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25화 (225/325)

제225화 학기 마무리 (2)

여유로운 기말고사를 보내는 고곽천재와 달리 학생들은 내신시험에 집중했다.

기숙사에서는 여느 때처럼 야식을 먹는 학생들이 넘쳐났고 강우도 평소처럼 식당에서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었다.

질문하는 학생들은 강우 앞에 과자와 음료수 같은 먹을거리를 놓아두고 갔다. 강우와 함께 앉은 윤수아와 최대우의 입이 확 벌어졌다. 시험 기간 편의점에 가지 않아도 될 충분할 양을 확보했다.

간혹 어떤 후배들은 열심히 접은 종이학을 놓아두고 가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감수성이 메마른 강우에게 종이학은 그냥 종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건 말이지…….”

강우가 앞에 놓인 수학 문제를 열심히 설명했고 맞은 편에 앉은 1학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풀이를 주시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문제를 왜 이렇게 풀어요?”

살짝 눈을 찌푸리며 강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일학년 서너 명이 모여서 열심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내용을 오늘만 벌써 세 번째 설명한다. 사실 학생들의 수준이 비슷해서 질문하는 문제가 많이 겹친다. 단지 기계적으로 풀이를 알려주는 것이라면 넘어가겠지만 이들은 과학고 학생이자 사랑스러운 후배이기에 그런 식으로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옆을 휙 둘러보니 하은찬과 유혜림이 보였다.

“은찬아, 이리로 와 볼래?”

“네?”

하은찬이 치킨을 먹다가 부리나케 뛰어왔다. 아마 속으로 나쁜 선배라고 욕하고 있을지도.

“식당 앞에 있는 메뉴 보드판 있지? 그거 가져와 볼래?”

식당에도 칠판을 대신할 보드판이 있다. 내일 아침에 수식이 적힌 보드판에 황당하겠지만.

순식간에 보드와 마카를 준비했다.

“미분 개념 잘 모르는 학생, 로피탈 정리로 답만 구하는 학생 모두 모여라!”

갑작스러운 강우의 외침에 간식을 먹던 학생들이 어리둥절 눈치를 보다가 우르르 모였다.

그 문제를 모르는 학생 외에도 강의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구경할 기회가 없었던 학생도 다수 모였다.

순식간에 강우의 앞에는 수십 명의 학생이 북적였다.

“자, 미분 개념 제대로 설명해줄 테니까 필요한 사람 손 들어봐.”

고려 과학고에서는 미적분의 기초를 1학년 때 배운다. 2학년 때 이과 미적분을 포함한 나머지 이과 수학을 모두 끝내고 3학년 때는 심화 고급수학을 배운다.

강우는 앞에 모인 일학년 학생에게 간단한 강의를 시작했다.

“극한 문제를 만났을 때 보통 로피탈 정리를 이용해서 빠르게 답을 구하지? 이게 답을 쉽게 구하는 방식이긴 한데 때로는 안 풀리는 문제도 있어. 그 경우엔 미분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게 솔직히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맹점이 있어.”

강우는 보드에 교과서에 나오는 미분 정의를 썼다.

“이게 틀린 것은 아니어도 미분의 정확한 개념을 알려주지 못해. 실제로 수학에서 미분은 교과서 개념과 달리 접근해야 하는데…… 엡실론 델타라고 들어봤어?”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는 고개를 저었다.

극한과 미분에서 엡실론 델타 개념은 대학교에서 배운다. 이 개념으로 미분에 접근해야 제대로 수학적으로 정립된다. 즉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미분은 적당히 형식만 갖춰 응용하기 위한 것일 뿐 수학적인 깊이는 없다.

“지금 당장은 어렵게 보여도 확실하게 개념을 이해하면 이 방식이 훨씬 쉬워. 특히 대학입시에서 수리논술 문제를 풀려면 이게 훨씬 유리해.”

강우는 수식을 전개하며 기본 개념을 하나씩 설명했다.

내일 수학 시험을 앞두고 어떤 학생은 불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고 어떤 학생은 모르던 부분이 뚫려서 시원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설명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학생은 수학에서 한 단계 진보하게 된다. 똑똑한 학생들이고 내일 시험을 앞두고 효율이 올라가 있기에 학생들의 이해력은 남다르다.

