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83화 (183/325)

제183화 수학 국가대표 (3)

“수학 천재!”

“오호, 천재?”

여학생의 눈이 강우를 아래위로 한참 동안 훑었다.

괜히 무안해진 강우도 눈에 힘을 주고 여학생과 시선을 맞췄다. 여학생의 시선을 돌리려는 철없는 행동이 오히려 관심을 끌었다.

“중국? 일본?”

“한국.”

“아! 시험이 어려운 나라?”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보자 랜디가 킥킥 웃으며 설명했다.

“수능시험 말이야. 너희 수능시험 영어…… 그러니까 우리는 모국어인데 그걸 풀어봤거든?”

재미 삼아 풀어본 수능 영어 시험에서 만점은커녕 수두룩하게 틀렸다나. 그렇게 어렵고 이상한 문제를 학생들이 어떻게 푸는지 신기하다고 난리였다.

“그런데 수학 문제는 꽤 재밌는 것도 많더라.”

여학생이 수능 수학 문제를 언급했다.

앞쪽의 단순한 문제는 논외로 치고 뒤쪽의 복잡한 사고력 문제는 문제의 질이 상당히 좋다나. 강우의 목이 저절로 펴졌다.

이 학생들이 한국의 수능 문제를 어떻게 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훌륭한 대화 주제가 됐다.

예상외로 대화가 잘 풀려서 깔깔거리며 웃다가 정식으로 인사했다.

“난 애나 스튜어드. 고등학교 2학년이고 보스턴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여학생이 이름을 말하는 순간 강우는 머리 위로 나타나는 재능을 확인했다.

- 애나 스튜어드, 수학 A, 물리 S, 화학 B, 생물 C, 지구과학 A.

“헉!”

“응?”

“난 강우. 같은 학년이야.”

애나의 재능도 놀라웠다. 무려 물리 S에 수학이 A다. 그 드물다는 S 등급이 오늘 처음 만난 두 미국 학생의 머리 위에 떠 있다니. 게다가 이 둘은 외모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애나의 외모는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수준이다.

“너도 수학 올림피아드?”

강우의 질문에 애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물리 올림피아드.”

“물리는 아직 날짜가 남았잖아?”

“집이 멀지 않거든. 랜디 응원도 할 겸.”

수학이 A이고 물리가 S이니 어느 쪽을 나가더라도 승산이 있다. 하지만 물리가 더 편했나 보다.

이 둘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국제 올림피아드에 나올 정도라면 그 학교에서는 아마도 씹어먹는 수준일 것이다.

“랜디가 웬만해선 천재라고 칭찬하는 사람이 없는데…… 수학 잘해?”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랜디가 방금 풀었던 문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문제 설명을 들어보면 바로 알아. 이 녀석 수학 엄청 잘할걸?”

문제를 들여다본 애나가 웃으며 동의했다.

“쉽지 않은 문제긴 해. 하지만…….”

랜디의 수학책을 뒤적이던 애나가 다른 문제를 짚었다.

“이거 설명해줄래?”

명백한 테스트다. 외모가 깡패일까? 다른 때라면 발끈했을 강우이건만 지금은 그녀의 외모 하나만으로 모든 행동이 용서된다.

강우는 간략하게 단 두 줄의 문장으로 요약해서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랜디가 미소를 지었다.

“천재 맞네.”

“애나? 넌 물리에서 어떤 분야가 좋아?”

“난 양자물리. 대학에 가서 양자물리를 전공하고 싶어.”

공교롭게도 관심사가 일치했다.

강우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나도 그래. 프리드 요셉 교수라고 알아? 여기 MIT 물리학 교수인데…….”

“어? 그 교수님 알아?”

둘 사이에 공통점이 많았다.

애나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 과정을 요셉 교수 밑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요셉 교수의 강연을 들은 경험이 그녀를 이쪽으로 이끈 동력이 되었다고.

서로의 관심사를 이래저래 교환하던 강우는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애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과 헤어졌다.

* * *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가 개최됐다.

출전 학생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웠다. 참가국은 100개국이 조금 넘었고 1명이 참가한 나라부터 6명이 참가한 나라까지 다양했다.

