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198화 (198/325)

제198화 방송 섭외 (1)

화이트 엔젤은 몇 년 전부터 유명세를 탄 걸그룹이다. 최고로 잘 나가는 걸그룹은 아니지만 서너 번째는 되기에 팬이 상당히 많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화이트 엔젤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다. 치열한 걸그룹 경쟁에서 이제는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멤버들 각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화이트 엔젤의 리더는 주연으로 그룹 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다. 덕분에 그녀는 가수뿐 아니라 연기나 예능으로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최근에는 화제의 인물을 찾아다니며 질문하는 예능, ‘찾아라 인물!’의 보조 MC를 맡아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 유명인인 주연이 지금 고려 과학고 정문에 서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에 땀을 흘리며 학교를 쳐다보던 주연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아! 내가 어쩌다가!”

이 더운 날에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신경질이 푹푹 났다.

그녀의 기분을 짐작한 걸까. 매니저가 잽싸게 근처의 카페에서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 왔다.

“자! 주연아! 여기!”

찬 커피를 쭉 들이켜니 그나마 살 것 같다. 다시 학교로 눈을 돌리려는 순간 카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가우스 카페. 젠장! 카페 이름마저 그녀의 숨을 막히게 한다.

주연이 한숨을 푹푹 쉬며 매니저에게 물었다.

“이거 꼭 해야 해요?”

“작가 언니들이 모두 섭외 요청했다가 실패했다잖아? 네가 섭외에 성공하면 이 프로그램에서 입지를 확실하게 다질 수 있어!”

“하기 싫다는 사람을…….”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야. 대한민국 남고생치고 너 싫어하는 학생이 있을 리 없잖아? 네가 조금만 구슬리면 바로 성공할 거야.”

“아아, 하기 싫은데…….”

“예능 나가야지!”

매니저가 계속 그녀를 달랬다.

주연은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연예계에 데뷔한 후 이번처럼 난감한 임무는 처음이다.

지금 그녀가 고생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최근 갑자기 화제가 된 인물, 고려 과학고의 강우를 ‘찾아라 인물!’에 출연시키려 했다. 하지만 모든 섭외와 인터뷰를 고사하는 통에 작가들이 만나지도 못했다.

보다 못한 예능 제작진에서 주연에게 그 섭외를 맡겼다. 고등학생이니 주연의 인지도라면 분명히 성공하리라며.

주연은 어쩔 수 없이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보조 MC로서 입지가 불안정한 탓에 거절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하아! 그래도…….”

울상을 지은 채 주연은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신식 학교 건물이 그녀를 위압하고 있었다.

“강우라는 학생이 항상 도서관 세미나실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그러니까 넌 바로 세미나실로 직진해. 네가 화이트 엔젤의 리더, 주연이라는 것만 밝히면 그다음부터는 순탄할 거야. 아니, 그 학생이 너를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볼 테니까 그걸로 만사형통이지.”

매니저가 계속 그녀를 띄웠다.

주연도 자신의 유명세를 알기에 만나기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햇볕이 내리쬐는 더운 날이라 고생이어서 그렇지.

“방학 끝나면 섭외가 더 어려워지니까 오늘만 조금 고생하자, 응?”

매니저가 계속 달래자 주연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다시 들이켜서 더위를 조금 날려 보낸 다음 그녀는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학인 데다 더운 여름이어서 학교는 조용했다. 오가는 학생도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 세미나실이 어디인지 물어봐야 하는데 개미 새끼마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누구길래 이 고생을…….”

불평을 터트리며 건물 입구에서 머뭇거리고 있자니 한 학생이 다가왔다. 손에 편의점에서 산 것으로 보이는 음료와 과자가 들려 있었다.

“저, 저기요!”

주연은 건물로 들어가려는 학생의 팔을 붙잡았다.

“네?”

학생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이제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 남학생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테니 환호성을 지르거나, 사인해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래서 남학생을 붙잡고 유심히 그 변화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남학생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그녀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멀뚱거리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 호…… 혹시 저 모르세요?”

