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10화 (210/325)

제210화 신새벽 생일 (1)

포기하고 돌아서는 그들에게 차도도가 차분하게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일찍 기숙사로 돌아가. 신 선생님도 적당히 애들 들여보내세요.”

멀어지는 차도도를 보면서 강우는 아쉬움을 달랬다.

어째 차도도의 기분이 별로였다. 그렇다고 그녀를 헤아릴 기분도 아니다. 차도도는 온종일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니 어쩌면 피곤한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차 쌤은 노래를 못 부르시나 봐.”

윤수아가 입술을 삐죽이자 신새벽이 얼른 반박했다.

“아냐, 차도도 쌤이 노래 꽤 잘해. 대학교 때 교내 가요제 나가서 상도 탔었거든.”

“정말요?”

“차 쌤이 그때는 여신이었어. 그 덕에 내가 학과가 달랐어도 차 쌤을 기억하거든.”

윤수아와 신새벽의 대화에서 강우는 차도도의 새로운 과거사를 알았다. 교내 가요제라면 그도 손강우 시절 구경할 기회가 있긴 했다. 다만 실험실에 처박혀 있었으니 예전에 그녀를 봤을 기회는 없었다.

어쨌든 차도도의 노래를 듣고 싶긴 한데 달리 방법이 없다.

괜히 신경질이 난 강우가 바닥을 툭툭 차고 있자니 신새벽이 윤수아, 손차희와 어깨동무를 하고 외쳤다.

“우리는 떡볶이부터 먹으러 가자!”

신새벽마저 떡볶이라니! 강우는 최대우와 난감한 눈빛을 교환하며 그대로 끌려갔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고중전 에피소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에그 드랍에서 일등한 아이디어는 최대우가 냈고 손차희가 세부적인 설계를 완성했다고 했다. 달걀집을 만든 재료는 윤수아의 넓은 발을 이용해서 중앙고 학생에게 얻었다나. 그 과정에서 달걀을 몇 개 깨 먹었다는 말까지.

“역시 쉽지 않아. 원래 실험이란 실수를 반복하고 오차를 줄이는 과정이니까.”

강우가 그 와중에 희생된 달걀에 애도를 표했다.

정작 윤수아와 손차희의 반응은 달랐다.

“강우야, 달걀을 실험하다가 깨트린 게 아니고…….”

“그럼?”

“대우가 배고프다고 먹는 바람에…….”

최대우가 머리를 긁었고 신새벽이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오늘 수학 퀴즈에서는 손차희가 2연승을 올렸고 하은찬이 3연승이었다. 사실상 둘이서 적군을 모두 해치웠다. 수학 올림피아드를 계기로 손차희의 수학 실력이 활짝 폈다.

역시 노력으로 타고난 재능을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산증인이다.

최대우는 물리 퀴즈를 사실상 리드했다. 중앙고 남동훈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남동훈의 막판 실수로 고려고의 승리가 확정됐다.

“오늘 강우는…… 완전 꽃밭이더라?”

신새벽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놀렸다.

“꽃밭은 무슨! 우리 쌤은 완전히 남탕에 갇혔던데.”

“오! 강우가 샘났나 보네?”

“샘이라니요! 그럴 거면 중앙고로 전근 가라고 하려다 참았는데.”

“차 쌤한테 일러야지.”

계속 놀리는 신새벽을 강우는 열심히 눈에 힘을 주고 째려봤다.

이어진 노래방은 그의 기분을 달랬다.

손차희의 고운 노래는 귀와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과연 학교의 가수다운 실력이다.

윤수아는 신나는 걸그룹 노래를 불렀고 그녀의 솜씨 또한 놀라웠다.

정작 최대우의 노래는 차마 들어줄 수준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고음인 걸그룹, 화이트 엔젤 주연의 노래를 불러서 음정이 완전히 망가졌다. 고음불가다.

“넌 어디 가서 노래 부른다고 하지 마.”

“어? 나 잘 부르지 않았어?”

이 자식은 본인이 노래를 못 부른다는 자각이 없다. 이어지는 최대우의 두 번째 노래에 강우는 귀를 막았다.

가장 기대했던 신새벽은 무난하게 노래를 불렀다. 못 부른다는 소리를 안 들을 수준.

