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94화 (194/325)

제194화 유명인 (1)

“강우야, 오늘 저녁부터는 어디에서 잘 거니?”

차도도가 교장실로 향하면서 물었다.

강우는 보폭을 맞추면서 대답했다.

“아직 갈 곳이 없어요. 기숙사는 오늘 비워야 하고…… 짐을 물리실험실에 보관하고 잠시 집에 내려갔다가 와야 할지.”

“방학하고 올림피아드 때문에 아직 집에 다녀오지 못했겠네?”

“가봐야 며칠 못 있어요. 헌팅턴 프로젝트를 빨리 시작해야죠.”

“그래도 다녀와야지.”

“여차하면 신새벽 쌤이 재워주신다니까 거기에 가 있을지…….”

강우가 보지 못하는 사이 차도도의 눈썹이 쓱 올라갔다.

강우는 한숨을 쉬면서 화제를 돌렸다.

“기자는 왔어요? 꼭 인터뷰해야 할까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학교 측에서는 어쨌든 홍보가 되니 무조건 하자고 하겠지만.”

강우는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인터뷰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신경이 쓰인다.

훗날 마도환을 상대할 생각이면 조금이라도 인지도를 넓혀놓는 게 좋긴 하다. 순수하게 과학자로서의 미래만 생각했다면 일언지하에 인터뷰를 거절했을 것이다.

“쌤 생각은요?”

“난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일간지 기자였다면 거절했을 텐데 그 기자는 과학 전문지 기자잖아? 단순한 흥미 위주 또는 보도 위주가 아닌 심층적인 내용을 쓸 것 같아서. 학생들이 많이 보는 잡지니까 과학고나 영재고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강우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는 단지 기자라고만 생각했지 어느 소속인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예전에도 천재라고 소문나서 신문 방송에 소개된 사람이 많아. 그 사람들 대부분이 결국 평범한 인생을 살았어. 그게 천재가 아닌 사람을 천재로 띄워서라는 말도 있고, 대중의 지나친 관심이 그렇게 만들었다고도 하고, 국내 교육체계의 문제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차도도가 강우를 돌아봤다.

“넌 천재가 맞으니까.”

차도도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는 순간 강우는 마음이 안정됐다.

과학 강연은 강연장에 들어온 몇백 명의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잡지 기사는 수만 명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또 먼 훗날까지 남아 기사를 찾아 읽는 학생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네, 그럼 인터뷰할게요.”

말을 주고받는 사이 교장실에 닿았다.

교장실 출입이 몇 번째일까. 강우는 심호흡해서 마음을 안정시킨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응접 소파에 앉아서 백두섭 교장과 김승범 기자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강우와 차도도는 인사 후 소파의 한쪽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어제 인사드렸던 과학 잡지 중앙 사이언스 기자 김승범입니다.”

김승범이 명함을 꺼내 강우와 차도도에게 건넸다.

“제가 찾아뵌 것은 다름 아니라…….”

말을 꺼내는 김승범을 차도도가 바로 잘랐다.

“기자님, 잠시 기다려주세요. 먼저 제가 교장 선생님께 보고드릴 안건이 있어서요.”

머쓱해진 김승범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양보했다.

차도도가 백두섭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올림피아드 성과는 이미 보고 들으셨지요?”

“우리 학교 학생이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따서 종합 2위를 차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리 올림피아드에서는 우리 학교 학생이 금메달 3개를 따서 종합 1위 성적의 기염을 토했다고 하더군요. 그중에 강우 군이 양쪽 모두에서 금메달에 최우수상을 받았고요.”

백두섭이 보고받은 내용은 거기까지였다.

“우리 학교가 전국의 과학고, 영재고를 통틀어 최고의 성적을 거두어서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백두섭이 강우를 치하했고 강우는 감사를 표했다.

차도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MIT에 갔다가 다른 수확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강연 왔던 MIT 물리학과 요셉 교수님을 기억하시죠?”

백두섭이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합니다.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이번에 그분과 함께 미국 헌팅턴사와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백두섭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 들었으니까. 그런데 김승범 기자도 놀란 표정이다.

그제야 강우는 어제 김승범이 말하던 프로젝트가 이미 마무리 지은 카이스트 프로젝트이거나 아니면 프로야구단 프로젝트였음을 눈치챘다.

“연구비 총액이 120만 달러입니다. 그중에 저희 지분이 무려 100만 달러이고요.”

백두섭과 김승범 두 사람의 입이 쩍 벌어졌다.

특히 김승범은 헌팅턴사가 익숙했다.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기자라면 그 회사를 모를 수 없다.

“하, 학생인데 그게 가능합니까?”

놀라서 묻던 김승범이 차도도의 눈치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기간은 3년이고요, 이 프로젝트가 성사된 이유는 강우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논문을 실은 덕분입니다. 최근에 강우 군은 국내 학술지를 제외하고 해외 학술지에만 두 편의 논문을 냈습니다.”

김승범 기자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황급히 수첩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야수 같은 움직임이다. 역시 기자의 본능은 무섭다.

“강우는 연구비 가운데 20만 달러를 학교에 기증해서 물리 실험 기자재 확충에 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차도도의 말은 강우도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금방 의도를 눈치챘다.

그들이 내놓은 20만 달러를 의미 없이 소모하기보다 학교에 고가의 실험 장비를 사서 기증하는 것이 훨씬 뜻깊다.

“강우 군이 생각이 깊군요.”

백두섭도 찬성을 표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예상대로 분위기가 흘러가자 차도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강우 군이 기숙사를 비우면 서울에 머무를 곳이 없습니다. 즉 오늘 고향에 가면 내일부터는 학교에 나올 수가 없어요. 개학 때까지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면 어떨까요?”

