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58화 (158/325)

제158화 2학년 (2)

“뭔데요?”

“휴대폰 사진.”

“아하!”

대신 수업을 맡으면서 그런 약속을 하긴 했다. 예전에 신새벽이 그의 휴대폰을 가져가서 장난치는 바람에 홧김에 그랬던 것인데……. 굳이 보여주겠다는데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겠지.

강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신새벽이 의자를 바짝 당겨 옆에 앉은 다음 휴대폰을 꺼냈다.

역시 그녀답게 최신식 휴대폰이다.

사진앨범을 열더니 사진을 하나 띄웠다.

“나 예쁘지?”

“선생님답네요.”

예전에 그에게 보냈던 사진과 비슷했다.

“이거 내가 대학 졸업하면서 찍은 건데…… 친구들이랑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했어. 그날 머리단장도 새로 하고 옷도 쫙 빼입고…….”

한참 설명이 이어졌다. 정작 강우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이것도 보내줄까?”

“괜찮으시다면요.”

“차 쌤에게 사진 몇 장 받았어?”

“대여섯 장요?”

“나보다 많네. 나도 그만큼 보낼게.”

이상한 쪽으로 경쟁한다는 기분이 들었으나 강우가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사진을 쓱쓱 넘기자 대학교 때 찍은 사진이 나왔다. 한눈으로도 강우는 그 배경이 한국대 교정임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속의 신새벽은 예뻤다. 평범한 일상 사진도 있었으나 작정하고 꾸민 후에 찍은 사진도 있어서 흡사 모델이나 탤런트처럼 보였다. 역시 그 미모가 어디 가지 않는다.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다.

오늘따라 이 선생님이 왜 이리 친절하게 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제 해준 일이 있기에 강우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사진을 쓱쓱 넘기다 보니 드디어 문제의 사진이 떴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강우를 보며 신새벽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야! 강우도 남자였네.”

“이런 사진 나오면 당연한 거잖아요?”

여선생이 고등학교 남학생 제자에게 할 말인지 혼란스러웠으나 수영복을 입은 신새벽은 그만큼 늘씬했다.

뭔가 날카로운 가시가 찌르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강우는 조심스럽게 차도도를 힐끔거렸다.

열심히 논문 수정을 하던 차도도가 차가운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신새벽 사진을 보는 그가 심히 못마땅한 표정이다.

순간 찔끔하는 기분에 강우는 몸을 움츠렸다.

“신새벽! 어린 애한테 자꾸 이상한 거 보여줄래?”

“누가 어린애야? 얘도 다 컸어. 이거 19금 사진 아니야.”

“그래도 선생님이 할 짓이 따로 있지. 그런 걸 왜 보여줘?”

갑자기 두 선생님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괜히 무안해진 강우는 휴대폰의 사진앨범을 닫았다.

신새벽이 차도도와 눈싸움하는 사이 강우는 신새벽의 휴대폰을 내려놓으려 했다.

그때 그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평소 신새벽이 웹소설을 읽나보다.

무심코 터치하는 순간 최근에 읽은 웹소설이 떴다.

“어? 쌤! 이거 뭐예요? 로맨스 소설 같은데…….”

“으악!”

기겁한 신새벽이 휴대폰을 빼앗았다.

그녀가 강우의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둘러댔다.

“제목이 이래도 19금 소설 아니야. 단지 제목만 조금 야한 거야.”

대충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은 강우는 혀를 찼다. 그의 눈에 고개를 저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 차도도가 보였다.

“표지는 19금처럼 보이는데…….”

“표지만 그런 거야. 그래야 독자가 꼬이잖아?”

“지난번에는 제 노트북 화면에 있는 걸그룹 동영상 가지고 야동이네 어쩌네 하시더니.”

“야!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잖아? 넌 미성년이고! 난 성년이다?”

신새벽의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조금 억울하다.

“알았어요.”

어쨌든 오늘은 신새벽 덕분에 눈이 호강했으니 충분히 보람찬 하루가 됐다.

주섬주섬 돌아가려 하니 차도도가 손을 까닥이며 불렀다.

“네?”

