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17화 (217/325)

제217화 마도환의 강연 (3)

지위로 따지면 한주먹도 안 되는 애들인데 묘하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그 강우라는 놈은. 그 녀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사건건 그를 적대시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반드시 붙잡아야 해.”

헌팅턴 프로젝트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두 사람을 끌어들여야 한다. 최악의 경우는 한 사람이라도.

고등학생인 강우는 졸업할 때 한국대로 적극적으로 유도하면 된다. 아직은 일 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차도도는…….

일전에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을 때 완곡하게 거절당했다. 뜻이 없는 그녀를 강제로 어떻게 할 도리는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나?”

담배를 피우며 서성이던 마도환이 휴대폰을 열었다.

전화번호부에 적힌 한 인물이 들어왔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작심했던 놈인데…… 연락해도 괜찮을까? 이번만 마지막으로 의뢰하고…….

마도환은 황 사장이라고 적힌 이름을 눌렀다.

몇 차례 신호음이 울린 후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 마 교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었잖아요?

“그래도 거의 2년이 지났잖나?”

- 급한 일이 생기셨군요.

“그래. 두 사람 배경을 조사해주게.”

- 별일 아니군요. 누굽니까? 단 가격은 좀 쎕니다.

“돈은 상관없어. 이름은 차도도. 고려 과학고 교사. 전화번호는…….”

- 이번에도 제거하는 일입니까?

“자네가 상관할 일 아니지.”

- 또 한 사람은요?

“강우. 고려 과학고 2학년 3반.”

- 미성년자는 좀 그런데요?

“자넨 시키는 일만 해.”

- 클클, 그러지요. 두 사람 모두 숟가락 개수까지 싹 다 조사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마도환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기분이 별로다. 엮여서 좋을 일 없는 녀석과 또 인연을 맺었다.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이 없다고 다짐을 거듭했다.

* * *

회의를 마치고 물리실험실에 모인 차도도와 고곽천재는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이민찬 팀이 우리와 같이 연구하려고 난리던데?”

“우리가 뭐가 답답해서 같이해?”

“마도환 교수도 별로였어. 오늘 강연도 재미없었고.”

손차희를 비롯한 세 학생이 연달아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했다.

정작 강우는 말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차도도는 학생들의 발언이 수위를 넘지 않을까 고민했다.

“어쨌든 저쪽 팀과는 엮이기 싫어.”

“나도. 이민찬하고는 안 해.”

예전에 이민찬과 과제연구를 했다가 고생만 했던 손차희는 이민찬 말만 나오면 진저리를 쳤다. 이민찬 본인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학업이나 R&E와 얽히면 손을 저었다.

한참 떠들도록 놓아둔 강우는 마지막에 결론을 지었다.

“오늘 봤듯이 우리는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해야 해. 도움이 필요하면 요셉 교수에게 의뢰하면 되고. 이건 앞으로도 바뀌지 않아.”

그의 선언에 모두가 동의했다. 차도도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앞으로 이민찬 팀에서 지속적인 접근이 있을 거야. 때로는 김윤택 쌤이 불러서 물어볼 수도 있고. 그럴 때 조심해야 해. 절대 우리가 연구하는 핵심내용을 밝히면 안 돼.”

일견 과하게 여겨지는 당부였으나 모두가 공감했다.

오늘 일로 헌팅턴 프로젝트의 실체를 제대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마도환 팀과 경쟁체제란 점을 이해한 그들은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면 더욱 열심히 연구에 매진해야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우리는 실질적인 핵융합 연구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내년 3학년 때는 수강 학점이 줄어서 오히려 시간이 많아.”

프로젝트 체결 후 강우를 제외한 다른 학생은 핵융합 개발 동향을 파악하는 정도로 가볍게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또 학점제 체제인 고려 과학영재고는 1, 2학년에 비해 3학년은 확실히 수업이 줄어든다.

대부분 학생은 그 시간에 수능을 공부하거나 수시 입학을 위해 학생부를 채울 활동에 매진한다. 고곽천재는 아직 진학 방향을 정하지 않아서 어느 쪽이 될지 알 수 없으나 막연하게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졸업 전까지 획기적인 성과를 만들어보자.”

강우의 제안에 모두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런 분위기가 좋다.

시계를 확인한 차도도가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오랜만에 회식할까?”

“좋아요!”

“난 소고기!”

“난 돼지고기!”

“난 떡볶이!”

“난 국밥!”

국밥은 당연히 강우였다.

“잘 먹어야 힘내서 더 열심히 하거든?”

“그러니까 소고기죠!”

윤수아가 다시 힘을 냈다. 최대우마저 윤수아의 편을 들자 다수결을 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요즘 들어 그들은 직장인 월급만큼의 수입이 있기에 돈이 넘친다. 기숙사에서는 돈을 쓸 일이 거의 없고. 거기에 법인카드까지 있으니.

“좋아! 소고기로 하자. 오늘은 양보다 질로.”

마도환 덕분에 의기투합한 그들은 가장 가까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 * *

회식은 늦게까지 이어졌다.

오랜만의 회식이었던데다 열의가 넘쳤기에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게다가 포크에 칼질하는 스테이크는 손차희와 윤수아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했다.

비록 최대우는 양이 부족하다고 툴툴거렸지만 강우에게도 괜찮은 저녁 식사였다.

고기를 먹은 후 디저트를 먹기 위해 카페까지 자리가 이어졌다. 아쉽게도 노래방은 시간이 없어 갈 수 없었다.

강우는 차도도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고 심술을 부렸으나 정작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기숙사는 통금 시간 때문에 헤어질 시간이 됐다.

“자, 그만 들어가야지?”

