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라그랑주 포인트 (1)
고려 과학고 백두섭 교장은 눈앞의 선생님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아침부터 달려와서 고자질하는 이 남자는 바로 2학년 주임이자 물리 부장인 김윤택이었다.
“그래서 강우가 공부하지 않고…… 돈 버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그 말씀입니까?”
“네, 우려하던 일이 터진 겁니다.”
“돈 버는 일이라지만 엄밀히 말하면 연구 프로젝트이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학생의 본분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고등학생인데요.”
김윤택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강우의 잘못을 나열했다.
사실 잘못이랄 것도 없었다. 담임인 차도도와 화학 선생님인 신새벽과 어울려 상담실에서 노닥거린다는 것뿐이다. 다만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거의 매일인 데다 과제연구 날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니 문제였다.
“연구 프로젝트 수행이 바쁘면 당연한 일 같은데요?”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니 문제지요.”
“다른 학생요?”
“특히 신입생들이…….”
파이데이와 노창열 강연회 이후로 강우를 따르는 신입생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강우를 마치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처럼 떠받들었다. 선생님보다 강우를 더 신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얼마 전 신입생들의 과제연구 지도교사 배정이 끝났다. 작년에 김윤택은 신입생 가운데 최우수학생이었던 이민찬과 손차희를 휘하로 끌어들였다. 비록 2학기부터 손차희를 차도도에게 빼앗겨 버렸지만 어쨌든 1학기에는 최고인 두 사람을 얻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흘러야 했다. 장학금을 탄 3인방 가운데 적어도 두 학생은 그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게 최근까지 관례였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도 김윤택에게 지원하지 않았다.
특히 열심히 공을 들였던 하은찬과 유혜림은 신새벽에게 달려갔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가관이었다.
‘강우 선배가 추천했거든요.’
차라리 화학이 좋아서 화학 선생님에게 간다고 했으면 수긍했을 것이다. 김윤택은 이를 강우의 의도적인 방해로 간주했고 이를 갈았다.
3등인 문우주는 김선호와 연결됐다. 이 또한 강우가 뒤에서 조종했을 것이다.
“신입생들이 왜요?”
“강우라면 껌뻑 죽습니다. 강우가 하는 짓을 다 따라 하려 해요. 2학기부터는 프로젝트에 가담하겠다고 할 기세입니다.”
백두섭이 한숨을 흘리며 고민에 잠겼다.
강우가 특출난 학생임은 물을 필요조차 없다. 강우라면 졸업 전까지 확실한 성과를 낸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학생은 그렇지 않다. 고등학생에게 프로젝트와 논문은 곁다리 요식행위다. 대입에서도 없는 것보다 낫지만 비리가 많아 최근에는 거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옛말에도 있지 않습니까?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고요. 강우 때문에 학생들 앞날이…….”
백두섭은 눈을 찌푸렸다. 학생의 가능성을 미리 재단하여 틀을 정하면 선생의 자격이 없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틀이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솔직히 교과과정을 벗어난 경시나 연구에 매달리는 것보다, 내신에 치중하는 것이 학생들의 장래에 도움이 된다.
한숨을 내쉰 백두섭이 다시 물었다.
“강우가 교과를 등한시한다는 게 확실합니까?”
“담임에게 물어보시면 알 겁니다. 요즘 다른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궁리하더라니까요. 차도도 선생님하고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신새벽 선생님과도 뭔가 꾸미는 눈치입니다.”
백두섭은 차도도를 호출했다.
불과 몇 분 만에 차도도가 달려왔다.
“차도도 선생님, 현재 맡은 프로젝트가 몇 개이지요?”
“카이스트 프로젝트랑 DD 파이터즈 프로야구단 프로젝트까지 두 개입니다.”
차도도가 김윤택의 눈치를 보고는 또렷하게 대답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양쪽 모두 순항 중입니다. 카이스트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국내 물리학회지에 논문 한 편이 이번 달에 실렸습니다. 프로야구단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보고서가 없습니다만 해당 구단에서 알려온 바에 따르면 저희가 교정해준 두 투수가 시범경기에서 꽤 효과를 보였다고 합니다. 올해 정규 리그에서 기대된다고…….”
