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국립과학관 (2)
차도도의 전화가 길어지자 강우와 신새벽이 관심을 가졌다.
강우는 대충 무슨 일인지 눈치챘다. 그가 생각하는 과학자는 연구 못지않게 과학 꿈나무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예전에 손강우 시절에도 과학 강연회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다.
강우로 빙의한 후 학생이란 신분 때문에 강연할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그 중요성만은 잊지 않았다.
“전 괜찮아요.”
강우가 나지막하게 의견을 말했다.
차도도가 휴대폰을 막고 다시 의견을 물었다.
“그래도 시간을 내기 어렵지 않아?”
“어떻게든 하면…….”
차도도는 걱정과 우려를 표명했다. 강우가 무리한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그녀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지금 당장은 시간이 촉박해서…….”
- 아!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시면 강의료를 제대로 드리겠습니다. 강우 학생까지도요. 원래 규정대로 한다면 강우 학생의 경우 강사 등급이 최하이거든요. 그 규정은 아시죠? 그걸 훨씬 올려서…….
“강의료 때문은 아니고요.”
- 아! 그리고 강우 학생에게는 학생부 인정 봉사 활동 시간도 드릴 수 있습니다.
차도도의 눈빛이 갑자기 확 바뀌었다.
눈 떠보니 과학고 천재 [독점]
“강우야, 너 봉사 시간 채웠니?”
NOVEL ・ 현판
윤하준
“예? 그게 뭔데요?”
별점
참여완료
7.63
이 녀석은 볼수록 노답이다.
“강우야, 너 봉사 시간 채웠니?”
“예? 그게 뭔데요?”
이 녀석은 볼수록 노답이다.
“졸업 전까지 반드시 봉사 점수 채워야 하거든? 그래야 대학 진학에도 유리하고…….”
“에이, 전 국내 대학 안 갈 거라…….”
“국외도 마찬가지야. 봉사 실적은 외국 대학이 더 챙겨.”
“예?”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강우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그는 지금까지 봉사라고는 해본 기억이 없다. 물론 그의 관점에서 봉사를 많이 했다. 학생들에게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고 페스타에서 강연하고. 인터넷에서 학생들 질문도 받아주고. 심지어 시험 전날 친구들에게 문제풀이도 해줬다.
그런 일을 학생부에 봉사로 기록할 수 없다. 학생부에 올라가는 봉사 시간은 정부가 인정한 곳에서 봉사해야 한다. 보육원이나 양로원, 또는 교통법규 안내원이나 도서관 사서까지.
대부분 고등학생은 1, 2학년 방학 때 적당한 곳에서 봉사 점수를 채운다. 3학년 때 공부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서다. 사실 자율이 아니라 대부분 학부모가 알아서 봉사할 곳을 구해 준다.
강우 어머니는 챙겨주는 그런 학부모가 아니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봉사를 고민한 적이 없다.
“네 학생부에 봉사를 기록한 적이 없어.”
차도도가 담임이었기에 강우의 이력을 누구보다 잘 안다.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안돼. 반드시 해야 해.”
차도도가 결심을 굳히고는 다시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그렇게 할게요. 대신에 봉사 시간 잘 주셔야 합니다.”
- 당연하죠. 그럼 구체적인 날짜를…….
난데없이 강우는 국립과학관에 강연을 나가서 봉사 실적을 채우게 됐다.
* * *
차도도와 함께 국립과학관을 찾았다.
과학관 실무관이라고 소개한 젊은 직원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매표소와 건물 입구에 ‘겨울방학 맞이 과학 꿈나무 실험 및 강연’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었다. 대상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강우는 차도도와 함께 이번 주 5일을 책임져야 한다. 오전은 차도도가 오후는 강우가 강연하기로 순서를 정했다.
물론 요일마다 참가하는 학생이 달라서 똑같은 내용을 강연하면 되기에 부담은 크지 않다.
첫날 오전, 차도도의 강연에는 중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티비에 나왔던 그 선생님이지?”
“어, 노래 잘 부르던 선생님.”
“그 선생님 진짜 예뻐!”
“걸그룹 출신 아니었어?”
