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01화 (201/325)

제201화 화학경시 (1)

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 강우야, 티비 잘 봤어! 역시 우리 아들 잘생겼더라.

“아! 어머니? 보셨어요?”

-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당연하죠. 어머닌 어떠세요?”

- 여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렴.

“이젠 쉬엄쉬엄 일하세요.”

- 알았다. 전화비 많이 나와, 얼른 끊는다.

순식간에 어머니와 통화가 끝났다.

티비 방송 시각을 알려드렸더니 시간을 놓치지 않고 보신 모양이다.

이젠 그가 프로젝트로 돈을 꽤 벌기에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 말씀드리건만 말로만 알았다고 말씀하신다.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면 허리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 고집이시니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휴대폰을 끊고 잠시 멍하니 숨을 고르고 있자니 차도도가 물었다.

“어머니?”

“네. 티비 보셨나 봐요.”

“어머니께서 얼마나 자랑스럽겠니?”

“그보단 밥을 안 굶는지 그 걱정만 하시죠.”

강우의 착잡한 마음을 차도도가 위로했다.

“나중에 어머니께 효도하렴.”

차도도는 강우가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과학고에 입학했다는 점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그의 집안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이어서 고곽천재 친구들의 톡방이 우르르 번잡해졌다.

- 윤수아 : 강우야? 티비 잘 나왔어!

- 손차희 : 강우 제법 예능감도 있고.

- 윤수아 : 최대우도 화면발 죽임!

- 손차희 : 근데 차도도 쌤이 눈부시더라.

- 윤수아 : 학교 게시판도 난리야. 차도도 쌤 예쁘다고

- 손차희 : 여신이지, 고곽여신.

- 윤수아 : 강우야? 대우야? 말 좀 해봐~

- 최대우 : 흐아암(이모티콘)

손차희와 윤수아마저 그와 최대우보다 차도도를 화제에 올렸다. 그만큼 티비에서 차도도의 임팩트가 강했다는 의미다.

강우도 방금 티비 속의 차도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나오는 장면보다 차도도가 나오는 장면을 더 눈여겨봤다. 그는 이것이 자신에게만 해당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윤수아와 손차희의 반응을 보니 모두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슬쩍 옆에 앉은 차도도를 훔쳐보니 과연 여신이 따로 없긴 하다.

“차희와 수아가 선생님 예쁘게 나왔데요.”

차도도는 웃으며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신새벽이 난리를 쳤다.

“여기 봐. 학교 게시판에 차 선생님 팬클럽을 결성한다고 난리가 났어.”

학교에서 매일 보는 선생님인데 티비에 나왔다고 평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 뉴턴 : 차도도 쌤 봤냐? 죽이지?

- 아인슈타인 : 여신이야, 여신. 차도도 쌤 기운을 받으면 공부를 잘할 수 밖에 없지 않나? 강우가 그래서……

- 가우스 : 차도도 쌤이 천재라던데

- 오일러 :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최고의 선생님!

- 호킹 : 내년 R&E는 무조건 차 쌤 앞에 줄 선다.

- 파인만 : 오늘 나온 미모 수준이면 연예인들 모조리 압살 아니냐?

차도도의 인기가 정작 강우나 최대우보다 열 배는 더 많았다. 강우는 차도도의 인기가 이렇게나 올라갈 줄 몰랐다.

“쌤? 유명인사 됐는데요? 이젠 전철 타기도 힘들겠어요.”

“네가? 내가?”

차도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도도는 SNS와 그리 친하지 않다.

“아니, 쌤요.”

“으흑! 지금까지 내가 차 선생님이랑 학교에서 투탑이었는데 이젠 완전히 밀리게 생겼네.”

“신 쌤이? 쌤은 애초부터 근처에도 못 갔어요.”

“야! 강우 너! 불난 집에 부채질할래?”

신새벽이 주먹을 쥐고 그를 쫓아왔다. 그 모습이 진심이어서 강우는 당분간 신새벽을 피해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학교에서도 강우는 만나는 사람마다 티비 출연 축하 인사를 받았다.

지난번 뉴스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다. 공중파 예능 프로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다만 친구들은 그에게 관심을 보이면서도 꼭 차도도를 언급했다. 그날 얼마나 차도도가 예뻤는지, 또는 방송국에서 다른 연예인과 비교하니 어땠는지 그런 시답잖은 질문이다.

