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26화 (226/325)

제226화 학기 마무리 (3)

“누가 사줬지? 옷이 멋지네. 딱 잘 어울려!”

지금 강우가 입은 옷은 예전에 신새벽이 사준 코트다. 당연히 신새벽이 자신이 사준 옷을 모를 리 없다.

그녀가 사줬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신새벽에게 강우가 핀잔을 줬다.

“에이, 쌤! 쌤이 사놓고도 몰라요?”

“히히, 그래도 이런 게 여자의 기쁨이야. 옷을 사줬더니 태가 살잖아? 돈 쓴 보람이 있는 거지.”

“으이그, 은근슬쩍 티를 내기는.”

“그래도 사준 거 잘 입고 다니는 거 보니까 좋네. 보람도 있고.”

“저도 사드릴까요?”

신새벽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사줄래? 그럼 내가 입고서 예뻐진 모습을 보여줄게.”

“진짜죠?”

강우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당연히 진짜지. 옷 사줬는데 안 입으면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알았어요. 다음 쌤 생일 때 옷 선물할게요.”

“헤헤, 말만 들어도 고마워.”

“무슨 옷인지 아시려나, 크크.”

순간 신새벽이 안면을 확 찡그렸다.

“이게, 쪼그만 게…….”

신새벽이 앞으로 주먹을 쭉 뻗었다.

깜짝 놀란 강우가 후다닥 몸을 피했다.

“강우! 머리 박아! 얼른 자진 납세해.”

“에이, 농담이에요.”

“얼른 박아!”

강우는 신새벽의 눈치를 보다가 머리를 그녀의 주먹에 콱 부딪혔다. 물론 그래 봐야 별로 아프지도 않다.

“으흑! 맨날 나만 괴롭혀.”

“니가 맞을 짓을 하니까 그렇지.”

“몰라요. 다음엔 진짜 확 굴려버릴래요.”

“어? 이게 성깔 있네?”

신새벽과 툭탁거리는데 맞은편에서 차도도가 등장했다.

“강우야? 뭐하니?”

얼른 강우는 장난을 멈추고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연극 보러 가려고요.”

“신 선생님이랑?”

“네.”

“음…….”

차도도가 강우와 신새벽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힐끔거렸다.

괜히 찔린 강우가 재빨리 제안했다.

“쌤도 같이 가실래요?”

확 올라간 신새벽의 눈썹에도 강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까?”

차도도가 어색한 표정으로 강우 옆에 붙었다.

신새벽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차 선생님은 오늘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마침 시간이 남네요.”

강우와 차도도가 앞장서서 강당으로 향하자 뒤에서 신새벽이 묘한 눈길로 두 사람을 주시했다. 잠시 입술을 삐죽이던 그녀는 후다닥 뒤를 쫓았다.

* * *

강우는 강당 2층에서 차도도, 신새벽과 함께 연극을 관람했다.

이번 연극 주제는 그리스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르키메데스였고 분장에 제법 신경 쓴 티가 물씬 나는 연극이었다.

강우는 재미있게 연극을 보면서 이런저런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저 부분 말이죠, 제가 바꾼 거예요. 효과를 팍팍 넣었죠. 제가 극본을 대거 수정하느라 엄청 시간을 들였어요.”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라고 외치며 뛰어나오는 장면이다.

애초의 기획은 해수욕 튜브로 만든 욕조에 물을 넣고 아르키메데스가 수영복만 입은 채 목욕하는 씬이었다. 이것은 유레카로 알려진 유명한 일화여서 생략할 수도 없다.

이 장면을 연기하려니 노출과 한 겨울의 추운 날씨에 물에 들어가야 하는 점이 문제가 됐다. 게다가 자칫 무대를 물바다로 만들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했단 말이지?”

“그렇죠. 뜨거운 물에서는 수증기가 이는 법이니까요.”

바닥에 깔린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적절하게 욕조와 안에 몸을 담근 사람의 몸을 가려줬다. 흡사 뜨거운 욕탕에 있는 모습과 비슷했다. 드라이아이스는 작년에 강우가 무대 공연을 위해 만들었던 기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럴듯한데?”