“고등학교 선생님이야.”
“우와! 어느 고등학교야? 그 학교 입학하자.”
“네 실력에? 과학고래.”
“크윽! 좌절이다.”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중학교 남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다음 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는 강의실 한쪽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혀를 찼다.
‘쪼그만 것들이 예쁜 건 알아서…….’
내심 중얼거리다 보니 그가 맨날 신새벽에게 듣던 말이다.
신새벽이 그를 보는 시각이 지금 그가 보는 저 남학생들과 비슷한 건가? 강우는 새삼 좌절을 느꼈다.
하긴 신새벽의 입장에서 보면 강우는 남자라기보단 귀여운 동생 같겠지. 어쩌면 오늘 만나는 초등생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도도도? 차도도도 그를 어린아이로 간주하리라 생각하니 갑자기 의욕이 팍 식었다. 10년 차란 의외로 컸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준비를 마친 차도도가 단상에 올랐다.
요란한 박수를 앞세운 학생들은 상기한 표정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진짜 티비에서 봤던 선생님이다!”
“존예다! 존예!”
잠시 환호를 내버려 두던 차도도가 마이크를 들고 학생들에게 인사했다.
강우는 재빨리 노트북을 연결해서 스크린에 강연 자료를 띄웠다.
학생들의 관심을 휘어잡으면서 차도도가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 주제는 생활 속의 과학이었고 물리와 화학, 생물을 모두 아울렀다.
강우는 차도도 강연이 두 번째다. 첫 페스타 강연 때 차도도는 수준급의 강연 실력을 선보였었다.
오늘도 차도도는 훌륭했다.
차도도에게 반한 남학생들은 팬클럽이라도 되는 듯이 그녀에게 호응했고 차도도는 청중의 반응을 잘 조율했다.
강우는 새삼 차도도가 대단하다고 인정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십분 살려 청중의 관심을 끌어냈다. 그리고 학생들이 가장 재미있어할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이곳에 온 학생들은 과학에 관심이 있어도 과학고 학생처럼 과학을 잘하는 학생들은 아니다.
그 수준에 딱 맞게, 쉽게 과학을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에서 수많은 과학 원리를 체험할 수 있어요. 가끔 수업시간에 맛보는 실험이나 교과서에서 접하는 딱딱한 과학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흥미로운 과학이 여러분 옆에서 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부터 여러분도 과학의 눈을 떠보세요.”
“와아!”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차도도가 환하게 웃으며 학생들에게 마무리 인사를 했다.
강우가 보기에 이 순간의 차도도는 여신이었다. 이 강연에 참석한 모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과학의 여신에게 강연을 들은 학생들은 이 시간부터 과학과 친구가 되었다.
강우는 차도도를 향해 엄지를 척 올렸다.
강연을 끝낸 차도도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순간 강연장을 나가던 학생들이 차도도에게 몰려들었다.
“쌤! 사인해주세요!”
“쌤! 여기도요!”
학생들이 차도도를 에워쌌다. 순식간에 공연장에서 가수를 만난 팬처럼 일대가 난장판이 됐다. 학생들이 차도도를 연호하면서 환호했다.
“으아! 이것들이!”
강우는 차도도에게 급히 뛰어갔다.
* * *
오후에 강우가 맡은 학생들은 초등학생이었다.
학부모의 손을 잡고 삼삼오오 강연장으로 모여들었다.
초등생이나 중등생이나 비슷해도 강우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초등생은 훨씬 호기심이 많고 산만하여 시끄러웠다.
“티비에 나왔던 그 형 맞아?”
학생들이 강연장에 착석하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둥근 안경을 낀, 귀엽게 생긴 초등학생이 말을 걸었다.
“응, 형이 티비에 나온 사람 맞아.”
“티비에서는 좀 멍청해 보였는데…….”
“뭐?”
“아! 미안해요. 우리 애가 말주변이 없어서.”
초등생의 어머니가 다급하게 사과했다.
너그러운 사람인 강우는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였다.
초등생이 그를 요리조리 훑어보며 또 물었다.
