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85화 (185/325)

제185화 다시 만난 요셉 (2)

손강우가 죽은 후의 진행 상황은 강우의 짐작과 같았다.

헌팅턴사가 추진하던 소형핵융합 프로젝트는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를 타개하려고 학계 권위자인 요셉 교수에게 부탁했으며 요셉은 한국으로 들어와 손강우의 자료를 찾는 한편 관련자인 마도환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도환은 결국 손강우의 연구자료를 확보했고 이를 무기로 헌팅턴사와 프로젝트를 계약했다. 손강우의 죽음 후 헌팅턴사로서는 마도환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손강우의 연구를 계승했다는 마도환의 주장을 믿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현재 그 프로젝트가 체결된 지 대략 반년이 지났습니다. 아직 진행이 초반이라 특별한 실적은 없습니다. 무려 3년간의 프로젝트이기에 마지막 해가 되어야 그 적합성 여부가 판결 날 겁니다.”

헌팅턴사의 다급함을 잘 대변해주는 계약이었다. 결론적으로 손강우 죽음의 최대 수혜자가 마도환이었다.

‘가장 이득을 본 녀석이 살인범이라니!’

강우는 내심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이 문제를 꺼내 봐야 소용없고 설득할 방법도 없었다.

요셉 교수가 상황 설명을 계속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도환 교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그동안 학계에서 세운 업적이 적지 않긴 합니다만…… 그 연구 내용 대부분이 손강우 박사와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죠. 손강우 박사가 없는 마도환 교수의 연구 능력이 의문시된다고 보기에…… 그래서 앞으로 마도환 교수가 독자적으로 실적을 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합니다.”

고곽천재와 차도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강우는 요셉 교수의 혜안에 감탄했다. 역시 학계의 권위자답게 마도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요셉 교수는 이대로는 헌팅턴사의 프로젝트가 좌초하리라 예상했다.

이는 헌팅턴사로서도 타격이지만 핵융합 학계에서도 큰 재앙이 될 소지가 있다. 상온핵융합 기술은 수십 년 전부터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실현 가능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일반인에게 상온핵융합 기술은 뜬구름 잡기일 뿐이다. 마치 양치기 소년과 비슷했다.

핵융합 학계는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유일무이한 기술이라고 주장하면서 연구비만 쓸어 담았다. 점차 핵융합 무용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헌팅턴 사 프로젝트의 좌초는 관련 학계를 초토화할 참변이다. 요셉 교수도 관련 학계 사람이기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현실은 암담했어요. 핵융합 기술의 돌파구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요셉 교수는 손강우만 살아 있었으면 무조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진 않았다. 다만 파국의 확률을 줄여줄 뿐.

그러던 차에 한국의 한 고등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학생이었으나 처음에는 기억마저 가물거리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쓴 첫 번째 논문이 도착했을 때 요셉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전 강우 학생이 이대로 자란다면…… 이 학계에서 최고 전문가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요. 그리고 상온핵융합 기술을 현실화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우 학생이라면.”

요셉 교수가 강우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강우를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이제 이 문제는 이 기술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술을 상용화하려면 자본이 필요하다. 현대에 와서 새롭게 개발되는 대부분 기술은 자본이 투입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핵융합 기술도 마찬가지다.

헌팅턴 프로젝트가 좌초되고 핵융합 연구원이 사기꾼으로 매도된다면 이 기술의 현실화는 적어도 수십 년 뒤로 미뤄지게 되고 관련자들이 실직하게 된다.

“그래서 헌팅턴사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공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도환은 그럴 능력이 없죠. 그걸 강우가…… 아니 우리가 해내야죠.”

요셉 교수의 목표가 모두에게 전달됐다.

이 주장에는 요셉 교수의 사심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우도 같은 생각이었고 지금 이 말을 들은 차도도와 손차희, 윤수아도 설득당했다. 그들은 이 순간 어깨에 짊어진 커다란 임무를 실감했다. 그 임무는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해방하는 궁극의 기술 개발이었다.