백두섭이 기자의 눈치를 봤다.

우수한 학생이 머무를 곳이 없어서 방학 동안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면 여론의 눈총을 받기 딱 좋다.

“흠, 그렇게 합시다. 학교에서도 학생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의무가 있으니까요.”

순식간에 방학 중 거주 문제가 해결됐다.

강우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치운 차도도의 계략에 혀를 내둘렀다.

“헌팅턴 프로젝트는 며칠 내로 MIT에서 우리 쪽으로 정식 제안서를 보낼 거예요. 그때 품의를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차도도가 프로젝트 관련 내용을 추가로 설명했다.

그렇게 보고가 끝난 후에 김승범 기자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보다 천재 학생인 강우 군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학생이 수학과 물리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얻었음을 알리기 위해섭니다. 또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강우 군 사례를 본받아서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지요. 그래서…….”

김승범이 인터뷰 이유를 상세히 나열했다.

강우와 차도도가 예상하던 바와 같다.

“그걸 꼭 인터뷰까지 할 이유가…….”

“강우야, 잠시만. 기자님? 강우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아니까 저에게 물어보시죠.”

차도도가 강우를 만류하고 직접 나섰다.

김승범 기자가 녹음기를 켜고 차도도에게 물었다.

“강우 군과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1학년 때, 2학년 때 담임입니다. 당연히 담임이 제일 잘 알겠죠?”

“아, 그렇네요. 그럼 묻겠습니다.”

김승범이 수첩을 뒤적이며 질문을 시작했다.

“강우 군이 천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다른 학생들 대비, 또 역대 고려 과학고의 뛰어난 학생 대비, 또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천재와 비교해서 설명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강우는 차도도가 그 대신에 답변하겠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본인이 스스로 천재라고 우기기엔 어딘지 모르게 낯 뜨거우니까.

차도도가 미소를 지으며 능숙하게 처리했다.

“고려 과학고에는 역대로 천재로 소문난 학생이 많았습니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1학년 때부터 메달을 딴 학생도 있었죠. 또 놀라운 내신 성적을 기록해서 한국대에 입학한 학생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강우와는 다릅니다.”

“어떤 점이요?”

“실적이죠. 예를 들어 초등학교 입학 전에 미적분을 풀 줄 안다는 천재도 있었고요, 중학교 졸업 시점에 미국 유명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천재도 있었고요, 별별 천재들이 다 있었죠. 하지만 강우의 능력은 그런 성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강우는 국제 학술지에만 논문을 두 편 실었습니다. 이것은 올림피아드 시험과는 완전히 다르죠. 연구 능력이 탁월하다는 겁니다.”

이어서 차도도가 상세하게 예를 들었다.

강우가 푸는 미적분은 일반 미적분과 다르다. 초등학생도 미적분 공식을 외우면 손쉽게 고등학교 수준의 미적분 문제를 풀 수 있다. 하지만 강우는 19세기 유명한 수학자들이 고심하면서 고안한 각종 미적분 수식을 완벽하게 물리학에서 응용한다. 단순히 풀 줄 안다는 수준이 아니다.

올림피아드 수상에서 드러났듯이 미적분이 아닌 현대 수학의 개념에서도 강우는 엄청난 강점을 보인다. 그리고 이런 수학적 강점을 바탕으로 물리학 문제에 접근한다. 그렇기에 물리학의 난제 해결에서 탁월한 장점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천재군요.”

김승범이 감탄했다.

차도도의 자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강우는 자신이 아는 내용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능력이 탁월해요. 작년 사이언스 페스타에서 강연으로 특별상을 받았죠. 그 강연은 지금까지도 최고로 남아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천재는 성격이 괴팍하다. 그러나 강우는 다르다. 강우는 함께 연구에 매진하는 고곽천재를 비롯하여 다른 학생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강우의 낯이 뜨거워지는 칭찬이 계속됐다.

‘내가 직접 인터뷰 안 하기를 천만다행이야.’

강우는 마음속으로 차도도를 응원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강우의 실적과 학교생활에 김승범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잘만 다듬으면 대박 기사가 분명했다. 고등학생이 해외 유력 석학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차도도는 침이 마를 정도로 강우를 칭찬하며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그럼 강우 군은 태어날 때부터 특출했나요?”

곤란한 질문이 나왔다.

강우가 머뭇거리는 사이 백두섭 교장이 대답했다.

“강우 군의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그리 특이한 점이 없습니다. 즉, 현재의 천재성은 대부분 고등학교 입학 후에 발현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 고려 과학고 시스템의 우수성과 담임인 차도도 선생님의 혜안 덕분입니다.”

그렇게 고려 과학고를 띄웠다.

굳이 강우는 부인하지 않았다.

“강우 군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마 앞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되겠죠? 과학자로서의 목표와 인간으로서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강우는 차도도와 눈을 맞춘 후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인류의 미래에 빛을 주고 싶습니다.”

“빛요?”

“말 그대로 빛이죠. 달리 말하면 에너지입니다. 인류를 에너지난에서 해방하는 것이 저의 연구 목표입니다.”

“아!”

옆에서 차도도가 추가로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비싼 석유가, 위험한 우라늄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을 구현할 거예요.”

놀라웠다. 엄청난 포부에 김승범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강우의 반짝이는 눈을 보는 순간 그것이 실현 가능하리란 믿음을 얻게 됐다.

“저도 믿습니다. 그럼 인간적인 목표는요?”

“예쁜 부인 만나서 아들딸 낳아야죠.”

강우의 소박한 목표에 모두가 웃었다.

잠시 차도도를 응시하던 강우가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향후 10년 이내로 저는, 아니 저희 부부는 노벨상을 받을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강우의 구체적인 선언이 처음으로 튀어나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