“그때 같이 나왔던 그 뚱뚱한 형 있잖아? 그 형 진짜 짜장면 잘 먹어?”
최대우의 먹방을 인상 깊게 봤나 보다.
“그 형 체격이 크지? 많이 먹게 생겼지?”
“응, 짜장면이 그냥 입에 막 들어가더라. 형은 짜장면 몇 초 만에 먹어?”
“나? 한 10분은 걸리지 않을까?”
“에이, 나보다도 못하네.”
초등생이 그를 무시하는 눈초리로 쓱 훑어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다른 아이가 옆을 지나다가 강우를 알아보고는 소리쳤다.
“어? 그 형이다! 티비에서 구구단 더럽게 못 하던 형아다!”
아이 어머니가 다시 사과했다.
“애들이 버릇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강우는 너그러운 사람임을 증명하듯 미소로 응답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강우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그런데, 학생! 학생은 어떻게 그렇게 수학을 잘해? 어디에서 배웠어?”
“예? 독학했는데요?”
“에이, 누구나 말로는 교과서를 철저히 공부했다고 하잖아? 그러지 말고 어느 학원 다녔는지 솔직하게 말해줘. 그 학원에 애 등록시키게.”
“제가 집이 시골이라…….”
“요즘엔 시골에서도 주말마다 대치동 학원에 보내더라고.”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다른 학부모가 벌떼처럼 몰렸다.
아무도 그가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유명 학원에 다녀야 한다는 것이 공식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 * *
강우가 맡은 강의 주제는 ‘재미있는 수학’이었다.
수학을 초등생 수준에 맞추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여러분? 1부터 100까지 자연수를 모두 더하면 얼마인지 알아요?”
“5050요!”
한 학생이 바로 대답했다.
“어떻게 계산해요?”
“공식에 넣어서요!”
“무슨 공식요?”
“등차수열 합의 공식요!”
요즘 초등생은 너무 똑똑했다. 고등학교에서나 배울 공식을 벌써 암기하고 있다. 학년은 초등생인데 벌써 고교 수학을 다루는 학생들이다. 심지어 이과 수학을 시작한 애들도 있다.
“가우스 알죠? 수학 천재요.”
“네, 알아요.”
“그 가우스가 초등학생 때 이 문제를 풀고 천재 소리를 들었거든요. 여러분도 이 문제를 풀 줄 아니까…….”
“우와! 나 천재였어!”
몇몇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원리도 알아요?”
어떤 학생이 등차수열 합을 구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수열을 앞으로 뒤로 나열하여 각 항을 더해 계산하는 방식이다.
가우스는 이 방법을 초등학생 때 스스로 터득했다. 반면 이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배웠다. 배우고도 모르는 것보다 배우고 아는 것이 훨씬 낫더라도 천재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럼 에디슨은 알아요?”
“알아요!”
“에디슨이 어렸을 때 병아리를 낳겠다고 달걀 품은 이야기 알죠?”
“네!”
초등학생들이 마치 어미를 따르는 병아리처럼 합창했다. 중고등학생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강우는 웃으며 열심히 설명했다.
“여러분도 해봤어요?”
“아뇨!”
“왜 안 해요?”
“우린 닭이 아니거든요.”
“그렇죠? 여러분이 에디슨보다 더 천재야!”
“이야! 내가 에디슨보다 더 똑똑하데!”
초등생의 함성 속에서 강우는 설명을 이었다.
“지금 알고 모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조금 더 잘 안다고 천재란 보장은 없거든요.”
“그럼 중요한 게 뭐예요?”
“여러분이 수학 과학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그 마음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는가가 중요해요. 좋아하면 언젠가는 잘할 수 있거든요.”
강우는 과학을 향한 열정을 초등학생에게 전했다.
이 학생들이 얼마나 기억할지는 모른다. 그 열정만은 평생 머릿속에 남아있기를 바랐다. 이들이야말로 이 나라를 끌어갈 과학 역군이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났을 때 강우는 흥분해서 떠드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이 초등학생들은 중학생만큼 과학을 많이 알지 못해도 그 얼굴에는 과학을 향한 열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행복한 날이다.