차도도를 향한 사심이 없었다면 반갑게 받아들였을 반응도 강우는 괜히 신경질이 났다. 차도도가 대중의 관심을 받으니 불안하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그의 인기는 최상이었다.

식판을 들고 밥을 타려고 줄을 서 있자니 밥을 퍼주는 아주머니가 그를 힐끔힐끔 살폈다.

“학생?”

“예?”

“혹시 학생이 거 뭐시냐…… 천재라고 소문난 학생이여?”

대충 티비 이야기로 알아들은 강우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가 티비를 봤는데 학생이 너무 말랐더라고. 다들 못 먹어서 그러냐고 나에게 묻잖아? 내가 밥을 퍼주는데 그런 소리 들으면 김이 팍 새버리지? 그러니까 말이지…….”

무슨 뜻인지 잠깐 고민하는 사이, 식판에 밥이 산더미처럼 담겼다.

“허억!”

“많이 먹으라고. 학생한테 주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

받아드는 식판의 무게가 상당했다.

그렇다고 사양할 수도 없어서 옆 칸으로 가니 이번에는 닭 다리가 서너 개 올라왔다.

“학생! 원래 일 인당 하나인데…… 내가 특별히 학생한테는 몇 개 더 줄게. 많이 먹고 빨리 커야지.”

맛있는 닭 다리를 더 주는 건 좋지만 이건 너무 많다. 엄청난 대식가가 아닌 이상 다 먹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싫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으니 반갑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암암, 우리 천재는 예의도 바르지.”

뒤에서 따라오던 고현성이 언성을 높였다.

“아주머니? 저는 왜 하나만 줘요?”

“너 티비 나왔었냐?”

고현성의 좌절을 뒤로하고 강우는 흐느적거리면서 빈자리를 살폈다. 이 많은 밥과 반찬을 해결하려면 윤수아나 최대우가 필요하다.

역시 저쪽에 둘이 앉아서 즐겁게 밥을 먹고 있었다.

강우는 최대우 옆에 식판을 놓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윤수아와 최대우의 시선이 그의 얼굴과 식판을 향했다가 다시 묘한 표정으로 얼굴을 쳐다봤다.

강우는 최대우의 식판을 보고는 뜨악한 느낌에 휘청했다.

최대우도 함께 출연했으니 당연히 그처럼 식당 아주머니들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밥이라고는 몇 숟갈에 심지어 닭 다리도 없었다.

“버, 벌써 다 먹었니?”

“아니, 이제 시작인데.”

최대우가 울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의 다 먹은 것 같은데?”

“아냐, 원래 이 상태였어.”

“아주머니께서 많이 퍼주지 않던?”

“으으.”

한숨 쉬는 최대우를 대신해서 윤수아가 설명했다.

“그게 티비에서 너무 뚱뚱해 보인다고 아주머니께서 사랑으로 쪼금만 주셨지.”

“으흑, 내가 그렇게 더 달라고 요구했는데…… 말이 안 통해.”

“아! 그게 사랑의 표현이었어.”

강우는 상황을 이해했다. 식당 아주머니들도 그 못지않게 최대우를 사랑했다.

“근데 넌 왜 그리 많아?”

윤수아와 최대우가 그의 밥과 닭 다리에 눈독을 들였다.

“아! 너희들 먹어. 난 조금만 먹으면 돼.”

아낌없이 두 사람에게 나눠줬다. 다 못 먹을까 봐 걱정했는데 두 해결사를 만나 다행이었다.

그렇게 사이좋게 먹고 있자니 갑자기 학생들이 몰려와서 주변 자리가 꽉 찼다.

“강우 선배님!”

“응?”

아무리 봐도 누구인지 모르겠다. 선배님이라 부르니 1학년인데 처음 보는 녀석이다. 녀석들이 자리를 점거한 후 의자가 부족해지자 탁자를 빙 둘러섰다. 심지어 여학생도 상당수였다.

밥을 먹는데 빤히 쳐다보니 여간 불편하지 않다.

“뭐, 뭔데? 볼일 있어?”

“아, 아뇨. 어제 티비에서 본 얼굴이랑 실제 얼굴이랑 얼마나 닮았나 확인하고 있어요.”

이것들이 별난 관심을 가진다.

“선배님은 우리 학교의 자랑이잖아요? 어제 티비를 보고 진정한 이 나라의 천재가 누군지 전 국민이 알았을 거예요. 선배님은 고려 과학고의 희망이죠. 아니 전국 과학영재고의 희망입니다.”

