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15화 (215/325)

제215화 마도환의 강연 (1)

“누구세요?”

학교에 있는 강우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없다. 가끔 차도도가 찾거나 시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오기도 하지만 극히 드문 일이다.

나머지 전화는 대부분 여론조사, 대출 강요…… 이런 스팸이다. 고등학생에게 무슨 대출을 해준다는 건지.

그래도 심심해서 전화를 받았다. 하필 점심 먹은 직후 한가하던 차였으니까.

- 강우 학생인가요?

“그런데요?”

- SG 피닉스입니다. 저희 피닉스 프로야구단은…….

뚝!

강우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어제부터 온갖 동네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프로야구단, 프로선수, 스포츠 전문 기자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할 정도다.

당연히 그 이유를 짐작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두 선수를 성장시켰으니까. 현재 DD 파이터즈와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기도 하고.

“아! 최종 보고서를 작성해야 해.”

파이터즈와 계약한 1년 마감이 다가왔다. 한두 차례 추가로 방문해 달라던 요구를 묵살했었다. 시즌 중이라 야구단도 바빴기에 강요는 없었다.

그가 손을 봐주었던 두 선수가 날아다녔으니 저쪽에서도 충분히 만족할 상황이었고.

다만 시즌이 끝나자 두 선수의 발전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DD 파이터즈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를 찾기 시작했다. 예전에 올림피아드에서 돌아온 직후 잠시 일었던 소동보다 훨씬 길고 끈질기게 이어질 듯하다.

“한 차례 더 방문하긴 해야 하는데…….”

바람 쐬는 겸 구장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도 어쩐지 꺼려진다. 그간 선물 받았던 야구 관람 공짜 티켓도 사용하지 않았다. 시간 부족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예전에 방문했을 때 차도도에게 쏟아진 프로야구 선수들의 관심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하여간 골치 아파.”

그가 고개를 젓고 있을 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공정혁이었다.

“네, 형?”

- 강우야, 잘 지냈어? 덕분에 내 인생이 달라졌다!

“에이, 뭘요. 그거 다 형이 열심히 한 덕분이죠.”

이래저래 잡담을 나누다 보니 전화한 이유가 눈에 보였다.

- 강우야, 구단에서 말이야, 프로젝트 1년 더 연장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물론 강우는 부담이 없다. 사실 카이스트나 헌팅턴 프로젝트에 비하면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오로지 그 혼자 매달리는 과제이기도 하다.

돈을 준다니 나쁠 일은 없고 어차피 한 차례 찾아간다고 약속했었으니 방문하는 김에 일 년 연장을 묶으면 훨씬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1년 연장하면 최종 보고서도 1년 미루면 되니까.

강우가 대답 없이 고민하고 있자니 공정혁이 다시 물었다.

- 강우야, 실은…… 요즘 타 구단에서도 연락 많이 오지? 구단에서 내게 부탁했는데…… 설사 우리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더라도 타 구단과는 계약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내 말은…… 이왕 계약하려면 우리랑…….

말이 뚝뚝 끊어지는 것을 보니 부탁하기 곤란한 모양이다.

사실 강우는 타 구단을 고려한 적이 없었다. 단지 파이터즈와 계속할지 말지를 고민했을 뿐.

“에이, 형! 형과 나 사이에 어려워하실 필요 없어요.”

- 그, 그러니까…….

“조만간 한번 찾아갈게요.”

- 그, 그럼 계약은?

“뭐, 일 년간 연장하죠. 대신에 모든 선수를 다 봐줄 수는 없고요. 제가 사전에 고민해보고 두 선수 정도만 만나서 변화를 시도해보려고요. 어때요?”

- 그래, 그건 내가 감독님께 잘 말씀드려보마.

괜히 선수를 전부 모아놓고 관심을 끄는 일은 사양이다. 계약을 연장하려면 차도도와 함께 가야 하니 절대 불가다.

대충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저기에서 주목을 받으니 피곤하다. 그가 목표한 인생을 살게 되면 앞으로도 적잖게 유명세를 치러야 하는데 벌써 피곤해지니 걱정이다.

