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최종선발전 (2)
도남혁은 3학년이고 처음 보는 학생이다.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한 사람 때문에 대표팀의 분위기가 틀어지면 곤란하지.”
강우의 대답에 마지막까지 한마디를 더 얹은 다음 도남혁이 물러났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안찬엽이 나섰다. 3학년인데다 작년 금메달리스트이기에 박일현과 함께 이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나 마찬가지였다.
“자, 여러분들은 서로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모두 협력해서 국가의 명예를 높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2주 동안 서로 도우며 좋은 결과를 맞이해야 한다. 지나치게 경쟁에 몰두하면 팀워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모두가 수긍해서 분위기가 다시 좋아졌다.
서로 소개와 인사가 끝난 후 학생들은 강의실로 돌아갔다.
강우는 그 와중에도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그 원인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바로 그에게 한소리 한 도남혁이 노려보고 있겠지.
도남혁의 의도는 짐작이 된다. 작년 금메달리스트인 두 사람을 제외하면 강우가 국가대표에 가장 근접해 있다. 지난 겨울학교 성적으로 판단하면 그렇게 보인다.
그렇기에 견제가 들어왔다.
물론 강우는 상대를 조금도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경쟁자는 이 안에 있지 않고 다른 나라에 있으니까.
뒤통수가 계속 근질거리자 강우는 한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강의실로 들어갔다.
‘젠장 머리도 감았는데…….’
* * *
한국대에서 최종선발전 대비 수업을 들은 후 강우는 차도도의 집에 모였다.
함께 수업을 들은 손차희와 강우가 여기에 있으니 물리 수업을 들은 최대우도 당연히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곽천재 셋이 모이자 윤수아도 만사를 제쳐놓고 차도도의 집으로 왔다.
덕분에 차도도의 집은 북적였다.
꽤 넓은 펜트하우스이기에 공간이 비좁지는 않았다.
신새벽마저 찾아와서 공부에 가담하자 차도도의 아파트는 마치 아늑한 공부방처럼 변했다.
강우와 최대우의 담임이 차도도이고 손차희와 윤수아의 담임이 신새벽이다 보니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대우야, 오늘 재미있었어?”
학교에서 만나지 못했던 강우는 최대우에게 물리 올림피아드 최종선발전 분위기를 물었다.
“물리에서는 우리 학교 학생이 나를 포함해서 셋뿐이야. 중앙 과학고 학생이 넷.”
수학과 달리 물리에서는 중앙 과학고가 학생 수가 가장 많은 모양이다.
“동훈이도 있어?”
얼마 전에 전시회에서 만났을 때 남동훈도 최종전까지 간다고 했었다.
“내가 거기에서 아는 학생이 동훈이뿐이야. 물론 우리 학교 학생 빼고.”
“그나마 다행이네. 어때? 할만해?”
“실험이 많아서…….”
최대우의 말소리가 작아졌다. 최대우는 이론에 비해 실험이 유독 약하다. 물리 올림피아드는 이론과 실험을 모두 평가한다. 이론만 따지면 단연 최고 실력일 녀석이 실험 때문에 고생문이 열렸다.
“잘할 거야.”
“2주일간 엄청 열심히 해야지. 나도 MIT에 가고 싶어.”
최대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도 갔으면 좋겠다.”
손차희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12명의 면면을 보니 암담 그 자체여서다.
“그래도 넌 나보다 낫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정보올림피아드에 나가는 건데…….”
윤수아가 한탄했다. 어쩌면 그녀도 정보올림피아드를 체계적으로 준비했다면 다른 학생들처럼 최종선발전에 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부모님 눈치 때문에 원서를 쓸 생각조차 못 했다.
윤수아를 위로하던 손차희가 강우에게 의견을 구했다.
“강우야, 오늘 다른 학생들 보니 어때? 6명에 누가 뽑힐 것 같아?”
오늘 그녀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한국대에 갔다가 다른 학생들과 대화한 후 풀이 죽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그녀보다 못한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6명에 들기 힘들겠다는 생각뿐이다.
