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86화 (186/325)

제186화 다시 만난 요셉 (3)

시험을 봤던 체육관에 각국에서 온 수학 천재들이 다시 모였다.

수백 명이 북적대는 한중간에서 강우는 동료들과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난 이틀간 서로 안면을 익히고 친해진 학생들의 잡담이 끊이질 않았다. 물론 강우는 그동안 만난 이들이 없어 낯설었지만.

“우와! 이 세상에는 천재가 참 많구나!”

권유성이 질린 표정으로 투덜댔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권유성에게 지금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바글바글대는 이곳 풍경은 신선한 충격이다.

첫날 긴장해서 보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이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각국 인종별로 천재의 외모가, 습성이 다르다. 외모와 인종과 언어가 다름에도 의외로 수학이란 공통 관심사만으로도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도.

“천재에도 급이 있지.”

강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가 학생들의 재능을 볼 수 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수학 천재에는 박일현처럼 S급이 있고, 권유성처럼 A급이 있으며 손차희처럼 B급도 있다. 물론 그 재능이 영원히 변치 않는 능력이 아니기에 현재와 미래의 능력이라 할 수 없지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말을 다르게 받아들인 걸까. 권유성이 눈을 찡그렸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 중에 나보다 더 뛰어난 천재는…… 음, 조금 많아 보이긴 하네.”

조금은 풀이 죽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던 권유성이 한 무리의 동양인 학생을 발견했다.

“저 자식들 또 왔어.”

“너도 형들처럼 잘 사귀어보지?”

“됐어! 난 중국인이랑 안 친해.”

첫날 만났던 중국 학생 6명이 몰려와서 오늘도 안찬엽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 시간에 오갈 이야기는 하나뿐이다. 모두가 성적이 발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우리 중국이 우승이야!”

“우리도 만만찮을걸.”

기세에 꺾이지 않으려고 박일현이 안찬엽을 거들었다.

3학년들은 서로 친한데 그 아래 학년은 뻘쭘하게 서로를 쳐다보면서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 아래 학년에서는 딱히 나서서 친해질 만한 인물이 없었다.

강우는 동료와 중국 팀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모두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랐다.

시간이 되자 본부의 단상에 관계자가 올라왔다.

관계자들의 뒤로 가지런히 놓인 금, 은, 동메달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순금은 아니다.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는 올림픽처럼 후원이 많지 않다. 올해에는 세계적인 IT 회사에서 받은 약간의 후원을 대부분 참가자의 숙식비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단상에 올라온 단장 대표가 입을 열었다. 올해 올림피아드 단장 대표는 MIT 수학과의 원로 교수다.

“참가하신 모든 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이번 대회는 모두 112개국에서 총 364명이 참가했고…….”

대회 총평이 후딱 지나갔다. 학생들의 성적이 예상보다 좋아서 무척 고무적이란 칭찬이었다. 내년에도 참가를 부탁드린다는 부탁과 함께 마침내 순위를 발표했다.

올림피아드 대회는 개인전이기에 국가 순위를 발표하지 않고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다. 국가 순위는 메달 수가 아닌 총점 합산이다. 그래서 참가자 수가 많을수록 특히 떨어지는 학생이 없을수록 유리하다.

“이번 대회에서 만점인 42점을 받은 참가자는 두 명입니다.”

만점자의 수로 본다면 역대 평균이다.

“그 두 사람에게 먼저 금메달을 수여하겠습니다.”

단장 대표가 명단을 확인한 후 호명했다.

“42점 만점, 금메달, 미국의 랜디 멀더! 한국의 우 강!”

환호성이 울렸다.

“우강이 누구야? 요강이냐?”

권유성이 일행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순간 강우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줄 알았다. 지금까지, 손강우, 강우 손, 강우까지는 많이 들어봤는데 우 강이라니?

눈치챈 손차희가 등을 떠밀었다.

“강우야! 너야 너! 너 만점이래.”

“어? 나야?”

따라왔던 조교가 강우를 축하했다.

“얼른 나가봐! 잘했어!”

후다닥 달려가니 이미 랜디가 시상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아는 사이라 눈인사를 하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전 세계 천재들이 모인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했음에도 무덤덤했다. 당연히 받을 상을 받은 기분이다. 남들이 들으면 밥맛 떨어진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자신하고 있기도 했었다.

