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84화 (184/325)

제184화 다시 만난 요셉 (1)

“누구야?”

애나가 강우 뒤에 포진한 학생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우리 팀. 수학 올림피아드 출전 멤버.”

“아하!”

애나가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다.

“난 애나라고 해. 미국 물리 대표.”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 더듬거리면서도 학생들이 애나의 외모에 정신이 팔려 인사했다.

“난 랜디. 오늘 수학 시험 쳤지. 미국 대표야.”

랜디도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가장 먼저 손을 마주 잡은 사람은 손차희였다.

모두가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그들은 강우가 미국 대표를 사귀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히 박일현과 안찬엽은 랜디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작년에도 미국 대표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낚아챘던 학생이다.

손차희가 휴대폰을 들이대면서 양해를 구했다.

“같이 사진 찍을래? 인스타에 올려도 돼?”

손차희는 이곳에 와서도 건물이나 거리를 방문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있었다.

랜디와 애나는 허락했고 그들은 단체 사진과 개별 사진을 돌아가면서 찍었다.

왠지 간만에 새로 사귄 친구들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으나 강우는 웃으며 지켜봤다.

한바탕 일었던 소란이 잠잠해진 후 애나가 강우에게 말했다.

“수학과 과학 양쪽 천재를 만나서 기뻐. 지금까지 랜디만 그런 천재인 줄 알았는데 너도 같은 부류네. 모르는 것 있으면 연락해도 되지?”

“당연하지.”

강우는 애나와 랜디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조만간 연락할게.”

애나와 랜디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강우 일행은 캠퍼스 투어를 계속했다.

* * *

시험 결과가 발표되기 전 이틀간은 강연과 관광으로 일정이 채워져 있었다.

강우는 다른 일이 있다면서 일행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곳에 도착한 날부터 일행과 함께 다니지 않은 데다 요셉 교수와 약속이 있다는 것을 대충 알고 있기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수학 강연 내용은 학창 시절 수학 올림피아드에 출전해서 상을 받고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여 수학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선배의 일대기였다. 필즈상까지 받은 유명 수학자라 하던가.

수학자가 될 생각이 없었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강우는 강연을 듣지 않고 손차희와 함께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차도도와 윤수아가 도착하는 날이다.

예정 시각을 조금 지나 두 사람이 캠퍼스 건물을 두리번거리면서 오고 있었다.

강우는 손을 흔들었고 두 사람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달려왔다. 윤수아는 그들처럼 자유로운 간편 복장이었으나 차도도는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요셉 교수와의 미팅 약속 때문이다.

“시험은 잘 쳤어?”

“그럭저럭요.”

차도도가 만나자마자 시험부터 물었다.

“메달을 딸 수 있다는 뜻이네?”

“그럴걸요?”

자신감 넘치는 강우를 못 말리겠다며 웃던 차도도가 물었다.

“물리학과는 어디에 있어?”

강우는 그동안 익혀둔 건물 방향을 가리켰다.

“멀지 않아요.”

“그래? 그럼 더우니까 일단 목부터 좀 축이고…….”

그들은 카페로 들어가서 커피와 음료를 주문했다. 그 사이 손차희는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윤수아에게 보여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손차희의 MIT 탐방은 SNS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물론 대부분 고곽 학생들이 몰려온 것이지만.

랜디의 훤칠한 외모를 평가하는 두 사람을 보니 꽃미남 앞에서 여자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셉 교수와 약속한 시각이 다가오자 그들은 자리를 떴다.

* * *

거의 1년여 만에 만난 요셉 교수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보다 조금 살이 찐, 전형적인 백인 중년인이 인자한 얼굴로 강우 일행을 맞이했다.

미국까지 오는 여정과 MIT의 인상, 수학 올림피아드까지 다양한 화제를 주고받으며 느슨한 대화를 이어가던 그들은 꽤 시간이 지나서야 본래의 주제로 넘어갔다.

요셉 교수는 그들을 배려하여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었고 덕분에 누구도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뉴클리어 퓨전에 실은 논문은 예상대로 꽤 주목을 받았습니다. 알다시피 논문의 참신성보다는 논문 저자가 신성처럼 등장했기 때문이지요.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이라는 신분이 다른 연구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누구인지 개인적으로 묻는 메일을 많이 받았어요.”

요셉 교수가 논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열심히 읊었다.

당연히 짐작했던 반응이다. 실제로 그런 화제를 노린 것이기도 하고. 상온핵융합 첫 논문은 새로운 발견이나 연구가 아닌, 이름을 알리는 일에 더 치중했으니까. 요셉 교수의 이름을 이용한 부분도 적잖아 있긴 했다.

어쨌든 첫 논문은 훌륭하게 제 임무를 다했다.

“얼마 전에 주신 두 번째 논문은 상온핵융합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기술적인 장벽을 넘을 가능성을 제시했죠. 이 논문은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보냈습니다. 담당 에디터가 긍정 사인을 줬고요, 곧바로 심사 위원과 관련 연구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요셉이 두 번째 논문의 현황을 설명했다.

해당 논문을 유명학술지인 네이처 자매지에 투고했다는 점은 강우도 놀랄 일이었고 학계의 고무된 반향도 그가 예상했던 결과 이상이었다. 사실상 손강우가 죽기 직전에 작성했던 논문을 추가로 손본 작품이니까. 그야말로 상온핵융합에서 첨단을 달리는 논문이다.

“덕분에 주변에서 문의가 많습니다. 이 논문이 정말 고등학교에서 가능하냐고요.”

요셉 교수의 시선이 강우와 차도도에게 번갈아 머물렀다.