“그것 말고 다른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신가요?”
김윤택이 끼어들었다.
당황한 차도도는 백두섭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다행히 백두섭은 별다른 흔들림 없이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기를 낸 차도도는 앞으로의 계획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최근에 국제 학술지에 논문 한 편을 투고했습니다. 아마 다음 달이면 학술지에 실릴 겁니다. 그 학술지를 기반으로 해외 프로젝트를 체결할 예정이에요. 그렇게 되면…….”
“거봐요, 교장 선생님!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김윤택이 바로 딴지를 걸었다.
차도도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국내 학술지에 실은 논문만으로도 대외적으로 홍보하기 좋습니다만 국제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면 뉴스에 날 큰 사건입니다. 이것은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사건으로…….”
“과거에 그런 홍보가 종종 있긴 했습니다. 과학고 학생이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다는…….”
“네, 그렇습니다. 절대 학교에 해가 되지 않습니다.”
백두섭이 김윤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뜻이다.
“신입생들이 강우를 따라 하는 게 문제란 겁니다.”
“전 그게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현재 강우의 행동은 모두의 본보기가 될 만한 가치가 있고 훗날 학생들이 연구자가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은 방해라니까요. 학생들이 교과과정을 등한시하는 게 눈에 보이잖아요.”
김윤택과 차도도의 설전이 벌어졌다.
차도도는 김윤택의 어깃장에 화가 치밀었다. 김윤택이 과제연구에서 우수한 학생을 받지 못한 화풀이를 이곳에서 한다. 치사하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백두섭이 양측을 중재했다.
“그럼 김 선생님께선 어떻게 조치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앞으로는 추가 프로젝트를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그건 안 됩니다. 그건 학생의 미래를 꺾는…….”
“양측 모두 일리가 있네요. 고민해보도록 하지요.”
백두섭의 중재로 결론 없이 끝났다.
다만 언제든 추가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 수 있기에 차도도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강우의 가정형편과 계획을 아는 그녀는 자칫 이 문제가 골치 아픈 문제로 번지지 않기를 바랐다.
* * *
중간고사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밤늦은 시각에 식당에 모여 야참을 즐겼다.
강우는 고곽천재와 함께 햄버거를 배달시켜 배를 채웠다.
작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차이점이라면 강우의 앞에 유달리 많은 학생이 줄을 섰다는 것뿐.
내일이 시험 첫날인 수학이어서 수학 문제지를 든 학생들이었다. 같은 학년 학생보다 아래 학년 학생이 유달리 많다.
“이 문제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대부분 정답지가 있는 문제다. 하지만 강우에게 가져오는 이유는 강우의 설명이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 자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정답이 무엇인지, 푸는 방법이 무엇인지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바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의 설명은 어떻게 푸는지가 아니라 왜 이렇게 풀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설명을 듣고 나면 간지러운 등을 긁은 것처럼 시원하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강우야, 네 공부도 해야 하잖아?”
“난 괜찮은데?”
윤수아의 참견에 강우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제는 시험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뭐…….”
탁자에 가득 쌓인 과자를 집으며 윤수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에게 질문하는 학생들이 놓고 간 과자여서 강우에 대한 걱정이 바로 날아갔다.
시험에 지장을 주지 않을 리 없지만 정작 당사자인 강우가 괜찮다면…….
햄버거를 입에 물면서 정신없이 설명해주던 강우가 특이한 문제의 질문자를 확인했다.
“넌 왜 왔어?”
“저도 모르는 게 있다고요.”
“넌 평소에도 세미나실에서 묻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오늘 새로 생긴 질문거리거든요.”
하은찬이다.
하은찬이 가져온 수학 문제를 본 강우는 작년 생각이 났다.
