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53화 (153/325)

제153화 그리고 일주일 (3)

“어휴, 어린애도 아니고.”

강우는 신새벽의 장난에 혀를 내둘렀다.

비록 그의 휴대폰은 잠금이 설정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비밀스러운 것도 없다. 그렇기에 강우는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서재로 올라갔다.

서재에서는 신새벽이 그의 휴대폰을 들고 차도도 옆에 붙어서 쑥덕이고 있었다.

“넌 대체 어린애한테 사진을 몇 장이나 보낸 거야?”

“너도 보냈잖아?”

두 여자가 휴대폰을 보면서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그의 휴대폰에는 지금까지 차도도와 신새벽이 보낸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특별히 숨길 사진은 아니기에 강우는 느긋하게 두 사람을 관찰했다.

“어? 내 사진이 숫자가 적잖아? 더 보내줘야겠다.”

신새벽이 이상한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저 여자는 어째 못 말릴 것 같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킥킥, 야! 강우 디게 웃기게 나왔는데?”

신새벽이 재빨리 화면을 넘겼고 차도도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무슨 사진이지?

“중학교 때 강우는 영 이상한데? 완전 어린애야, 어린애!”

“헉!”

그제야 강우는 무슨 사진을 보는지 깨달았다.

지금 그의 휴대폰 이력을 강우는 잘 모른다. 그가 강우로 빙의하기 전부터 존재하던 휴대폰이기 때문이다. 대충 짐작은 중학교 3학년 초부터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그는 휴대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강우의 중학생 시절도 그와 상관없다고 여겼기에 휴대폰을 세세히 살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무슨 앱이 깔려있는지 갤러리에 뭐가 있는지 어떤 톡이나 문자를 주고받았는지 사실 무신경했다.

지금 저들이 휴대폰 앨범에 든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떤 사진인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았다.

“쫌 미련하게 생겼지? 어? 여자 친구도 있네? 이건 또 뭐야?”

신새벽이 열심히 사진을 넘기며 소감을 말했다.

대체 무슨 사진이기에 저러는 걸까.

“강우! 여기 예쁘장한 여학생은 대체 누구야?”

“저도 몰라요.”

“어쭈, 이게 대답을 거부한다 이거지? 너 중학교 때 연애했나 보네? 이 여학생이랑 둘이 찍은 사진이 꽤 많은데?”

누구인지 알 리가 있나? 사실 관심도 없고. 그는 진실을 말했는데 상대에겐 거짓으로 들린다.

강우는 휴대폰을 뺏으려고 달려들었다. 본의 아니게 이번에는 차도도와 엉켰다.

간신히 휴대폰을 빼앗은 강우는 툴툴대며 신새벽에게 경고했다.

“쌤! 그러다가 다음에는 제가 쌤 휴대폰을 뺏을지도 몰라요!”

“킥킥, 내 휴대폰 안에 볼 것도 없는데……, 헉!”

“수영복 사진 있잖아요?”

“있으면 뭐하냐? 난 잠금 되어 있거든!”

신새벽과 툭탁거리는 사이 그의 앞으로 프린트된 논문이 날아왔다.

“강우야, 다 했어! 오탈자 수정했으니까 이제 보내도 될 것 같아.”

드디어 핵융합 첫 논문을 완성했다.

“고생하셨어요. 그럼 제가 바로 요셉 교수에게 보낼게요.”

아직 요셉 교수의 평가가 남았지만 큰 관문은 아니라고 강우는 자신했다. 아마 요셉 교수에게서 사소한 수정 사항이 날아올 테고 그 관문을 지나면 정식으로 국제 학술지에 투고하게 된다.

물론 투고 후에도 심사원들의 이의제기나 보완 사항이 날아올 테니 아직도 첩첩산중이지만.

강우가 이메일을 발송하는 사이 신새벽과 차도도의 대화가 들려왔다.

“강우를 우리 반으로 넘기면 어떨까?”

“강우를 왜?”

“오늘 내가 숙제 안 했다고 나를 막 굴리려고 하잖아? 나도 저 녀석 막 굴리게.”

“어휴, 애냐?”

“차희 줄게, 강우 주라.”

“됐네요.”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차희가 신새벽 반으로 간 듯했다.

그가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차도도가 말했다.

