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227화 (227/325)

제227화 국립과학관 (1)

- 무슨 일이십니까?

“황 사장, 예전에 부탁한 일 어떻게 되었나?”

- 아! 강우 학생과 차도도 선생님 말이죠?

“그래 그 건이야.”

마도환은 입이 바짝 탄 채 여전히 티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음, 그게요…….

말끝이 흐려진다. 이것은 어떤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 문제가 좋은 쪽일 수도 나쁜 쪽일 수도 있다. 다만 단순한 뒷조사이기에 이런 반응이 나올 일이 없다는 점이 신경을 거슬렀다.

‘특이한 일이 생겼나 본데…….’

- 마 교수님, 둘을 조사하다 조금 놀라운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뭔가?”

-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신분이 조금 특별하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마도환은 애가 탔다.

- 그래서 그런데…… 돈이 조금 더 들 것 같습니다.

마도환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상대가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속셈이 빤히 보여서다. 그렇다고 황 사장과 척질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지?”

- 그건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비용이 더 필요한 건 확실합니다.

녀석의 술수가 눈에 보여도 거절하기엔 이미 들여놓은 발이 너무 깊다.

“좋아, 얼마면 돼?”

- 그때 착수금만큼 더 보내주세요. 확실하게 알아내겠습니다.

“알았어. 하나만 더 묻지. 대체 누구의 신분이 문제인가?”

- 차도도 선생님입니다.

“차도도라…….”

마도환은 전화를 끊었다.

하긴 강우의 신분이 특별할 리는 없다. 단지 시골의 가난한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학생이니까. 그런데 차도도에 대해서는 별달리 아는 바가 없다. 미모의 고등학교 선생님이란 것뿐.

“평범보다 특별이 더 구미가 당기는 법이지.”

마도환은 웃으며 다시 티비에 시선을 집중했다.

다시 본 예능 또한 막바지에 이르러 화면에서는 강우와 차도도가 보드에 수식을 쓰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견 그 장면은 장엄했으나 마도환의 눈에는 단순한 쇼로 보였다.

코미디라고 일축하며 티비를 끄려는 순간 마도환의 눈이 번쩍 떠졌다.

보드에 가득 적힌 수식이 예사롭지 않음을 발견했다.

“저, 저건…… 핵융합 모델 수식이잖아?”

뜻하지 않게 망망대해에서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이다.

마도환은 화면을 정지시키고 보드에 적힌 수식을 차근차근 훑었다. 확실했다. 헌팅턴 사와 계약을 체결한 후 연구가 답보 상태에 빠졌는데 정작 강우와 차도도는 후속 연구를 제대로 진행했다는 증거였다.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끼면서도 마도환은 저 수식이 새로운 돌파구임을 확신했다.

“저것만으로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강우나 차도도를 회유하면 연구 성과를 올릴 수 있어. 보드에 적은 수식의 후속편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논문이 되고 헌팅턴 프로젝트 중간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겠지.”

점점 마도환은 욕심에 사로잡혔다.

강우든 차도도든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둘이면 더 좋고.

그는 황 사장에게 뒷조사를 의뢰한 자신을 칭찬했다.

“궁금하군. 특별한 점이 뭘지…….”

마도환은 화면을 채운 강우와 차도도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겨울방학 때도 강우는 고려 과학고에 자주 드나들었다.

차도도 집에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으나 낮시간까지 그녀의 개인적인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미안했다. 마침 차도도는 학교에 이틀에 한 번꼴로 출근했기에 강우도 그녀를 따라나섰다.

학교에서 그가 머무는 곳은 세미나실과 상담실이었다.

세미나실에서는 손차희, 윤수아와 함께했고 상담실에서는 차도도, 신새벽과 연구했다.

울릉도에 있는 최대우와 달리 손차희와 윤수아는 집보다 학교를 더 좋아했다.

“쌤? 혹시 마도환 교수한테서 연락 온 적 없었어요?”

연말 예능이 히트했기에 차도도와 강우의 인기가 상한가를 기록했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는 아니어도 중학교 때 친구들이 별별 소식을 계속 전하는 것을 보면 그 열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강우는 그 친구들과 안면이 없다.

