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89화 (189/325)

제189화 물리 국가대표 (3)

강우는 천재를 좋아한다.

그리고 노력하는 이도 좋아한다. 만일 천재이면서 노력하는 자라면 그는 절대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중국인 녀석이 그의 비위를 슬슬 건드렸다.

당연히 그는 옆자리 학생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아침부터 슬슬 그를 향해 쪼개더니 그가 애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하는 순간부터는 아예 노골적으로 거들먹거렸다.

‘이 자식 뭐야?’

대충 보니 그의 멘탈을 터트려서 시험을 망치게 하려는 속셈이다.

치사하다는 생각에 그도 비웃음을 돌려줬더니 이제는 더 길길이 날뛰면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짧은 영어로 뭐라고 뭐라고 비난하더니 그가 알 수 없는 중국말로 계속 중얼거렸다. 욕을 하는 게 분명했다. 인성이 바닥인 녀석이다.

그러다가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됐다.

리유창.

그 순간 녀석의 머리에서 재능을 볼 수 있었다.

- 리유창, 수학 S, 물리 S, 화학 A, 생물 C, 지구과학 C.

놀라웠다. 지금까지 수학, 물리, 화학 세 분야에서 모두 A 이상인 녀석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수학과 물리에서 S라니. 최대우나 하은찬은 말할 것도 없고 랜디나 애나보다도 한 수 위다.

이런 녀석이 수학도 아닌 물리에 몰두하고 있으니 모르긴 몰라도 이번 올림피아드에서 거의 탑의 성적을 내리라 추정했다.

순간 강우는 고민에 빠졌다.

천재인 리유창과 친구가 될지 아니면 반목하는 사이가 될지. 보통이라면 당연히 친구였다. 지금까지 그가 미워했던 천재는 없었다.

‘이 자식, 얼굴도 모르는 나부터 시작해서 한국인을 싸잡아서 욕하고 있잖아. 거기에다 자만심 하나는 끝내주네. 웃긴 놈이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리유창의 표정을 보는 순간 결정했다.

그리고 녀석에게 시비를 걸었고 3시간 이내에 누가 빨리 푸는지 대결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말이 안 되는 짓거리다. 하지만 강우는 리유창이 천재이기에 이 대결을 절대 피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어차피 자신은 3시간 후면 무조건 나가야 할 상황이고 경쟁하게 된 저 녀석도 그때까지 풀고 무조건 나갈 것이다. 다 풀든 못 풀든. 그게 바로 천재의 미친 자존심이니까.

한 문제 더 맞히겠다고 3시간이 지난 후에도 미적거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천재란 원래 괴짜다.

결론은 이 녀석을 낚는 데 성공했다.

중국 팀 에이스를 잡았으니 국가별 대항에서 도움이 되려나?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강우에게는.

‘이런 문제를 5시간이나 풀라고?’

헌팅턴사와의 미팅이 아니더라도 일찍 풀고 나갔을 것이다.

그때부터 강우는 정신없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중간에 리유창을 힐끔 쳐다봤다. 그처럼 정신없이 문제를 풀다가 어느 순간 녀석도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갑자기 녀석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더니 다시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강우는 절로 우러나오는 실소를 멈출 수 없었다.

‘완전히 함정에 빠졌군.’

그를 의식하니 제대로 망할 것이다.

그렇게 약속했던 3시간이 흘렀다.

시계를 보니 12시 조금 전.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다.

작정하고 풀었더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국제 올림피아드 문제라도 강우에게는 평범했다. 지식을 테스트하는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천재성을 테스트하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돌려보니 리유창이 움찔하는 몸짓이 느껴졌다.

감독관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화장실요.”

대충 영어와 손짓으로 설명하자 감독관이 그를 화장실로 안내했다.

이제 곧 떠나야 하기에 찬물로 세수를 하고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방금 보인 녀석의 행태로 봐서 그가 나가면 녀석도 따라 나올 것이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온 강우는 답지를 최종 점검했다. 완벽하다.