강의실로 돌아가려고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최대우가 다가왔다.

녀석 또한 전화기를 들고 고민에 싸인 표정이다.

“강우야! 여기 있었네.”

“무슨 일 있어?”

“그게…….”

최대우가 눈치를 봤다.

강우는 녀석의 어깨에 팔을 얹고 농담 삼아 물었다.

“뭔데? 혹시…… 예쁜 여자라도 나타났어? 아니면 그 여자가 먹을 거라도 보냈어?”

“어.”

정작 농담한 강우가 더 놀랐다.

뻣뻣하게 몸이 굳어 있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설마…… 애나? 아니지, 애나 말고 또 있었어?”

“주, 주연이가…….”

주연이 누군지 한참 고민하다가 예전에 최대우가 좋아하던 걸그룹 화이트 엔젤의 리더를 가까스로 기억해냈다.

“주연이 왜?”

“티비 한 번 더 출연해줄 수 있냐고. 강우 너랑, 차 쌤이랑…….”

지난 예능 프로 시청률이 꽤 괜찮게 나온 데다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아 관련 동영상이 꾸준히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며 관심의 대상이 됐다.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세계가 주목하는 천재 과학자,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올림피아드 금메달. 이런 수식어가 붙으니 전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과 학부모는 모두 관련 영상을 찾아봤기 때문이다.

신비함은 시청자를 끌어모은다. 방송국에서 봤을 때 강우는 꽤 괜찮은 섭외대상이었다. 강우와 차도도에게 직접 연락해서 섭외하려다 실패했었고 최대우 덕에 성공했다고 판단한 방송국이 다시 주연을 통해 최대우에게 문의했다.

“왜? 방송하고 싶어?”

“그건 아닌데…… 주연이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지 않을까…….”

“애나는?”

“애나는…… 여기 못 오잖아?”

이 녀석은 답이 없다.

* * *

최대우에게 알아서 하라는 답을 준 후 A동 앞을 지나던 강우의 눈에 새로운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매달 월례행사로 열리는 외부인사 강연 포스터다. 이번 강연 주인공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강우는 인상을 확 구겼다.

바도 마도환이었으니까.

충동적으로 강우는 전화를 들었다.

“쌤? 어디 계세요?”

“상담실. 나 지금 수업 들어가야 하는데? 넌 수업 없어?”

“잠시만 기다려요.”

강우는 곧바로 상담실로 달려갔다.

수업에 들어갈 준비를 한 채 차도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마도환 교수 강연요.”

“아!”

그의 심정을 알겠다는 듯 차도도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쌤이 강연 유치한 거예요?”

“예전에 만났을 때 그 말이 나오긴 했는데…… 난 아냐. 김윤택 선생님이 직접 모셔왔어.”

김윤택이 맡은 학생 몇 명이 마도환과 R&E를 한다. 당연히 마도환과의 연결고리는 차도도보다 김윤택이 더 강하다. 하지만 이것이 무심한 변명임을 차도도 또한 안다. 그녀가 거절할 위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니까.

“그 사람은 왜 자꾸 오겠데요?”

“싫어?”

“좋을 리는 없죠.”

“헌팅턴이랑 프로젝트를 해서?”

강우는 차도도를 한차례 쏘아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프로젝트 때문은 아니다. 프로젝트야 마도환이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마도환의 능력이 프로젝트 수행에 미치지 못하니까. 몇 년 후면 헌팅턴에서 욕을 푸지게 먹겠지. 심하면 소송당하거나.

그렇다고 손강우 살해범이어서 싫다고 할 수는 없기에 강우는 마땅한 답변을 찾기 어려웠다.

“네가 마 교수님이랑 잘 안 맞는 건 알아. 그렇더라도 같은 분야 연구자잖아? 게다가 그 사람은 한국대 교수고. 친해서 네가 손해 볼 일은 없어.”

“어쨌든 쌤은 그 사람이랑 엮이지 마세요. 그 사람이랑은 같이 연구할 일도 없어요.”

