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22화 (222/325)

제222화 연말 특집 방송 (4)

강우는 문제를 보자마자 지난 겨울학교에서 다뤘던 문제임을 알아챘다.

정답은 5와 17이다.

n=5일 때 5>14>7>20>10>5가 되어 순환 루프가 만들어진다. 17도 마찬가지. 적어도 1억 이하에서는 이 두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푸는 정석적인 방법은 3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대입해보는 것이다. 5는 바로 구해지고 17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몇 번 계산하다 보면 계산의 효율성이 높아져서 빨라진다.

관건은 1이 될 때까지 모두 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의 제곱, 세제곱 등이 되는 숫자가 나오면 바로 1로 수렴하니 굳이 계산이 불필요하다.

어쨌든 누가 빨리 17까지 계산하느냐의 시합이었고 강우는 계산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가장 빠른 사람은 역시 김상학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미리 알고 있음이 확실했다.

다른 사람이 계산할 동안 최대우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패널들이 최대우를 버리기로 한 건가?

이를 눈치챈 듯 다 푼 김상학마저 최대우 공격에 가담했다.

“물리와 수학 어느 과목이 쉬운가요?”

“차도도 선생님이 인기가 있죠? 반 학생이 볼 때는 어떤가요?”

“MC인 주연 씨와 친해 보이던데요?”

주연이 나오는 순간 최대도가 얼어붙었다.

강우가 구원으로 나섰다.

“은유나 의사님께서는 멘사 회원이시죠? 멘사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큐부터 시작해서 가입 조건이 제법 까다롭습니다. 시험도 어렵고요.”

“전 가능할까요?”

“강우 학생은…… 그 아이큐로서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은유나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 쏠렸고 최대우는 공격에서 벗어났다.

“아이큐가 나빠도 멘사 클럽에 들어갈 수 있잖아요?”

“멘사 시험은 아이큐 테스트보다 훨씬 어려운데요?”

멘사 회원의 자부심을 가진 은유나가 노골적으로 강우를 깎아내렸다.

강우는 여유롭게 받아치며 대화를 이어갔고 어느 순간 차도도와 최대우가 정답을 맞혔다.

그 직후 강우도 정답을 썼다.

이번 라운드에선 공격하던 패널이 떨어졌다.

라운드가 계속되어 절반이 남았다. 탈락한 사람들은 그때마다 벌칙을 수행했다. 막춤이나 성대모사 같은 장기자랑에 때로는 까나리액젓을 삼키기도 했다.

집중포화를 맞은 최대우가 떨어졌을 때 살아남은 자는 모두 4명이었다. 강우, 차도도, 김상학, 은유나. 대부분 아이큐가 별로였던 강우가 살아남은 것을 의외로 여겼다.

정작 강우는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익숙해져서 어려움 없이 통과했다. 이것 또한 그의 천재성 때문이었을까.

“자, 최대우 학생, 분발했는데 안타깝습니다. 벌칙은 뭐로 할까요? 자신 있는 장기가 뭔가요?”

최대우는 안색이 시뻘게져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노래 잘 부르나요?”

최대우의 노래를 강우는 노래방에서 들어봤었다. 도저히 방송을 탈 수준이 아니다. 물론 못 불러도 재미를 유발할 수 있다지만.

“전 먹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최대우가 결단을 내렸다.

유현무가 흥을 돋웠다.

“아! 먹방! 좋죠! 많이 먹기와 빨리 먹기! 방송 시간상 빨리 먹기가 좋겠죠? 대우 학생이 짜장면을 몇 젓가락에 몇 초 만에 먹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 브레이크 후 짜장면이 배달되어왔다.

나무젓가락을 멋있게 가른 최대우는 짜장면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 오늘 나온 최대우의 표정 중 가장 완벽했을 것이다.

불과 세 번의 젓가락질 만에, 단 20초에 최대우는 짜장면을 끝냈다. 역시 최대우는 먹는 쪽으로 타고난 천재였다.

* * *

생존자는 모두 넷. 강우, 차도도, 김상학, 은유나였다.