“글쎄? 별로 잘할 것 같지 않던데?”
“그건 너한테나 그렇지. 일단 일현 선배와 중앙고 찬엽 선배는 무조건 뽑히고…… 너도 당연히 되겠지? 그럼 벌써 세 자리는 끝났고 남은 자리에…….”
손차희는 남은 학생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유성이도 작년에 상비군이었고 올해도 잘하니까…… 그럼 둘만 남네. 그런데 오늘 너에게 뭐라던 그 선배 말이야…….”
“도남혁?”
“응, 그 한라고 학생인가? 그 사람도 작년 은메달리스트라며?”
“그렇다더라.”
“그럼 그 사람도 되겠지. 그럼 남은 건 한 자리인데…… 과연 내 자리가 있을까? 우리 학교 학생 중엔 누가 제일 낫지?”
“내 생각엔 은찬이가 유성이보다 더 가능성이 있을걸?”
예상치 못한 전망에 손차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은찬이도 잘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지 않아?”
“은찬이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지난 겨울학교 때랑 완전히 달라.”
강우의 단언하는 말투에 손차희의 안면이 더욱 어두워졌다. 남은 세 자리를 권유성과 하은찬, 도남혁이 차지해버리면 그녀의 자리는 없다.
“아아! 난 어려우려나?”
“아직 포기하긴 일러.”
“밀어낼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거기에다 모르는 학생 중에 뜻밖의 다크호스가 있을 수도 있고.”
실망한 손차희가 땅이 꺼지라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녀의 낙심을 이해한 강우가 희망을 던졌다.
“내 생각에는…… 유성이랑 그 도남혁이란 사람, 둘 중 한 명을 네가 밀어내야 해. 은찬이는 힘들 것 같고.”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그녀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우였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유성이랑은 어떻게든 경쟁이 될 것 같긴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작년 은메달리스트를 이겨?”
그렇게 말하지만 손차희는 권유성이 얼마나 힘든 상대인지 안다. 중학교 때부터 학원에서 경쟁하면서 수학에서만큼은 권유성을 거의 이기지 못했으니까. 올림피아드에서마저 권유성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은 당장은 힘들겠지만…… 열심히 한다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야.”
애초에 강우는 선발전에 깊이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경시는 본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한라고 도남혁에게서 시비를 당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손차희가 노력하면 도남혁을 이길 수 있을까.
현재 분위기로 봐서 그와 도남혁이 모두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선수 간의 화합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농후하다. 특히 도남혁이 3학년이라 계속 시비를 걸어오면 대책이 없다. 그런 환경은 사양이다.
그래서 강우는 내심 손차희와 권유성을 도와 도남혁을 밀어낼 생각을 굳혔다. 물론 이 둘이 열심히 한다는 전제하에서지만. 운이 좋으면 안찬엽을 제외한 5명을 모두 고려 과학고에서 차지하게 된다. 이 또한 경사스러운 일 아닌가.
“내가 유성이나 도남혁을 이길 수 있을까?”
“물론이지. 너만 열심히 하면.”
“2주도 채 안 남았는데?”
“가능할걸?”
강우가 빙그레 웃었다.
이미 일 년 반 동안 손차희는 강우를 옆에서 봐왔다. 그동안 강우는 적어도 공부에서 빈말한 적이 없다. 공부하는 방법에서도 강우가 항상 옳았었다. 다른 학생의 등수나 점수 예측도 기가 막히게 맞추었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희망을 얻었다. 강우가 가능하다고 말하니까.
“좋아! 열심히 해볼래. 강우 네가 도와줘.”
“그래! 오늘부터 특별훈련이다!”
의욕에 찬 손차희가 공부에 몰두했다. 최대우도 벌써 열심히 공부 중이었다. 윤수아는 애초에 할 일이 없으니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을 보였고.
남은 사람은…….
강우는 차도도와 신새벽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화에 관심이 있었던 듯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움찔하며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우는 빙그레 웃으며 차도도에게 말을 걸었다.
“쌤! 쌤도 슬슬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을 때가 되지 않았어요?”
