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14화 (214/325)

제214화 혜성 관측 (2)

강우는 천체관측 전문가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무슨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는 천체망원경에 카메라를 연결해서 셔터를 누르면 혜성이 찍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과정에도 다양한 기술적인 난관이 남아 있었다.

최대우의 설명을 듣고서야 문제의 핵심을 깨달았다. 혜성이 하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별에 대해서도 움직이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혜성의 움직임은 별의 일주운동에 비해 매우 작지만, 천체망원경으로 찍은, 고분해능 사진에서는 그 움직임마저도 크게 나타났다.

“방법 없어?”

“현재는.”

최대우가 고개를 저었다.

기본 원리를 이해한 강우도 머리를 굴렸다. 천체망원경이 혜성을 추적하도록 할 수 없을까?

강우는 열심히 노력하는 최대우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를 돕고 싶다. 해결책을 찾고 싶다. 과학에는 항상 해결할 방법이 존재한다. 문제를 명확하게 재단하고 그 해결책을 과학적인 바탕에서 풀어가면 언젠가는 풀리기 마련이다.

과학은 숫자이고 뜬구름이 아닌 명확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강우의 천재성이 다시 빛을 발했다.

“대우야, 천체망원경을 어떻게 제어해?”

“응, 노트북으로 가능해.”

“아! 예전에 학교 천문대에서 했던 거랑 비슷하나 보네.”

고곽천재는 신입생 시절에 소행성 아스트리아의 궤도를 구하는 과제연구를 수행했었다. 그때 윤수아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천체망원경을 제어해서 소행성을 찾았었다.

“그래, 그거랑 같다고 보면 되지. 하지만 혜성 추적 프로그램은 없는걸.”

“그거 만들면 되잖아?”

“응?”

강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과거에 만들었던 적이 있다. 바로 소행성 추적 프로그램. 그 원리는 같다. 대상이 혜성이냐 소행성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는 재빨리 윤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아야, 뭐해?”

- 뭐하긴! 세미나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옆에 차희도 있어. 넌 좋겠다. 시원한 공기 마시면서 놀고 있잖아?

“밥은?”

- 이제 먹으러 갈 거야.

휴일 저녁에도 세미나실에 모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나 보다. 언제 봐도 대단한 학구열이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휴일에도 학원에 다니느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대다수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반강제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윤수아와 손차희는 강제가 아닌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수아야, 작년에 만든 소행성 찾는 프로그램 기억나?”

- 응, 그건 왜?

“그거…… 소행성이나 혜성이나 궤도요소는 차이 없잖아?”

- 그렇지. 어차피 계산 수식이 같으니까. 그 프로그램에 혜성 궤도요소를 입력하면 바로 혜성의 위치를 구할 수 있어.

“그러면 매시간 혜성 위치를 구해서 실시간으로 천체망원경을 컨트롤하도록 신호를 보낼 수 있어?”

- 어렵지 않은데? 몇 분이면 가능하게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어.

강우와 윤수아의 대화를 들은 최대우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그제야 최대우도 소행성 프로그램을 조금 변형하면 혜성 관측에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우의 전화를 최대우가 받아서 추가로 상세히 설명했다.

강우는 대화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정작 들리는 것이라고는…….

- 나 지금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지금 밥이 문제냐?”

- 나 배고파.

하긴 윤수아는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이럴 때는 전략을 바꿔야 한다.

“강원도 특산, 안흥찐빵 사 간다고 해.”

오던 길에 들린 휴게소에서 찐빵을 팔았었다.

- 오오오! 찐빵!

윤수아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작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아 윤수아가 수정한 프로그램 파일을 전송했고 최대우는 그 파일을 노트북에 깔았다.

다시 혜성 촬영을 시작했다. 일단 시험 촬영.

과연 이번에는 될까?

강우는 윤수아의 능력을 믿었다. 순식간에 프로그램을 수정해서 용도를 바꾸는 작업이 가능한 이유는 그녀가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2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프로그램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니 역시 윤수아는 프로그래밍의 천재다.