작년에 손차희도 이랬던 것 같다. 교과과정을 벗어난 고난도 문제에 집착한다. 어렵게 출제한다고 하면 교과과정을 벗어난 문제라고 착각하는 학생이 있다. 특히 하은찬은 경시 공부를 하느라 그런 문제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시험 전날 공부하는 내용도 내신을 벗어난 문제다.
“이런 문제 안 나와.”
“나온다던데요? 작년에도…….”
하은찬이 반박하자 바로 뒤에선 여학생이 재차 물었다.
“안 나와요?”
이 학생은 유혜림이다. 그녀가 내민 문제도 하은찬과 비슷했다. 내신 시험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문제다.
“작년에 나온 적 없어. 너희가 보면 교과과정을 벗어났다고 생각할 문제도 제대로 알면 교과과정 범위 내의 문제거든. 그러니 확실하게 벗어난 문제를 공부할 필요는 없어. 적어도 내신대비로는.”
“그래요?”
하은찬과 유혜림이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은찬이가 출제된다고 강조했는데…….”
“내가 언제?”
“경시 문제 덕후인 네가 더 점수를 잘 받을 거라고 놀렸잖아?”
“그야 당연히 내가 수학을 더 잘하니까……. 또 우리 엄마가…….”
툭탁거리는 둘을 보니 작년의 이민찬과 손차희가 생각났다. 지나치게 서로를 견제하며 제 페이스를 잃었던 두 사람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었다. 이 둘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래서 계속 경시 문제 위주로 풀었어?”
“내신 문제는 쉬워서 이미 다 풀었으니까요.”
흔한 착각이다. 내신 범위의 문제라고 반드시 쉽지 않다. 학생들이 경시 문제나 고난도 문제에 손을 대는 이유는 누구나 풀어본 내신용 문제가 아닌 처음 보는 유형에서 점수를 유리하게 따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즉 다른 학생은 풀어보지 않은, 나만 풀어본 문제가 출제될지도 모른다는 운을 기대하기 때문인데 진정한 공부라면 접하지 않은 문제도 풀 수 있도록 실력을 길러야 한다.
“적어도 하루 전에는 기초를 다지는 게 더 나아. 내일 쳐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고난도 문제, 범위를 벗어나는 문제는 거의 없어.”
약간은 뚱한 표정으로 두 학생이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둘은 서로 점수를 잘 받을 거라며 말다툼을 멈추지 않았다.
“……누구랑 닮았네.”
중얼거리면서 손차희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미간을 확 찡그렸다. 본인 이야기임을 눈치챈 모양이다.
“난 저렇지 않았거든. 먼저 들어갈게.”
다 먹은 햄버거 포장 쓰레기를 주섬주섬 치우면서 손차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붙잡는 남학생이 있었다. 이민찬이다.
“차희? 공부 많이 했어?”
“넌 또 왜?”
이민찬은 평소처럼 일회용 음료수 컵에 꽂은 빨대를 쭉쭉 빨고 있었다.
“우린 2학년이잖아? 이번에는 내가 꼭 너를 눌러주려고.”
“작년 네 성적이나 확인하고 그런 소리를 해.”
“너랑 나랑 차이도 없거든.”
2학기 들어서부터는 성적이 안정화되어 일 년 통산으로 두 학생 모두 최상의 성적을 거뒀다. 물론 손차희가 조금 앞선 성적을 냈지만.
“네 주제부터 파악해.”
손차희가 상대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식당을 나갔다.
그 뒤를 이민찬이 졸졸 따라가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저 둘을 보면 볼수록 나쁜 사이는 아니다. 경쟁자라 사이가 나쁘다고 오해한 듯하다. 경쟁자란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밑받침이 되는 동료이니까.
2학년 때부터 저 둘의 경쟁이 어떤 결과로 발전할지 기대가 되었다.
어쨌든 나쁘지 않다. 적어도 눈앞에 보이는 이 둘보다는.
“헤헤. 강우야? 이건 내꺼다.”
탁자에 놓인 과자를 품에 안으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윤수아와 하나라도 뺏어보려는 최대우가 한숨을 불러온다. 이 둘이 먹을 것을 놓고 싸우지 않는 날이 오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