강우의 음성은 평소와 달리 차가웠다.

물론 차도도가 마도환에게 호의를 보인 적은 없었다. 예전에 한태규의 조언도 있었기에 그녀도 마도환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전 강연회 때 불참할게요.”

“그러렴.”

강우는 굳은 표정으로 상담실을 떠났다.

* * *

마도환의 강연회 날이다.

한국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마도환은 자연대, 공대 진학에 유리한 물리학 교수이고 고려 과학고와 R&E를 진행 중이어서 학생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강당은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강연과 관련 없는 3학년들마저 참석할 정도였다.

강연 전담교사인 김윤택이 마도환을 소개했고 마도환이 단상에서 인사했을 때 그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마도환은 원자력 핵분열 에너지와 핵융합 에너지의 역사를 설명했다. 20세기 초에 밝혀진 핵분열과 이를 응용한 핵무기 개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넘어 미래의 에너지로 일컬어지는 핵융합 에너지까지.

학생들은 마도환의 강연에 깊이 빠져들었다.

차도도는 강당 한쪽에 앉아서 강연을 들었다. 오늘 전담은 김윤택이기에 별도로 그녀가 할 일은 없다. 그래서 편안히 들을 수 있었다. 마침 그녀가 수행하는 헌팅턴 프로젝트와 연결되기도 하고.

정작 그녀의 정신은 강연이 아닌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강단을 메운 학생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녀는 강우를 찾았다. 정말 강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끔 강연 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던 녀석이었는데 오늘은 아예 불참이다.

‘정말 마도환과 사이가 나쁜가?’

강우와 마도환은 별다른 접점이 없다. 제주도행 비행기에서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마도환은 강우를 전혀 몰랐었다.

그 이후에도 특별하게 두 사람이 만났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그녀가 볼 때 두 사람 사이는 좋고 나쁘고를 단정할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강우의 내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철없는 아이의 투정인가…….’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강연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치달았다.

“앞으로는 핵융합 발전의 시대가 될 겁니다. 현재 전 세계 다수의 물리학자가, 또 연구기관이 핵융합 발전에 집중투자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몇 군데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죠. 저희 한국대도 미국 헌팅턴사와 프로젝트를 체결하여 최전선에서 동참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여러분도 관심 있다면, 세계 최첨단 학문에 몸을 던지고 싶다면 한국대를 찾아주세요.”

학교 소개까지 마도환이 완벽하게 끝마쳤다.

마도환이 흐뭇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저는 한국대 물리학과를 리드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의 지원을 환영합니다. 아울러 지금도 고려 과학고와 협업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김윤택 선생님과는 오래전부터 R&E를 통해…….”

마치 잘 포장된 연설문을 읽듯이 마도환이 김윤택과 R&E를 수행하는 학생들을 띄웠다.

학생들이 이민찬을 비롯하여 핵융합 R&E 팀을 박수로 성원했다.

“……그리고 고려 과학고에 핵융합을 연구하는 팀이 또 있지요. 차도도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갑자기 차도도가 호명됐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어쩔 수 없이 차도도가 일어났다.

“잠시 앞으로 나와주시겠습니까?”

차도도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갑자기 그녀를 끌어들이는 마도환의 속셈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부할 재간도 없어 차도도는 조심스럽게 단상으로 올라갔다.

마도환이 그녀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여기 차도도 선생님도 현재 미국 헌팅턴사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계시지요. 고등학교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도 탁월한 능력으로 잘 수행하고 계십니다.”

차도도를 한바탕 크게 띄웠다.

차도도는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꾸벅 머리를 숙였다.

마도환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차도도 선생님!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고 계시니…… 함께 협업하면 어떻습니까? 서로 힘을 합하면 목표를 더 빨리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학생들도 따로 연구하기보다 같이 협동하면 더 낫지 않겠어요? 예를 들면 저와 차도도 선생님이 같이, 또 이민찬 군과 강우 군이 같이 연구하면 말이죠.”

차도도의 가슴이 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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