“아직은 공개하면 안 되는 건데 알려줄게. 강우랑 대우는 3반, 담임은 나야. 차희랑 수아는 5반, 신새벽 선생님 반이야.”

고곽천재가 결국은 찢어졌다. 아쉬우면서도 담임이 차도도란 사실에 안도했다.

지금까지 옆에서 병풍이 되어 물리 블로그를 손보고 있던 최대우가 눈을 번쩍 떴다.

“예? 제가 3반이라고요?”

“왜? 싫어?”

“아, 아뇨. 전 강우랑 같은 반이면 만족해요.”

최대우는 담임이 누군지 전혀 관심 없는 모양이다.

차도도는 한편으로는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최대우를 같은 반에 두어서 기분이 흡족했다.

괜히 심술이 난 신새벽이 이제는 최대우를 갈구기 시작했다.

“근데 대우 넌 대체 뭘 하니?”

“저 바빠요.”

“왜?”

“블로그 답변 달아주느라.”

최대우는 대답하면서 신새벽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아! 내가 왕년에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는데……. 나도 이제 늙었나?”

강우도 최대우도 오늘따라 무관심을 보이니 나온 반응이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이 돌아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강우였지만 이런 난장판에도 꿋꿋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최대우를 높이 샀다. 아무래도 최대우를 도울 후배를 붙여줘야 할 것 같다.

* * *

일주일간 강우는 최대우와 함께 차도도의 집에 거주했다.

덕분에 먹고 자는 불편을 덜었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기간에 강우는 고속전철 형상과 난류 유동 관련 논문마저 차도도와 함께 써서 한태규 교수에게 보냈다.

이 논문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올해 상반기에 저널에 실릴 것이다. 이 논문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고등학생과 고등학교 물리 교사가 참여한 논문이니까. 그와 차도도의 이름을 국내 학계에 드러내는 첫발이기도 했다.

바쁜 시간이 지난 후 신입생 예비입학 기간이 됐다.

개학 2주일 전, 이 기간에 재학생은 여전히 방학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다.

다만 강우와 최대우는 기숙사에 머물러야 하기에 학교로 돌아왔다. 신입생 속에서 재학생은 오로지 둘만 있는 이상한 시간이 됐다.

두 사람은 예비입학 기간 첫날인 오늘 아침 일찍 차도도의 집을 떠나 등교했다. 당연히 아침으로는 토스트를 먹었다.

“햐! 파릇파릇하구나.”

강우는 오늘 처음 등교하는 신입생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문을 열심히 올라가는 신입생들이 활기차다.

선배가 되어 후배를 만나니 남다른 기분이 전해진다. 지금까지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그렇지? 우리도 작년에는 저렇게 파릇파릇했었는데.”

“……네가?”

강우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최대우를 슬쩍 훑어봤다. 넌 작년에도 선배처럼 보였다고 한마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커피 사서 가자.”

정문 앞 가우스 카페를 들어가면서 강우는 일 년 전 손차희와 윤수아를 처음 만났던 사건을 추억했다. 그때는 어리둥절하고 막막했었는데 지금은 여유롭다 못해 편안하다.

“뭐 먹을래?”

“난 코코아.”

“그럼 나도 코코아!”

어째 입맛이 점점 강우 나이에 맞게 변해 가고 있다. 이제는 커피보다 단 음료에 더 눈이 간다.

주위를 둘러보니 등교하다가 커피를 사는 신입생이 많았다. 한쪽 테이블에는 학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앉아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정작 그 아늑함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깨졌다.

“강우? 대우? 너희 잘 만났다.”

“예?”

코코아를 기다리며 데스크 앞에 선 그들에게 말을 걸어온 자는 학년주임인 김윤택이었다.

“일 좀 해야겠다. 작년에 해봐서 알지? 강당에 간이의자가 필요하거든.”

순간 작년 이 시간에 강당 지하에서 열심히 의자를 날랐던 고난의 흑역사가 떠올랐다.

“그거 왜요?”

“1학년을 시킬 수는 없잖아? 지금 2학년이라고는 너희 둘뿐이니 수고해야겠다.”

“으으, 쌤! 원래 그거 1학년 주임 쌤께서 맡은 것 아닌가요? 쌤은 이제 2학년 주임이시잖아요?”

“아! 오늘 1학년 주임 선생님께서 사정이 있어서 늦게 오신데. 그래서 내가 준비해주기로 했다.”