대충 아침을 때우고 강우는 일행과 함께 시험장인 체육관에 도착했다.

작년에도 참가했던 박일훈과 안찬엽은 무덤덤했으나 올해 처음 경험하는 다른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평소라면 시험에 무덤덤했을 강우도 오늘만은 표정이 굳었다.

체육관 내부에 줄지어 늘어선 탁자를 발견하고는 그 엄청난 숫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모두가 경쟁자야?”

권유성이 혀를 내둘렀고 강우도 할 말을 잃었다.

온갖 인종이 다 모여 있었다. 역시 지금은 국제사회란 말이 피부로 와닿았다.

앞에 한 무리의 동양인 녀석들이 다가왔다. 어제 봤던 그 중국 팀이다.

“또 보네?”

“건투를 빈다!”

왕레이와 안찬엽이 서로 손을 부딪쳤다.

왕레이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건 많은 게 아니야. 우리가 지역 단위 경시시험을 칠 때는 훨씬 많았거든.”

역시 대륙 스케일인가? 중국의 쪽수를 고려하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목표는?”

“모두 금이지! 너희는?”

“우리도 마찬가지야.”

양 팀이 모두 금메달을 받겠다고 했다.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지만 쉬운 목표도 아니다.

“너흰 최소 셋은 무조건 확보라고…….”

왕레이의 시선이 안찬엽에 이어 박일훈과 강우에게 멎었다.

강우는 녀석에게 미소를 날려줬다.

“운이 따르기를.”

“너도!”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중국 팀이 지정된 자리로 옮겨갔다.

안찬엽이 모두를 격려했다.

“자! 편하게 풀어. 시간은 많아. 여기 온 다른 나라 학생들은 대부분 편하게 시험을 즐기거든. 이 시험은 자신과의 경쟁이야,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강우는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돌아봤다. 경직된 표정보다 편안한 해맑은 얼굴이 더 많다. 안찬엽의 말대로 대부분 학생은 이 대회를 하나의 축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굳은, 긴장된 얼굴은 우리와 중국 정도다.

목표를 향해, 그것도 수학의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학생들이 아름답다.

1등에게만 금메달을 주지 않고 수십 명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방식도 자신과의 경쟁임을 뒷받침한다.

강우도 편하게 마음먹었다. 1등은 아니어도 상관없다. 금메달이면 충분하다.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자니 한 녀석이 지나가면서 그를 슬쩍 건드렸다.

“아! 랜디!”

“컨디션 좋아?”

“그럭저럭.”

“너라면 잘할 거야!”

“너도 잘하길!”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랜디를 응원했다.

저쪽에 앉아있던 손차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루 만에 친구를 사귄 사실 때문에 놀라는 건지 아니면 랜디의 우월한 외모 때문에 놀라는 건지. 기회가 된다면 소개해줘야겠다.

시험이 시작됐다.

첫날 시험은 모두 3문제, 시간은 4시간 30분. 쉬운 문제, 중간문제, 어려운 문제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물론 강우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없었다. 다만 배고픔을 참기 힘들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더니 4시간 반 동안 견디기 어렵다.

그렇게 이틀간의 시험이 끝났다.

강우가 볼 때 둘째 날 마지막 기하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웬만하면 손도 대지 못할 특이한 문제다. 물론 강우에게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문제와 똑같이 손쉽게 풀었다.

여섯 문제를 모두 만족스럽게 풀고 수학 올림피아드 시험을 끝냈다.

* * *

“으아! 그걸 못 풀다니!”

권유성이 길길이 날뛰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으며 그들을 구경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유성은 펄쩍펄쩍 뛰며 분을 표출했다.

저렇게 지나간 시험에 집착하는 것도 천재의 특성이다. 엄밀하게는 시험이 아니라 그 아쉬운 순간과 본인의 능력에 집착하는 것이지만.

“에이씨! 아무래도 노란색에서 하얀색으로 바뀔 분위기인데…….”

“색깔은 운이야.”

박일현이 옆에서 달랬다.

시험을 마친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 시험을 통해 한 단계 성장을 맞본 덕분이다. 결과는 이틀 후에 발표된다.