강우가 대답할 차례다.

“얼핏 보기에 그 모든 성과가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시다시피 자연과학에서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겠죠?”

“저희 팀이 이 논문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예전에 작고하신 손강우 박사님의 유산 때문입니다.”

강우는 손강우를 끌어들였다. 그 대답이 아니면 상대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 닥터 손!”

당연히 요셉 교수도 손강우를 안다. 적어도 핵융합을 연구한다면 모를 수 없다. 특히 그는 미국 방산업체인 헌팅턴사와 손강우 사이에서 진행하려던 프로젝트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으니까.

비록 그때의 한국 방문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갔었지만 먼 훗날 그는 알게 될 것이다. 그 방문에서 고등학생 강우를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었다고.

“손강우 박사님은 핵융합에서 최고 권위자에 속했었죠? 저는 그분이 돌아가시기 대략 일 년 전부터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관심사를 논의했습니다. 물론 제가 일방적으로 지도받는 관계이긴 했습니다만 제가 관심을 보이자 그분은 중학생인 저를 연구 동반자로 대하며 관련 연구를 알려주셨습니다.”

“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현재 강우의 놀라운 천재성을 보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요셉 교수는 자신도 이런 천재를 만나면 함께 연구하고 싶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그분의 유산을 많이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그분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아! 대단하네요.”

요셉 교수는 일 년 전의 막막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헌팅턴사가 손강우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그를 한국에 파견해서 손강우의 연구자료를 확보하려 했던 일 말이다. 그 자료는 한국대 교수 마도환이 갖고 있었으나 암호 때문에 제대로 얻지 못했고 나중에 암호를 풀었다고 했지만 필요한 자료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손강우 연구자료의 전체 버전이 다른 이의 손에서 잠자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것도 고등학생의 손에. 하필이면 그가 강연을 갔던 그 고등학교의 학생이.

요셉 교수는 이것이 하늘의 뜻으로 여겼다.

“손강우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저도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제대로 연구를 따라가지 못했으나 이제는 다시 궤도에 올랐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두 번째 논문입니다.”

강우의 설명은 두 번째 논문의 탄생을 적절하게 이해시켰다.

손강우의 지도를 받았다면 강우가 그렇게 수준 높은 논문을 낼 능력이 충분하다고 요셉 교수는 생각했다.

“……그럼 그 논문은 강우 군 혼자서 했습니까?”

“아뇨. 혼자였다면 못 했을 거예요. 전 고등학생이잖아요? 논문의 절반을 저희 차도도 선생님께서 주도하셨습니다.”

요셉의 시선이 다시 차도도를 향했다. 그 또한 말이 된다. 고등학생 혼자서 연구를 수행하기보다 비록 학교 교사이지만 두 사람이라면 훨씬 납득할 만하다.

요셉의 눈길에 차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강우 이야기는 차도도도 처음 들었다. 하지만 이 설명으로 그동안 강우에게 품었던 의심을 그녀는 말끔히 해소했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던 강우가 전문가 수준으로 물리를 이해한 이유와 때때로 보이는 말도 안 되는 지식과 통찰력이 바로 예전부터 손강우와 함께 상온핵융합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중학교 시절부터 전문적인 연구에 뛰어든 강우는 역시 천재라고 차도도는 믿었다.

“흠, 그렇군요. 신기하게도 이름이…… 손강우와 강우. 성이 손이고, 강이죠? 한국 성씨에는 서툴러서…….”

요셉 교수가 웃으며 물었다.

“어? 그렇네요. 이름이 닮았네요.”

차도도가 맞장구를 쳤다. 지금까지 강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던 부분이었다. 모두가 우연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물론 강우도 왜 이름이 겹치는 인연이 있는지 모른다.

요셉 교수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했다.

“손강우 박사와 함께 연구했었다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에도 편해졌습니다. 헌팅턴사에서 그 부분을 자꾸 문의해서 말이죠.”

헌팅턴사와 프로젝트를 연결하면서 강우와 차도도의 신분 때문에 고생한 모양이다.

“어쨌든 저는 차도도 씨와 강우 군을 숙련된 연구자라 생각합니다. 아마 두 번째 논문이 발간되고 나면 대부분 그렇게 인정할 겁니다. 적어도 핵융합 관련 연구자들에게 두 사람의 이름이 확실히 각인되겠지요.”

논문이 실리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논문과 피인용지수 등 학계의 인지도를 설명하던 요셉 교수가 헌팅턴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알다시피 상온핵융합 기술은 군사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얼핏 이 기술을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과 연결하기 쉽지만 그건 아니고요, 원자력 잠수함처럼 독립된 거대한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요셉 교수가 하필 헌팅턴사에서 이 기술에 관심을 두고 개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항공모함이 있다고 하죠. 이 항공모함이 바다에 떠 있으려면 얼마나 에너지를 소모할까요? 기름을 사용하면 그 부피가 장난이 아닌 데다 수시로 항구에 정박해서 연료를 채워야 하죠.”

에너지 문제는 작전 반경이나 작전 지속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재래식 핵분열 원자로로 해결해왔으나 훗날에는 소형 상온핵융합이 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요셉 교수의 설명으로 헌팅턴사가 관련 기술 개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를 이해했다. 물론 강우는 이미 짐작했던 내용이었고 차도도와 두 여학생은 눈을 반짝였다.

핵융합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한 차도도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이었고 손차희와 윤수아는 어쩌면 첨단 과학의 주역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래서 헌팅턴사는 대략 일 년 반 전에 한국의 손강우 박사와 프로젝트를 체결하기로 합의했었죠.”

다시 손강우의 죽음이 나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