“여기까지가 기본 개념이고, 그럼 이 개념을 이용해서 문제에 접근해보면…… 평소 너희들의 풀이 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확인해.”

강우는 오늘 몇 번씩 질문받았던 문제를 보드에 썼다. 본격적으로 문제를 다루자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많은 학생이 이 문제를 고민했다. 대부분은 답지에 나온 풀이 방법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이 문제를 이렇게 푼다고 기억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강우의 방법은 달랐다. 대학에서 다루는 미적분의 근본적인 개념을 이용했으니 고교 참고서에서는 볼 수 없던 방법이다.

얼핏 보기에는 다소 성가시고 쓸데없는 과정을 더 거치는 것처럼 보였다. 빨리 풀어야 하는 시험에서는 불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강우의 설명이 계속되어 막바지에 닿았을 때 학생들은 점점 입이 벌어졌다.

막혔던, 애매했던 부분이 갑자기 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우와, 그런 거였어?”

이제 학생들은 그 문제를 해답지에서 왜 그렇게 풀어놓았는지 이해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개념으로는 설명이 어려워 적당히 뭉뚱그려 넘어간 부분이었다.

“수학이 한 단계 발전하는 기분이야.”

“내일 나도 백 점 받을 듯.”

“강우 형 기운을 받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웅성대며 감탄을 날렸다.

한 학생이 하은찬에게 물었다.

“강우 형은 내일이 시험인데 언제 공부해?”

“강우 형? 저 형은 공부 안 해도 만점이야.”

“그럴 리가?”

“금메달리스트를 뭐로 보는 거야? 내신 문제는 껌이라고 껌!”

하은찬이 소리를 높일 때 옆에 있던 유혜림이 맞장구를 쳤다.

“지금까지 강우 선배는 수학과 물리에서 모든 시험이 다 만점이었어.”

그녀는 마치 자신이 이룬 업적을 말하는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존경심이 반짝였다.

몇몇 질문을 추가로 해결한 강우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자, 이해했어?”

“네!”

“그럼 모두 내일 시험 잘 치기를.”

강우는 학생들에게 인사하고 최대우에게 돌아갔다.

고곽천재가 앉은 탁자에 더 많은 과자와 음료수가 쌓였다.

* * *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 전까지 과제연구 집중기간이 시작됐다. 2학년들은 R&E 집중기간이다.

고곽천재는 헌팅턴 프로젝트 연구 내용 일부를 보고서로 묶었다. 대부분 자료조사 수준이었는데 이는 강우의 의도이기도 했다. 아직 구체적인 연구 실적도 없는 데다 벌써 연구 핵심을 외부로 공개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R&E 보고서가 학교 외부로 유출될 일은 없다. 다만 강우는 김윤택을 믿지 못했다. 그들이 제출한 보고서는 김윤택이 손쉽게 보게 되고 그 복사본이 마도환에게 넘어갈 우려가 무척 크다.

그러잖아도 가끔 세미나실을 염탐하러 오는 이민찬 때문에 골치 아팠으니까.

“초안 작성 끝났는데 이 정도면 될까?”

손차희가 프린트물을 책상에 펼쳤다.

보고서 작성을 담당한 손차희는 역시 성실했다. 강우라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을 과제연구 집중기간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결과물을 내놓았다.

강우는 이미 손차희의 프로젝트 이해도를 잘 알기에 검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충분해!”

“보지도 않고?”

“어련히 잘했겠지.”

손차희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펼쳤던 프린트물을 다시 회수했다.

보고 있던 윤수아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차희야? 민찬이 팀도 핵융합 보고서 쓴데?”

“그럴걸? 한국대 마도환 교수와 R&E를 하니까.”

“겹치겠네.”

“상관없어.”

“비교되잖아?”

물론 여기 누구도 이민찬 팀에게 진다고 여기지 않았다. 강우가 있는 이상 보고서의 품질 면에서 승리가 당연하니까.

“어차피 중요하지 않아. 솔직히 과제연구든 R&E든 형식적이니까. 우리 팀은 감점받을 일도 없어.”

손차희의 장담은 사실이다. 그래도 같은 주제로 쓴 보고서가 또 있다는 점은 스트레스다.