그리고 이를 받아서 곧바로 천체 관측에 활용하는 최대우 또한 대단했다. 물론 두 사람은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강우를 천재로 여긴다.

5분간의 시험 촬영이 끝났다.

찍힌 혜성을 확인한 최대우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완벽해!”

이전에는 혜성이 약간 흐른 형태로 나왔다면 이번에는 혜성이 뚜렷하게 찍혔다.

재차 촬영에 들어갔다.

최대우는 더욱 바빠졌고 옆에서 김선호가 도왔다.

강우는 두 사람의 협업을 조용히 지켜봤다. 열심히 과학을 탐구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고려고뿐만 아니라 중앙고 쪽까지. 저들의 모습에서 강우는 하늘의 진리를 탐구하는 열정을 확인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혜성이 지평선 아래로 졌다.

오늘의 주목표인 혜성 관측이 끝나고 이제는 평소와 같이 가을철 별자리를 관측하는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야외로 나온 만큼 관측은 열기를 더했다.

혜성 관측 때와 달리 시간상으로 여유가 생겼다.

박시후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강우야, 대단해.”

“응? 뭐가?”

“어떻게 그걸 다 생각해냈지?”

과거에 만들었던 프로그램을 변형하여 적용하는 발상 이야기였다.

“글쎄…….”

갑자기 그 해결책이 어떻게 떠올랐는지 강우도 모른다. 현재 발생한 문제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과거에 개발했던 내용을 명확하게 알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었을 뿐이다.

“역시…… 그래서 네가 천재인 거구나.”

“이거랑 천재랑 무슨 관계가…….”

“그 발상이 중요한 거잖아? 네가 강연 때 그랬잖아? 천재들은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는다고.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오늘 네가 한 일이 바로 그거야.”

“뭔 말이래…….”

“천체 관측 도사인 대우도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잖아? 그런데 넌 했지. 그러니까…… 천재지.”

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녀석이 스스로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는 없어서 강우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녀석의 뒤로 중앙 과학고 선생님과 다른 한 녀석도 그를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체 관측 중간에 최대우는 찍은 혜성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겨 확인했고 가장 잘 나온 사진을 물리 블로그에 올렸다.

잠시 후 최대우가 화면을 보여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애나가 방문했어! 혜성 참 멋있다고! 사진도 보내달래!”

어찌 된 게 이 녀석은 예쁜 여자라면 정신을 못 차린다.

“이 밤에 애나는 블로그에 왜 왔데? 아! 거긴 아침이지.”

강우는 열심히 메일을 작성하는 최대우를 보면서 혀를 찼다.

“대우야, 넌 물리로 갈 거야? 아니면 천문으로 갈 거야?”

궁금하던 것을 물어봤다.

“나? 물리.”

전혀 고민하지 않고 최대우가 대답했다.

“왜? 넌 별을 좋아하잖아?”

“애나가 진로를 물리로 한다니까. 애나는 MIT가 목표래. 그래서 나도 MIT 가려고.”

최대우의 대답은 놀라웠다. 애나 때문에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다. 이쯤되면 걸그룹을 목표로 방송국에 취업하겠다고 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별이 널 싫어하겠어. 배신당했다고.”

“그럴 리가.”

최대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쏟아진다. 완전히 어두워진 밤하늘을 별이 수놓고 있었다. 그 하늘을 보는 순간 강우는 입을 떡 벌리고 감동에 사로잡혔다.

작년에 제주도에서 본 하늘에 못지않게 오늘 강원도에서 보는 밤하늘도 장관이었다.

“별은…….”

최대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제나 변함없이 하늘에 있어. 어제도 하늘에, 내일도 하늘에, 작년에도 하늘에, 먼 훗날에도 하늘에.”

최대우의 눈동자에서 별이 반짝인다.