“그건 네가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난 다음이지.”
“저야 당연히 되죠.”
“어휴, 저 근거 없는 허풍은…….”
차도도는 고개를 흔들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MIT에서 수학 올림피아드가 끝나고 난 직후에 물리 올림피아드가 열리잖아요? 그러니까 쌤은 수학 올림피아드가 끝나는 날 MIT로 날아오시면 되죠. 그러면 다음 날 요셉 교수랑 만나면 되거든요? 대우가 물리 올림피아드를 치르는 동안에요.”
“흐음, 그것도 괜찮겠네.”
강우와 차도도는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쭉 펼쳤다.
한참 일정 계획을 짜고 있자니 신새벽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뭐야? 둘이 같은 호텔 방 쓰는 거야?”
“강우가 미성년이라…… 혼자 방 못 쓸걸? 옆에 보호자가 붙어야 할 텐데?”
“네가 보호자라고?”
신새벽이 차도도를 가리키며 기가 막힌 듯 혀를 찼다.
“당연히 내가 보호자지. 나 없으면 강우 혼자 미국에 있지도 못해.”
강우 혼자서는 수학 올림피아드 팀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요셉 교수와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강우는 미국에서 차도도화 함께 움직여야 한다.
신새벽이 야릇한 눈으로 두 사람을 훑었다.
“오올? 뭔가 야릇한 분위기인데? 스승과 제자가 호텔 방에서 뜨거운 밤을…….”
“무슨 소리야? 설사 내가 강우랑 같이 방을 쓴다고 해도 뜨겁긴 뭐가 뜨거워?”
“그렇다는 거지.”
신새벽이 야릇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은 지금도 차도도의 아파트에서 가끔 지낸 사이다. 그러니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와 부딪히자 강우와 차도도는 난감해졌다.
머리가 복잡해진 강우는 일단 결정을 미뤘다.
“쌤! 어쨌든 요셉 교수에게 두 번째 논문부터 보내고 의향을 물어봐야 하니까요. 얼른 논문부터 쓰세요.”
“어쨌든 요셉 교수는 여름방학 기간에 미국에 오라고 했잖아?”
“프로젝트 협의하려면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 해요. 그러니까 우리 능력을 더 확실하게 보여줘야 하니까…… 논문부터…….”
“네가 넘겨준 부분까진 다 했거든? 네가 빨리해야지.”
차도도가 핀잔을 줬다.
따지고 보니 그 말이 맞는다. 젠장! 할 일이 너무 많이 쌓였다. 본인의 국가대표 통과도 신경 써야 하고 거기에 손차희도 가르쳐서 끌어야 한다. 상온핵융합 두 번째 논문도 급하고, 고속전철 위탁연구 보고서 마무리도 해야 한다.
물론 차도도에게 떠넘겨 버리면 간단하겠지만……. 그냥 넘겨 버릴까?
어느새 차도도도 쓰던 연구 보고서를 펴놓고 내용을 보완하고 있었다. 그녀도 최근에 모든 시간을 투입하여 열심히 하기에 차마 떠넘기기가 쉽지 않다.
“끙! 내가 잠을 줄여야지.”
예로부터 공부하다가 죽은 사람은 없다니까 그 말을 믿고 더 집중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수학 대표선발은 수업 시간에 더 정신 차려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강우도 상온핵융합 논문을 검토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그를 쳐다보는 두 사람이 보인다. 윤수아와 신새벽이다.
“수아야, 출출하지 않아?”
“어? 어떻게 알았어? 강우야, 내가 나가서 뭐 좀 사 올까?”
“아니, 신새벽 쌤더러 맛있는 것 만들어 달라고 하자.”
“올! 그거 좋은 생각이야!”
환호하는 윤수아와 달리 신새벽이 갑자기 발끈했다.
“강우! 넌 내가 무슨 밥해주는 사람으로 보이니?”
“그런데요?”
“이게 죽으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신새벽은 요리를 하러 주방으로 내려갔다.
조르르 따라가는 윤수아를 보면서 강우는 다시 논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