식탁에는 최대우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가장 늦게 일어난 강우는 후다닥 식탁으로 뛰어갔다.

“언제 일어나셨어요?”

“한참 전에. 여기서 강우가 가장 잠꾸러기야.”

강우는 최대우를 향해 배신자라고 눈총을 주고는 자리를 잡았다.

토스터에서 자동으로 식빵을 굽고 계란후라이를 올린 것이 전부였지만 차도도는 이것만큼은 무척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녀가 토스트 요리를 잘하는 이유는 아침마다 토스트를 해 먹기 때문일 것이다.

“먹을 만하지?”

강우는 엄지를 척 내밀었다.

“내가 밥을 해주면 좋겠지만 보다시피 요리가 서툴러서…… 어쨌든 토스트는 먹을 만하니까 오늘 아침은 이걸로 하자.”

토스트라도 먹는 게 어디인가. 강우는 충분하다며 그녀에게 감사했다.

“쌤? 쌤은 언제 일어나셨어요?”

“새벽 네 시쯤?”

“헉! 그때 일어나서 다시 안 주무셨어요?”

“네 시에 일어나서…… 논문을 마무리했어. 대략 한 시간 정도만 점검하면 넘길 수 있을 것 같아.”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리였다. 결론을 제외한 논문 초안이 넘어오면 그때부터 강우가 활약할 시간이다. 그 논문을 받자마자 강우는 미리 준비해 둔 결론은 넣어서 요셉 교수에게 발송하면 된다. 사실상 논문 하나를 완결짓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논문에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이 논문은 차도도가 드디어 그에게 의존한 상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준에 이르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즉 그녀는 든든한 동료 연구자의 위치에 올라섰다.

“아! 고생하셨어요.”

“아냐. 나 때문에 계속 미뤄지는 것 같아서 노심초사했는걸. 오늘에라도 넘기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물론 그게 시작이겠지만.”

강우는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오전 여덟 시다. 토스트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테니 차도도는 깨어나서 거의 네 시간가량 논문을 작성했다는 의미다.

“그럼 되는대로 얼른 주세요. 제가 마무리해서 다시 드릴게요. 그때는 오탈자만 확인해 주시고…… 내용은 천천히 물어보셔도 돼요.”

“알았어. 바로 끝낼게.”

차도도가 곧바로 토스트를 씹어먹고는 손을 닦았다.

다시 서재롤 올라가는 차도도를 향해 최대우가 소리쳤다.

“쌤! 그럼 우리 점심은 어떡해요?”

“점심때는 신 선생님이 올 거야!”

생각해보니 신새벽 숙제를 검사할 때가 됐다. 매일 공부한 내용을 확인받는다고 하더니 어젯밤에는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굴릴 수도 없고…….

학생이 빠져서는…… 아니, 빠진 선생님인가?

* * *

예고한 대로 차도도는 논문 초안을 강우에게 넘겼고 강우는 그 초안에 그동안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집어넣었다.

핵심은 관련 학계에 확실한 믿음을 주면서도 마도환을 비롯한 다른 연구자가 상온핵융합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즉 순수하게 학술적으로만 접근하고 실용화 때의 해결책을 숨기는 방식이 유리하다.

그래서 강우의 첫 논문은 수소 플라스마의 거동을 해석하기 위한 수학적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덕분에 극악한 난이도의 수학 이론이 접목되었고 차도도는 혀를 내두르며 따라와야 했다.

그 끝이 드디어 오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본론 부분은 끝났고…… 마지막 결론 부분이…….”

노트북의 작은 화면으로 작업하는 강우를 차도도가 불렀다.

“강우야, 피씨에서 해.”

차도도의 피씨에 붙은 모니터는 말 그대로 태평양이다. 문서 두 쪽을 나란히 놓아도 여백이 남을 정도니까.

“고마워요.”

작업하던 파일을 옮겨 놓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차도도의 피씨를 조사하고 싶어졌다.

