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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60화 (160/325)

제160화 2학년 (4)

얼마 먹지 못할 것 같던 소고기를 예상보다 많이 먹었다.

물론 차도도와 신새벽이 많이 먹은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면서 강우를 위해 불판에 고기를 올려주기 바빴고 강우는 오랜만에 호사를 누렸다.

아마 그를 제외하고 선생님에게, 그것도 눈이 뻔쩍 뜨일 미녀 선생님이, 거기에다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은 학생은 없을 것이다.

“역시 키 크려나 봐. 많이 먹네.”

신새벽이 강우의 키를 가늠해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일 년간 본인은 느끼지 못했어도 강우의 키가 부쩍 자랐다. 신새벽보다는 처음부터 더 컸고 차도도와 비슷했던 키가 지금은 한 뼘이나 더 커졌다. 이제는 옷을 잘 입으면 제법 멋진 미남의 티가 났다.

“그래도 더 커야지.”

차도도도 고기 한 점을 집어서 강우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강우도 차도도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차도도의 큰 키에 어울리려면 조금 더 커야 한다. 차도도가 여자치고는 상당히 큰 키이기 때문이다.

낮에 고곽천재가 차려준 생일 케이크를 받고 저녁으로 두 선생님이 구워주는 소고기를 입에 넣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생일은 없다.

순식간에 불판의 고기를 해치우고 더 주문하겠다는 신새벽을 말렸다.

느긋하게 배를 두드리고 있자니 차도도가 가방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자, 선물.”

연한 하늘색 포장지에 리본을 맸다. 그 모습이 예뻐서 차마 뜯기 어려웠지만 거듭된 신새벽의 재촉에 포장을 풀었다. 안에서 최신형 태블릿이 나왔다.

“필요할 것 같아서.”

차도도에게 노트북에 이어 태블릿마저 선물 받으니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된다.

그의 마음을 눈치채서일까, 차도도가 급히 설명했다.

“네 덕분에 프로젝트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훨씬 더 많으니까 부담 느끼지 않아도 돼.”

물론 숫자로 따진다면 그렇긴 하다. 하지만 강우는 정작 자신이 차도도에게 선물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물론 학생인 그가 주는 선물을 그녀는 바라지도 않겠지만.

“이야, 좋은데?”

신새벽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태블릿을 욕심냈다. 기어코 빼앗아서 이리저리 손으로 터치하며 살피던 신새벽이 웃으며 물었다.

“너, 여기에 또 걸그룹 동영상 깔아놓고 보는 건 아니지?”

“설마요. 이건…… 담임 쌤 사진을 바탕에 깔까요?”

기겁한 차도도가 손을 저었다.

“강우야, 그러다가 소문난다.”

“에이 소문은 무슨.”

신새벽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내 사진으로 깔아.”

“수영복 사진요?”

“야! 죽을래?”

한바탕 티격태격하던 신새벽도 손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자, 내 선물!”

“이건 뭔데요?”

“반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작은 상자를 열자 아주 심플하게 생긴 금반지 두 개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얼떨떨한 강우와 마찬가지로 차도도도 많이 당황한 표정이다.

“이 반지가 엄청 예쁘더라고.”

금 특유의 노란 광채가 화려하게 빛났다. 작은 무늬가 음각되어있는 두 반지는 놀랍게도 모양이 비슷했다.

“커플링이야?”

차도도의 싸늘한 말에 신새벽이 자랑하듯 말했다.

“순금이야. 꽤 신경 썼지.”

반지를 눈앞에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강우에게 신새벽이 직접 하나를 빼서 강우에게 끼워주었다. 신기하게도 강우의 손가락에 딱 맞았다.

“역시 내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야.”

남은 반지 하나는 신새벽이 직접 손에 꼈다.

그녀는 강우의 손을 앞으로 당겨 자신의 손과 나란히 놓았다.

“캬! 딱 어울리지?”

강우가 보기에도 두 사람이 손에 낀 커플링이 예쁘게 어울렸다.

눈꼴 사납다는 듯 차도도가 한숨을 쉬었고 강우는 어떻게 할지 한참 고민했다.

