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56화 (156/325)

제156화 신입생 앞에서 (3)

강우는 열정적으로 하버의 일생을 토해냈다.

“전쟁 내내 하버는 고민했죠. 그는 평화 시에는 인류의 복지를 위해 봉사하고 전시에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과학자의 당연한 의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는 어떻게든 빨리 전쟁을 끝내어 희생을 줄이려고 노력했고 이를 위해 화학 지식을 사용했어요.”

하버는 인류 최초의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했다. 바로 액화 염소가스, 즉 독가스다. 독일이 독가스를 개발하자 연합군도 독가스로 맞대응했다.

하버의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독가스가 전쟁에 쓰인 지 1주일 후 동료 과학자이자 독가스 개발을 반대했던 그의 아내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년 후 하버는 암모니아 개발 공로로 노벨상을 타게 됐다. 하지만 함께 노벨상을 받은 다른 과학자들이 시상식에 불참했다. 폭약으로 더 많은 희생을 초래한 하버를 반대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찌 정권이 들어서자 나찌를 반대한 하버는 결국 독일을 떠나야 했다. 그는 한평생 간직했던 신념이 무너져 내리는 심적 고통을 맛보았다. 평생 조국 독일에 봉사했으나 조국은 그를 버렸다. 누구보다도 뜨거운 조국애를 간직했던 그에게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결국 하버는 스위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죠. 그리고 그의 아들도 권총으로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났죠. 조국을 위한 그의 삶은 인류를 위한 삶과 일치하지 않았어요. 유태인인 하버가 개발했던 지클론B 독가스는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을 학살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비극이 벌어졌어요.”

하버가 아니었다면 셀 수 없는 사람이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갔을 것이다. 단순히 숫자로만 따진다면 그는 자신이 만든 독가스로 죽은 사람보다 수백, 수천 배나 더 많은 사람을 기아에서 구했다.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천재과학자의 불행을 모두가 안타깝게 생각했다. 과연 그의 일생은 인류에게 복이 되었을까, 해가 되었을까.

강우는 착잡한 어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과학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집니다. 때로는 평화롭게 이용되어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지만, 때로는 강력한 살상 무기가 되어 인류 문명을 파괴하지요. 여러분은 앞으로 인류를 짊어질 과학자가 될 거예요. 여러분은 손에 쥔 과학을 어떻게 사용하게 될까요?”

프리츠 하버의 비극적인 삶과 함께 과학의 양면성을 던지며 강연이 끝났다.

평소라면 강연이 끝나면서 우레 같은 박수가 뒤를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강연을 마무리하는 순간 오히려 실내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막연히 과학이 좋아서 과학고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의 손이 인류를 번영되게 할 수도,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아아!”

학생들의 입에서 감탄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강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학생들은 새삼 이 선배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고등학생이라고 볼 수 없는,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식견을 존경하게 됐다.

그 학생들 속에 하은찬도 있었다. 하은찬은 강우가 천재인지 바보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강의하는 강우는 멋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강우가 단단히 자리 잡았다.

* * *

신새벽은 강의실 뒤에 앉아서 강연을 들었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화학은 강우가 잘하는 분야가 아니니까. 게다가 오늘은 강의를 급하게 부탁했다. 학생들이 떠들지 않게 통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기대를 낮춰 잡았기 때문일까.

기대와 달리 강우의 강의는 그녀의 시선과 머릿속을 완벽하게 휘어잡았다.

예전에도 그녀는 강우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수학여행 때 태풍으로 급조했던 강연이다. 그때도 강연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날과 오늘의 다른 점이라면 오늘은 그녀의 전공인 화학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 강의에 몰입했고 진심으로 느끼고 감동할 수 있었다.

“딱딱한 과학을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한 과학자의 삶에서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니…….”

그녀는 비슷한 주제로 강의하는 자신을 떠올려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강우처럼 심금을 울리는 강의를 할 자신이 없었다.

일단 아는 것부터 강우는 그녀와 달랐다. 물리 강연을 할 때도 느꼈었지만 어떻게 그리 많은 과학 에피소드를 꿰고 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늘 그 과학자가 물리학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역시…… 강우는 천재였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에게 논문 연구를 배우면서 그녀는 강우를 천재라고 여겼다. 적어도 수학과 물리에서 계속 만점을 받았고 그녀도 모르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이하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강우를 다른 유형의 천재로 보게 됐다. 단순히 시험을 잘 치는 천재가 아니라 강우는 평범한 학생과는 다른 접근 방법과 해결 능력을 품고 있었다.

천재가 아닌 그녀는 잘 모르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 사실이 강우를 가르쳐야 하는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나아가 강우를 한 남자로 바라보도록 그녀의 시각을 바꾸었다.

“강우 담임을 맡았어야 했는데…….”

차도도가 부러웠다. 아마도 차도도는 강우의 이런 천재성을, 이런 훌륭함을, 이런 사내다움을 예전부터 발견하지 않았을까.

괜히 손차희를 욕심냈었나?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그래도 석사 논문 때문에 강우와 엮여 있다는 것이, 올해도 화학 수업을 들어가기에 만날 시간이 많다는 점이 위안이었다.

문득 강우와 연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려 10년이나 차이가 나는, 그것도 스승과 제자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행복해졌다. 그의 천재성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버린 결과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망측하게.’