그의 천재성과 실력으로 못 받으면 오히려 이상하니까. 이런 대회에서조차 상을 타지 못하면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구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상하겠지.

그래서 평온한 기분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단장 대표가 뭐라고 열심히 격려해주었으나 강우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목에 걸린 커다란 금메달을 확인하면서 금은방에 팔면 얼마나 줄지 고민했다.

애국가를 틀어주나 했더니 올림픽이 아니어서 그런 절차는 없나 보다. 다소 뻘쭘한 기분으로 단상을 내려와서 랜디와 하이파이브를 한 다음 일행에게 돌아갔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메달이 수여됐다.

박일현은 40점, 안찬엽은 39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점수는 만점에서 불과 2점, 3점이 깎인 것으로 대충 마지막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절반 이상 풀고 나머지 문제를 모두 맞힌 수준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년에 금메달을 땄을 때도 비슷했다나.

금메달 수상자 20여 명이 호명될 때까지 강우네 팀에서는 추가 금메달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은메달이 호명됐다.

권유성과, 손차희와 하은찬이 줄줄이 불려 나갔다.

권유성과 손차희는 첫 출전에서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했다. 아쉽게도 권유성에게는 다음 기회가 없고 손차희는 내년에 한 번 더 노려볼 수 있다. 하은찬은 첫 출전인 1학년이니 아직도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았다.

강우는 하은찬이 박일현처럼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은메달 1개에 금메달 2개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업적을 세우면 고려 과학고를 빛낸 역대 천재 명단에 들어가겠지. 하은찬 정도면 사실 엄청난 천재니까.

한국 대표팀은 금메달 셋, 은메달 셋을 따는 실적을 거뒀다.

줄줄이 체육관을 빠져나가는 인파에 묻혀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중국 팀의 왕레이가 다가왔다.

“성적 잘 나왔어?”

“너희보다 못할 것 같은데?”

중국 팀도 금메달 셋, 은메달 셋을 받았다. 다만 점수를 합산해보니 중국 팀이 1점을 앞섰다. 분하지만 어쩔 수 있나.

안찬엽과 박일현이 왕레이와 악수하며 축하 인사를 나눴다.

옆에서 뻘쭘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왕레이가 후배 한 명을 데리고 와서 강우를 찾았다.

“강우?”

“그런데요?”

“알다시피 난 왕레이고 이 녀석은 장웨이펑. 2학년이야. 최고 유망주니까 내년에 또 만날 거야. 서로 친해 두면 좋지.”

왕레이와 장웨이펑의 가슴에 금메달이 번쩍이고 있었다.

내년에 또 출전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강우는 대충 받아넘기며 악수했다. 장웨이펑은 겉보기에 모범생처럼 생겼다.

“마지막 문제 어떻게 풀었어? 다 맞추기 정말 어려운데…… 난 40점 맞았어.”

장웨이펑이 뭐라고 주절거리는 동안 강우는 녀석의 재능을 확인했다.

- 장웨이펑, 수학 S, 물리 A, 화학 C, 생물 C, 지구과학 A.

이 녀석도 재능이 보통을 넘는다. 역시 금메달리스트답게 수학이 S다.

그런데 첫인사부터 질문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이 녀석도 같은 유형의 천재가 분명하다. 강우는 하은찬을 불러 상대하게 했다. 내년에 이들과 만날 인물은 자신이 아닌 하은찬이니까.

그렇게 중국 대표팀을 보내고 그들도 헤어질 시간이 됐다.

“강우와 손차희는 여기에서 담임 선생님과 만난다고?”

인솔 조교가 두 사람에게 물었고 손차희는 미국에 며칠 더 머물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권유성과 하은찬을 떠나보내고 나니 주변이 조용해졌다.

평소와 달리 미국이라는 장소가 손차희와 단둘이서 멀리 떨어져 나온 기분을 준다.

“쌤은 언제 오시지?”

“저녁때.”

“아! 아직 멀었네.”

강우는 하늘 높이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무료함을 달랬다. 시간이 남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암담하다.

