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20화 (220/325)

제220화 연말 특집 방송 (2)

차도도가 마련해준 옷에 신새벽이 사준 코트를 걸친 강우는 차도도와 함께 방송국에 도착했다.

당연히 차도도의 외모는 옷이 날개라는 속설을 뒷받침하듯 매우 빛을 발했다.

겉으로도 인기 연예인 못지않게 꾸민 두 사람은 방송국 정문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문증을 받은 후 안으로 들어갔다.

녹화장에는 화이트 엔젤의 주연과 최대우가 이미 노닥거리고 있었다.

최대우는 아침에 차도도에게 오는 대신에 화이트 엔젤이 자주 들리는 미용실에서 주연을 만났다. 정확하게는 차도도를 배신하고 주연을 찾았다는 뜻이다.

“녹화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메인 MC인 유현무이고요, 이쪽은 보조 MC인 주연과…….”

유현무는 이쪽 방면에서 상당히 잘 나가는 예능 MC다. 메인 MC 외에 보조 MC 겸 연예인 패널이 세 사람 더 있었다. 연예인들은 남다른 분위기와 외모에서 표시가 난다. 물론 그들의 이름을 강우는 전혀 몰랐다.

강우처럼 게스트로 출연한 사람은 모두 여덟 명. 바로 오늘의 주인공들이다.

유현무가 한 사람씩 바로바로 소개했다.

“이쪽은 이미 잘 아시다시피 천재 연예인으로 알려진 태리와 로라입니다.”

남자인 태리와 여자인 로라는 미국의 유명 주립대와 사립대 출신이라 했다. 대학을 다니다가 연예계로 전향한 경우였다.

“여기 두 분은 멘사 회원으로 나한성 변호사와 은유나 치과의사이십니다.”

티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반 연예인인 변호사와 의사다.

“그리고 이쪽은 버클리 대학에 재학 중인 수학 천재 김상학입니다. 요즘 대치동에서 뜨겁다고 하더군요.”

김상학이 강우와 차도도에게 인사했다.

강우는 그 순간 누구인지 알아챘다. 바로 고려 과학고의 전설이자 일 년쯤 전에 국내로 들어와 올림피아드를 대비한 수학 과외를 한다던 그 사람이다. 왜 아직 학교에 복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에서 만나니 인연이 남다르다.

이어서 유현무가 강우와 최대우, 차도도를 소개했다.

여덟 사람의 면면은 고려 과학고 학생이 둘, 선생님이 하나, 졸업생이 한 명이었고 여기에 연예인 둘에 반 연예인인 의사와 변호사로 모두 8명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천재라고 소문난 사람들이다. 오늘 어떻게 방송이 전개될지 사뭇 기대된다.

“후배였네?”

김상학이 강우와 최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우는 김상학에게 그리 좋은 감정은 아니었으나 굳이 여기에서까지 따질 일은 아닌지라 후배로서 순순히 인사했다.

김상학이 차도도에게도 말을 걸었다.

“저도 고려 과학고를 나왔습니다.”

외모 덕분에 시선이 집중된 차도도는 대부분 사람과 안면을 텄다.

담당 작가가 간략하게 오늘 게임 방식을 설명했다.

“이미 들으셨겠죠? 대외적으로는 누가 가장 천재인지를 겨루는 게임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에게 더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여러분들은 자연스럽게 게임에 임해주시면 됩니다. 너무 승부에 집착하지 마시고요.”

이어서 샘플로 만든 카드를 보여줬다.

“문제는 이런 식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창의력 문제, 고등학교 장학퀴즈용 문제, 고차원 문제 등 다양해요. 머리를 쓰는 계산, 논리와 추론 문제가 대부분이고 지식이나 상식을 묻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래서 많이 안다고 잘 맞힌다는 보장이 없어요.”

대충 들어보니 이런 식의 예능을 많이 접한 연예인들이 월등히 유리했다. 연예인으로 참전한 두 사람에게 눈이 갔다.

“문제당 한 사람씩 탈락하는 방식이에요. 문제를 풀어 주어진 태블릿에 답을 쓰면 바로 맞고 틀리고를 알려드립니다. 틀렸다고 판정 나면 계속 풀면 되고요. 제일 늦게 푼 사람이 지는 거죠. 진 사람에게는 벌칙이 있습니다. 예능 벌칙 아시죠? 간장 마시기, 와사비 많이 넣은 초밥 먹기, 이런 거요.”

벌칙 이야기에 강우와 차도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능이라 미리 각오하고 나왔는데 앞길이 험난해 보인다.