폴더를 열고 내부 파일을 쭉 훑어보던 강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차도도의 사진을 모아놓은 폴더가 보였다.

강우는 눈치를 보며 폴더를 열고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아!”

차도도의 멋들어진 모습이 담긴 사진이 화면을 채웠다. 사진을 하나씩 넘기면서 감상하던 강우의 눈이 점점 커졌다.

차도도가 그에게 보냈던 사진과 유사한 고화질 사진이 무수히 나왔다. 강우는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연예인이라도 이처럼 예쁘지 않을 것이다.

퍽!

“커윽!”

강우는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에 한차례 휘청하고는 뒤를 돌아봤다. 차도도가 그를 노려보며 씩씩대고 있었다.

“강우! 대체 뭐해? 너! 지금 수영복 사진 찾고 있지?”

졸지에 오해받게 생겼다. 물론 차도도도 아니란 것을 알겠지만.

“아닌데요. 그냥…….”

“그냥은 무슨 그냥! 남의 앨범을 함부로 훔쳐보면 어떡해?”

‘예쁘니까 그렇죠.’

들리지 않도록 중얼거리다가 한 대 더 얻어맞은 후에 강우는 사진 파일을 닫았다.

“다시 말하지만 난 수영복 입고 사진 찍은 적 없어. 그러니까 괜히 찾아보지 마.”

“알았어요.”

“한 번 더 뒤지면 쫓아내 버릴 거야!”

“알았다고요.”

강우는 얼른 논문 파일을 띄우고 작업을 시작했다. 차도도에게 맞은 뒤통수가 아직도 얼얼하다.

강우는 집중해서 논문에 몰두했다. 이제는 주변과 차단된 것처럼 그의 시선은 모니터를 떠나지 않았다.

화면에 나열된 글자가 그의 머릿속에서 의미 있는 문장으로 조합되기 시작한다.

어떤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수식이 화면 속에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가치로 탄생한다.

그가 손을 댄 한 줄 한 줄의 문장이 그동안 아무도 깨닫지 못했던 진리를 향해 간다.

그의 천재성이 극도로 발휘되면서 서서히 논문은 한 채의 우아한 구조물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진리로 구축한 새로운 가상의 세상에서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때 강우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차도도의 능력이…… 예전과 달라졌다. 확실하게.’

처음 만났던 그녀는 한국대를 졸업한 재원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와 어울리면서 점차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더니 그 능력마저 개화하는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발현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그녀는 작성한 논문에서 천재만이 보일 수 있는 번뜩이는 통찰력과 응용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덕분에 이 논문은 강우가 예상하던 것보다 한층 수준 높은 결과물로 바뀌었다.

차도도의 능력 개화가 강우 덕분인지 아니면 본인의 노력 덕분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논문의 완성이 급할 뿐.

강우가 고민에 잠겨 있을 때 한참 그의 모습을 훔쳐보던 차도도는 조용히 서재를 내려갔다.

* * *

“헤헤~.”

신새벽이 그를 향해 눈웃음을 쳤다.

강우는 한숨을 푹푹 쉬며 그녀를 노려봤다.

지금은 핵융합 논문을 마무리하고 차도도에게 마지막 오탈자 검수를 넘긴 상황. 서재에서 차도도가 논문을 확인하는 동안 강우는 거실에서 신새벽과 씨름하고 있었다.

“에이, 그래도 소용없어요. 하라는 숙제를 하나도 안 했잖아요?”

“한 개는 했는데…….”

“어휴, 이게 한 거예요?”

“그래도 양이 너무 많았잖아?”

“예전에 쌤이 저한테 낸 숙제보다 양이 적다고요. 그때 쌤은 주기율표를 무려 20장이나 써오라고 했잖아요? 이 숙제는 겨우 5장도 안 되는데…….”

“야! 이 5장이 그 20장이랑 같니?”