“구구단 게임은 못했지만…….”

“그 프로그램 MC인 주연도 뻑 가던 데요?”

“이제 곧 방송국을 접수할 거죠? 다른 프로그램 또 섭외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를 추켜세우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절로 낯이 뜨거워졌다. 수십 명이 모여서 웅성대니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웠다. 대충 손을 저으며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그런데 그거 다 연출이야, 연출.”

“에이, 진짜인데. 우리는 믿어요. 선배님이 진정한 천재란 걸요.”

말이 통하지 않아 강우는 후배들을 무시하고 계속 밥을 먹었다.

최대우에게 많이 퍼 넘긴 덕에 대충 식판이 바닥을 보이자 몇몇 학생이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와 과자를 내밀었다.

“식사하시고 이것도 드셔보세요.”

팬들이 바치는 조공이 바로 이런 것인가! 강우는 부담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뿌듯한 기분 속에 최대우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최대우와 윤수아의 시선이 학생들이 내민 간식거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을 배반할 수는 없다. 강우는 감사히 조공을 받았다. 이 순간만은 연예인이 부럽지 않았다.

적어도 몇 초가 흐르기 전까지는.

어느 순간 한 학생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 차 쌤이다!”

그를 주시하던 학생들의 시선이 식당 저쪽으로 쏠렸다.

식사를 마친 차도도가 식당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역시 차 쌤은 여신이야!”

“어제 티비에서 끝내줬어!”

“으아! 온몸에서 아우라가!”

“차 쌤 수업이 기다려진다!”

감탄을 연발하던 학생들이 우르르 차도도에게 몰려갔다.

순식간에 강우의 탁자는 텅 비고 차도도 주변에는 학생들이 몰려 웅성거렸다. 과연 차도도의 인기는 남달랐다. 평소에도 인기녀였던 그녀가 방송 출연을 계기로 인기가 폭발했다. 말 그대로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고 있었다.

“허억! 저것들이!”

아무리 팬의 마음이 갈대라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배신하다니!

어차피 인기에 연연할 그가 아니지만 차도도에게 학생들이 몰리니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저것들은 순진한 학생이 아니라 속이 시커먼 늑대라고!

“우와! 차 쌤 인기 대박이다!”

조공품을 챙기던 윤수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인기 대박은 무슨! 저거 전부 거품이야, 거품!”

강우는 투덜대면서 얼른 식판을 챙겼다. 차도도를 보호하려면 뒤따라 가봐야 할 듯하다.

* * *

투덜대면서 식당을 벗어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학생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강우? 인기 좋네?”

가장 앞에서 껄떡대는 녀석을 보니 낯이 익은 놈인데 누구인지 모르겠다.

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옆에 있는 윤수아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녀가 귓속말로 대답했다.

“전세훈.”

“전세훈?”

순간 녀석의 머리 위로 재능이 표시됐다.

- 전세훈, 수학 C, 물리 B, 화학 A, 생물 A, 지구과학 C.

화학과 생물에 특화된 녀석이다. 이 정도 재능이면 과학고에서도 손꼽힌다. 사실 S급은 정말 드물고 A급만 되어도 대단한 거다.

강우가 이 녀석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강우가 관심 있는 수학이나 물리에 특화된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수아가 옆에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입학 때 주영식 다음이었어.”

4등이었다는 말이다. 입학 때 장학금을 3등까지 주었기에 일반 학생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발이 넓은 윤수아나 경쟁심을 가진 이민찬, 손차희쯤 되면 4등도 기억하긴 한다.

“그리고 올해 화학 금메달리스트야.”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뜻이다. 물론 강우는 수학과 물리 금메달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

어쨌든 그와는 전혀 접점이 없다. 그런데 이 녀석이 왜 그를 아니꼽게 보는 걸까?

그제야 생각났다. 작년에 신새벽의 반에서 화학을 잘한다고 이름을 날린 녀석이다. 가끔 신새벽이 칭찬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가끔 우스개로 주기율표도 모르는 그와 비교했던 녀석이다. 어쨌든 신새벽에게 귀여움을 받는 녀석이라니 곱게 봐줄 여지가 사라졌다.

강우가 인상을 팍 찡그리자 전세훈이 피식 웃으며 시비를 걸었다.

“올림피아드 금메달 땄다고 인기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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