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 연말 특집 방송 (3)
“푸하하!”
강우는 이 상황 자체가 예능임을 실감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서 도무지 계산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아! 소문난 천재들을 모았는데 덧셈 곱셈을 제대로 못 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이렇습니다.”
다시 MC가 방해 공작을 시작했다.
연습 문제인데도 정신이 없으니 본 게임에 들어가서 탈락의 압박이 심해지면 얼마나 어려울지 직감했다.
‘쉽지 않네.’
그가 고개를 젓는 모습을 발견했을까?
옆에 앉은 로라가 물었다.
“강우 학생은 계산이 어려운가 보죠?”
“전 어렵네요. 덧셈 뺄셈이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습니다.”
“오오! 동지!”
로라가 손을 올려 강우는 하이파이브했다. 그 순간 차도도의 머리에 O가 들어왔다. 이어서 최대우의 머리에서도 O가 들어왔다.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계산한 결과였다.
이래저래 농담과 진담이 오가는 와중에 강우도 계산에 성공했다.
잠시 후 나한성을 제외한 모두의 머리에 O가 켜졌다.
“자! 첫 문제가 끝났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죠. 결과는…… 나한성 변호사께서 탈락하셨는데 원인이 무엇일까요?”
“어? 연습이라 안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하하! 그렇죠. 떨어지는 것도 연습이라…….”
“문과라 죄송합니다.”
실전을 겪어보니 정신이 없다. 방송 때는 적당히 편집해서 보기 편하게 내보낼 모양이다.
“자! 이제 본격적인 첫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과연 첫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가? 지켜보도록 하죠!”
게스트 중간에 섞여 있는 패널의 과한 몸동작과 리액션이 흥을 더했다.
“이번에는 논리적 추론 문제입니다. 열두 명의 증인 가운데 진짜 범인을 잡아내는 문제가 되겠습니다. 열두 명 가운데 항상 진실만 말하는 사람이 5명, 항상 거짓만 말하는 사람도 5명입니다. 그리고…….”
“열한 번 틀리면 무조건 답을 맞힐 수 있겠네요.”
“아! 그래서 이 문제는 세 번 틀리면 자동 아웃입니다.”
흔한 논리 문제가 떴다. 경우의 수가 많아서 한참 고민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아무래도 변호사가 유리하겠죠?”
MC인 유현무가 나한성을 찔렀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계산 문제보다는 좀 낫네요. 수학 천재는 불리하겠어요.”
“아! 그 말은…… 탈락자면 수학 천재란 뜻이죠?”
다시 복잡한 방해 공작이 난무했다.
강우는 서두르지 않고 추론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O자가 뜬 사람은 김상학.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 보다.
‘김상학이 이 프로에 나온 이유는…… 아마도 과외 팀의 몸값을 올리려는 의도일까?’
저 사람은 대학생이 주 직업인지 과외가 주 직업인지 모르겠다. 물론 강우는 그런 삶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서너 명에게 O가 들어왔을 때 차도도의 머리에도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O가 절반을 넘었을 때 강우가 답을 하기도 전에 세 번 연속으로 틀려서 탈락자가 나왔다. 주연이었다.
“주연 씨도 추론에 약했군요?”
“전 얼른 MC 자리로 돌아가려고 틀렸습니다.”
“에이 변명은. 그래서 정답은 뭡니까?
“C입니다.”
“의외인데요?”
“아! 그래도 벌칙을 넘어갈 수 없죠. 이번 벌칙은…….”
주연의 앞에 와사비를 잔뜩 넣은 초밥이 준비됐다. 초밥을 먹은 주연이 눈물 콧물을 글썽이며 한동안 괴로워했고 방청객들이 웃으며 응원했다.
이어진 두 번째 라운드.
“이번에는 성냥개비 문제가 되겠습니다. 자, 성냥개비로 덧셈 수식이 적혀 있죠? 여기서 성냥개비를 추가할 수는 없고요, 빼거나 옮기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등식이 모두 몇 개가 있을까요?”
흔한 성냥개비 옮기기 문제가 나왔다.
빼먹거나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경우가 있어서 답을 맞히기는 쉽지 않다.