포털에 팬카페도 개설되었는데 물론 강우가 아닌 차도도 팬카페다.

강우에게는 각종 천재 카페, 공부 카페에서 초대장이 날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마도환이 조용히 있을 리 없다.

차도도가 난감한 듯 눈을 찌푸리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있었어.”

“뭐래요?”

“같은 말이었어. 방송 잘 봤다고, 그리고 대학원 진학 고려하고 있냐고. 대학원에 들어와서 같이 연구해보자고.”

“다른 말은요?”

머뭇거리던 차도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있긴 했는데…… 그날 마지막에 강우 네가 보드에 쓴 수식…… 그거 완성본 보내줄 수 있냐고 요구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우는 한바탕 큰 웃음을 터트렸다.

짐작한 대로다. 마도환이라면 그 수식을 알아보리라 예상했다. 그걸 노렸으니까.

녹화로 정신없던 와중에도 강우는 정확하게 마도환의 흥미를 끌 부분까지만 수식을 전개하고 딱 멈췄다.

녀석을 놀리고 싶었다. 자신은 이런 것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셈이다. 당연히 마도환은 하지 못할 테니 그 수식을 보고 더 애태울 것이다.

그 수식의 해답은 자신과 차도도만 알고 있으니 능력이 부족한 마도환은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겠지.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요?”

“아직 연구 중이라고. 이제 시작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끊었어.”

“잘하셨어요.”

강우의 의도를 짐작하고 차도도가 발을 맞춰줬다.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하던 신새벽이 물었다.

“마도환 그 사람 나쁜 사람이야?”

“네. 나쁜 사람.”

“노창열 교수처럼?”

신새벽에게 나쁜 교수는 모두 노창열로 통한다.

“그보다 더 나쁜 사람.”

강우가 자신 있게 말하자 신새벽도 바로 같은 편이 됐다.

차도도와 신새벽이 신나게 두 사람을 험담하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강우가 다시 당부했다.

“마도환과 노창열, 그 두 사람과는 절대로 엮이지 마세요. 아시죠?”

“그럴게.”

차도도와 신새벽이 흔쾌히 대답했다.

어차피 차도도는 마도환과 엮일 부분이 없으나 신새벽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강우야, 근데 난 어떡하지? 노창열이 논문 심사 교수로 참여할 것 같은데?”

“예전에 말씀드린 대로 밀고 나가야죠. 그래서 논문은 어떻게 진행했어요?”

“논문은…….”

신새벽이 우물거리면서 말을 못 했다.

“학회지에 제출은 했어요?”

“했어.”

국내 학회지에 제출한다고 했던 때가 벌써 두 달 전이다. 이제 슬슬 답신이 와야 한다. 그런데도 답신이 오지 않는다면 노창열의 입김이 뒤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강우는 전혀 위기를 느끼지 않았다. 노창열은 교수 사회에서 젊은 편이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어차피 실력으로 눌러버릴 거니까 녀석이 중간에 방해하더라도 상관없다.

“조금 더 기다려보죠. 그리고 해외 저널에 실을 후속 논문 준비는 어떻게 되었어요?”

“그게…….”

신새벽이 우물쭈물하며 딴청을 부렸다.

“안 했어요?”

“지금부터 열심히 하려고.”

강우의 눈썹이 팍 일그러지자 신새벽이 얼른 손을 저었다.

“그, 그게 연말 연초에 바빠서…….”

당연히 이해한다. 그래도 졸업을 올해 여름에 맞추려면 논문심사를 6월에는 해야 한다. 그 전에 해외 저널에 논문을 실어야 승산이 있다. 늦으면 한 학기 더 미뤄질 우려가 있다.

강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신새벽이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했다.

“야! 너 또 나 굴리려고 그러지?”

“윽! 제가 언제 굴렸다고…….”

“힝, 네 머릿속에서 벌써 수십 번도 더 굴렸잖아? 그리고 말이야, 넌 지난 기말고사 때 화학 성적이 그게 뭐야? 평균도 안 되잖아? 내가 그렇게 열심히 화학 공부하라고 그랬는데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아니, 거기에서 화학 성적이 왜…….”