12시가 되었을 때 강우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녀석을 향해 미묘한 비웃음을 날렸다.

움찔하던 녀석이 주먹을 꾹 쥐고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 벌떡 일어났다.

강우가 답지를 제출하러 나가자 녀석이 따라왔다.

시험장 밖으로 나왔을 때 뒤에서 녀석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강우는 녀석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밖에는 그의 또 다른 무기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강우야! 여기!”

미팅을 대비해서 곱게 차려입은 차도도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기다리셨어요?”

“시간 부족하지 않았어?”

“아뇨. 남던걸요?”

강우의 너스레에 차도도가 환하게 웃었다. 그 얼굴이 봄날에 핀 복사꽃처럼 밝았다.

뒤를 돌아보자 그에게 말을 걸려던 리유창이 차도도를 보고 넋이 나가 있었다. 그가 애나와 만난 것만으로도 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던 녀석이니 지금 어떤 심정일지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지금 녀석의 얼굴이 황당함과 패배감에 절어 있었다. 그 얼굴마저 점점 침울해지고 어두워진다.

쿵!

리유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강우는 내심 크게 웃었다.

“강우 군! 얼른 가지.”

창유리를 내리면서 요셉 교수가 재촉했다.

강우는 얼른 요셉 교수의 차에 올랐다.

“수아랑, 차희는요?”

“오늘 바쁘게 움직여야 해서 두 사람은 안 데려왔어. 오늘 하버드 구경 간다고 하더라.”

MIT와 하버드 대학교는 옆에 나란히 붙어 있다. 워싱턴에 가지 않는 그녀들에게 최고의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출발하는 차 안에서 강우는 뒤를 힐끔 돌아봤다. 멍하니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리유창이 보였다.

시간이 지난 후 정신 차린 리유창은 오늘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하겠지만 이미 만사가 끝난 후이기에 소용없을 것이다.

* * *

워싱턴 D.C.의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즈 본사.

미국 국방성 펜타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5층 건물의 아담한 헌팅턴 본사가 자리해 있다. 주 고객이 펜타곤이기에 헌팅턴 본사는 워싱턴을 벗어날 수 없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강우 일행은 헌팅턴 소개 영상을 감상했다. 처음 온 강우에게 회사를 이해시키는 헌팅턴의 배려다.

항공모함, 순양함, 잠수함 등이 떠다니는 활기찬 동영상은 지루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인 미국 해군의 무기 체계를 책임진 헌팅턴사의 규모가 피부로 와닿았다.

이곳에 몇 차례 와봤다던 요셉 교수마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으니까.

특히 강우의 눈길을 끈 내용은 소형 원자로 개발이었다. 원자력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심장으로 개발된 이 원자로는 당시에는 실현이 어려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기술의 개발은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작전 반경과 지속능력을 엄청나게 확장했다.

이제는 소형 상온핵융합 원자로의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내용에 강우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세계 각국에서 지난 20여 년간 총력을 기울여 개발에 힘썼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없고 상용화까지 무수한 난관이 남아있다.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는 사이 영상이 끝나고 관계자가 왔다.

“회의실로 가시지요.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우가 도착한 회의실에는 대략 열 명가량 되어 보이는 헌팅턴사 직원이 포진하고 있었다. 당연히 강우는 아는 사람이 없었고 요셉 교수는 몇 사람과 반갑게 악수했다.

요셉 교수는 강우와 차도도를 학술지에 우수한 논문을 실은 열정적인 연구자로 소개했다.

헌팅턴 쪽의 주요 인물은 부사장인 알렉스 고든과 연구 책임자인 마이크 그레이엄 두 사람이었다.

고든은 대략 50대 후반, 그레이엄은 4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백인 남성이었다. 다만 그레이엄은 각진 얼굴에 눈빛마저 날카로워 전형적인 과학자 인상을 풍겼다.