MC 유현무가 네 사람을 재차 소개했다. 치과의사인 은유나는 이미 절반은 연예인이라 유명인사였고 나머지는 사실상 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강우가 보기에 은유나는 MC와 패널들이 합심해서 밀어준 효과가 컸다. 상대적으로 공격을 적게 받은 대신 방송화면은 제일 많이 잡혔다. 이 상황이면 은유나는 둘이 남는 결승까지 무난하게 올라갈 것이다.

강우는 바로 옆에 앉은 김상학을 힐끔 살폈다. 김상학을 타겟으로 잡아야 하나?

“자! 새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이번 탈락자는 과연 누가 될까요?”

모니터에 문제가 띄워졌다.

- 6자리 자연수가 있다. 이 숫자에 7을 곱해서 나온 수를 뒤에서부터 3자리씩 끊어 더하면 1998이다. 이 숫자에 14를 곱하여 나온 수를 마찬가지로 뒤에서 세 자리씩 끊어 더해도 1998이다. 이 숫자에 2자리 또는 3자리인 7의 배수를 곱해서 같은 작업을 하면 그 결과는 항상 1998과 같다. 이 숫자는 무엇인가?

특이한 수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나오자마자 강우는 특징을 눈치챘다. 이 여섯 자리 숫자는 수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수다. 이 숫자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려면 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이미 접한 사람에게는 단순 암기와 다르지 않다.

이 문제의 최강자는 김상학. 수학을 전공하고 있고 중고등 시절에 비슷한 수학 퀴즈를 엄청 다루어 봤으니까.

반면 불리한 사람은 차도도와 은유나다. 차도도는 정수론이나 이런 유형의 수학을 다룬 지 오래되었고 은유나도 직업 특성상 손 놓은 지 한참이다.

‘한 사람을 떨어트려야 한다면 은유나가 적합하다.’

패널들의 견해는 다른 듯했다. 갑자기 강우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강우 학생은 수학 올림피아드를 쳐봤잖아요? 그 시험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어요?”

“아뇨, 이런 센스 문제, 뇌풀기 문제는 안 나오고요.”

“그럼 수능 문제 형태로 나옵니까?”

“아뇨, 한 문제 푸는 데 1시간 이상 걸리는…… 이상한 증명 문제가 나오죠. 이상한 도형도 나오고요.”

대답하는 순간 김상학이 가장 먼저 통과했다.

“우와! 벌써 통과자 나왔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런데 강우 학생?”

강우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가 먼저 올라가면 차도도가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은유나를 공격해야 한다. 문제는 패널들이 은유나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도도의 눈치를 보면서 강우는 입을 열었다.

“치과의사님께서도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셨지요?”

“아, 네. 당연하죠.”

“과학고 진학은 고려하지 않으셨어요?”

“전 처음부터 의치대가 목표였거든요.”

은유나는 말을 적게 하려고 대답을 끊었다.

이때 차도도가 불쑥 끼어들었다.

“과학고 학생들은 입학 때 의치대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거든요? 의사 선생님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들어갔다.

강우는 역시 차도도란 생각을 했다. 차도도도 누구를 떨어트려야 생존할 수 있는지 감을 잡은 것이다.

이럴 때는 당연히 지원사격을 해야 한다.

“이과 천재 학생은 이공계 진학과 의치대 진학 중에 어느 곳이 더 바람직할까요?”

사회적인 바람으로 따지자면 이공계 진학이 바람직하다. 그렇기에 국가에서도 과학고와 영재고를 육성한다. 그러나 개인으로 접근하면 다르다. 그렇다고 의사를 옹호하면 돈에 눈이 멀었다고 욕먹는다.

의사인 은유나는 어느 쪽도 함부로 말하기 곤란해졌다.

자연스럽게 답을 버벅거렸고 문제를 풀던 사고가 엉켰다.

그 순간 의외로 차도도의 머리에 불이 들어왔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지?’

궁금증을 눌러두고 강우도 자신의 태블릿에 숫자를 나열했다.

- 142857

“오우! 정답입니다! 어떻게 풀었죠?”

은유나가 떨어졌다. MC와 패널들의 아쉬워하는 표정과 은유나 본인의 낙담이 카메라에 잡혔다.

김상학이 별것 아니란 듯 대답했다.

