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최종선발전 (3)
국제 올림피아드 대비 수학 수업은 문제풀이 및 토론 위주로 진행했다. 수업은 올림피아드 경력이 있는 대학원생이 맡아서 진행했고 지도교수인 이성철은 가끔 들어와서 수업 현황을 살펴보곤 했다.
토론 시간에 박일현과 안찬엽은 한발 물러나서 지켜보는 스타일이었다. 당연히 강우도 토론을 싫어해서 토론보다는 개인 문제풀이에 치중했다.
그렇다 보니 남은 학생들이 주로 참여했고 이 그룹에서 가장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은 도남혁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열심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도남혁은 지나치게 인신공격적이었다.
강의를 맡은 대학원생 조교가 칠판 앞에서 숫자를 나열했다.
2, 3, 5, 7, 11, 13…….
“이게 뭔가요?”
“소수요.”
학생들이 대답했다.
“소수의 뜻은?”
“1과 자신 이외에는 나누어지지 않는 1보다 큰 자연수요.”
소수의 정의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다룬다.
“오늘은 소수에 관한 각종 문제를 살펴볼 거예요. 먼저 소수는 무한한가를 증명해보죠.”
소수의 무한성을 발견한 사람은 그리스의 유클리드였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원론에서 귀류법으로 이 명제를 증명했어요. ‘1보다 큰 모든 수는 적어도 한 개의 소인수를 갖는다’란 기본정리를 증명했죠. 자, 이를 증명하는 방법은…….”
강사가 설명하는 동안 도남혁이 끼어들었다. 도남혁이 자신 있게 대답하는 이유는 작년에도 이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살짝 눈을 찌푸린 강사가 설명을 계속했다.
“……네, 잘 대답했어요. 그래서 소수에는 두 가지 풀리지 않는 난제가 남아있어요. 즉, 어떤 수가 소수임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소수가 아닐 경우 그 수의 소인수분해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 두 문제는 지금까지 수학자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랍니다. 그럼 소수를 어떻게 찾죠?”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체요.”
“그렇죠. 초등학교 때 배운 방법이죠.”
자연수를 쭉 나열해놓고 2의 배수, 3의 배수 순으로 계속 지워나가는 방법이다. 사실상 학교에서 배우는, 소수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 다른 방법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에라토스테네스의 방법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편하지만, 숫자가 커지면 감당할 수 없다. 50자리의 수가 소수인지를 이 방법으로 판별하려면 컴퓨터를 사용해도 수백억 년이 걸린다.
“자,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도남혁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페르마의 소정리가 있습니다.”
“아, 잘 대답했어요. 나와서 페르마 소정리를 설명해볼까요?”
도남혁이 앞으로 나가서 페르마가 발견했던 소수 검사방법을 설명했다.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루카스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루카스가 고안한 방법이다.
“설명해볼까요?”
다시 도남혁이 칠판에 수식을 쭉 늘어놓으면서 루카스 방법을 설명했다. 당연히 설명이 대충이어서 모르는 학생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사가 한 부분을 지적했다.
“루카스 방법은 20세기 들어와서 레머가 보완 발전시켰죠. 그래서 현재 루카스-레머 검사법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방법에는 중요한 개념이 들어있는데…….”
“그건 메르센 소수입니다.”
변함없이 도남혁이 끼어들었다.
“그럼 메르센 소수를 알아볼까요?”
“……저, 조교님!”
도남혁이 조교의 설명을 중간에서 잘랐다.
조교가 그를 돌아보자 도남혁이 짜증이 난 어투로 말했다.
“여기서 메르센 소수를 모르는 학생은 없을걸요? 명색이 국가대표 상비군인데 그것도 모르면 자격이 없죠. 그리고 그건 작년에도 했거든요? 쉬우니 넘어가면 어떨까요?”
“음…….”
