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중앙고 방문 (4)
신새벽의 비명에 차도도가 눈을 찌푸렸다.
“뭔데?”
“으으.”
뒤늦게 신새벽이 강우가 손에 든 휴대폰을 확 빼앗았다.
강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넘겼다. 그 휴대폰을 순식간에 차도도가 낚아챘다.
“뭔데?”
휴대폰 화면을 본 차도도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게 무슨…….”
“으으으.”
강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별것도 없는데 뭘 놀래요?”
차도도가 고개를 저으며 눈썹을 곤두세웠다.
“넌, 학생 앞에서 이게 무슨 주책이야?”
“난 기억도 못 했다고! 하필 그걸 찾아본 저 녀석이 나쁜 놈이지!”
두 사람의 대화에 강우는 실소를 머금었다. 솔직히 별달리 보이지도 않았다
“에이, 보이는 것도 없던데…….”
퍽!
손지갑이 머리로 날아왔다.
순식간에 강우는 신새벽과 차도도의 공적이 됐다.
* * *
강연 시간은 점심시간 직후로 잡혔다.
체육대회 일정을 따지면 어쩔 수 없는 시간 배치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식후라 학생들이 가장 졸릴 시간이니까.
장소는 강당.
물론 학생들의 참여가 강제 사항은 아니다. 그렇기에 강연을 듣고 싶은 학생만 몰렸다.
최근 들어 강우가 뉴스를 타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바람에 제법 인기가 있었다. 덕분에 양쪽 학교 학생들이 가득 강연장을 채웠다. 특히 평소 강우를 보지 못했던 중앙고 학생들의 호기심이 컸다.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 [독점]
시작 직전에 강우는 중앙고 방송반 학생에게 USB를 내밀었다. 그가 며칠간 고생해서 만든 강연 자료다.
NOVEL ・ 현판
윤하준
USB를 본 방송반 학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들어 강우가 뉴스를 타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바람에 제법 인기가 있었다. 덕분에 양쪽 학교 학생들이 가득 강연장을 채웠다. 특히 평소 강우를 보지 못했던 중앙고 학생들의 호기심이 컸다.
시작 직전에 강우는 중앙고 방송반 학생에게 USB를 내밀었다. 그가 며칠간 고생해서 만든 강연 자료다.
USB를 본 방송반 학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 강당 프로젝터가 고장 나서…….”
이게 뭔 소리지? 강우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었다.
“한 달 전에 고장 났는데 아직 못 고쳤어. 그래서 화면을 띄울 수가 없어. 연락한 줄 알았는데…….”
ppt 화면을 띄우지 못하니 자료 없이 강연하라는 뜻이다.
강우는 곧바로 사태를 눈치챘다.
일부러 한 달 전부터 고장 내진 않았을 테니 이건 사전에 고지를 받았던 김윤택이 그에게 알리지 않은 문제였다.
이 시간이 가장 졸릴 때이고 영상 자료조차 없이 강연하면 청중에게 임팩트를 주기 어렵다. 거기에 강우는 자료를 만든다고 고생했고 자료화면이 없으면 강연 방식도 꼬인다. 이래저래 고생해보라는 김윤택의 계략이다.
그렇다고 프로젝터가 없어 못 하겠다고 거부할 수는 없고.
“치사하긴…….”
“응?”
“아냐, 그런 게 있어. 그럼 그냥 하지 뭐.”
이 강연에서 자료화면은 본질이 아니라 보충 수단일 뿐이기에 강우는 재빨리 수습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면 된다. 괜히 신경 쓸수록 그만 손해다.
준비하는 학생을 내려보내고 강우는 단상에서 숨을 골랐다.
시간이 됐다.
먼저 김윤택이 마이크를 들고나와 강우를 소개했다.
“고려 과학고의 강우 학생은…….”
간략하게 강우의 신분과 최근의 업적을 소개한 김윤택이 강연 시작을 알렸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학생 여러분은 많은 질문을 통해 열렬하게 호응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이크가 넘어왔다.
김윤택은 아예 강당 밖으로 나갔고 강당 내에는 학생들을 비롯하여 몇몇 선생님만 남았다.