“으아!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에 금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차이가 크다고요!”

권유성이 재차 항변했다.

지금 권유성은 3학년 졸업반이다.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어느새 졸업이 다가왔다.

3년의 기간에 권유성은 아직 수학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불렸던 그에게는 굴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금메달이 물 건너간다면? 권유성이 날뛰는 이유다.

반면 손차희는 아직 일 년 더 남아있어 다음 기회가 있고 권유성과 같은 나이인 하은찬은 이제 시작이니 권유성이 억울할법하다.

“그럼 내년에 또 출전해.”

올림피아드는 나이로 자르니까 굳이 참여한다면 권유성에게는 앞으로도 두 번이나 더 출전 기회가 있다.

“에이, 대학교까지 가서 뭔 고딩 대회를…….”

“다른 나라에는 그런 경우가 있어.”

무려 5번이나 연속으로 출전한 기록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아마 권유성 같은 녀석이었을 것이다. 이참에 도전하라는 말을 꺼냈던 강우는 권유성의 반격에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물론 강우는 권유성이 재능대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를 안다. 녀석은 수학 천재가 아니라 물리 천재니까. 만일 권유성이 처음부터 물리 위주로 준비했었다면 물리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3년간 세 개 따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 대표팀은 분위기가 좋다. 같은 학교 학생이 다섯이나 있고 남은 다른 학교 학생은 엄청 카리스마가 있으니 당연하다. 박일현이나 안찬엽도 작년보다 대표팀 분위기가 좋다고 칭찬했다. 도남혁이 뽑혔다면 절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으리란 뒷말까지.

시험을 끝내고 밥까지 먹고 난 후에도 오후 3시였다.

그들은 첫날 다하지 못한 학교 투어를 마저 하기로 했다. 학교 옆을 흐르는 강변도 걷기 좋으니까.

연신 투덜대는 권유성을 달래면서 잔디밭을 지나고 있자니 벤치에서 공부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랜디! 애나!”

강우가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고 두 사람 또한 그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봤다.

“시험 잘 쳤어? 랜디는 다 풀었대!”

애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강우도 순순히 대답해줬다.

“나도 당연히 다 풀었지. 물론 점수를 장담할 수 없지만.”

“역시 천재는 다르네. 아! 이거 설명해줄래?”

애나가 그에게 책을 내밀었다.

방금 시험이 끝났는데 또 공부하나? 감탄하면서 확인해보니 수학이 아니라 물리였다. 상온핵융합 논문을 묶어서 제본해놓은 책이다.

수학 시험이 끝나자 이제는 애나의 물리로 두 사람의 관심사가 넘어간 모양이다. 논문에서 의문점을 찾아낸 애나가 질문했고 랜디가 설명해주던 상황이었다.

두 사람의 재능을 떠올린 강우는 금세 이해했다. 랜디는 무려 수학과 물리 양쪽에서 S급 재능이 있었으니까. 당연히 물리에서도 대단하겠지.

강우도 이들에게 밀릴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재능이 S인지 A인지 모르지만 상대가 S급 강자일지라도 전혀 두렵지 않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본 S 재능 학생이 한둘이 아니니까.

더구나 상온핵융합은 그의 전공 분야다. 애나가 아무리 뛰어나고 S급이라지만 아직 고등학생일 뿐. 그와는 프로와 아마추어 정도의 수준 차이가 난다.

“이건 말이야, 표준모델 알지? 그 모델에 따르면 수소 원자핵은…….”

강우가 열심히 설명했다. 그의 손쉬운 설명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애나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래서 이 논문은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했어. 그렇다고 연구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래서야 흔한 논문 중 하나일 뿐이지.”

그가 설명을 마쳤을 때까지 애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얗고 고른 치아가 눈부시다.

“우와! 대단해! 그런데 너 수학 전문이라 하지 않았어?”

“요셉 교수에게 관심 있으면 이런 거야 뭐…….”

“그래도 정말 실력자야! 이 어려운 걸 어떻게 다 이해하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는 애나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후에야 입을 다물었다.

강우 일행이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강우와 애나의 대화는 외계인의 언어였다. 하필이면 그것도 영어로 주접을 떨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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