조교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메르센 소수는 중요한 내용이라 여기에서 파생되는 개념이 다수 있어 설명하는 게 좋을 듯한데…… 모르는 학생 있어요?”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다. 잘 알아서라기보다 도남혁이 저런 식으로 선언해버리니 여기에서 손을 들면 국가대표가 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조교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메르센 소수 문제는 모두 안다고 보고…… 역사적으로 보면 여기에서 또 다른 중요한 수가 나오죠. 바로 페르마 소수입니다. 당시 페르마가 발표했던 가설은…….”
페르마가 소수라고 가정했던 페르마 소수는 나중에 오일러에 의해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오일러는 n=5인 페르마 소수 4294967297을 641로 나누어 소수가 아님을 증명했다.
조교가 페르마 소수의 개념을 설명하려 하자 다시 도남혁이 제동을 걸었다.
“그것도 모르는 학생이 없을 건데요?”
“페르마 수는 기하학에서도 중요하거든요.”
“저희 국가대표 상비군이거든요? 이제 2주도 채 안 남았는데 작년에 했던 내용을 빼고 다른 내용으로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처음 온 학생도 있는데요?”
“어차피 6명만 뽑으면 되잖아요? 효율을 따지면 모두가 모르는 내용을 하는 게 최선이죠.”
거침없는 도남혁의 도발에 조교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모두 처한 상황이 달라서다.
강우는 옆에 앉은 손차희의 얼굴에서 짜증을 발견했다. 그녀는 메르센 소수와 페르마 소수의 강의를 듣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차마 설명해달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아는 것처럼 보여 혼자만 뒤처졌다고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수학에서는 때로 정답이 중요하지 않다. 정답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경우가 훨씬 많다. 과거 유명한 수학자들이 왜 저런 가설을 세우게 되었는지 그 가설이 어떻게 증명되고 수학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강우는 도남혁의 제안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자, 그럼 다른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조교가 도남혁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강우가 손을 들었다.
“조교님! 저는 모르는데요?”
순간 학생들의 시선이 강우에게 쏠렸다. 누구도 자신이 모른다고 드러내기 어려울 때 당당히 밝힌 강우의 용기는 대단했다.
물론 강우가 모르는 내용은 아니다. 단지 손차희와 하은찬을 비롯한 주변 학생들의 표정을 읽고 대변해주었을 뿐이다.
일순간 강의실은 혼란에 빠졌다.
도남혁이 강우를 노려봤다.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시비를 거는 건지 확인하려는 표정이다.
당연히 강우도 상대를 노려봤다.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만나 불꽃이 튀었다. 첫날 물러섰던 강우는 이번에는 양보하지 않았다.
유치한 어린애들이 하릴없이 벌이는 싸움이 눈싸움이라지만 강우는 상관하지 않았다.
마치 먼저 눈을 깜박이는 사람이 패배한다는 생각에 강우는 눈에 힘을 주었다.
잠시 시간이 멎은 듯 노려보던 도남혁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별것 아니군.’
강우는 내심 승리의 나발을 불면서 한차례 썩은 비웃음을 날렸다.
움찔한 도남혁은 강우와 대적하기를 포기하고 이번에는 조교를 시선으로 압박했다.
조교는 설명을 계속하기도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기도 모호한 상황에 빠졌다.
상황을 눈치챈 손차희가 나섰다.
“저도 몰라요. 그러니까…… 설명해주세요.”
“모르면 나중에 개인적으로 질문하면 되지 않나요? 여긴 아는 학생이 더 많아요. 실력이 딸릴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다른 사람이 못하도록 발목을 잡으면 곤란하죠.”
도남혁이 비웃음을 지으며 응수했다.
안색이 붉어진 손차희가 도남혁을 노려보았고 도남혁은 작년에 함께 들었던 학생들을 부추기며 물러서지 않았다.
양보 없는 대립이 계속되자 조교가 마침내 절충안을 내놓았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새로운 내용으로 수업하고요, 내일부터는 반을 둘로 쪼개어 다른 내용으로 하죠. 물론 양쪽 수업의 프린트물을 모두 드립니다. 어차피 다 공부해야 하니까요. 어때요?”
그제야 도남혁이 물러섰다.