강우도 할 말을 잃었다.

기말 때 화학 시험을 망친 건 사실이나 어차피 화학을 잘 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강우는 숨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말했다.

“쌤, 해외 저널에 보내는 일은 급하거든요? 그래야 졸업이 쉬워지니까요. 겨울방학 끝난 뒤에 보내면 늦어요. 그러니까…….”

“알았어. 내가 최우선으로 열심히 할게. 방학 때까지 못 끝내면 그때는 내가 자진 납세한다.”

축제 때 강우가 주먹으로 꿀밤을 맞은 일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었다.

“네, 이번 방학 때 같이 열심히 해요.”

신새벽이 다시 논문을 뒤적였고 두 사람을 보며 차도도는 웃고 말았다.

강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차도도에게 넘어갔다.

“쌤은?”

“난 다 했어.”

“그럴 리가 없어. 강우야? 너 담임이라고 봐주면 안 된다? 이제 담임도 끝이야. 3학년 때도 담임한다는 보장 없거든?”

신새벽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강우는 신새벽에게 입 다물라고 눈으로 경고하고는 차도도가 내민 노트를 살폈다.

그녀가 반듯한 글씨로 수식을 적은 노트다. 한눈에 강우는 그날 방송국에서 쓴 수식의 후속편임을 눈치챘다.

차도도의 능력은 그의 예측 이상이었다. 그날 녹화 때 수식을 주저 없이 연결해서 보드에 푸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연구가 예상을 앞질렀다고 추측했는데 정말이었다.

“그동안 많이 하셨네요.”

“그리 어렵지 않았어.”

“잘 정리해서 우리도 논문을 만들죠. 다만 이걸 전부 공개하면 안 되고요. 부분만 뽑아내요. 그게 전략적으로 유리해요.”

차도도는 강우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했으나 순순히 응했다.

“저자는 어떻게 하지?”

“쌤과 저, 고곽천재 모두, 그리고 요셉 교수요.”

지금은 고곽천재도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물론 주도적으로 이 논문을 수행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앞으로는 이름을 올리기 어렵지 않을 만큼 일을 시킬 것이다.

“6명이나?”

“지난 고속전철 논문 때처럼 고곽천재 모두의 이름으로 제출하죠. 친구들도 해외 논문 실적이 있으면 훨씬 진학에 유리하니까요.”

고곽천재 동료들이 해외 유학 목표를 세웠으니 그 가능성을 높여줄 책임이 강우에게 있다. 그들은 그와 평생을 함께할 연구 동료이니까.

“그래, 알아서 챙겨줄게.”

차도도가 수긍했다.

신새벽이 못마땅한 눈으로 강우를 흘겼다.

“너, 담임이라고 너무 봐주는 거 아냐?”

“에이, 아니죠. 차 쌤은 실제로 많이 하셨거든요.”

“제대로 확인해봐. 너처럼 복사해서 붙였을 수도 있어.”

예전에 주기율표를 복사해서 낸 것이 또 언급되었다.

강우는 신새벽을 째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 *

상담실에서 모두가 연구에 열중하고 있을 때 차도도의 전화가 울렸다.

차도도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차도도입니다.”

- 차도도 선생님? 여기는 국립과학관 김현수 전문관입니다.

전문관이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직 공무원을 의미한다. 가끔 국립과학관을 비롯하여 전국에 산재한 과학관에서 과학고 쪽에 실험기기 자문 및 행사 요청을 하기도 하기에 특별한 전화는 아니었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 국립과학관에서 방학 중에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과학 실험 및 강연을 하거든요.

“예, 그런데요?”

- 혹시 방학 중 1주일 정도 시간 되십니까?

갑작스러운 요청이라 차도도는 고민스러웠다.

“무슨 일이시죠?”

- 그게…… 설문을 받았더니 차도도 선생님과 강우 학생의 강연 요청이 압도적으로 많아서요.

“예? 강우요? 강우는 아직 고등학생인데요?”

이번 예능 방송의 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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