“수학 좀 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아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14를 곱하면 142857X14=1999998이고 뒤에서 세 자리씩 끊어 더하면 998+999+1=1998입니다. 이 숫자는 특별하죠. 142857에 2를 곱해도 똑같은 숫자가 순서만 바꿔 나타나고 3을 곱해도 4를 곱해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특이한 수죠.”

“역시 천재군요. 차도도 선생님은 어떻게 풀었습니까?”

“전 소설책에서 봤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신’에서 주인공 집 주소가 142857이에요.”

“아! 놀랍게도 집 주소가 답이라고요?”

방청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강우도 차도도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그걸 기억해 내다니!

은유나에게 벌칙이 내려졌다. 은유나는 최신 유행하는 걸그룹의 안무를 췄고 그 옆에서 걸그룹 출신 주은이 함께 거들었다.

최대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제 남은 사람은 셋. 모두 고려 과학고와 인연이 있는 게스트다.

은유나의 탈락으로 방송 관계자들은 실망했어도 그에 못지않은 미모를 자랑하는 차도도가 남았기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 그럼 다음 라운드로 넘어갑니다. 이번에는 암호 문제입니다.”

* * *

강우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무엇보다 김상학을 우승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김상학과 차도도가 결승에서 만나면 김상학의 승리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러므로 이번 라운드와 최종전인 다음 라운드에서 무조건 김상학을 공격해야 한다.

김상학은 수학적 능력이 대단하기에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 알파벳을 수로 바꾸어주는 표가 있습니다. A를 0, B를 1, C를 2, 이렇게 두면 Z는 25가 되겠죠. 예를 들어 GAME을 수로 바꾸면 (6,0,12,4)가 됩니다. 이 (6,0,12,4)를 암호화 기기에 통과시켰더니 (12,6,44,24)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기를 통과하고 나온 수가 (22,13, 131,75)였다면 원 단어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상보다 단순한 문제가 나왔다. 사실 답은 암호화 기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임의로 암호화 기기를 정의해서 풀려면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문제가 뜨는 순간 강우는 2차 정방행렬 문제임을 눈치챘다.

수학에 재능이 있는 김상학도 모를 리 없다. 다만 차도도는 고등학교 수학을 다룬 지 오래되어 금방 떠올리기 쉽지 않다.

일단 강우는 무조건 김상학을 공격해야 한다.

그 사이 김상학이 여유롭게 차도도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차도도 선생님, 고려 과학고의 전설이자 역대급 천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김상학의 질문은 다양한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먼저 차도도가 문제를 풀 시간을 빼앗았다. 거기에 답을 하는 순간 본인을 띄우는 효과가 있다.

내버려 둘 강우가 아니었다. 그는 차도도 대신에 대화를 이끌었다.

“김상학 선배님, 그 천재 대부분이 수학 메달리스트이던데요?”

“하하, 그렇죠?”

“그렇다면 저도 묻겠습니다. 천재는 타고나는 건가요? 아니면 노력으로 천재가 될 수 있습니까?”

예상치 못한 강우의 질문에 김상학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나 노력해서 될 수 있다면 천재라고 할 수 없겠죠. 천재는 타고나는 부분이 크니까요.”

강우는 웃으며 질문을 이었다. 슬쩍 차도도를 보니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다.

“올림피아드 메달리스트가 천재인데 천재는 노력으로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학원에 다니면서 올림피아드를 준비해봐야 성과가 없다는 뜻이죠?”

김상학의 눈썹이 꿈틀했다.

휴식 시간에 김상학에게서 배운 학생이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강우가 꼬집었기에 이 질문의 진의를 모를 수 없었다.

눈에 띄게 김상학이 동요했다.

‘차도도 쌤이 얼른 풀어야 하는데…….’

다행히 MC 유현무가 김상학에게 미끼를 던졌다.

“김상학 씨? 그 레전드가 설마 본인인가요?”

“아, 그, 그게…….”

본인이 레전드라고 차마 밝히기 어려운 김상학이 말을 버벅댔다.

“크! 본인 자랑 맞군요. 본인이 레전드였습니까?”

MC가 본격적으로 판을 깔아주자 김상학의 안색이 확 붉어졌다.

하지만 김상학도 이 순간 질문에 대답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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