그보다 그의 눈을 번쩍 뜨게 한 것은 신새벽의 율동이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곁들인 춤은 그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최대우 이 자식은 입을 쩍 벌리고 침을 닦을 줄 몰랐다.

다만 오늘 그녀의 복장이 흰색 체육복이라 춤과 노래에 어울리지 않았다. 체조라면 또 모를까.

몇 번을 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이 강우도 마이크를 들었다.

“강우야, 뭐 부를래? 내가 눌러줄게.”

윤수아가 열심히 선곡해줬지만 강우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아는 노래가 없다.

돌이켜보니 손강우 시절,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특히 대학원에서 실험실 생활을 하던 10년간 노래와 담을 쌓았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최신 노래 가운데는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더더욱 없다.

“하아!”

“너도 노래 못 불러? 대우보다 더?”

최대우의 끔찍한 노래를 기억한 윤수아가 곤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아닌데…….”

설마 그렇게 구박한 최대우보다 더 못 부르기야 할까. 아는 노래가 없어서 문제지.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간신히 한 곡을 선택했다.

노래가 나오는 순간, 손차희와 윤수아, 심지어 신새벽마저 한마디씩 했다.

“에이, 이게 뭐야.”

“노래가 고리타분해.”

“강우야? 너 애 늙은이야? 이거 쌍팔년대 노래거든!”

“틀딱! 틀니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강우는 이왕 선택한 곡이라 꿋꿋하게 불렀다.

“이런 노래를 어떻게 알지? 완전 아저씨야, 아저씨!”

부르는 내내 신새벽이 강우를 놀렸다.

강우도 노래를 못 부르지 않는다. 정작 본인도 낯선 음색에 익숙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강우는 본인이 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손강우보다 강우의 목소리가 더 좋았다.

다만 오랜만이라 박자를 따라잡기 쉽지 않다.

신새벽의 도움으로 2절은 두 사람의 합창으로 바뀌었다. 아저씨 노래라더니 신새벽도 잘만 부른다.

노래가 끝나자 손차희와 윤수아가 박수를 보탰고 자리로 들어가는 그에게 신새벽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강우야, 이달 마지막 날 내 생일이야.”

강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예전에 그의 생일 때 신새벽의 생일을 듣고 잊어먹고 있었는데 마침내 오고 말았다.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오늘따라 존재감을 발휘했다.

신새벽 생일선물을 무엇으로 하지? 생일선물은 받을 때 좋지만 해주려니 머리가 빠진다. 최근에는 프로젝트비를 받아 지갑이 두둑하니 돈 걱정은 아니다.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피식 웃으며 강우는 못 들은 척했다.

* * *

수업이 끝난 후 강우는 상담실로 호출을 받았다.

물론 잘못해서 반성문 쓰러 가는 일은 아니다. 차도도와 신새벽의 프로젝트 및 논문 관련이다.

“신 쌤은 어디 가셨어요?”

“너는 신 선생님만 찾니? 화학 선생님은 아직 수업 중이야.”

어째 돌아오는 차도도의 대답이 싸늘하다.

괜히 뻘쭘해진 강우는 조용히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어젠 잘 놀았어?”

“그럭저럭요. 모두 노래 잘 부르던데요?”

“네가 먹는 취향 말고 부르는 취향도 아저씨라 하더라.”

신새벽이 차도도에게 이야기했나보다. 본의 아니게 정신연령이 높은 구세대임을 들켜버렸다.

“아, 그게요…….”

막상 입을 떼고 변명하려니 할 말이 없다. 정신연령이 성숙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그때 방송국에서 화이트 엔젤 노래 중에 아는 게 없다고 했을 때 그럴 줄 알았어.”

걸그룹 노래는 최대우가 아니니 당연히 알 수가 있나.

“노트북 바탕화면에 동영상까지 띄워놓고도 모른다니 참 이상하긴 하다만.”

“그래도 다들 제가 노래 잘 부른다고 했다고요.”

“그건 네 체면을 세워주려고 한 말이지. 우리 동네에서는 그런 정도로는 노래 잘 부른다고 안 해.”

차도도가 그를 완전히 깎아내렸다.

“쌤은 잘 부른다면서요? 언제 들려줄 건데요?”

“일없다.”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쏘아본 차도도가 프린트물을 꺼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일단 일부터 해야 하니까. 강우는 프린트물을 받아 쭉 훑어 내려갔다. 곳곳에 예상치 못한 차도도의 능력이 돋보였다.