강우는 단상 위 한쪽 구석에 앉아서 그를 응원하는 두 선생님을 보자 마음이 안정됐다. 차도도와 신새벽이다. 만일을 대비해 대기하는 두 사람이 그를 든든하게 했다.
단상 중앙에서 강우는 청중을 쭉 둘러봤다. 곳곳에 그를 응원하는 친구들이 보였고 기대를 품은 후배들이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중앙고 학생들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강우는 가장 앞쪽에 앉아 그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중앙고 물리 금메달리스트 남동훈을 발견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남동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허리를 굽혀 인사한 다음 강연을 시작했다.
“고려 과학고 강우입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천재론입니다. 천재란 무엇인가? 한 번쯤 고민해본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왜냐? 과학영재고에 입학할 정도라면 한번은 천재라는 소리를 들어봤을 거니까요. 그렇죠?”
학생들이 웃었다. 보통 학생은 평생 한 번 듣기 힘든 칭찬이어도 과학고 학생은 일상으로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럼 과연 천재란 무엇일까요? 역사상 유명한 천재들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클리드나 아르키메데스, 중세로 넘어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근대에 들어오면 뉴턴이나 가우스, 현대의 아인슈타인, 호킹 등. 천재는 정말 많습니다. 오늘 저는 두 천재 과학자를 주목하려 합니다.”
강우가 예로 든 천재는 베셀과 캘빈이었다.
“베셀 알아요?”
“잘 몰라요.”
“프리드리히 베셀은 19세기 초 독일의 천문학자입니다. 그는…….”
베셀은 예전에 김선호 선생님이 첫 시간에 소개했던 과학자다. 연주시차 발견으로 유명한 그는 독학으로 학문을 배워 수학과 천문학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강우는 베셀을 통해 진정한 천재란 스스로 배움을 개척하고 연구해 나가는 사람임을 알렸다.
학생들은 베셀이 독학으로 수학과 과학을 공부해서 당대의 대 수학자인 오일러를 통해 가우스와 친분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학원에 다니면서 배워야 과학고생이 된다고 여긴 학생들은 천재를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학생들의 감탄을 남겨 두고 강우는 새로운 인물을 꺼냈다.
“캘빈 알아요?”
“몰라요.”
“그럼 절대온도 단위는 알아요?”
“캘빈요.”
“섭씨 0도는 273.15K죠. 바로 그 캘빈입니다. 캘빈은 19세기 말 영국의 물리학자로 실제 이름은 윌리엄 톰슨이고요. 그는 어릴 적부터 과학 재능을 타고 났어요. 그는 글래스고 대학의 수학 교수였던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은 전형적인 엄친아였어요. 그는 불과 10세 때 아버지가 재직한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10세요?”
“하하, 놀랍죠? 아빠 찬스를 잘 썼다고 볼 수 있죠. 다만 아버지의 수학 강의를 들으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일화를 보면 실제로도 재능이 탁월한 전형적인 천재였죠. 그는 입학 5년 뒤, 불과 15세 때 수학 논문을 쓰고 이 논문을 영국 왕립학회에서 발표합니다.”
당시 왕립학회의 원로 학자들은 15세 소년의 강의는 학회의 권위를 실추시킨다고 거부했다. 그 바람에 논문을 썼던 톰슨 대신에 나이 지긋한 학자가 대신해서 논문을 읽어야 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톰슨은 훗날 수학, 천문학, 물리학, 지질학 등 다방 면에서 업적을 남겼고 부친의 뒤를 이어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과학자가 된 후에도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불렸던 재능이 눈부시게 빛났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톰슨은 대학 졸업 후 유럽으로 유학을 다녀왔어요. 그것도 두 차례나. 그 이면에는 당시 영국과 유럽의 과학 대립이 있었죠.”
뉴턴 이후 영국과 유럽의 과학자들은 미분을 누가 먼저 발명했느냐는 문제로 극한 대립을 펼쳤다. 이 대립으로 인하여 약 100여 년간 영국은 유럽과의 과학 교류를 중단했다.