“먼저 현재 헌팅턴에서 진행 중인 상온핵융합 기초연구를 설명하겠습니다.”

발표자가 나와서 연구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나름 적절하게 숨길 것은 숨기고 자랑할 것은 드러낸 보고에 강우는 실소를 머금으면서도 현 수준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니어서 보고할 거리도 많지 않았다. 주로 수소 플라스마를 몇 초간 자기장에 가두어두었다는 실험사례가 발표됐다.

이 실험은 온도를 낮추고 지속시간을 충분히 늘리려는 노력이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그나마 상용화를 바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가시권에 들어오려면 요원하다.

“이어서 최근에 체결된 관련 프로젝트 내용을 설명하겠습니다.”

헌팅턴에서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알려주는 이유가 뭘까? 강우는 머릿속에서 그 속셈을 고민하면서 흥미롭게 귀를 기울였다. 차도도 또한 당사자이기에 집중해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한국대 마도환 교수와 체결한 프로젝트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모든 내용은 그가 짐작하던 그대로였다. 마도환이 제출한 계획서를 보면 대부분 손강우가 죽기 전에 연구해둔 내용이고 추가로 연구할 부분은 많지 않았다. 물론 강우는 그것마저 마도환이 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연구 보고가 끝나자 부사장인 고든이 회의를 주도했다.

“시간이 없기에 바로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이의 없으시죠?”

고든이 요셉 교수를 비롯하여 강우와 차도도의 반응을 확인한 다음 바로 주제를 꺼냈다.

“헌팅턴에서는 차 연구원과 강 연구원이 보기 드문 인재임을 인정합니다. 비록 두 사람이 나이가 어리고 학위도 변변찮지만, 최근에 주목할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이 미팅을 잡지 않았을 겁니다.”

호의인지 아닌지 파악이 어려웠다.

“다만 저희는 상온핵융합을 주도하는 업체이기에 이처럼 뛰어난 분들과 인연을 맺고 싶어 오늘 급히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도 프로젝트를 체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연구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상온핵융합 분야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붙으면서 펀딩이 쉽지 않아졌기에…….”

대충 요약하자면 프로젝트로 쓸 돈이 없다는 뜻이다. 투자가 어렵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강우와 차도도의 표정이 굳어지자 고든이 말을 덧붙였다.

“특히 최근에 두 분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은 논문을 분석해보면…… 연구 방향이 한국대 마도환 팀과 아주 유사합니다. 저희는 동일한, 비슷한 연구에 추가로 연구비를 투입하기 쉽지 않습니다.”

실망스러운 발언에도 강우는 동요하지 않았다. 정말 저렇게 생각했다면 오늘 미팅 자체를 잡을 이유가 없으니까.

요셉 교수가 반대 발언에 나섰다.

“마도환 팀과는 다릅니다.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분들이 더 손강우 박사와 연구 방향이 유사합니다.”

“압니다. 요셉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겁니다.”

강우와 차도도의 표정을 살핀 고든이 신중하게 계속 말했다.

“이 연구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저희도 요셉 교수님이 제안하신 보험성 프로젝트를 고민했습니다. 이전의 손강우 박사 사건도 있었으니까요. 마도환 팀에만 목을 걸기엔 문제가 있다고 자체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미국 대학교와 추진하는 위탁연구의 평균 연구비인 2년, 10만 달러 범위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정말 헌팅턴의 대학교 위탁연구비가 1억 원 정도인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마도환의 프로젝트비로 추정되는 10억 원 이상에 비한다면 터무니없이 적었다. 게다가 저 금액에서 베테랑 연구자인 요셉 교수 지분도 떼주어야 하니 사실상 인건비를 챙기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연구 책임자 그레이엄이 끼어들었다.

“이것도 대폭 양보한 겁니다. 솔직히 어느 회사에서 고등학교 선생님과 고등학생에게 이만큼 연구비를 지급합니까? 그것도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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