“네?”

이상한 표정으로 남학생이 그녀를 다시 쳐다봤다.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던 남학생이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잡상인 출입금지인데요?”

천하의 아이돌, 화이트 엔젤의 리더인 주연을 잡상인이라니! 이것은 유명 연예인인 그녀에게 모독이었다. 주연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말문이 막힌 주연이 간신히 숨을 고르고는 다시 물었다.

“자, 잡상인 아니고요. 누굴 만나러 왔는데…….”

“요즘 방학이라 학교에 아무도 없어요.”

귀찮다는 듯 다시 그녀를 쓱 훑어본 녀석이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주연은 허탈한 마음에 주저앉을 뻔했다.

과학고 학생은 공붓벌레만 있는 걸까? 유명인인 그녀를 모르는 학생이 존재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설사 그렇더라도 예쁜 여자를 보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정상 아닌가? 분명히 그녀는 남학생의 눈이 돌아갈 만큼 예쁘다. 한창 사춘기 시절의 남학생이라면 관심이 있어야 정상 아닌가?

연예인 비주얼이 이렇게 안 먹히는 것도 처음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주연은 한숨을 내쉬면서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더운 바깥과 달리 시원했다.

다행히 건물 구조가 도서관처럼 생겼다.

“세미나실이랬지?”

여기까지 들어오느라 힘들었던 고생을 생각하니 오기가 치밀었다.

계단을 올라간 그녀는 불이 꺼져 있는 다른 곳과 달리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

강우 학생이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으니 저기가 확실했다.

불이 켜진 세미나실 앞에서 심호흡하고 노크를 하려는 찰나였다. 안에서 요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교에 잡상인 돌아다니더라.”

“잡상인? 혹시 도둑 아니야?”

“여자던데? 좀 어리버리하게 생기긴 했어.”

“과학고를 동경하는 여학생인가?”

“대우야! 과자봉지 과격하게 뜯으면 어떡해? 예쁘게 잘 뜯어야지!”

들려오는 대화가 점점 주연의 복장을 긁어댔다. 자신처럼 아름다운 연예인을 잡상인에 어리버리하다니? 연예인을 동경하는 학생은 들어봤어도 학생을 동경하는 연예인?

간신히 화를 누그러트리고 주연은 강하게 노크했다.

똑똑-

“누구세요?”

문이 빼꼼 열리면서 뽀얀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을 보는 순간 주연은 말문이 막혔다.

내민 얼굴이 너무 예뻤다. 연예인 지망생 중에서도 이런 급의 얼굴은 흔치 않다고 할 만큼 예쁜 여학생이었다.

“누구세요?”

“어…… 그, 그게…….”

주연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를 모르는 학생이 지금 또 나타났다. 게다가 그 여학생 얼굴이 자신을 뺨칠 정도라니.

안에서 남학생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 그 잡상인이다!”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면서 내부 풍경이 드러났다. 가운데 탁자에 방금 사 온 과자와 음료가 널려 있고 모두 네 학생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학생 둘, 여학생 둘. 남학생 가운데 한 명은 방금 건물 입구에서 만났던 그 학생이었다.

“자, 잡상인이 아니라…….”

도무지 적응되지 않아 주연은 버벅댔다.

그 순간이었다.

“어? 주연? 화이트 엔젤?”

곰처럼 생긴 다른 남학생이 그녀를 알아봤다.

그제야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살폈다. 순식간에 그녀는 잡상인에서 아이돌로 격상했다. 이제야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기분에 주연은 내심 안도했다.

“주, 주연 맞아요. 세, 세미나실 찾아왔는데요?”

“아! 세미나실! 여기가 세미나실인데요? 근데 지금 아무도 없는데…… 누구 찾아오셨어요?”

뚱뚱한 학생이 그녀를 향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대우야, 누군데?”

입구에서 만났던 남학생이 뚱뚱한 남학생에게 질문했다.

“거…… 있잖아? 예전에 내 노트북 바탕화면. 거기에 사진 깔았던…….”