정작 강우는 문제보다 방송 분량을 고민했다. 방송에 나온 이유는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이렇게 티비에도 나오는 유명한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문제만 풀다가 탈락해서 빠지면 의미가 없다.
그런데 문제 스타일을 보니 천재라고 유리하지도 않다. 그가 끝까지 버틸 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었다.
잡담에 어울리며 화면에 자주 잡히는 방법이 정답인데 연예인이 아닌 그에게 저들처럼 말재주가 있을 리가.
차도도와 최대우를 보니 그들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듯했다. 물론 최대우는 이 순간에도 열심히 문제만 풀고 있다.
시간이 지나 탈락자가 결정됐다. 다행히 강우네 팀은 모두 무사했고 또 나한성 변호사가 걸렸다.
나한성 변호사는 벌칙으로 막춤을 선보였다.
MC인 유현무가 화제를 돌렸다.
“자! 이쯤 해서 오늘 출연자분들의 아이큐가 궁금해지죠? 누가 가장 높을까요?”
유학파 연예인이라던 태리가 손을 들었다.
“접니다! 아이큐 150이거든요!”
“오! 대단하네요. 천재 수학자라는 김상학 씨는 얼마인가요?”
“전 148입니다.”
역시 쟁쟁했다.
“우리 보조 MC 주연 씨는 얼마죠?”
“전 비밀입니다. 여자에게 그런 것 물으면 실례이거든요.”
“그건 몸무게 아니던가요? 둘 중 하나는 밝히시죠.”
“아, 안 되는데.”
주연이 계속 거부하다가 아이큐를 밝혔다. 118이라고 했다.
멘사 회원인 은유나 치과의사는 152였고 대부분이 130에서 150 사이를 밝혔다. 게스트는 모두 140이 넘었다.
최대우에게 질문이 들어갔다.
“전 중학교 때 검사했을 때 147이었습니다.”
최대우도 상당히 머리가 좋았다.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그럼 강우 군은?”
정작 강우는 아이큐를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온 후 아이큐 테스트를 해본 적이 없어서다.
“전 모르는데요?”
“비밀이라고 안 가르쳐 주는 것 아닙니까?”
“정말 모르는데요.”
강우도 난감했으나 담당 MC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차도도가 나섰다.
“강우 아이큐는 제가 알아요.”
“어? 담임 선생님이 어떻게 아시죠?”
“중학교 생활기록부에서 봤거든요.”
“아! 그런 일이! 그래서 얼마이던가요?”
차도도가 난감한 표정으로 강우를 쳐다봤다. 말해도 되냐는 허락을 구했다.
궁금하기는 강우도 마찬가지였다. 대충 중학교 행적으로 짐작해보면 머리가 특출난 천재는 아니다. 지난번 중앙고에서 중학교 동창이라던 진만석의 행동을 봐도 확실하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차도도가 대답했다.
“강우의 아이큐는 127이었어요.”
오늘 게스트 중에 가장 기대주이자 뉴스에서 천재로 운운하던 강우였기에 사람들의 실망이 컸다. 무려 수학과 물리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의 아이큐가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란 사실에 놀라는 듯했다.
물론 강우는 짐작하던 바여서 신경 쓰지 않았다.
분위기를 감지한 MC 유현무가 바로 질문했다.
“자! 그럼 우리 담임 선생님은 얼마일까요?”
모두의 시선이 단번에 차도도에게 쏠렸다. 오늘 출연자 중에서 유독 미모가 돋보이는 그녀였다. 게스트인 치과의사 은유나와 연예인 로라를 압도했고 하다못해 걸그룹인 주연마저 차도도 앞에서는 맥을 못 출 정도였으니까.
“전…… 148입니다.”
“오! 김상학 씨랑 같군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완벽한 선생님! 대단합니다!”
유현무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띄웠다.
차도도의 천재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녀는 수업에서도 연구에서도 확실히 뛰어났으니까. 강우는 그녀의 물리 재능이 S이거나 적어도 A는 확실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저도 142입니다. 그런데 유현무씨는 얼마죠?”
탈락한 나한성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능수능란한 유현무의 MC 재능을 보면 절대 머리가 나쁠 수 없다.
“아! 저요? 전 고등학생 시절에 136이었습니다.”