“강우야, 이거 커플링이니까 내가 손에서 반지를 빼기 전에는 너도 빼면 안 돼. 알지?”

“예?”

“요즘 금값 비싸거든? 강우야 팔러 가자.”

차도도와 신새벽의 시선이 서로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그를 예뻐해 주는 두 선생님이 고맙긴 하지만 저런 모습은 조금 걱정이다. 그에게 두 사람은 반드시 잡아야 할 아군이자 동료니까.

“고맙습니다.”

차도도가 신새벽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강우가 네 애인이야?”

“애인 아니어도 커플링 낄 수 있지. 같은 반지를 낀 스승과 제자. 나쁘지 않잖아?”

정말 사심이 없는지 강우도 혼란스러웠지만 어쨌든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혹시 쌤들은 생일이 언제에요?”

아직 강우는 두 사람의 생일을 몰랐다.

신새벽이 먼저 재빨리 대답했다.

“난 10월 31일.”

고개를 저으며 차도도도 대답했다.

“난 5월 5일.”

“어? 어린이날?”

기억하기 어렵지 않다. 강우는 두 사람의 생일을 머릿속에 넣으며 그때 꼭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 * *

신입생 입학식 날이다.

강우는 작년의 경험을 되새겼다.

오늘은 선배로서 신입생들의 입학을 축하하러 반드시 강당에 가야 한다. 물론 축하 때문이 아니다. 오늘 장학금을 받을 우수 신입생 셋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다만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니 입학식 때 선배들이 간이의자를 날랐던 기억이 난다. 작년과 올해 예비입학기간 첫날에 잡혀서 의자를 나른 고통을 떠올리자 눈물이 절로 흐른다. 오늘은 반드시 피하고 싶다.

“대우야, 우리가 오늘 또 의자를 나르면 안 되겠지?”

“응? 나야 뭐 상관없긴 한데…… 강우 넌 비실비실해서 좀 힘들긴 하겠네.”

비실비실? 이게 딱 균형 잡힌 몸이지.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어서 강우는 무시하고 대우 옆에 바짝 붙었다.

“강당 근처는 가지도 말고 강의실로 바로 가자. 설마 강의실에 있는 사람을 불러내어서 일을 시키진 않겠지?”

입학식이 시작되고 나서 강당으로 달려갈 계획을 세운 강우는 최대우의 옷깃을 잡고 B동으로 이동했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학생들의 얼굴이 낯설다.

그제야 강우는 학년이 올라가서 반 친구들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위를 휙휙 둘러보아도 그동안 그와 최대우를 보살펴주던 착한 두 여학생, 손차희와 윤수아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있을 때는 모르지만 사라지면 아쉬운 법이다.

새로운 학년임을 깨달은 강우는 재빨리 아는 얼굴을 찾았다.

낯익은 얼굴이 거의 없는 가운데 그나마 눈에 띄는 두 인물이 있었다.

그들이 손을 흔들며 그에게 다가왔다.

“어이, 브라더! 오랜만이네? 2학년 되더니 의젓해졌다?”

“어? 너희도 같은 반이야?”

놀랍게도 전상철과 고현성이 같은 반에 있었다. 다만 저쪽도 이쪽처럼 같은 조원 둘이 사라졌다.

저 녀석의 성화를 좀 벗어나나 싶었더니 올 한해도 절대 불가능할 듯하다. 대충 감을 잡아보니 이 반에서 1등은 전상철이고 2등이 아마 고현성이 아닐까. 손차희가 사라지니 그의 조는 완전히 몰락해버렸다.

“크크, 우리 올해도 내기 한판 붙을래? 너희가 어떤 조원을 충원해도 우리가 이길 것 같은데?”

자신감 넘친 고현성에게 비웃음을 던지는 사이 차도도가 들어왔다.

“여러분 반가워요. 3반 담임을 맡은 차도도입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은 정장 차림의 차도도는 믿음직해 보였다.

강우는 여느 때처럼 최대우 뒤에 숨어 잠잘 채비를 했다.