강우가 피식 웃으며 달랬다.

“어차피 상관없어. 그 팀 보고서 내용을 아니까.”

“어? 어떻게 알아? 봤어?”

“그건 아닌데, 뻔하지.”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연구는 제한적이다. 게다가 이민찬의 지도교사인 김윤택이 이 분야에서 아는 것이 없었다. 지도교수인 마도환도 고등학생을 가르칠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민찬 팀이 보고서에 쓸 수 있는 내용은 한국대와 헌팅턴 사이에 프로젝트를 체결하면서 작성한 과제 계획서 내용이 전부다. 그 내용은 일전에 강우가 본 적이 있기에 어려움 없이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이건 명심해. 이민찬 팀에게 우리가 한 연구 내용을 누설하면 안 돼. 앞으로도 계속.”

강우는 팀원에게 신신당부했다. 물론 아무리 조심해도 영원한 비밀은 없다. 그들 연구가 일부 새어나가지 않도록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조심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크다.

보고서를 순식간에 해치운 강우는 뜨거운 눈으로 윤수아를 바라봤다.

심상찮은 기세에 윤수아가 몸을 사리며 반응했다.

“왜, 왜 그래?”

“독서감상문! 하아! 독서감상문은 왜 학기마다 나를 울리나?”

“몇 개 썼는데?”

“하나도…….”

윤수아가 던진 참고서가 머리로 날아왔다.

“으악!”

강우가 열심히 피하고 있을 때 세미나실 문이 벌컥 열렸다.

같은 반인 김나영과 낯익은 남학생 한 명이다.

그들을 보는 순간 강우는 과학축제 시즌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강우야, 연극 대본 좀 봐줄래?”

역시 나쁜 일은 절대 피해 가지 않는다.

올해는 연극부에서 알아서 하라고 거절하고 싶었으나 김나영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 소리가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김나영은 올해 그와 같은 조였으나 강우가 수업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조원들은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 미안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본을 받았다.

물론 윤수아가 옆에서 도끼눈으로 위협한 영향도 있고.

“내가 한번 훑어볼게.”

작년에는 대대적으로 다시 써야 했는데 올해는 절대 아니길 바랐다.

“고마워.”

한결 편해진 김나영이 세미나실 내부에 널린 책을 발견했다.

“어? 뭐 하고 있었는데 이리 난장판이야?”

“내가 독서감상문을 못 써서…….”

“아! 몇 개 썼는데?”

윤수아가 손가락으로 0자를 만들었다.

고민하던 김나영이 바로 해결책을 꺼냈다.

“강우야? 내가 독서감상문을 대신 써줄 테니까 넌 대본만 신경 써줄래?”

예기치 않은 행운에 강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정말?”

“응. 난 독서감상문 이미 다했거든.”

윤수아에 비하면 김나영은 천사다. 강우는 신나게 수락하고 대본을 펼쳤다. 그의 안면이 확 구겨졌다. 올해도 손볼 부분이 엄청 많을 것 같았다.

* * *

작년처럼 올해도 겨울방학 직전에 과학축제가 열렸다.

작년에 경험한 덕분에 그때만큼 신선하지 않았으나 강우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손차희와 윤수아는 다른 학교에서 구경 온 학생들을 맞이하기 바빴고 심지어 최대우마저 물리 올림피아드에서 사귄 국가대표와 상비군 친구를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강우는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전에 이곳저곳 전시회를 기웃거리던 강우는 오후에는 연극을 볼 예정이었다. 올해에도 그가 극본 일부를 고쳐줬기에 관람은 필수였다.

강당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맞은 편에서 신새벽이 그를 불렀다.

“강우야!”

“어? 선생님?”

“어디 가니?”

“연극 보러요.”

“연극 좋아하나 보네. 같이 갈까?”

예전 수학여행 때 강우가 했던 연극을 떠올린 신새벽이 킥킥대며 웃었다.

강당으로 안내하는 강우를 신새벽이 세워 놓고 옷차림을 이리저리 살피며 감탄을 터트렸다.

“이야! 강우 옷 잘 어울리는데?”

“네?”

갑작스러운 칭찬에 강우가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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