어떻게 안 좋은 일은 항상 그에게만 떨어질까. 작년에는 신입생 신분으로 똑같은 일을 했던 사실을 이 선생님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이 커피를 받은 김윤택이 그들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강우와 최대우는 그 자리에서 강당으로 끌려갔다.

“하아!”

양팔에 간이의자를 무려 네 개씩이나 걸고 계단을 오르는 최대우를 보면서 강우는 작년에도 같은 장면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그의 손에는 의자가 두 개씩 모두 네 개다.

역시 인생은 고달프고 바뀌지 않는다.

열심히 지하 창고를 오가면서 간이의자를 나른 다음 강당 바닥에 줄을 맞춰 의자를 배열했다.

“제대로 맞춰야지. 거기, 하나 삐뚤어졌잖아!”

“예.”

강우는 힘없이 대답하고는 의자를 바로 세웠다.

“대답에 영 힘이 없군. 아침 안 먹었어?”

토스트를 먹긴 했는데…… 그걸로 자라는 청소년이 아침을 때우기는…….

휘적휘적하면서 의자 줄을 맞추는 강우에게 김윤택이 질문했다.

“방학 동안 공부는 열심히 했고?”

“대충요.”

“뭘 했지? 수학? 물리?”

“논문 썼는데요.”

“무슨 논문?”

“고속전철요.”

“아! 그 프로젝트 하고 있었지.”

그제야 떠올린 듯 김윤택의 표정이 조금 매서워졌다.

역시나 그 영향일까.

“줄 제대로 맞추고! 오늘 학교 온 김에 도우미 좀 해라. 어리바리한 신입생들 학교 안내하고 점심때 식당으로 통솔하고.”

갑자기 임무가 확 떨어졌다. 두 번 생각해도 공부와 연구를 방해하려는 술수가 분명하다.

* * *

의자 정렬을 끝낸 강우는 편안히 앉아 강당으로 몰려오는 신입생을 관찰했다.

정신연령이 작용해서일까. 그의 눈에는 모두 신선한 새내기이자 어린 학생으로 보였다.

정작 최대우는…….

“하아, 앞으로 저 녀석들과 식당에서 줄서기 경쟁을 해야 하나?”

이 와중에도 먹는 걱정이었다.

“세미나실 예약도 경쟁해야지.”

“아! 그럼 앞으로 세미나실은 어떡해?”

“차희를 믿어야지.”

아직 손차희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본 적은 없지만, 강우는 고곽천재가 이대로 깨질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그들이 모여서 세미나실에서 공부한 성과가 얼마였는가.

“다른 반이어도 가능해?”

“상관없잖아? 반별로 배정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네.”

“그런 의미로 오늘부터 세미나실에서 공부를 시작하자. 오늘은 대우 네가 예약하지?”

아직도 강우는 클래스룸 앱이 서투르다. 그렇기에 그보다는 최대우가 예약하는 게 훨씬 빠르다. 물론 계속 이런 식이다 보니 더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내일부터는 차희랑 수아도 불러야겠어.”

방학 때 집에서 놀지 말고 학교에 나오라면 더 좋아할 녀석들이라고 강우는 믿었다.

신입생들이 몰려와서 의자를 채웠다.

그리고 그때처럼 학년주임 선생님 대신 김윤택이 올라와서 학교 소개를 시작했다.

지금 강우의 관심사는 올해 신입생들 가운데 특출난 천재가 있는지다. 이미 하은찬이라는 학생을 확인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을 알 도리가 없다.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대하는 학생은 입학식 때 장학금을 받을 세 학생인데 지금 당장 물어볼 수 없으니 결국 입학식 때까지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식이 진행되는 과정은 작년과 대동소이했다. 끝나고 강당에서 흩어져서 각자 배정된 반으로 이동한 다음 시험을 치를 테고 그다음엔 식사로 이어지겠지.

작년에는 무척 지겨웠는데 올해는 금세 끝났다. 우르르 몰려가는 신입생 속에서 강우는 하은찬을 발견했다.

“은찬아!”

“예?”

“오늘 끝나고 세미나실로 와.”

“세미나실요? 그게 뭔데요?”

“하여튼 알아서 와라.”

강우는 하은찬을 키워볼 생각이었다. 이유는? 천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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