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13화 (213/325)

제213화 혜성 관측 (1)

강원도 평창 태기산.

정상 봉우리가 바라보이는 중턱 곳곳에 일렬로 서 있는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해발 천 미터가 넘어가는 고지에서 지평선 멀리 떨어지는 일몰은 장관이었다. 확 트인 중첩된 산 너머로 붉은 노을이 깔리고 붉은 태양이 느릿느릿 모습을 감췄다.

“우와! 죽인다!”

최대우는 일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런 모습을 강우는 흥미롭게 구경했다.

“강우는 일몰을 제대로 본 적 있니?”

차에서 천체망원경을 꺼내던 김선호 선생님이 물었다.

“아뇨.”

그의 기억에 일몰이라면 학교 운동장에서 바라보던, 지는 태양뿐이다. 도심의 빌딩 중간으로 떨어지던.

멀리 지평선에 가라앉는 커다란 태양은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했다. 안타깝게도 그 웅장한 장면을 보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수소 입자가 융합해서 헬륨으로 변환하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가끔 야외로 나오면 가슴이 시원해진단다.”

강우의 감동을 익히 짐작한다는 듯 김선호가 웃음을 더했다.

노을이 점점 붉어지고 하늘이 남빛으로 물들어 가는 동안 김선호는 천체망원경을 조립했다.

오늘 그들이 멀리 강원도까지 원정 온 이유는 새롭게 나타난 혜성 때문이다.

혜성은 태양에 근접할수록 밝아지기에 저녁 서쪽 하늘이나 새벽 동쪽 하늘에서 주로 관측된다. 태백산맥 서쪽 사면에 자리한 이 산은 서쪽으로 멀리 트여있어 서쪽 하늘을 관측하기 딱 좋은 장소다.

오늘의 주연은 아틀라스 혜성.

새로 발견된 혜성에는 발견자의 이름이 붙는다. 이 혜성은 하와이대학 천문연구소의 소행성 충돌 경보시스템(Astroid Terrestrial-impact Last Alert System, ATLAS) 팀에서 발견한 혜성이다. 이 팀에서는 수시로 혜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아틀라스라는 이름이 붙은 혜성이 여러 개 있었다.

한 해에 새로 발견되는 여러 신혜성 가운데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혜성은 한두 개에 불과하다. 오늘 관측할 이 혜성은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밝아져서 그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긴 꼬리를 드리운 혜성이 아니라 이런 작은 혜성은 단지 존재를 확인할 수만 있어도 대만족이었다.

서울 도심에서는 이 혜성을 관측하기 힘들었기에 부득불 야외로 나온 참이었다.

“자, 거기 좀 잡아주고.”

일몰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 최대우 대신에 강우가 잡일을 했다.

망원경을 조립하는 김선호를 옆에서 돕고 있자니 새삼 별을 보는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최대우는 울릉도에서 홀로 이런 관측을 수도 없이 했을 것 아닌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뿐이야.”

해가 지고 하늘이 어슴푸레 빛나는 시간을 박명이라 한다. 이 박명은 계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략 해가 진 직후, 또는 해가 뜨기 직전 한 시간가량 계속된다.

오늘 혜성은 해가 지고 대략 2시간 지나면 서쪽 지평선으로 지기 때문에 박명이 끝나는, 해진 후 1시간쯤이 관측에 가장 좋은 시간대가 된다.

망원경을 조립하고 있자니 아래쪽에서 산길을 타고 차 한 대가 올라왔다.

강우네 차 옆에 선 차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이 내렸다.

“김 선생! 일찍 왔네?”

“일찍이라니! 자네가 늦은 거지.”

작년에 천체관측대회에서 봤던 중앙 과학고 지구과학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을 따라 학생 둘이 차에서 내렸다.

“대우야! 오랜만!”

중앙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최대우를 반겼다.

이들은 올해 고중전 천체관측대회에서 서로 안면을 텄다고 했다. 중앙고 학생 한 명은 덩치가 최대우와 비슷해서 얼핏 보면 두 사람이 형제처럼 보였다.

최대우의 소개로 강우도 인사했다.

본의 아니게 두 녀석의 재능을 확인했는데 지구과학이 A인 점을 제외하면 과학고 학생으로서는 평범했다.

“그때는 우리가 졌잖아? 복수전이야! 오늘 누가 빨리 혜성을 찾는지 내기하자!”

박시후라는, 최대우를 닮은 녀석이 제안했다.

“뭐 걸 건데?”

최대우가 여유롭게 받았다.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 라면!”

“오케이!”

순식간에 내기가 성립됐다.

천체망원경 조립이 끝난 강우와 최대우는 여유로웠다. 그들은 중앙고에서 조립하는 천체망원경을 구경했다. 양쪽 망원경이 비슷했다. 이동용에 혜성 관측용이란 한계 때문이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자니 박시후가 강우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학교에서 강연했었지? 그 강연 잘 들었어.”

“기억하네? 고마워.”

강우는 자신을 기억해주는 녀석이 반가웠다.