“원래는 수영복 하나만 걸쳐야 하는데 드라이아이스가 가려줘서 어깨만 드러내는 것으로 했죠.”

강우는 장면마다 자신이 극본을 바꾸거나 무대효과에 기여한 부분을 설명했다.

작년에 경험한 적이 있어서 올해는 한층 더 발전했다. 소소한 과학 지식이 적절하게 사용되었고 연극 내용도 한층 재미있어졌다.

이미 익숙한 아르키메데스의 일화인데도 관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차도도와 신새벽은 강우가 연극에도 소질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역시 천재는 다방면으로 못 하는 게 없다.

연극이 막바지에 이르고 로마군이 아르키메데스를 죽이는 장면이 나왔다.

아르키메데스로 분장한 녀석이 바닥에 앉아 나무막대기로 열심히 기하학 도형을 그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로마군 병사가 그 그림을 밟았다.

“내 원을 밟지 마라!”

“뭐야? 시건방진 노인네가! 감히 대 로마군에게 무슨 반말이냐?”

로마군 병사가 칼을 들고 아르키메데스를 벴다.

“으악! 내…… 내가 누군 줄 알고…….”

“누군데?”

“아, 김동혁…… 아, 아니 아르키메데스다!”

“뭔 소리야? 한국어 말고 로마어로 말해라! 로마어로!”

“으으, 난 로마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이라고…….”

“한국인 아니고?”

아르키메데스가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았다.

강우가 열심히 설명했다.

“원래 저 장면에서 로마군 역할이 저에게 들어왔었는데요, 거절했어요.”

“왜?”

“악인으로 제 이미지가 굳어지면 골치 아프잖아요.”

실상은 연극에 출연하면 자유롭게 축제를 구경할 수 없어서다.

“널 보니까 네가 연극반에 안 들어간 게 천만다행이다.”

차도도의 핀잔에 신새벽도 동참했다.

두 사람에게 연달아 신나게 말로 두들겨 맞은 강우는 괜히 같이 연극을 봤다며 후회를 연발했다.

쓰러진 아르키메데스 옆에 구가 내접한 원기둥을 그린 묘비를 세우는 것으로 연극이 막을 내렸다.

“저건 무슨 뜻이야?”

“아르키메데스가 유언으로 남겼데요. 원기둥의 부피와 구의 부피 비가 3:2라고요.”

“별 뜻이 다 숨어 있네.”

“그렇죠? 쌤 말에도 제 가슴을 콕콕 쑤시는 창이 숨어 있다고요.”

강우는 신새벽의 주먹을 피해 도망쳐야 했다.

* * *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학교가 문을 닫았다. 강우는 기숙사에 머무를 수 없었다.

이번 겨울에는 수학 올림피아드 겨울학교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기에 강우는 기숙사를 쓰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최대우도 물리 겨울학교를 포기하고 울릉도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서울에 홀로 남은 강우는 차도도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물론 최후의 선택지가 한 곳 더 있기는 했다. 다만 신새벽 선생님이 허락했다고 밝히는 순간 차도도가 군말 없이 아파트 거주를 허락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이 다가왔을 때 녹화했던 예능 특집 프로가 방송됐다.

지난 방송 때처럼 강우는 차도도의 집에서 본방송을 시청했다.

거실에 붙은 크고 화질이 좋은 벽걸이 티비로 흥미진진하게 프로를 감상했다.

티비에 크게 잡힌 그와 차도도의 얼굴에 강우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뭘 그렇게 넋을 잃고 보니?”

“재밌잖아요.”

예능 프로니까, 그것도 직접 출연한 프로니까 당연히 재미있었다. 그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차도도의 모습이었다. 화면에 가득 잡힌 차도도의 얼굴은 여신 그 자체였다.

티비 속의 저 사람이 지금 바로 옆에서 같이 소파에 앉아 방송을 관람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쌤은 연예인 해도 되겠어요.”