차도도가 커피잔을 정리하며 일어났다.

강우도 마신 빈 잔을 쟁반에 올리는 순간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누구세요?”

- 강우 학생?

“그런데요?”

- 여긴 강우 학생 엄마가 일하는 가게인데…….

갑자기 기분이 쎄하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느낌이다.

“무슨 일인데요?”

- 실은…… 학생 엄마가 다쳤어. 지금 병원으로 옮기는 중이야.

“네?”

- 조금 심하게 다치긴 했는데 위험할 정도는 아니고…….

머리가 핑 돌았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제는 완벽하게 어머니로 받아들인 탓일까.

“어, 어딘데요?”

- 여긴 마땅한 병원이 없어서…… 읍내로 옮겼어. 거기가…….

저쪽에서 뭐라고 계속 정보를 던졌지만 머릿속에 저장이 되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던 강우의 손에서 휴대폰이 툭 떨어졌다.

* * *

오늘따라 늦은 밤에도 고속도로가 붐볐다.

이 밤에 시골로 내려갈 방법이 없었기에 강우의 선택은 단 하나였다. 바로 차도도의 차를 이용하는 것뿐.

덕분에 차도도도 함께 움직여야 했다.

다른 학생들을 기숙사로 보낸 차도도는 강우를 걱정하며 함께 가주기로 했다. 두 사람은 차도도의 집에 들러 모닝을 끌고 나왔다.

여전히 운전이 서툰 차도도에게 야간 운전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아, 밤이고 차도 많아서 좀 어렵긴 하네.”

“괜찮아요. 천천히 가셔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우의 속은 타들어 갔다. 마음 같아서는 운전대를 확 빼앗아서 직접 운전하고 싶어도 운전면허가 없다. 만 18세가 되자마자 면허부터 따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붉은 미등을 따라 천천히 기어갔다.

“쌤? 근데…… 지금 가면 내일 학교는 어떡하죠?”

“사유 적어서 제출하면 되니까 그런 거 걱정하지 마.”

“저 말고 쌤요.”

“나? 수업 빼야지 뭐. 내일 아침까지 돌아갈 자신은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이래저래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강우는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근데 어머니는 어디에 나가시는데?”

“저도 잘 몰라요. 예전에는 동네 음식점에 나가셨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 가게는 바뀌었겠지.

“생활이 어렵니?”

차도도가 조심해서 물었다. 강우네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익히 알기에 물어보기 쉽지 않다. 강우네 집이 시골이어서 표시가 나지 않아도 사회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 중에서 가장 어렵지 않을까.

강우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즘엔 제가 버는 게 많아서 굳이 나가지 않으셔도 되는데…… 어머니께선 대학 보내려면 돈을 모아두어야 한다고…….”

새삼 후회막심하다.

지금까지 그가 얼마나 버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특히 헌팅턴 프로젝트 비가 통장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쪼들릴 일이 사실상 없다. 그런 사실을 어머니에게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오늘 사고도 자신 때문이란 자책이 든다. 굳이 대학 등록금을 저축해두지 않아도 그는 충분히 대학에 갈 자신이 있는데.

물론 아무리 그렇게 일러주어도 어머니께선 계속 돈을 모으셨겠지. 대학 등록금이 해결되면 그를 장가보낼 비용을 저축한다고 우기셨을 분이니까.

“효도해야겠네.”

“그래야죠.”

이 사건을 계기로 강우는 돈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다. 그전까지는 유학 갈 때 부족하지 않을 정도를 벌거나 모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유학 비용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편히 살 방도까지 마련하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돈이 나올 구석은 많다. 멀리 보면 핵융합은 큰돈이 된다. 연구에 몰두해서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부터 이 기술을 더 잘 팔아먹을 방법까지 구상해야 한다.

“어렵게 자랐었네.”

새삼 차도도는 강우의 현실을 다시 살펴보게 됐다.

남다른 재력가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강우가 쪼들린다고만 알고 있었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었다.

강우 같은 천재가 적어도 돈 때문에 꿈을 접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마음 깊이 다짐했다.

점차 도로가 풀리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가 줄어들었다.

이제는 그들이 탄 차도 충분히 빨리 달릴 수 있는 여건이 됐다. 물론 차도도의 운전 솜씨 때문에 다른 차에 비하면 여전히 기어가는 형편이었다.

“언제 도착할까요?”

“새벽 서너 시? 병원은 확실하게 확인했지?”

“네.”

“도착하면 일이 많을지도 모르니까 눈 좀 붙이렴.”

“그럴게요.”

이 상황에서 잠이 올 리가 없다. 어머니 병환을 접어두더라도 그가 잠이 들면 차도도의 운전은 어떡하란 말인가.

어렵다면 더 어려운 법이다. 지금처럼 차로 야밤에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강우의 마음은 어느새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 *

병원 응급실에서 상황을 확인했다.

다행히 차도도가 옆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해줬다.

강우의 어머니는 일하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에 골절이 발생했다고 했다. 지금 당장은 거동이 어려운 상황. 현재는 응급조치를 완료한 상태이고 날이 밝으면 손상된 뼈와 관절 연골을 제거하고 인공관절로 대체하는 수술을 할 예정이라 했다.

목숨이 위험한 수술은 아니어도 향후 거동에 중대한 차질을 가져오는 수술이기에 가볍게 여길 상황도 아니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겨우 안정을 취한 어머니가 막 잠이 든 상태였다.

강우는 잠이든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혔다.

“많이 힘드셨구나.”

눈을 감은 얼굴에서 피곤함에 찌든 어머니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지 않으셔도 이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옆에서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머니가 천천히 눈을 떴다.

“우야…… 아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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