“아! 그, 걸그룹? 그 사진 휴지통에 버리지 않았어?”

“지금은 passion 사진으로 바꿨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주연은 화이트 엔젤 사진이 휴지통에 버려졌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지금 대답하는 저 우직한 남학생이 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혼란스러웠다.

“음, 그럼 버림받은 걸그룹이네.”

“강우야, 그래도 얘네 유명해. 나도 예전이라면 눈 돌아갔을 텐데…….”

순간 주연은 눈을 의심했다. 대화를 들어보니 입구에서 만났던 녀석이 바로 그녀가 찾던 강우였다.

뭔가 꼬인다는 생각에 머리가 버벅댔다.

“저, 가, 강우 학생 찾아왔거든요.”

순간 옆에 있던 두 여학생의 눈썹이 확 올라갔다. 이건 명백한 적의가 느껴졌다.

“강우를 왜요?”

“티, 티비에 섭외하려고…….”

처음 본 연예인 뺨치던 여학생이 노골적으로 째려봤다.

보통 때라면 미모로 바로 눌러버렸을 주연도 이 여학생 앞에서는 미모를 주장하기 곤란했다.

그때 복도 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무심코 돌아본 주연의 안면이 확 굳었다.

‘여기가 방송국이었나?’

눈앞에 탤런트 뺨치는 여인이 또 등장했다. 우월한 미모를 자랑하던 자신을 오징어처럼 만들어버리는 미인이었다. 이 여인은 화이트 엔젤에서는 상대할 자가 없고 드라마 주연급 연예인이어야 밀리지 않을 미모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좁은 학교에 연예인급 외모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라니! 그것도 과학고?

한없이 자신감이 쪼그라든 주연은 용건을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이런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아! 쌤! 강우를 찾아온 걸그룹이래요.”

선생님이라는 여인의 눈썹도 확 올라갔다.

“인터뷰 사절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훑어보는 여인의 경고에 주연은 어깨가 축 처졌다.

“그, 그게 티비 예능 방송에 섭외하려고요, 저, 저희 피디께서…….”

“아! 찾아라, 인물?”

“예, 바로 그거요.”

다행히 선생님은 들어본 모양이었다.

“거기 작가분에게 연락받긴 했어요. 하지만 학생 신분이라 출연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아서 거절했었는데…….”

주연은 속으로 이 힘든 임무를 준 피디와 매니저를 욕했다. 아무리 봐도 섭외가 어려워 보였다. 당사자는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데다 어떻게 이 동네는 아이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죄, 죄송해요.”

힘없이 돌아서려는데 예의 곰 같은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쌤? 방송 한번 나가는 건 어때요? 제가 화이트 엔젤 팬이거든요?”

“강우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강우 말고 제가 나가는 게…….”

순간 주연은 돌파구를 찾았다. 방송국에서는 강우 한 사람의 섭외를 원했지만 여러 사람이면 어떤가.

“조, 좋아요! 강우 학생 외에 다른 사람도 함께 출연하세요.”

그 후 주연은 곰에게 압박당하는 강우를 볼 수 있었다.

* * *

강우의 기사는 연일 화제를 불러왔다.

다른 신문사에서 인터뷰하지 않고도 여기저기 끌어모은 내용으로 기사를 보도했기 때문이다.

돌연 등장한 천재 학생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특히 또래의 학생을 둔 학부모의 관심은 컸다. 그들은 강우가 어느 학원에 다녔는지 캐기 바빴다.

이 모든 뉴스에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마도환이었다.

단순히 천재 고등학생이 등장했다고 놀랄 마도환은 아니었다. 그를 뒤집은 사실은 강우가 헌팅턴사의 프로젝트를 끌어냈기 때문이었다. 바로 자신이 최근에 체결했던 프로젝트의 주관사다.

이것은 강우가 그와 같은 세부 전공, 즉 상온핵융합을 연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강우가 누구였더라…….”

마도환의 기억이 고려 과학고와의 접점으로 넘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