“자, 알다시피 먼저 조 편성부터 할 거예요. 조는 여러분들 자유에 맡길 테니까 지금부터 알아서 구성해봐요.”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짝짓기가 시작됐다.

일 년 전에는 모두가 강우와 최대우를 싫어하는 눈치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이 수학과 물리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니까.

다만 강우의 기행 때문에 학생들이 주저하는 사이 고현성은 이번에도 반의 유일한 두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헤이, 씨스더! 우리 같은 조 할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작년 과학 축제 있지? 그때 내가 발라드로 노래를…….”

고현성이 열심히 자신을 소개했다. 눈 오는 밤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았다면 절대 거절하지 못하리라 자신했다.

“아! 나도 그 공연 봤어. 너 노래 잘 부르더라?”

“그렇지? 게다가 우리 조에 이 반 1등이 있어. 어때 우리와 함께 하는 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고현성의 말에 두 여학생이 잠시나마 흔들리는 듯했다.

고현성은 자신의 얼굴과 매력이면 당연히 두 여학생이 같은 조에 넣어달라고 애원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아냐, 우린 이미 하고 싶은 애가 있어. 수아가…… 꼭 그 학생이랑 같이 하라고 했거든.”

두 여학생이 거절하자 황당해진 고현성이 물었다.

“누군데?”

“강우. 너도 나쁘지 않은데 내가 축제 때 강우에게 빚진 게 많아서.”

“강우? 강우가 뭘 해줬는데?”

“나 연극반이거든.”

두 여학생 가운데 한 명은 연극반이라 강우의 눈에 익었다. 덕분에 강우와 최대우는 1학년 때처럼 여학생과 한 조가 됐다.

“난 김나영.”

“난 채이솔.”

“어? 김나영? 오랜만이다!”

강우는 김나영의 얼굴을 기억했다.

“그때 고마웠어. 네가 극본을 써주지 않았다면, 네가 무대 효과를 해주지 않았다면 결과가 안 좋았을 거야. 우리 같은 조 할래?”

강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최대우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 모습을 본 강우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남학생보다 아는 여학생이 낫다. 괜히 거절했다가 자칫 고현성과 한 조가 되면 세계 멸망이다.

덕분에 강우는 올해도 유일하게 반에서 여학생과 같은 조가 됐다.

거절당한 고현성은 나라를 잃은 표정이 됐다. 고현성은 두 여학생이 왜 자신을 외면하고 강우와 같은 조가 되는지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조를 결성하고 있을 때 2학년 주임인 김윤택이 강의실 입구에 등장했다.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부는 기분에 강우가 몸을 사릴 때였다.

“차 선생님, 강당에 의자 날라야 하니까 학생 넷만 보내주세요.”

기겁한 강우가 최대우의 덩치 뒤로 숨는 순간 차도도가 냉랭하게 소리쳤다.

“강우! 대우! 상철! 현성이! 강당으로!”

순간 강우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지옥 사자에게 끌려가듯 허탈한 표정으로 강의실을 나가면서 강우는 차도도에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접니까?”

“작년에 담임해서 친한 학생이 너희들밖에 없는데…… 오늘 처음 본 학생을 시킬 수도 없잖아?”

“크윽!”

입이 툭 튀어나온 강우는 털레털레 학생들을 따라갔다.

생각해보니 강당에서 의자를 나를 때마다 계속 걸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최대우도 계속 같이 걸린다는 거다. 그가 운이 나쁜 건지 최대우가 운이 나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 *

지하에서 간이의자를 가져와 열심히 줄을 맞추고 나니 입학식이 시작됐다.

강우는 강당 2층에서 입학식을 내려다봤다.

작년과 달라지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 말씀도 주임 선생님 말씀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물론 강우는 작년에도 제대로 듣지 않았기에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당연히 올해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입학식이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일학년 후배가 생기고 오늘부터 선배가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예전 손강우 시절의 사명이 떠오른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국가의 미래에 이바지할 과학자로 이끌어야 한다고.

물론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도 그 뜻을 아직 잊지 않았다.

고민에 잠긴 사이 1학년 주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신입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겠습니다. 호명하는 학생 앞으로.”

세 학생이 단상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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