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80화 (180/325)

제180화 최종선발전 (4)

차도도의 아파트로 돌아온 강우는 손차희와 함께 수학 올림피아드 준비에 매진했다. 얼핏 같이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하게는 손차희를 일방적으로 돕는 상황이다.

이제 손차희는 강우의 공부법을 잘 이해했기에 강우가 옆에 붙으면서 효율이 대단히 높아졌다. 손차희는 분명히 우수하고 똑똑한 학생이었으나 수학 재능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강우가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손차희의 실력은 비약적으로 향상했다.

‘차도도 쌤이랑 비슷하네.’

그가 차도도와 공동연구를 하면서 차도도의 물리 재능이 만개한 것처럼 손차희도 수학에서 비슷한 결과를 얻고 있었다.

예전에 의심하던 점이 더 명확해졌다. 그의 천재성에는 본인뿐만 아니라 옆의 다른 사람의 능력을 계발하는 능력도 포함되었음이 확실했다.

강우의 시선이 손차희를 시작으로 최대우, 차도도와 신새벽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신새벽 쌤도 효과를 보겠지.’

스스로 재능을 만개하여 빛나는 연구결과를 쟁취한 것만큼이나 이 또한 뿌듯하다. 연구 동료의 능력이 향상되면 그 이익은 결국 그에게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윤수아에게 시선이 닿았을 때 그를 흥미롭게 관찰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강우야? 출출하지 않아?”

역시 윤수아는 달라지지 않았다.

곧바로 최대우가 반응했다.

“그렇지? 먹을 게 필요해.”

이곳에서 현재 가장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신새벽의 눈이 확 돌아갔다.

“야! 이것들이 또 나를 부려 먹으려고? 오늘은 요리 안 해!”

“지금 쌤이 제일 한가한데요?”

강우의 지적에 주위를 살핀 신새벽이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그래도 안 해. 난 요리할 줄 몰라!”

“그럼 밖에서 먹을 거 사 오시면 되잖아요?”

“마침 과자도 떨어졌어요!”

윤수아가 적극적으로 끼어들었다.

“우리 신 쌤 마음씨가 비단이었는데.”

“학생에게 과자 사주는 것도 아까워하는 구두쇠일걸?”

강우와 윤수아가 뜻 모를 말을 주고받자 견디다 못한 신새벽이 벌떡 일어났다.

“아아! 이것들이! 알았다, 알았어! 그래 뭐 사다 줄까?”

“쌤! 최고예요!”

강우가 엄지를 척 올렸다.

최대우가 질세라 가장 먼저 원하는 품목을 말했다.

“쌤! 전 입구 햄버거집에서 소불고기버거세트요. 음료는 콜라.”

“알았어. 다른 사람들은?”

강우가 재빨리 충고했다.

“쌤! 메모지 꺼내야 할걸요?”

“야! 이래 봬도 나 머리 좋아. 얼른 불러.”

자신만만하게 신새벽이 모두를 재촉하자 한꺼번에 주문이 쏟아졌다.

“전 더블화이트갈릭팩요! 토마토 빼달라고 해주세요. 음료는 코카콜라 제로요!”

“전 기네스머쉬룸와퍼요. 감자튀김 추가하고 컵아이스크림도.”

“새우 들어간 것에 요즘 새로 나온 신메뉴 있거든요? 거기에…….”

“자, 잠깐!”

신새벽의 눈동자에 지진이 발생했다. 요즘 애들은 이런 걸 어떻게 다 외우지?

그녀는 황당한 표정으로 얼른 메모지를 꺼냈다. 요구 사항을 적으면서 신새벽이 혀를 내둘렀다.

“젠장! 무슨 햄버거가 이리 복잡해?”

다시 학생들이 주문하는 메뉴를 받아적던 신새벽이 어느 순간 눈을 부릅떴다.

“으악! 이것들아! 대충 아무거나 먹어!”

오늘 행사 메뉴로 통일한다고 못 박은 신새벽이 나가자마자 차도도가 작성한 논문을 프린트해서 강우에게 넘겼다.