“핵융합 네 번째 논문. 상온핵융합에서 뮤온 촉매의 거동을 예측하는 수학적 모델 연구야. 예상보다 늦어졌어.”

“전 아이디어만 던져드렸고 쌤이 독자적으로 연구하셨는데요? 그만큼 쌤의 연구 역량이 강화되었다는 뜻이니 좋은 일이죠.”

“나도 알아.”

강우는 프로젝트가 체결된 이상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돌아오자마자 세 번째 논문을 냈으니 할 일은 했다. 헌팅턴사의 의구심을 해소하려면 네 번째 논문도 빠를수록 유리하겠지만 어차피 가슴을 졸이는 곳은 헌팅턴이니까.

“우리는 일정대로 연구를 지속하면 돼요. 지금도 충분히 정상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급했다면 강우가 주도적으로 서둘렀으리라고 생각하기에 차도도도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

프린트물을 쭉 확인한 강우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예상한 대로예요. 이대로 추진하면 되거든요. 결과를 조금 더 세밀하게 다듬어서 요셉 교수에게 보내면 지난번처럼 교수님이 알아서 학술지에 실을 거예요.”

물론 논문 끝에는 헌팅턴사의 투자로 수행한 연구라고 코멘트를 붙여야 한다.

프린트물을 챙기면서 차도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강우야, 뮤온 입자 말이야.”

“네.”

“그게…… 어떤 과학자들은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하잖아? 과연 그게 가능한 거야?”

“뮤온이 렙톤이잖아요? 이를테면 질량이 무거운 전자라고 할 수 있고요. 두 양성자가 융합하려면 전자기력을 이겨내야 하는데 뮤온이 원자핵의 플러스 전하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하지만 뮤온은 수명이 짧아 소멸한다며?”

“그게 지금까지 뮤온 촉매를 현실화하지 못한 핵심이죠. 이번 논문에서는 거기까지는 다루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세 번째 논문과 네 번째 논문은 모두 뮤온 입자를 다뤘다. 수소 원자 주위의 전자구름 모델처럼 두 양성자, 또는 수소 원자와 중수소 원자가 존재할 때 뮤온 입자의 활용 방법을 세 번째 논문에서 제시했다. 새로운 진전이긴 해도 기존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네 번째 논문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서 기술적인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강우는 차도도의 불안을 감지했으나 세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은 그녀가 그를 믿고 따라와 줘야 한다.

“벌써 모든 해법을 밝히면 우리가 불리하죠. 아직 연구가 많이 남았기도 하고요.”

강우는 차도도가 느낄 부담 때문에 추후의 논문 주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가 없다면 네 번째 논문을 끝낸 후부터 차도도는 스스로 핵심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상온핵융합이란 큰 난관을 논문 몇 편으로, 또 한두 해의 연구로 돌파하리라고는 강우도 차도도도 생각지 않았다. 그렇기에 차도도도 금방 수긍했다.

차도도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카드가 나왔어. 핵융합 프로젝트 전용 카드. 고려 과학고의 법인카드라고 보면 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필요한 수용비나 재료비, 회의비, 접대비 등을 긁으면 돼. 대신 영수증은 내게 챙겨주고.”

사실상 고등학교에서는 프로젝트가 없기에 이런 카드를 사용하는 학생은 그가 처음이다. 또 실험 연구가 아니어서 기자재를 살 일도 없으니 이 카드는 주로 연구원 복지용이다. 즉 고곽천재의 회식비 지출용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건 쌤이 소지하셔야…….”

“나도 있어. 두 개를 신청했거든.”

어쨌든 카드를 받으니 뭔가 든든했다. 조만간 고곽천재와 기념 파티를 열어 시범적으로 카드를 써봐야겠다.

“중간고사도 끝났으니 다시 열심히 하자. 난 열심히 할 테니까 너도.”

“그래야죠.”

“애들이랑 자주 어울려 다니지 말고.”

애들이 누구를 의미하는 걸까. 지금까지 고곽천재와 모여서 공부하는 것을 차도도가 말린 적은 없었다. 게다가 고곽천재는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할 동료이기도 하니까.

딱히 애들이랑 어울려 다닌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강우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꾸벅 인사한 다음 상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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