재빨리 고개를 저어 야릇한 생각을 털어낸 신새벽은 마무리하고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

* * *

저녁을 먹은 후 하은찬은 고곽천재가 모여 있는 세미나실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도대체 강우가 천재인지 둔재인지 혼란스러웠다. 오후 수업시간 내내 똑같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수학 풀이를 묻던 강우는 평범했다. 이런 학생이 어떻게 과학고에 들어왔을지 의심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의문은 겨울학교에서 들었던 낙하산과 뒷문으로 바로 풀렸지만.

그랬던 강우의 강연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단순한 강연 스킬인가?”

어릴 때부터 좋은 학원과 유명한 강사를 대부분 섭렵했었다. 그렇기에 국내 일타 강사의 강의 스킬에 누구보다도 익숙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강우의 강의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강우 형이 왜 유명하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차라리 예전부터 천재라 여겼던 이민찬이나 손차희였다면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 의문을 풀기 전에는 전혀 공부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하은찬은 세미나실을 찾았다. 마침 강우가 자주 이곳으로 오라고 말하기도 했었고.

세미나실에는 강우를 제외한 나머지 셋만 공부와 씨름하고 있었다.

“강우 형 어디 갔어요?”

“넌 오자마자 강우만 찾니?”

“그럴 일이 있어요. 남자에게는 가끔 비밀이 있는 법이고, 하필이면 그게 오늘 저이고…….”

“강우 지금 상담실에 있어. 담임이 불러서.”

윤수아가 삐죽거리면서 대답했다.

“으이그, 강우 형이 또 사고 쳤구나. 상담실까지 끌려가다니.”

하은찬의 중학교 경험에 따르면 사고를 친 후 반성문을 쓰러 끌려가는 곳이 바로 상담실이었다. 학기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 끌려갔으니 얼마나 힘들지 새삼 걱정이 됐다.

윤수아가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아마 시간이 조금 걸릴걸?”

“상담실이 어디 있는데요?”

“B동 교무실 옆에.”

“제가 한번 가볼게요.”

굳이 갈 필요 없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뿌리치고 하은찬은 상담실로 향했다.

학기 시작 전이어서 상담실 복도는 조용했다.

상담실 팻말을 발견하고 곧장 가로질러 가자니 은은한 강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찾는 강우의 목소리다.

“혼나고 있는 게 아니었나?”

상담실에 난 작은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강우가 동네 누나 둘을 앉혀 놓고 칠판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칠판에는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수식이 잔뜩 적혀 있었다.

강우는 신이 나서 설명하고 있고 그 동네 누나 둘은 마치 학생처럼 열심히 필기하고 있었다. 가끔 필기를 멈추고 칠판을 가리키며 질문하기도 하고 강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선생과 제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동네 누나와 동생의 모습도 절대 아니고 과외선생에게 설명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관계에 하은찬은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으아아, 모르겠다.”

하은찬은 힘껏 머리를 흔들어 의문을 털어버리고 다시 세미나실로 향했다.

* * *

“차희 누나? 강우형 천재예요?”

“글쎄다. 난 천재라고 생각해.”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던 손차희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하은찬을 놀라게 했다. 그의 기억에 손차희는 지금까지 경쟁자를 천재라고 인정하지 않았었다. 이민찬이나 권유성도, 심지어 그까지.

“이민찬 형과 비교하면 어때요?”

“민찬이? 태양과 반딧불이지.”

“코끼리와 개미이기도 하고.”

“호랑이와 하룻강아지야.”

윤수아와 최대우가 옆에서 바로 변죽을 넣었다.

충격을 받은 하은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은…… 민찬 형이 태양, 코끼리, 호랑이란 거죠?”

“아니, 민찬이가 반딧불에 개미에 하룻강아지지.”

상상할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은찬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강우 형은 겨울학교 시험에서 24점 맞았잖아요?”

“마지막 시험에선 200점 맞았잖아?”

“그건 뒷문으로…….”

반박하던 하은찬이 입을 닫았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향해 손차희가 말했다.

“작년에 강우가 1차 진단고사에서 화학과 생물에서 전교 꼴찌를 했거든?”

“그러니까 강우 형이 반딧불에 개미가 맞잖아요?”

“그런데 2차 진단고사에서 말이야, 화학에서 100점을 받아버렸지. 왜인지 알아?”

“시험 문제가 쉬웠겠죠.”

“아니, 신새벽 쌤이 데이트해준다고 했거든.”

하은찬은 입을 쩍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는 그도 두 동네 누나가 단순한 동네 누나가 아니라 고려 과학고 선생님이란 사실을 안다. 그런데 선생님과 데이트란 말도 이상하고 꼴찌에서 1등으로 단숨에 성적을 올렸다는 것도 이상했다.

도무지 이 고려 과학고는 의문투성이다. 아니 강우가 이상한 형인가.

어쨌든 그는 강우가 천재라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쉬운 문제마저 묻던 그 형이 어떻게 천재로 둔갑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그 자신도 천재라는 칭찬을 무수히 들었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그는 자신을 능가하는 천재를 보지 못했다. 학원에서 최고의 천재라던 권유성도 그를 넘는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강우보다 더 천재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강우가 천재가 아님을, 또는 그보다 아래임을 밝히고 싶었다.

강우와 대결해보고 싶다.

하은찬이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을 때 문이 덜컥 열렸다.

“은찬이 왔네?”

강우가 들어왔다.

그리고 하은찬은 결전에 임하는 장수처럼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