“강우야? 다 했는데…… 이대로 요셉 교수에게 보낼까?”

미국에 가기 전 반드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두 번째 논문이 드디어 끝났다. 이 두 번째 논문이 프로젝트를 좌우한다.

“고마워요.”

강우는 차도도에게 감사를 표하고 프린트물을 훑었다.

검토하면서 문득 생각해보니 방금 두 사람 사이가 마치 평사원과 결재해주는 부장 같다. 아니면 대학원생과 교수이거나. 강우는 차도도와의 관계 역전에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예상보다 차도도가 논문을 잘 작성해서 거의 손볼 곳이 없었다. 이 두 번째 논문은 강우가 연구한 내용을 차도도가 살을 붙여서 논문으로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단순히 마지막에 검토만 했던 상온핵융합 첫 번째 논문과는 다르다.

첫 번째 논문에서 차도도가 기여한 분량은 조금이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한 일이었다면 두 번째 논문에서는 오직 차도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적어도 논문 내용의 3할은 그녀가 직접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차도도 혼자서도 독자적으로 상온핵융합 연구를 수행할 수준이다. 앞으로 그녀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오늘 밤에 이메일로 보내시면 돼요. 이 논문을 바탕으로 요셉 교수가 헌팅턴사에 프로젝트를 요청하겠죠. 물론 헌팅턴사에는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가 따로 있어서 우리를 일종의 보험용으로 간주하겠지만요.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

대충 미국에 가서 어떻게 할지 계획이 섰다.

“쌤? 이제 미국행 비행기 표 알아보고 호텔도 예약해야 할걸요?”

“어…… 그래야겠지?”

여전히 실감이 되지 않는 얼굴로 차도도가 대답했다.

* * *

국제 올림피아드 준비 기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지막 금요일은 수업을 온전히 최종선발전 시험으로 대체했다. 형식은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와 동일하다.

대수, 기하, 조합, 정수 분야에서 모두 6문제이며 시험 시간은 총 9시간이다. 즉 1문제당 1시간 30분이 주어진다. 4시간 30분 동안 시험을 친 후 중간에 1시간의 점심시간이 있다.

원래 국제 올림피아드에서는 이틀에 걸쳐 치는 시험을 최종선발전에서는 단 하루 만에 치다 보니 일정이 가히 살인적이었다.

손차희는 시험장에 앉아 차분하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지난 며칠 동안 그녀는 강우와 정성을 다해 공부했다. 어쩌면 1군, 2군을 주도한 도남혁 때문에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른다. 또는 경쟁자인 이민찬이나 권유성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험을 대충 친 적 없이 성실히 임했던 그녀인데도 태어나서 이처럼 전력을 다해 공부한 적이 처음이라 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따라와야 한다.

오늘 시험에 임하면서도 결과를 자신하는 이유는 최근 강우와 함께 공부하면서 수학의 새로운 길을 엿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수학이란 수식을 전개하고 정답을 얻는 기계적인 과정이었다. 학교 내신 시험이든 경시이든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 강우와 함께 올림피아드 수학을 파고들면서 수학의 근본적인 사상을 엿보게 됐다. 수 자체의 호기심이라 할까. 덕분에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했고 역사상 유명한 수학자들의 노력과 열정을 이해하게 됐다.

“수학이 재밌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어.”

이것은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수학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지금도 그 기분에 빠져있기에 그녀는 감히 오늘 시험에서 승리를 예상했다.

그녀의 눈이 강우를 찾았다.

멀리 떨어진 자리에 강우가 앉아있었다. 마침 강우가 옆을 돌아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강우가 주먹을 위로 올리며 작게 파이팅을 외쳤다.

“강우야, 너도 잘 쳐!”

손차희도 입 모양으로 강우에게 뜻을 전했다.

그런 그녀를 목격한 녀석이 실실 쪼개면서 그녀를 훑어봤다. 바로 도남혁이다.