저절로 주먹이 쥐어지고 열정이 솟구쳤다.

과학은 진리이고 그들은 진리를 탐구한다.

강우는 그녀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그도 같은 생각이니까.

“그때부터 헌팅턴사와 조율에 들어갔습니다. 헌팅턴사에 마도환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여 보완 플랜을 만들자고 설득했죠.”

헌팅턴사에서는 처음에는 플랜 B를 고려하지 않았다. 플랜 B에는 추가로 또 돈을 투입해야 하니까. 업체는 실패할 가능성이 큰 프로젝트에 계속 연구비를 투입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헌팅턴사를 설득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우 군이 보내준 두 번째 논문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미팅을 잡을 수 있었죠.”

두 번째 논문이 결정타였다는 뜻이다.

아직 헌팅턴사의 신뢰를 얻으려면 수많은 난관이 남아있다. 하지만 첫 단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팅이 수락되었으니 절반의 성공이다.

요셉 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강우 군이 고등학생이란 사실입니다. 누구도 과학기술계의 최대 난제라 할 핵융합을 강우 군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을 겁니다. 헌팅턴사에서 가장 난색을 보인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늘 차도도 선생님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제가 한 일은 아주 조금인데요?”

“아니죠. 논문을 절반 가까이 쓰셨다면서요? 이는 차도도 선생님도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고…… 적어도 외부, 즉 헌팅턴사에서는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생긴 거죠. 최소한 고등학생보다는 잘 먹히죠.”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사실 강우가 차도도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도 비슷했다.

요셉 교수와의 미팅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요셉 교수는 다음 주 중으로 헌팅턴사와 구체적인 약속을 잡겠다고 했다. 강우는 별다른 일이 없기에 그때까지 차도도와 친구들과 함께 관광을 즐기기로 했다.

* * *

기숙사에서 강우는 하은찬과 같은 방을 썼다.

수학 올림피아드 대표단이 기숙사에 머무는 기간은 성적 및 순위가 발표되는 날까지다. 이날이 지나면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강우는 손차희와 함께 요셉 교수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며 계속 이 동네에 머무르겠다고 했다. 수학 올림피아드가 끝난 후부터는 기숙사에 있을 수 없고 인근 호텔로 숙소를 옮겨야 한다. 차도도와 윤수아는 이미 학교 부근의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우와! 그러면 형은 계속 미국에 있는 거예요?”

“그래야겠지? 보스턴과 워싱턴 D.C.를 둘러볼 생각인데…… 뉴욕도 가볼지는 모르겠어.”

“우와! 좋겠다! 저도 합류하면 안 돼요? 우리 엄마가 낯선 곳에 가면 안 된다고 당부하긴 했지만 저도 이제 컸으니까 가보는…….”

“안 돼!”

딱 잘라 거절하는 강우의 대답에 하은찬이 시무룩해졌다.

수학 대표단이 MIT 외부로 관광 나갈 기회는 시험과 발표일 사이 이틀뿐이다. 그 사이 하루는 자유여행이었고 하루는 단체여행이다. 강우는 어느 쪽도 참가하지 않았다.

“나도 멀리 가보고 싶다…….”

“나중에 커서 돈 벌면 가.”

“사실 워싱턴은 별로 볼 것도 없어. 내 돈 내고는 안 가.”

정치 입문자도 아니고 백악관을 구경해서 어디에 쓸지. 그보다는 이공계생이라면 실리콘밸리나 애플, 구글 본사를 구경해야 하지 않을까. 다만 그곳은 모두 미국 서부에 있기에 이번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 형은 누가 돈을 내줘요? 아! 그 동네 누나…… 아니 차도도 쌤도 오셨다고 했죠?”

“어. 근처 호텔에 계시지. 어제부터 같이 움직이고 있어.”