“특이점은 다른 사람이 풀지 못하도록 방해 공작을 펼 수 있어요. 즉 중간에 말을 걸어서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거죠. 가끔 MC분들이 질문하기도 하고요. 하다 보면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이어서 작가가 상세한 규칙을 줄줄이 설명했다.

과도하게 경쟁하지 말고 서로 웃으면서 즐겁게 게임에 임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과연 얼마나 지켜질까.

초반에 탈락하면 방송에 얼마 나오지도 못하고 벌칙만 받게 되니 상당히 억울할 터였다.

게스트 8명에 MC 3명까지 모두 11명에게 자리가 배정됐다. 무대의 중앙에 선 메인 MC가 호를 그리며 배치한 책상에 앉은 게스트와 패널을 조율하는 방식이었다.

강우는 2번째 자리였고 최대우가 6번째, 차도도는 10번째였다. 즉 모두 떨어졌고 특히 강우와 차도도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그는 옆에 앉은 사람을 확인했다. 1번째 자리는 연예인인 로라였고 3번째 자리는 학교 선배인 김상학이었다. 최대우의 오른쪽 옆에는 주연이 앉았다.

유현무가 쭉 둘러본 후 연습 게임을 제안했다.

“자! 그럼 일단 연습부터 해볼까요?”

말이 끝나는 순간 정면의 큰 모니터에 문제가 떴다.

- 2+3+4+5+6+……+11=?

예상보다 너무 단순한 문제에 모두 당황했다.

강우가 막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하려는데 유현무가 소리쳤다.

“태리 씨? 초등학교 때 공부 잘했나요?”

“네?”

그 순간 보조 MC인 주연이 말을 걸었다.

“대우 학생은 초등학교 때 항상 백점만 맞았다면서요?”

“전 초등학생 때…….”

최대우가 엉겁결에 대답을 하는 순간이었다.

강우의 옆에 앉은 김상학의 뒤에 설치된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면서 O자가 반짝였다.

“자, 한 사람 풀었고요, 주연 씨는 대우 학생에게 관심이 많은가 봐요?”

“아! 저 소문 나면 큰일 나요. 명색이 연예인이잖아요!”

주연이 익살맞게 변명할 때 치과의사 은유나의 머리 뒤에도 O가 떴다.

동시에 은유나가 입을 열었다.

“맞힌 후에도 질문으로 방해할 수 있죠?”

“물론이죠.”

“한성 씨는 문과라 계산이 약하죠?”

“제가 덧셈 뺄셈해본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나한성이 대답하면서도 책상 위 태블릿에 숫자를 썼고 머리 위에 O가 불을 밝혔다.

정작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강우와 차도도, 최대우는 미처 답을 쓰지 못했다.

MC와 패널들의 우스개 질문이 화살처럼 상대를 저격했고 그때마다 어떤 사람은 진땀을 흘리고 다른 곳에는 답을 썼다는 신호가 울렸다.

마지막으로 주연이 답을 쓸 때까지 강우는 답을 쓰지 못했다. 저들의 잡담에 귀를 기울이면서 계산하지 않은 탓이다.

연습 결과는 강우가 꼴찌였다.

“자! 아시겠죠? 이렇게 진행되면 강우 학생이 탈락해서 벌칙을 받는 겁니다. 중간에 질문이 오갈 때 답을 잘해주셔야 화면에 잡혀요. 시청자들이 즐거워하거든요. 답할 때마다, 질문할 때마다 자신의 녹화 분량이 늘어나는 거니까 잘 고려해서 조절하시면 됩니다.”

이 게임의 묘미는 문제를 맞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맞히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방식에 있는 듯했다. 방해나 리액션이 많으면 티비에 오랜 시간 출연하게 되니까 패널로 참여한 연예인들은 목을 걸고 덤벼든다.

준비가 끝났다.

방청객이 모두 채워지고 녹화가 시작됐다.

MC인 유현무가 게스트와 패널들의 면면을 소개했다. 강우는 두 번째 자리여서 소개도 두 번째였다.

“강우 학생은 고려 과학영재고 2학년이죠?”

“예,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빛낼 천재로 뉴스에 나왔었고요?”

“천재라고는…….”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 두 개를 거머쥐었잖아요?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

“아, 그게 올림픽처럼 금메달이 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MIT에서 대회가 열렸고 거기에서 우리나라가 큰 성과를 거뒀다던데…….”

“우리나라는 수학에서 세계 2위, 물리에서 세계 1위였어요.”

“아! 대단한 한국의 젊은이입니다. 다른 나라 학생들과 비교해보니 어떻던가요?”