조교가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그럼 내일부터 반을 나눠야 하니까 작년 수업 내용을 계속 들을 학생은 손들어봐요.”
당연히 강우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를 따라 손차희와 하은찬도 손을 들었다. 열두 명 가운데 모두 셋이다.
“나머지는 새로운 내용으로 할 건가요?”
아홉 학생이 동의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학생들이 마치 국가대표 상비군 1군, 2군처럼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찌질이들 다 모였네.”
도남혁의 비웃음을 들은 손차희가 발끈했다.
“뭐예요?”
“말 그대로야. 작년 메달리스트는 아무도 손을 안 들었어. 너희가 민폐를 끼치고 있었던 거지.”
“하! 정말 그딴 식으로…….”
싸움이 번지기 전에 조교가 재빨리 중단시켰다.
“그럼 방금 말한 대로 내일부터는 분리해서 수업하겠습니다.”
* * *
“하! 기분 나빠!”
강의실을 나오면서 손차희가 연신 투덜댔다.
오늘 수업 내내 손차희는 손으로 부채질하면서 화를 삭였었다. 중간중간에 강우는 계속 그녀를 달랬다.
같은 편인 하은찬이 두 사람을 따라와서 물었다.
“내일부터 우리만 따로 공부하는 거예요?”
“그런 것 같은데?”
강우의 대답에 손차희가 덧붙였다.
“차라리 잘 됐어. 보기 싫은 녀석 안 봐도 되니까.”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손차희는 강우를 돌아보았다.
“강우야, 넌 이미 다 알지 않아?”
“아는 건 맞아.”
“그런데 왜 손을 들었어?”
“굳이 교육내용을 바꿀 필요는 없으니까. 미리 준비한 교재는 아마 체계적으로 만든 교재일 거야. 작년 강의 내용을 보완해서. 하지만 오늘 갑자기 급조하게 될 교재는 내용이 부실할 가능성이 크지.”
“그렇지만…….”
“이게 내신처럼 정답을 구하면 끝나는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답은 아무 의미가 없어. 어차피 그 과정을 증명해야 하니까. 즉 제대로 이해해야 응용할 수 있어. 오늘 봤듯이 소수 문제만 해도 수많은 수학적 논쟁과 연결되어 있거든.”
강우의 설명에 손차희와 하은찬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잘하는 학생들은 모두 저쪽에 모인 것 같아서…….”
“작년 메달리스트인 박일현, 안찬엽, 도남혁은 당연히 새로운 걸 하는 게 낫겠지. 권유성도 작년에 들었으니 마찬가지고.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아니야. 그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몰라.”
“도남혁은 자기들이 1군이라고, 그중에서 6명이 뽑힐 거라고 험담하는데?”
“그건 착각일 뿐. 도남혁이 비록 작년 메달리스트이지만 저런 식으로 공부하면 발전이 없지.”
“그런가? 근데 이민찬은 대체 뭐야? 걔는 왜 우리 쪽으로 안 오고…….”
손차희가 불평을 터트렸다.
박일현과 권유성은 이해한다지만 이민찬은 그들과 같은 처지다.
“학원에서 다루었었나 보지. 굳이 남을 의식할 이유는 없어.”
강우의 다독임에 그제야 손차희는 마음을 안정했다. 강우의 말이 옳다면 내일부터 신 교재로 수업하는 저쪽 팀이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마. 내일부터 우리는 핵심내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공부하기로 하자. 우리 셋뿐이니까 오히려 필요한 내용으로 구성하고 질문하기도 편해졌어.”
강우는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다. 손차희를 잘 가르쳐서 도남혁을 이겨볼 작전이었는데 오늘 사태로 오히려 판이 잘 깔렸다.
목표물이 정해졌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국가대표에 가장 아슬아슬하게 붙는 사람은 손차희일 것이고 가장 아슬아슬하게 떨어질 인물은 도남혁이 될 것이다.
1군이 좋다고 저쪽에 붙은 이민찬과 다른 학생은 오히려 역효과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테니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