“어휴, 난 그런 거 못 해. 이번 촬영분에서도 개그나 리액션이 영 부족하잖아? 예능감이 전혀 없어. 게다가 춤도 출 줄 모르고…….”

“예전에 길거리 캐스팅도 많이 당해보셨다면서요?”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그런데 그거 대부분 사기야. 난 아예 생각조차 없었어.”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수긍할 수 없었다. 차도도에게는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흔한 예쁜 연예인과는 다른, 달리 대체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매력이 있기에 지난 방송 이후에 그녀의 팬이 많이 생겼다. 오늘 이후에도 그 팬이 또 한 번 엄청나게 늘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다.

순식간에 프로가 휙휙 지나갔다.

찍을 때는 무척 길었는데 방송은 한순간이다. 예상보다 재미있게 편집을 잘했다.

최대우의 먹방이 나왔을 때, 짜장면을 먹은 최대우가 입가에 시커먼 짜장을 묻히고 웃는 모습이 방청객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이어서 강우가 눈을 떼지 못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차도도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가히 이 방송의 하이라이트였다.

앞서서 은유나의 춤도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으나 차도도의 임팩트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

강우의 탄성에 힐끔 그를 본 차도도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티비로 다시 눈을 돌렸다.

차도도의 노래는 전문 가수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따로 노래 배우거나 연습한 적 있어요?”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역시 잘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덕분에 아마추어와 프로의 간격을 훌륭하게 극복했다.

저 장면만을 따로 간직하고 싶다. 아마도 누군가는 유튜브에 올리겠지.

그리고 마지막 장면.

강우가 보드에 열심히 수식을 쓰고, 이를 차도도가 받아서 계속 쓰는 장면. 어느새 보드는 수식으로 가득 차고 신들린 강우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동시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패널과 게스트, 그리고 방청객 반응까지.

잘 찍은 덕분일까. 집중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담은 이 장면은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적어도 강우가 보기에는 가식이 들어가지 않은 과학자의 꿈과 열정을 제대로 표현했다.

“아!”

이번에는 차도도가 넋이 나가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프로가 끝났을 때 두 사람은 감동에 잠겨있었다.

“지난 프로보다 훨씬 나은 것 같죠?”

“방송이 두 번째라 그런가? 아니면 화면 연출을 잘해서 그런가? 예상보다 더 잘 나왔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연말 특집 예능이라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덕분에 강우도 차도도도 활기차고 예쁘게 나왔다.

“또 출연해볼까요?”

“차라리 연예인으로 진로를 잡지 그러니?”

“하긴…… 좀 그렇겠죠?”

공부에 방해되고 특히 강우의 인생 목표에도 방해되니 방송 출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한동안 감동에 잡혀 있던 차도도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 기념으로 자축할까?”

“에이 전 술 마시면 안 되고 쌤은 술 못하시잖아요?”

“한잔은 괜찮아. 물론 넌 콜라!”

차도도가 와인과 콜라를 가져왔다.

와인잔을 채운 진홍빛 포도주와 검은 콜라의 색상이 묘하게 어울린다.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 * *

두 사람이 나온 예능 프로에서 눈을 떼지 못한 사람이 또 있었다.

“차도도가 저렇게 아름다웠었나?”

차도도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 미모를 눈에 담았었다. 그런데 방송 프로에서도 단연 돋보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오늘 나온 모든 출연자 가운데 가히 최강의 미모였다.

마도환은 와인을 마시며 쓴웃음을 삼켰다.

본방송을 다 본 그는 다시 보기를 눌러 차도도가 나온 부분만을 재차 감상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꽤 많은 여자를 만나왔다. 카사노바까지는 아니어도 그 정도의 지위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자가 꼬이기 마련이다.

집안이 좋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는 그이기에 괜찮은 여자가 줄을 섰었다.

연예인도 있었고 미모의 대학교수나 연구원도 있었다. 그래도 그 누구도 차도도와 견주기 어려웠다.

“대단한 여자였군.”

오늘에야 차도도의 본모습을 새로 발견한 기분이다.

문득 일전에 강우와 차도도의 뒷조사를 부탁했던 기억이 났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휴대폰의 통화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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