과학에서 독불장군은 존재할 수 없다. 그 기간 영국은 유럽보다 과학기술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본 톰슨은 유럽의 선진 과학 문명을 도입하기 위해 적국이라 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고 선진 기술을 배워왔다.
톰슨의 노력으로 영국은 과학에서 다시 종주국의 위치를 회복했고 그는 이 공로로 작위를 받아 캘빈 경이 되었다.
“캘빈은 영국에서는 물리학의 아버지이자 뉴턴 다음가는 천재 과학자로 명성을 얻었어요. 그는 죽어서도 뉴턴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묻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캘빈의 일생은 베셀과 궤적을 달리한다. 베셀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자적으로 천재의 반열에 올랐으나 캘빈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천재에 올랐다. 하지만 유럽과 교류한 캘빈의 일생에서 보여주듯 어떤 천재도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
뉴턴도 자신이 물리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선대 과학자로 지칭되는 거인의 어깨에 앉아 멀리까지 내다본 덕분이라고 하지 않던가.
강우의 천재론은 학생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들은 선대의 천재 과학자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학생들은 베셀과 캘빈의 일생을 통해 과학자의 열정을 다시 되돌아보게 됐다. 또 천재가 무엇인지, 천재는 삶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느끼게 됐다.
천재는 자신의 노력으로, 또 외부의 도움으로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 천재성을 끝없이 계발하고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외부와 끊임없이 교류하는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했다.
“여러분들이 역사에 남을 천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끝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주변 과학도나 과학자와 교류하지 않는다면 발전은 없습니다. 혼자 잘하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함께 과학을 발전시키겠다는 사명을 품고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강우의 강연이 끝났다.
자료화면이 없었음에도 학생들은 지루하지 않았다.
강우의 강연이 그들의 앞길을 밝혔다. 오늘 강연은 그들의 앞에 어렴풋하게 걸려 있던 장애물을 치우고 선대 과학자에게 닿을 새로운 등불이 됐다.
“와아!”
학생들은 감동에 싸여 환호성을 터트렸다.
고려 과학고 학생도, 중앙 과학고 학생도 들뜬 표정으로 강우를 환호했다.
학생들의 탄성이 잦아들었을 때쯤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바로 아침에 강우에게 시비를 걸었던 중앙고 학생 진만석이었다.
“선생님들이 질문을 많이 하랬으니까 질문하겠습니다.”
진만석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시죠.”
“강우야, 두 과학자 이야기를 잘 들었는데 넌 천재가 아니잖아?”
갑자기 공개석상에서 노골적인 반말로 인신공격을 가하자 학생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강우는 웅성대는 학생들을 손을 저어 잠재운 후 대답했다.
“전 스스로 천재라고 하진 않았습니다만?”
“내가 너 중학교 때 성적을 잘 알잖아? 그때 넌 나보다 한참 밑이었거든? 내 도움 아니면 고려 과학고에 입학 못 했어. 그렇지?”
진만석이 킥킥대면서 과거사를 줄줄 늘어놓았다.
강우는 조용히 녀석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중학교 때 넌 나에게 교재를 빌려 썼고, 영재고 대비 문제집도 얻었고, 거기에 모르는 건 나에게 묻고 그랬었잖아? 누가 보더라도 내가 너보다 훨씬 우수한 천재거든?”
지금 이 자리에 강우와 같은 중학교 출신으로 그때의 행적을 아는 학생은 진만석뿐이다. 진만석의 말은 사실 여부를 떠나 모두 진실이 됐다.
물론 거짓이 아니라고 강우도 생각한다. 문제는 그 모든 말 하나하나가 그를 깎아내리는 험담이었다. 강연과 전혀 관련 없는 내용으로 그를 헐뜯었다.
“넌 사배자 전형이 아니었으면 입학도 하지 못할 실력이었어!”
가난은 죄가 아니다. 사회배려자 전형이라고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의 인식은 그렇다. 흡사 입학에서 특혜를 준 것처럼 여긴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부자와 가난한 자의 편을 가른다.
학생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연히 이런 정도로 당황할 강우가 아니었다.
강우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