“강우야, 안 되겠다. 너희 둘 하는 짓 보니 내가 차마 이것까지 다 할 수가 없어. 이건 강우 네가 해.”

순식간에 차도도에게 넘겼던 두 논문이 강우에게로 넘어왔다.

일이 어깨 위로 쌓이는 순간이었다.

* * *

2월 마지막 주에 프로야구단을 방문했다.

해외 전지훈련을 마친 야구단이 국내로 돌아와 시범경기를 앞두고 몸을 푸는 시기다.

강우는 차도도와 함께 구장을 방문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로 했다.

프로야구단 방문은 처음이기에 강우는 기대하는 바가 컸다. 차도도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쌤? 오늘따라 유난히 잘 차려입으셨는데요?”

“내가? 평소랑 똑같은데?”

평소 학교에서 차도도는 검은색이나 남색 정장을 입었다. 무릎 부근까지 치마가 내려오는 점잖은 스타일이다.

오늘도 전반적인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옷 색상이 한결 밝아졌다. 연한 하늘색이다. 옷 색상만 보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기분이다.

“에이, 프로야구 선수 꼬시려는 건 아니죠?”

“뭔 소리야? 요즘 선수들은 연예인을 찾지 학교 선생님은 인기 없어.”

아니라고 손사래 치지만 그녀의 표정과 스타일을 보니 적잖게 의식하는 듯해서 괜히 심술이 났다.

구단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3군의 홍 감독과 공정혁 선수를 만났다.

“야구단 처음이시지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홍 감독이 두 사람을 깍듯하게 대했고 덕분에 편안하게 야구장을 비롯하여 각종 시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직 추운 날씨 탓에 실내 연습장에서 연습하는 몇몇 선수들이 보였다. 대부분 개인 훈련 중이다.

그들이 들어서자 선수들의 시선이 따라다녔다. 강우는 아마도 차도도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갑자기 미모의 여성이 연습장에 들어왔으니 선수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쳇.”

강우는 괜히 불편해져 혀를 찼다.

시설과 선수들 훈련 모습을 대충 둘러본 후 홍 감독이 두툼한 자료를 내밀었다.

“여기에 우리 구단에 소속된 투수의 자료가 있습니다. 구속, 구사 변화구, 회전수, 투구 모습 등 모든 게 다 있어요. 이건 대외비니까…… 절대 다른 곳에 노출하시면 안 됩니다.”

홍 감독이 신신당부했다.

강우는 그 걱정을 십분 이해했다.

“전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 비우겠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시면 정혁이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홍 감독이 차도도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라졌다.

강우도 그편이 훨씬 편했다. 아무래도 아버지뻘인 홍 감독은 부담스럽다.

공정혁이 차도도에게 물었다.

“더 구경하시고 싶은 것 있으신가요?”

“음, 투수를 조금 더 보죠. 어차피 이 프로젝트가 투수와 관련 있으니까요.”

강우 일행은 투수 연습장으로 이동했다.

따뜻한 실내에서 서너 명의 투수들이 투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요즘엔 투구 밸런스를 잡는 일에 주력합니다. 얼핏 던지는 게 쉽고 투박해 보이지만 이게 실로 매우 미묘하고 섬세한 작업이거든요. 밸런스가 틀어지면 아무리 대선수라도 고생하죠.”

팡- 팡-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팍팍 꽂혔다.

이제는 강우도 직구인지 변화구인지 대략 구분했다. 확실히 1군 선수들이라 공이 다르다. 공정혁의 직구와 비교하면.

차도도는 신기한 듯 공을 던지는 투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선수는 누구죠?”

“신재균이라고…… 1군 필승조 투수죠. 꽤 잘하는 투수라 보시면 됩니다. 직구가 좋고요.”

신재균이 던지는 모습을 강우는 한참 동안 눈여겨봤다.

그는 홍 감독이 건네준 자료에서 신재균을 찾아 선수의 특징을 확인했다. 전형적인 투피치 투수로 공정혁과 달리 변화구 구사율이 낮고 대부분 직구 위주로 던지는 선수였다.

열심히 보고 있자니 신재균이 땀을 닦으면서 그들에게 걸어왔다.

“아! 그 프로젝트?”