강우를 소개하면서 잡다한 대화가 오갔다.

아마 나중에 자막과 자료화면으로 올림피아드에 관한 세부 내용이 첨가될 것이다. 올림피아드에 이어서 강우의 각종 기행이 언급되었고 도중에 연예인 패널의 질문도 쏟아졌다.

그렇게 소개가 넘어가고 이번에는 3번 김상학에게 질문이 들어갔다.

“세계적인 명문 버클리 대학에 다니고 계시다고요?‘

“그렇습니다.”

“김상학 씨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따셨다던데요?”

“엄밀하게는 은메달 하나, 금메달 두 개를 땄죠. 고등학교 3년 동안.”

“와우! 대단하네요! 그 정도면 천재 중의 천재 아닙니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김상학의 자랑이 쭉 이어졌다. 대충 수학에서 금메달 하나를 딴 강우보다 자신이 월등한 천재라는 논리였다. 물론 적절한 위트와 우스개가 섞여 기분 나쁘진 않았다.

최대우에게는 울릉도 이야기와 물리학 이야기가 곁들여졌고 다른 게스트와 패널을 지나 차도도의 순서가 됐다.

“우리 차도도 선생님께선 오늘 나온 두 학생의 담임 선생님이시라고요? 두 천재를 길러낸 천재 선생님이시죠?”

“제가 천재로 키운 건 아니고요, 어쨌든 뛰어난 학생임은 확실합니다.”

“선생님도 한국대를 나오셨다던데?”

“그렇긴 합니다만…….”

“그러면 천재 맞죠! 천재 아닌 분이 천재를 어떻게 가르쳐요! 차도도 선생님께선 고등학교 선생님이면서도 국책 연구과제를 수행하셨고 최근에는 미국 헌팅턴사와 프로젝트를 하신다고요? 항공모함 제조회사로 유명한 바로 그 회사와…….”

“그게 학생들이 똑똑해서입니다.”

“에이, 그렇게 이끄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시죠. 게다가 선생님 미모를 보니…… 허억! 연예인이 울고 갑니다!”

방청객의 폭소를 타고 차도도의 미모로 주제가 넘어갔다.

때로는 곤란한 질문을 흥미롭게 풀어가는 MC의 진행이 놀라웠고 예상외로 잘 받아넘기는 차도도의 실력에 감탄했다.

게스트 8명의 소개를 포함해서 참가자 11명의 인사가 모두 끝났다.

이어서 간략한 게임 방식이 소개되고 드디어 첫 번째 문제로 들어갔다.

“자! 처음부터 어려운 문제를 들이밀면 뇌가 경련하겠죠? 운동할 때도 일단 체조부터 해서 몸을 풀어야 하잖아요? 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뇌풀기 운동부터 시작합니다. 자, 연습 문제입니다. 시청자분들도 가볍게 동참해보세요.”

모니터에 문제가 떴다.

- 23X5+6X3+1X5-32+8X6+12345-23X432+8X41 = ?

“?”

“이게 연습?”

“허억!”

시간이 주어지면 못 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계산기가 널린 이 시대에 누가 저런 계산을 머리로 한단 말인가?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계산이 그리 빠르지 않은 강우이기에 태블릿에 쓰면서 계산을 시작하는 순간 역시 MC 유현무의 방해 공작이 들어왔다.

“강우 학생? 천재는 계산을 잘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어…… 계산 속도, 특히 암산과 천재는 전혀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김상학 씨는 어떻게 보십니까?”

“전 어려서부터 계산을 잘했습니다. 수학 시험에서 계산 실수로 감점받은 기억이 없네요.”

“우와, 대단합니다. 은유나 씨도 의사이시니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하셨죠? 계산은 어떠셨어요?”

한차례 폭풍 같은 질문이 끝나자 이번에는 다른 보조 MC가 끼어들었다.

“저거 순서대로 계산하는 거예요?”

“넌 초등학교 어디 나왔니? 곱셈부터 먼저 해야지!”

“허억! 그런 거예요? 으악! 다시 풀어야 하나?”

관중의 폭소가 터졌다.

그사이 계산이 빠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 O자의 불이 켜졌다. 어떤 사람은 몇 번이나 X자가 뜨기도 했다.

“태리 씨는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이것도 못 풀면 쪽팔리지 않습니까?”

“저 미국에서 태어났는데요?”

“그럼 유학 아닌가요?”

“그냥 동네 학교 갔는데요?”

“아! 그래서 계산이…….”

“미국에선 수학 시험에서 계산기 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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