주기율표야 펼쳐놓고 베껴 적으면 끝이지만 이 숙제는 머리를 싸매고, 뜯고, 쥐어박고, 돌리고, 처박는 별별 짓을 다 하면서 노력해도 한 장을 끝내기 힘들다.

당연히 신새벽은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물론 강우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숙제였지만. 천재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너무 쉬운 법이다.

“하! 그래도 이건 너무 했어요.”

“나도 알아. 어제 눈이 오는 바람에…….”

“데이트하셨어요?”

“나, 남자 없어.”

“그런데 왜요?”

“그냥 마음이 들떠서…….”

어쨌든 숙제를 하지 않고 놀았다는 뜻이다.

강우는 안면을 확 찡그리며 그녀를 노려봤다.

동시에 신새벽도 이마에 주름살을 잔뜩 만들고는 삐죽 입을 내밀며 투덜댔다.

“알았어. 담당 교수 마음이지, 대학원생이 반항할 수 있겠니? 그래서 공부 안 했다고 굴릴 거야? 그래도 구르라면 굴러야지 어쩌겠어…….”

소파에 앉아있던 신새벽이 벌떡 일어났다.

오늘따라 그녀는 예쁘장하게 단장한 차림새다. 특별히 짧은 치마는 아니지만 치마 아래로 쭉 뻗은 다리가 눈부셨다.

양손으로 치마를 부여잡고 신새벽이 물었다.

“어떡해? 앞으로 굴러? 아니면 뒤로 굴러? 그냥 머리 박을까?”

그녀의 제안에 오히려 강우가 눈이 동그래졌다. 실제로 벌주겠다는 말이 아니었는데…….

다시 눈웃음치는 신새벽의 애교가 작렬했다.

공세를 버티지 못한 강우가 얼굴을 붉히면서 손을 내저었다.

“알았어요. 담에는 꼭 해오세요.”

“킥킥, 강우야, 고마워.”

신새벽이 후다닥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어째 앉은 자리가 강우에게 지나치게 가깝다.

본의 아니게 나란히 딱 붙어 앉게 된 강우는 경기를 일으키며 한 뼘 옆으로 물러났다.

“어휴, 저리로 가요!”

“가, 강우야!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비밀이라며 말하는 것 중에 진짜 비밀은 없는 법이다. 진짜 비밀은 아예 꺼내지도 않을 테니까.

“너희 2학년 반편성 끝났다?”

“아!”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1학년은 계속되지 않는다. 불과 보름 후 2학년이 되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미처 인식하지 못하던 사실에 강우는 일순간 멍해졌다.

“네 담임 선생님이 누군 줄 알아?”

갑자기 무척 궁금해진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일이지만 그래도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누군데요?”

“맞춰봐. 참고로 나랑 차 선생님도 2학년으로 올라갔어.”

“아!”

반가운 소식이다. 차도도와 계속 연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아직도 차도도가 아닌 다른 선생님이 담임인 상황을 도무지 그릴 수 없다.

“설마…….”

강우의 시선이 신새벽에게 꽂혔다.

“내가 네 담임이 되어서 오늘 받은 이 수모를 갚아주려고 했는데…….”

“샘이 제 담임이에요?”

“너! 담임을 막 굴려 보고 싶었지?”

“에이, 설마요.”

“표정 보니 딱인데? 안타깝게도 차 선생님이 나보다 한발 빨랐어.”

그 말은 차도도가 그의 담임이라는 뜻이었다. 갑자기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빨랐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는 알 수 없었지만.

“아! 다행이다!”

“뭐야? 내가 담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거야?”

“당연하죠. 제가 그 반이 되면 맨날 얼마나 갈구려고…….”

“어쭈! 이게 대 놓고 날 거부해?”

신새벽이 작은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다.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이 엉켜 소파 위에서 뒹구는 사이 강우의 휴대폰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신새벽이 그의 휴대폰을 재빨리 낚아채서 도망쳤다.

“쌤, 돌려줘요!”

“너라면 주겠니?”

신새벽이 휴대폰을 들고 위층 서재로 후다닥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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