녀석의 눈빛은 그래 봐야 넌 2군이고, 국가대표에 발탁될 수 없다고 깔보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저런 눈빛에 발끈했던 손차희도 오늘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녀는 녀석을 향해 빙그레 웃음을 날렸다.

당황한 도남혁이 안면을 확 찡그리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적이 그녀를 의식하는 이 순간의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늘 시험으로 그녀가 우위에 있음을 명확하게 증명할 것이다.

담당 조교가 들어왔다.

“오늘 시험으로 국가대표 6명을 뽑습니다. 남은 6명은 상비군이며 대표로 뽑힌 학생이 개인적인 사유로 출국할 수 없을 경우 대체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9시간 동안 열심히 시험에 임해주세요.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윽고 시험지가 배포됐다.

국제 올림피아드 대비이기에 문제는 영어와 한글 두 언어로 적혀 있다.

손차희는 심호흡을 한 다음 문제를 들여다봤다.

문제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뛴다. 이상하게도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과거라면 이런 기분을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어려운 문제에도 자신감을 가지다니!’

손차희는 그동안 얼마나 자신의 실력이 늘었는지 몸소 깨달았다. 강우와 함께한 1주일의 기간이 그녀의 수학 수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자신 있게 해답을 적어나갔다. 푸는 내내 자신의 실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설사 국가대표에 뽑히지 않더라도 이렇게 문제를 풀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욕심이 난다. 수학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

그녀는 강우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장면을 그렸다.

* * *

하루 뒤.

강우는 차도도의 집에서 고속전철 위탁연구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손차희와 윤수아도 이 보고서의 주역이기에 두 사람도 마지막 작업에 참여했다.

다만 최대우는 한국대에 가고 없었다.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는 일정이 수학보다 일주일 뒤이고 실험이 끼어있어서 최종선발 대비 강의도 며칠 더 길었다. 덕분에 최대우는 여전히 한국대를 오가야 했다.

“이것으로 보고서도 끝이네요.”

강우는 오탈자를 최종 점검한 후 교정본을 윤수아에게 넘겼다. 윤수아가 마지막 수정 작업을 하면 보고서가 완성된다. 손차희와 차도도도 자신들이 교정한 내용을 윤수아에게 넘겼다.

“시원섭섭하네.”

차도도가 먼저 소감을 말했고 모두가 비슷한 기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호응했다.

고속전철 프로젝트가 일 년 만에 끝났다.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으니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가슴을 채웠다. 무엇보다 각자 연구비를 받았기에 경제적인 면에서 쏠쏠하게 도움이 됐다. 특히 강우에게는 가뭄의 단비였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고곽천재는 지난 학기에도 흩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감격 속에 차도도가 추가로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어제 요셉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어.”

그러잖아도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강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예상대로 모든 일이 진행됐어. 요셉 교수가 헌팅턴사에 프로젝트 제안을 넣었어. 요셉 교수는 긍정적인 반응을 예상하더라. 그래서 MIT에서 미팅하자고 그러더라.”

바라던 대로 흘러갔다. 당연히 그러리라 예상하면서도 마음을 졸였던 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도도가 그를 보며 웃었다.

“강우가 힘들었나 보네. 별말 하지 않더니.”

“우리 실력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예상했었는데요, 뭘.”

강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면서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윤수아와 손차희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럼 우리 2학기 때도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거야?”

“그렇지. 뜻한 대로 흘러가면 이번에는 무려 국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 연구비도 지난 카이스트 프로젝트의 몇 배가 될걸?”

연구비보다 고곽천재를 해체하지 않을 가능성에 크게 고무됐다.

한차례의 기쁨이 지나간 후 차도도가 강우와 손차희를 주시했다.

“……그런데 수학 국가대표 최종선발전 결과는 어떻게 됐어?”

“아!”

오늘이 발표일이다. 만일 강우가 최종선발전에서 탈락한다면 MIT 방문이 물거품이 되고 일이 복잡하게 얽힌다.

강우와 손차희가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봤다.

“아직…….”

그 순간 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두 섬찟해서 긴장에 휩싸였다.

톡이 날아왔다. 박일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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