“그날 강연을 듣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이 많아. 아참…… 네 중학교 동창 녀석 있잖아?”

“어…… 만석이?”

“그래, 진만석. 그 자식은 강연 끝나고 네 팬이 된 다른 애들한테 혼쭐이 났어. 그렇게 남의 사생활을 막 밝혀서 비난하냐고.”

의도하진 않았으나 진만석은 강연 때 했던 질문의 역풍을 맞고 고생한 모양이다. 인과응보다. 그러니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

강우는 진만석을 동창이라 여기지 않기에 녀석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앞으로도 만나면 적당히 모른 척할 생각이었다.

“근데 팬이라니?”

“그 강연을 듣고, 또 네 방송이나 기사를 보고 널 좋아하는 팬이 많이 생겼어. 특히 여학생들이. 큭큭.”

체육대회 때 자신을 따라다니던 학생 무리가 많았다. 정작 자신은 차도도를 신경 쓰느라 팬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지 못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관심에 호응하지 못한 게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중앙고도 망원경 조립이 끝났다.

그들은 날이 어두워질 때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늘에 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밝은 별은 목성이고 저건 토성…….”

최대우가 하늘 여기저기를 가리키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강우가 보기에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구분하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역시 천체관측 베테랑인 최대우는 달랐다.

밝은 일등성 몇 개를 확인한 최대우가 천체망원경을 정확하게 고정했다. 천체망원경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망원경 극축을 천구의 북극과 정확하게 일치시켜야 한다나.

별이 보이기 시작하자 양쪽 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김선호는 오늘 혜성 위치의 좌표를 검색했고 최대우는 자신의 노트북에 별이 그려진 지도인 성도를 띄워놓고 구체적인 위치를 확인했다.

“주변에 밝은 별이 없어서 찾기가 쉽지 않을 거야.”

김선호의 설명에 최대우가 피식 웃었다.

“저만 믿으시죠.”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강우는 한쪽에서 조용히 구경했다.

지금 이들은 일선에서 천문학을 배우고 익히는 과학도다. 단순히 혜성을 보고 즐기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면 천문학자가 된다.

강우는 최대우의 지구과학 재능이 S란 사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최대우가 천문학으로 진로를 잡을지 아니면 물리학을 고수할지 궁금하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점점 많은 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짙은 남빛으로 물드는 하늘 색깔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강우는 시시각각 빛을 달리하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아름다움을 몸소 체감했다.

지금 최대우와 박시후는 각자 망원경에 붙어서 혜성을 찾느라 열심이다. 빨리 찾을수록 혜성 관측 시간이 늘어나기에 그들은 전력을 다했다. 물론 돌아가는 길에 라면을 먹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찾았다!”

최대우가 먼저 승전고를 울렸다.

강우와 김선호가 망원경으로 뛰어가는 사이 중앙고 쪽에서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분하다!”

박시후는 학생다운 패기와 근성이 담긴 아쉬움을 토했다.

망원경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최대우가 소감을 말했다.

“혜성 꼬리가 흐릿하게 보여요.”

강우는 망원경 시야에 잡힌 혜성을 처음 관찰했다.

자그마한 솜뭉치와 한쪽으로 흐릿하게 빛나는 꼬리가 느껴졌다. 화려한 사진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실제로 보는 맛이 있었다.

“예상보다 밝네?”

김성호도 소감을 말했고 최대우와 뭐라고 전문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강우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후 중앙고 쪽에서도 혜성을 찾았다는 환호성이 들렸다.

혜성을 확인한 김선호와 최대우가 바쁘게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뭐 하는데?”

“혜성 사진을 찍어야지.”

최대우가 학교에서 가져온 카메라를 꺼냈다.

일반적으로 천체관측에서는 흑백 냉각 CCD 카메라와 색상별 필터를 사용한다. 하지만 혜성처럼 짧은 시간에 컬러사진을 찍을 때는 일반 디지털카메라가 더 유리하다. 물론 일반 카메라여도 렌즈 교환이 가능한, 풀 프레임 고성능 카메라여야 한다.

카메라를 망원경에 장착하고 시험 촬영하던 최대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혜성의 움직임이 빨라서 노출 시간에 한계가 있어.”

혜성처럼 어두운 대상은 일반 스냅 사진처럼 찰칵하고 찍을 수 없다.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몇십 분의 노출 시간이 필요하다.

혜성이 지구에 가까우면 상대적으로 천구상에서의 움직임이 커진다. 문제는 짧은 노출 시간 동안에도 혜성이 별에 대해 상대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천체망원경이 자동으로 별을 추적해서 따라가더라도 혜성이 움직이면 선명한 사진을 얻기 어렵다.

예상치 못한 문제의 발생으로 최대우와 김선호가 난관에 봉착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중앙고 쪽도 마찬가지다.

“노출을 더 짧게 가져가야 하나…….”

그렇게 되면 노출 부족으로 어두운 혜성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해결책이라면 천체망원경으로 별이 아닌, 혜성을 추적하는 방법뿐이다.

문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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