“물리를 하든, 천문을 하든, 무엇을 하든 나는 저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하늘을 볼 거야. 별이 변함없듯이 별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변하지 않아. 저 별이야말로 나를 미래로 이끌어주는 지표니까.”

“그럼 애나는?”

“애나도 내 옆에 서게 되면 저 별을 함께 보겠지. 아마 그녀도 별을 사랑할 거야. 나처럼.”

최대우의 얼굴에는 믿음이 서려 있었다. 별을 향한 이 녀석의 마음은 진심이다.

최대우는 애나와 함께 별을 보는 상상을 하나 보다.

강우는 문득 영국의 물리학자 에딩턴이 떠올랐다. 애인과 별을 보면서 별이 반짝이는 이유가 핵융합 때문이라고 말했던. 그래서 애인에게 차였던.

강우는 먼 훗날 자신의 옆에 있을 배우자를 떠올렸다. 그도 제2의 에딩턴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옆자리는 핵융합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자가 채워야 한다.

미래의 그 여자 모습은…….

강우는 한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 * *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었다.

당연히 라면은 중앙고 선생님이 샀다. 역시 얻어먹는 밥이 제일 맛있는 법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라면을 먹으면서 오늘 수행한 천체관측을 복기했다. 목표했던 혜성을 관측했고 가을 별자리와 여러 성운 성단을 관측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예전에 관측을 나갔을 때…….”

중앙고 선생님이 열심히 천체관측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그때 나 혼자 갔었거든. 야밤에 산속에서 열심히 별을 보는데 뒷골이 서늘한 거야. 그래서 뒤를 탁 돌아봤더니 소복을 입은 여자가…….”

“으악!”

강우를 비롯하여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정작 최대우는 피식 웃으며 가소로운 듯한 웃음을 터트렸다.

“야! 대우! 넌 관측하다가 여자 귀신 만난 적 없어?”

중앙고 선생님이 웃으며 다그쳤다.

“왜 없겠어요? 울릉도에서 저 혼자 관측한 시간이 얼만데. 저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했던 처녀 귀신만 한 트럭이거든요?”

“안 무서웠냐?”

“에이, 무섭긴요. 별을 보며 관측하다 보면 가끔은 혼자라서 심심하기도 하고 고독을 씹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저 아름다운 별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그야 그렇지.”

“그게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 처녀 귀신이라도 나타나면 환영하게 돼요.”

“그래서?”

“오히려 귀신이 안 나타나는 밤이면 짜증이 팍팍 나거든요.”

강우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별에 미친 놈!

천재들이 대부분 괴짜라지만 저 녀석도 별과 연관되면 절대 뒤지지 않는다.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니까.

“어쩐지 그러니까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지. 그래도 다행이다. 내년에는 넌 안 나오지? 우리 중앙고가 드디어 빛을 보겠어. 내년엔 기필코 우리가 이길 거다.”

중앙고 선생님이 웃으며 장담했다. 작년과 올해 연속으로 패했던 결과가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다.

라면을 먹은 후 그들은 학교별로 쪼개졌다.

여기에서부터는 학교로 곧장 달려가면 된다. 새벽길이라 막힐 일도 없다.

* * *

프로야구 시즌이 끝났다.

올해의 우승팀이 가려졌고 스포츠 뉴스는 한 해를 종합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기사마다 올해는 각종 기록이 풍성했다고 떠들어댔지만 일반 팬이 보기엔 그저 그런 시즌이었다.

DD 파이터즈는 3위를 기록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으나 거기까지였다.

1위 팀이 아니어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 팀을 분석한 기사에서 유독 관심을 끈 두 사람이 있었다.

선발투수로 전향하여 다승 3위를 기록한 신재균 투수와 필승조로 자리 잡으면서 홀드 4위를 기록한 공정혁 투수였다.

두 선수는 인터뷰에서 특별한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바로 고려 과학고의 차도도 선생님과 강우였다.

대부분 그 두 사람을 친한 지인 정도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으나 기사 이면의 진실에 주목한 사람도 있었다.

강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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