“쌤에게 수상 소식 전했어?”

“어? 해야 하나? 넌?”

“난 이미 했지.”

역시 손차희는 이런 면에서 엄청 빠르다. 아마도 벌써 SNS에 수상 사진을 찍어 올리지 않았을까.

차도도에게 톡을 보내려는 순간 강우는 신새벽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보내라고 했었지?

공원 벤치에 앉아 본격적으로 톡을 보냈다.

- 강우 : 쌤! 메달 땄어요!

잠시 후 신새벽에게서 답장이 날아왔다.

- 신새벽 쌤 : 야! 이 자식아! 제일 먼저 보내라고 했더니 제일 늦게 보내?

- 강우 : 어? 쌤이 정말 처음이에요.

- 신새벽 쌤 : 거짓말 마! 너희 쌤은 벌써 알고 있더라.

- 강우 : 네?

생각해보니 손차희가 범인이었다. 손차희가 이곳 소식을 차도도랑 신새벽에게 이미 알렸나 보다. 어쨌든 정말 처음으로 보낸 것인데 호의를 몰라주다니.

- 신새벽 쌤 : 너 돌아오면 두고 보자!

- 강우 : 진짜라니까요. 저희 쌤한테도 아직 안 보냈어요.

- 신새벽 쌤 : 흐응? 그래? 내가 처음이야? 그럼 봐줄게. 축하해(이모티콘)!

갑자기 신새벽의 화가 누그러들었다.

그렇게 톡을 끝내고 차도도에게 연락하려고 보니 벌써 톡이 날아와 있었다.

- 차도도 쌤 : 금메달 축하해! 축하(이모티콘)!

두 사람의 상반된 반응에 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차도도는 어른 같고 신새벽은 애 같다. 물론 아무리 정신연령이 높아도 고등학생인 그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얼른 고맙다고 답장을 보낸 후 강우는 손차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하니?”

“인스타에 난리 났어. 네가 금메달 땄다고 하니까. 학생들 반응이 폭발적이네. 아무도 내가 은메달 딴 거는 축하도 안 해. 아! 이래서 1등 주의는 문제라니까. 은메달도 대단한 건데.”

그게 세상의 인심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기억하지만 은메달은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금메달이든 은메달이든 그 속에는 선수의 피와 땀이 녹아있으니 단순하게 메달 색으로 평가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도 MIT를 찍어 올리니까 방문자 수가 엄청 늘었어.”

손차희가 환하게 웃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최대우가 MIT에 도착했다.

멀리서 봐도 최대우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물리 대표팀 5명과 인솔 교수 1명에 조교 1명. 모두 7명인 단출한 팀이다.

그중에 강우는 대표선수 4명과 안면이 있다. 고려 과학고 학생인 최대우, 김창식, 박호재와 중앙 과학고의 남동훈이다.

김창식과 박호재는 지금 3학년으로 작년에 금상과 은상을 받았었다. 예전에 이론물리부에서 논술 문제로 대결이 붙었을 때 강우에게 박살 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들을 지금 이곳에서 만나니 왠지 어색하면서도 반갑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물리 대표팀이 강우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강우야! 소식 들었어!”

최대우가 먼저 축하했고 다른 학생들도 강우를 축하해줬다.

이들은 여기 오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소식을 언제 들었는지 신기했다. 공식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가 2위를 했다고 했다. 1등은 중국이다. 최근 들어 중국이 수학에서 강세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한 끗 차이로 밀렸다. 아쉽게도.

“강우, 축하한다!”

김창식와 박호재의 축하 인사에 강우도 답례했다. 현재 강우는 이 둘에게 나쁜 감정은 없다.

“선배님들도 금메달 따실 겁니다.”

지금 할 말은 이것뿐이다. 물리 올림피아드는 수학과 같은 장소에서 이틀 후에 열린다.

다른 학교 세 사람 가운데 안면이 있는 사람은 중앙 과학고의 남동훈뿐이었다. 강우는 반갑게 인사하고 가장 뒤에 서 있는 인솔 교수와 조교를 확인했다.

한국대 물리학과 교수와 조교여서 당연히 아는 사람이다. 물론 강우가 아는 게 아니라 손강우와 안면이 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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