신재균이 알 것 같다는 듯 공정혁에게 물었다.

“어, 맞아. 오늘 견학 오셨어.”

두 사람은 나이가 같은지 서로 말을 놓았다.

강우와 차도도는 인사 후 이런저런 질문을 퍼부었고 신재균이 친절하게 답변했다.

“흠, 그래서…… 지금 던진 구질이 직구와 스플리터라고요?”

강우는 자료집에서 스플리터의 그립과 구질의 특징을 확인했다. 검지와 중지를 벌려 공을 잡아 회전수를 줄여서 직구 대비 낙차가 크도록 유도한 구종이었다.

“스플리터 던지실 때 그립 잡아보실래요?”

강우의 요구에 신재균이 친절하게 공을 잡은 모습을 보여줬다.

강우는 한참 동안 그립 형태와 공의 양력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예전에 공정혁의 변화구를 구상하면서 생각했던 여러 이론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실체가 모호했다.

“직구 그립도 잡아보실래요?”

신재균이 공을 다시 잡았다. 겉보기에도 두 구종은 공을 잡은 검지와 중지의 간격에서 눈에 띄게 차이를 보였다.

“자세히 보시면 앞에서 보았을 때 두 구종 모두 좌우가 완전히 대칭이잖아요? 공의 실밥 부분 말이에요.”

“그렇지. 대부분 그립이 다 이런 식인데…….”

공의 궤적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스플리터를 던질 때 손가락 모양은 그대로 두고 잡는 공의 실밥 위치를…….”

강우가 공을 조금 비틀었다.

의외의 요구에 신재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선수 생활하며 배운 내용과 미묘하게 어긋나서다.

그때 저쪽에서 연습 투구를 마친 선수가 그들을 지나가면서 비웃음을 던졌다.

“재균아, 괜히 비전문가 말 듣지 마라. 그러다가 폼 망가진다.”

신재균의 시선이 그 선수를 향했다.

“어? 동수 형?”

강우와 차도도를 향하는 백동수의 비웃음이 한층 짙어졌다.

“수년간 선수를 가르친 코치님들 말씀 못 들었어? 새로운 구질 장착은 조심해야 한다고.”

“그래도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구단주가 야구를 몰라서 그래. 하여튼 비전문가 말 들을 필요 없어.”

짜증이 난 표정으로 그들을 쓱 훑어보던 백동수의 시선이 마지막에 차도도에게 멎었다.

“그리고 예쁜 여자 조심해라. 잘못 물리면 인생 조져.”

“예?”

백동수가 그들을 무시하고 연습장을 떠났다.

어이가 없어진 강우와 차도도가 쓴웃음을 터트리는 사이 신재균과 공정혁이 대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세요. 요즘 저 형이 심기가 불편하거든요. 우리 구단 에이스인데…… 얼마 전에 업소 여자랑 얽힌 스캔들이 터져서 구단에서 질책을 받았거든요.”

사과를 들어도 마치 차도도를 야구선수를 노리고 방문한 여자로 취급해서 기분이 확 상했다.

강우는 비웃는 백동수의 표정을 떨쳐냈다. 어차피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으니까. 그는 주어진 프로젝트만 수행하면 된다. 백동수는 없는 셈 취급하면 그뿐이다.

“자, 다시 스플리터 그립을 쥐어보세요.”

강우는 기존 스플리터 그립과 자신의 그립 차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렇게 쥐고 동일한 폼으로 던지면 스플리터보다 낙차는 감소하지만, 좌우 변화가 증가하죠. 이론적으로 보면 그래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궤적을 형성할 수 있고…….”

공을 쥐었다가 풀었다가 반복하던 신재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선수들은 과학 이론을 배운 적이 없기에 강우의 설명은 뜬구름일 수밖에 없다.

“일단 한번 던져 보세요.”

강우의 주문에 신재균이 투수판에 섰다.

강우는 차도도와 함께 포수 뒤에 서서 공의 움직임을 살폈다.

팡-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한참 벗어나서 떨어졌다.

신재균이 다시 공을 받아 반복해서 공을 던졌다.

직구와 스플리터, 거기에 강우가 새로 알려준 그립으로 던진 공이 들어왔다.

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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