“우와, 좋겠다! 미녀와 함께 여행이라니!”

“미녀는 무슨! 쌤이야 쌤!”

“그래도요. 이왕이면 다홍치마죠. 근데…… 형은 그 쌤이랑 무슨 관계예요?”

“응?”

“그 쌤 집에도 막 놀러 가고. 학교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2년 연속 담임에…… 무슨 관계일까?”

“동네 누나.”

강우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이 녀석에게 굳이 세세한 사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맞아. 동네 누나라 했지……. 나도 그런 동네 누나 사귀고 싶다.”

시무룩해진 하은찬이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다.

하은찬은 지난겨울부터 목격한 강우의 생활을 곰곰이 되새겼다. 한국대 겨울학교에서 맺은 인연이 결국 같이 국가대표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강우가 학교에서 보여준 행동은 그가 꿈꾸던 생활이었다. 모든 학생이 천재로 우러러보고 선생님도 천재라 인정하는.

언제부터인가 그도 강우처럼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하은찬이 국가대표로 발탁된 것도 강우의 힘이 컸다. 최종선발을 앞두고 1군과 2군으로 나뉘었을 때 심적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강우를 믿었고 그날부터 강우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했다. 만일 이민찬처럼 반대쪽을 선택했었다면 아마도 그는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강우는 그에게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신기한 형이란 말이야.”

하은찬은 자신의 침대에 누워 강우를 힐끔 쳐다봤다.

그 강우가 이곳에서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평소 흠모하던 고곽천재 멤버가 다 모이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내일 이곳에 도착할 최대우를 떠올리면서 하은찬은 자신도 반쯤은 고곽천재 멤버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정식 멤버는 아닐지라도 입학 후부터 고곽천재와 자주 만나고 공부도 같이하곤 했으니까.

어쨌든 그는 강우를 목표로 따라갈 생각이다. 그것이 인생의 답이란 확신이 왔다.

“근데…… 형!”

“응?”

“다른 동네 누나 있잖아요? 그 왜…… 화학 쌤요.”

“신새벽 쌤?”

“네. 그 누나는 안 와요?”

“안 와. 그 누나는 오면 자꾸 갈궈서 골치 아파.”

“그렇구나. 우리 엄마가 여자를 조심하랬어요.”

강우는 하은찬의 혼잣말에 실소를 머금었다. 나사 빠진 저 녀석도 최대우랑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

“너도 걸그룹 좋아하니?”

“당연하죠. 형은요?”

“난 걸그룹보다 동네 누나 둘이 더 낫다.”

그때 톡이 떴다.

- 신새벽 쌤 : 강우야! 어떻게 됐어?

힐끔 시계를 본 강우는 어이가 없어 지금 한국이 몇 시인지 고민해야 했다. 아! 낮이구나.

- 강우 : 뭐가요?

- 신새벽 쌤 : 메달 땄어? 금?

금메달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나? 당연히 금메달이리라고 예상하는 신새벽이 우스우면서도 그를 향한 굳건한 믿음을 확인했다.

- 강우 : 아뇨. 내일 발표해요.

- 신새벽 쌤 : 그래그래, 너라면 할 거야.

- 강우 : 근데요, 쌤! 제가 금 따면 선생님이 불리하잖아요?

- 신새벽 쌤 : 내가 불리할 게 뭐 있어?

- 강우 : 아니었나…….

- 신새벽 쌤 : 사소한 개인의 이익 때문에 국가 중대사를 그르치면 안 되지.

비유가 적절한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금메달을 따서 국가 명예를 높이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신새벽의 응원에서 힘을 얻었다. 앞으로 여차하면 서울에 머무를 장소도 생기니 안정감도 늘고.

- 신새벽 쌤 : 내일 발표하면 제일 먼저 연락해. 파이팅(이모티콘)!

괜히 행복한 기분 속에 강우는 이불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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