결과가 드러났다. 놀랍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강우가 최하위를 차지했다. 물론 게스트로 초청된 사람 중에서다.
아이큐는 머리가 좋고 나쁨을 보여주는 지표이지만 전부를 뜻하지 않았다. 요즘은 이큐를 비롯한 다른 중요 지표가 많아 천재성을 대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아이큐는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지기도 했다.
한바탕 소동이 넘어가고 녹화 브레이크가 걸렸다. 휴식 시간이다.
* * *
게스트들은 옆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렸다.
“예상외로 아이큐가 낮은데?”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김상학이 말을 걸어왔다.
“전 노력파거든요.”
강우는 간단하게 반박했다. 실제로 머리보다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 학문에서도 석박사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딴다는 속설이 있으니까.
“그래도 고려 과학고에서 두각을 나타낼 정도면 머리가 좋을 거라고 예상했거든.”
“그동안 남보다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호오, 그래?”
약간은 비웃음을 던지던 김상학이 다시 시비를 걸어왔다.
“하은찬 알아?”
“1학년 학생요?”
“그래, 이번에 은메달 땄던.”
“똑똑한 후배죠.”
“은찬이가 나한테 수학을 배웠다면 금메달이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하은찬이 왜 나오지?
강우는 예전 겨울학교 때 하은찬에게서 김상학 과외 소식을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하은찬이 수다쟁이다 보니 그때 과외와 관련한 강우의 평이 김상학에게 전달된 게 분명했다. 하긴 호의적으로 평가한 적은 없었다. 실제로 하은찬이 3월부터 그만두기도 했고.
“글쎄요. 혹시 배운 학생 중에 메달 딴 학생 있어요?”
김상학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이번에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출전한 학생은 강우가 모두 알고 있었다.
아마 김상학 팀에서 가장 뛰어났던 학생이 이민찬 정도였을 텐데 이민찬은 출전도 못 했으니까.
“내년에는 있을 거야. 올해는 시간이 부족해서 성과가 없었을 뿐.”
이 사람은 버클리 학생이라더니 복학은 언제 하지? 새삼 의문이 들었으나 굳이 남의 학업 신경 써주고 싶진 않았다.
“네, 그렇군요.”
강우는 그쯤에서 순순히 물러났다. 이만하면 아이큐로 받은 놀림을 대충 갚았다고 봐도 되나.
“열심히 해라.”
격려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어조로 그의 어깨를 툭툭 친 김상학이 차도도에게 관심을 돌렸다.
휴게실에서 차도도는 인기 폭발이었다. 남자 게스트와 스텝이 차도도에게 몰려들어 온갖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김상학마저 가담하자 강우는 홀로 동떨어졌다. 원군 최대우를 찾아보니 녀석은 한쪽 구석에서 주연과 열심히 대화 중이었다.
강우는 휴게실을 나와 녹화장으로 돌아왔다.
* * *
이어진 라운드.
휴식 시간 동안 작전을 세운 것일까. 공격 양상이 바뀌었다.
라운드가 지나갈 때마다 한 사람씩 탈락이다. 패널들이 주도해서 한 사람을 집중공격했다. 당연히 그 사람은 대화를 주고받느라 제대로 문제를 풀 여유가 없었다.
강우는 그 이면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방송에 도움 되지 않는, 또는 인기가 없는 사람을 하나씩 쳐내는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패널들이 미리 순서를 정해두었다는 의심이 간다.
한 사람씩 떨어지고 새로운 라운드가 계속됐다.
모니터에 익숙한 문제가 떴다.
- T(n) = n/2 (n=짝수), T(n) = 3n-1 (n=홀수)로 정의되는 함수 T(n)이 있다. 일반적으로 자연수 n을 이 함수에 대입하여 유한번 재귀 반복하면 1로 수렴한다. 예를 들어, n=3이면 3>8>4>2>1이 되어 1로 수렴한다. 이때 1로 수렴하지 않는 자연수 n을 찾으시오.
단순 암산 문제여도 수학적으로는 의미가 깊은 문제다. 이른바 로타르 콜라즈가 제기한, 증명되지 않은 수학적 난제의 변형 문제다.
“문과는 어떻게 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